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을 맡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경제위기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경제부총리가 외교와 안보까지 담당해야 하는 데다 전남 무안 여객기 추락 사고가 겹치면서 사실상 경제 사령탑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런데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헌법재판관 미임명은 탄핵 사유라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몰아붙이고 있다. 전직 장차관급 인사들과 경제 전문가들은 정치가 경제를 해쳐서는 안 된다며 이제라도 여야정이 힘을 모아 대외 신인도 추락을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은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국가 신용도 추락 위기이며 환율은 오르고 주가는 폭락하는 경제 대위기”라며 “민주당이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으면 또 탄핵할 것인가”라고 크게 우려했다. 그는 “최 권한대행은 평생 경제를 해오던 사람인데 외교와 안보까지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정치는 경제를 뒷받침해줘야 하며 국무위원을 상대로 탄핵을 계속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줄탄핵 이후 대외 신인도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국제경제학회장인 원용걸 서울시립대 총장은 “탄핵 문제가 두 번이나 겹친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며 “대외 신인도가 아무래도 더 떨어질 개연성이 생겼다고 볼 수 있지 않겠나”라고 해석했다. 고려대 총장을 지낸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도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가 됐다는 것은 이제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정부 체제가 아니라는 뜻”이라며 “경제정책이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워져 금융시장 불안, 외국 자본 유출, 환율 상승, 투자 심리 및 소비 위축으로 경기가 무너지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대로라면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학계에서는 대통령 탄핵으로 식물 상태가 된 정부가 이제는 빈사 상태에 빠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총리가 권한대행일 때는 그래도 정부 내의 권위가 유지돼 국회와의 협상이 가능했지만 지금의 ‘대대행’ 체제에서는 그 여지마저 사라졌다”며 “어떤 정치적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이미 국회에서 총리를 탄핵소추한 만큼 정치권이 정부를 파트너로 삼지 않고 국가 운영과 행정을 무시할 수밖에 없다. 식물보다 더 심각한 사실상 빈사 상태”라고 진단했다. 지금의 상황은 경제가 배제된 정치 일변도의 야당 독재라는 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
통계청장을 지낸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그동안 많은 위기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며 “지금은 경기와 경제 체력 자체가 다운돼 있으며 전 세계도 각자도생을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과거처럼 누군가 리더십을 발휘해서 나라 전체를 이끌고 갈 수가 없다”며 “정치는 이제 믿을 수 없는 지경이고 과거 금 모으기를 했던 국민들이 똘똘 뭉쳐서 헤쳐나가야 하며 기업들도 기업대로 각자 위치에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 권한대행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김 교수는 “경제정책은 정국의 흐름과 무관하게 소신껏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데 최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게 됐으니 정치적인 결정과 무관하다고 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며 “정무적인 경제정책이 아니더라도 정무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최 권한대행이 내세우는 경제정책이 순수하게 경제 관료로서 추진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정치를 위한 것인지 구별되지 않는 상황이 됐다는 뜻”이라며 “외국과의 관계나 투자 정책은 먼 미래를 보고 해야 하는데 정책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정치 시스템을 시급히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온다. 윤 전 장관은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 거버넌스를 바꿔야 하며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대통령제에 따른 폐단을 없애는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며 “아울러 국회 입법 폭주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도 필요하다. 다수 의석을 잡았다고 폭주하면 되겠느냐,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각종 제약 속에서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이 특임교수는 “야당은 정권 탈환을 위해 경제 붕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탄핵 정국으로 몰아가겠다는 입장 같고 여당은 이를 어떻게든 막아내겠다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며 “정치 싸움판이 됐다는 의미인데 그래도 나라는 굴러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치 논쟁을 떠나 최소한 경제정책만큼은 여야정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최소한 추가경정예산만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추경의 경우 정부도 좀 더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게 이 특임교수의 생각이다.
김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외치던 개혁은 다 물 건너갔으며 기본적으로 하던 일만 생명 유지하듯 해나가게 될 것”이라며 “최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니 무엇인가를 시도하면 당연히 정략적으로 해석될 것이므로 야당이 다 막으려 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적어도 기존에 국민적 합의가 됐던 것들이라도 일관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윤 전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을 패싱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며 “말로는 정치권이 국민을 위한다, 민생을 위한다 하지만 행동과 정책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고 하는데 정치가 경제에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