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내년 환율 1390원 넘으면 못버텨”…짙어진 ‘커런크라이시스’

기업 60%가 1400원이상 전망

원화가치 하락하면 이익 큰폭 ↓

수입원료 비중 높은 철강·석화

고환율 장기화땐 셧다운 가능성

컨테이너가 가득 쌓인 부산항의 모습. 뉴스1컨테이너가 가득 쌓인 부산항의 모습. 뉴스1




국내 대기업들이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기업 생존이 어려워지는 ‘커런크라이시스(currency+crisis·환율위기)’가 올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 원화 가치 하락으로 원자재 수입 가격이 상승하고 해외 투자 비용도 증가하면 실적이 하락하는 것은 물론 정상적인 경영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경제·경영환경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감내할 수 있는 적정 원·달러 환율은 1390.84원으로 나타났다.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달러당 1470.5원(야간 거래 기준)에 마감된 점을 감안하면 그 격차가 이미 80원가량 벌어진 셈이다.



응답자의 43.6%는 내년 원·달러 환율이 1400~1450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고 1350~1400원이 31.6%, 1450~1500원이 17.8%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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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상승(원화 약세)할 때 영향을 묻는 질문에 46.5%는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로 이익이 감소한다’고 답했다. 이는 과거 환율이 높아지면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기업에 유리하다고 평가됐던 상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실제 수출 비중이 많아 고환율 이득을 볼 것으로 보이는 반도체와 가전, 배터리 업계조차 실익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더 많다. 당장 제품을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지만 실리콘·희토류·텅스텐·리튬·흑연 등 원자재 구입 부담이 커지면서 수익성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은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신·증설하고 있기 때문에 시설 투자 및 장비·설비 반입 비용도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가령 삼성전자의 경우 170억 달러를 들여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을 짓고 있는데 원·달러 환율이 200원 오른다고 가정하면 3조 원 이상의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수입 원료 비중이 높은 철강·석유화학 산업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셧다운(가동 중단)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포스코는 이미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7월 포항 1제강공장을, 11월 포항 1선재공장을 각각 폐쇄했다. 현대제철(004020)도 포항 2공장 폐쇄를 진행 중이다. 철강업의 경우 철광석과 원료탄 등 전체 원재료에서 수입 비중이 90% 이상에 달한다. 글로벌 철강 공급 과잉 현상과 강달러 현상이 장기화한다면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군을 대상으로 추가 공장 폐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주요 원료인 나프타를 100% 수입해야 하는 석화 산업도 고환율의 직격탄을 맞는 업종이다. 업체들은 나프타를 달러로 수입해 에틸렌·프로필렌 등의 제품을 만든다. 현재 대표적 수익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에서 나프타를 뺀 가격)는 손익분기점인 톤당 300달러를 크게 밑돌고 있다. 업체들은 기초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멈추고 가동률을 줄이면서 적자에 대응하고 있지만 상황을 반전시킬 뾰족한 묘수가 없는 상황이다. 석화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환율 장기화는 끝이 보이지 않는 석화 불황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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