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등 정치 불안이 이어지면서 기업 체감경기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하락했다. 가계는 고금리·고물가에 자녀의 교육비 지출마저 줄이는 등 소비심리까지 꽁꽁 얼어붙었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12월 기업경기조사’에 따르면 이달 전산업 기업심리지수(CBSI)는 전월보다 4.5포인트 하락한 87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0년 9월(8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또 월 기준 하락 폭은 지난해 1월(-5.6포인트) 이후 1년 11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CBSI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가운데 주요 지수를 바탕으로 산출한 심리 지표로 100을 밑돌면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제조업 CBSI는 업황(-1.3포인트) 및 자금 사정(-1.3포인트) 등을 중심으로 전월보다 3.7포인트 내린 86.9를 나타냈다.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87.1) 역시 채산성(-1.5포인트), 자금 사정(-1.5포인트) 악화로 5포인트 하락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하락 폭은 각각 2022년 9월(-5.6포인트), 2023년 10월(-7.4포인트)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정치 불확실성 확대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화학·자동차 업종 기업의 우려가 반영됐다”며 “미국의 새 정부 출범에 따른 보호무역 기조 강화,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내년 1월 CBSI 전망치 또한 전산업(82.4), 제조업(85.2), 비제조업(80.3)에서 이달 전망치보다 각각 7.3포인트, 3.7포인트, 10포인트 떨어졌다. 비제조업 전망치는 2020년 4월(-23.5포인트) 이후 4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황 팀장은 “이달 비상계엄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으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비제조업 기업 심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고금리·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카드 매출 등 소비 감소 추세 역시 뚜렷하게 나타났다. BC카드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국내 카드 매출은 지난해보다 4% 감소했다. 분야별로는 펫·문화(-9.2%)의 매출이 가장 크게 줄었고 레저(-7.0%), 식음료(-6.6%), 교육(-5.6%), 교통(-4.7%), 의료(-4.4%), 쇼핑(-0.7%) 순이었다. 특히 가계지출 가운데 ‘최후의 보루’로 평가받는 교육 분야에서의 감소세가 뚜렷했다. 교육 지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어린이집 부문은 올 들어 14.5% 줄었다. 학습지(-7.5%), 유치원(-5.6%) 등도 감소세가 나타났다. 매출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식음료 분야 또한 6.6% 줄었다. 식음료 중 음료 소비는 전년보다 12.5% 감소했다. 주점 및 식당 소비 역시 각각 10.6%, 6.1% 줄면서 고물가 등으로 인한 내수 침체에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BC카드 관계자는 “가계지출에서 웬만하면 줄이지 않는 교육 관련 소비가 크게 줄었다”며 “합계출산율 1명이 붕괴하면서 어린이집 소비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