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를 상징하는 세계 무역기구(WTO)가 내년 출범 30년을 맞지만 글로벌 무역 전망은 어느 때보다 암울해지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귀환으로 미국의 무역 장벽이 더욱 높아지고 미중 간에 2차 무역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1947년 마련된 관세 무역 일반협정(GATT) 체제를 대체해 1995년 1월 1일 공식 출범한 WTO는 교역 확대와 무역 규범 강화, 회원국 간 무역 분쟁 해결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교역 핵심 기구다. 불공정한 관세나 보조금, 무역 제한 조치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유무역 시대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WTO는 미중 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다자 무역 기구로서의 존재감을 잃기 시작했다. 2016년 들어선 트럼프 행정부는 강력한 대중 무역 전쟁을 벌이면서 WTO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다. WTO가 지나치게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의 편을 들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결국 WTO의 위상에 결정적 타격을 입힌 2019년 상소기구 마비 사태로 이어졌다.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미국 행정부는 WTO의 분쟁 처리 절차를 담당하는 상소기구 위원 선임 승인을 거부하면서 상소기구 구성이 불가능해졌다. WTO가 접수한 무역 분쟁이 하급심인 패널 절차를 거친 후 상소심을 진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2020년 호베르투 아제베두 당시 WTO 사무총장은 중도 사퇴했지만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현 사무총장의 재임 기간에도 상소심 기능은 회복하지 못했다.
내년 1월 출범하는 트럼프 2기의 무역정책은 WTO 체제를 더욱 위태롭게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국제 무역 규범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한 보편관세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60% 관세 등 1기 때보다 거친 미국 우선주의 무역정책을 펼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중국은 희귀 광물 수출통제와 보복 관세를 통해 이에 맞불을 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