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영업정지’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제재 수위를 둘러싼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영업정지는 대형 플랫폼에 전례가 드문 데다 법률상 요건과 절차가 까다로워 실제로는 ‘강한 경고’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온다. 쿠팡이 멈출 경우 판매자·근로자·소비자까지 충격이 확산될 수 있어, 처벌은 강하되 실행 가능한 방식으로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사태의 피해 회복 수준과 재발 방지 조치 이행 여부를 두고 쿠팡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19일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피해 회복 조치를 쿠팡에 요구해야 한다”며 “쿠팡이 이를 적절히 실행하지 않을 경우 영업정지 처분을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 정보 도용 여부와 재산상 손해 발생을 확인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정부가 ‘영업정지’라는 초강수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꺼낸 셈이다.
공정위가 거론한 법적 근거는 공정위 소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이다. 전자상거래법은 원칙적으로 위반 행위 중지, 시정조치, 재발 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먼저 명령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위반 행위가 중대해 시정조치만으로 소비자 피해를 막기 곤란한 경우에 한해 일정 기간 영업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즉 조사 결과에 따라 시정·개선 명령이 우선 내려지고, 이후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공정위는 민관 합동 조사 결과와 피해 규모, 피해 회복 조치 이행 수준 등을 종합해 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제재는 별도로 진행된다.
다만 공정위가 실제 영업정지 카드를 꺼내기까지는 넘어야 할 문턱이 높다. 이번 사태는 개인정보 유출에서 출발했지만, 전자상거래법상 영업정지는 기본적으로 ‘소비자 피해’, 특히 ‘재산상 손해’와 연결된 제재다. 따라서 영업정지 판단을 위해서는 단순 유출 사실 확인을 넘어 △소비자 정보가 실제로 도용돼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는지(또는 발생할 우려가 큰지) △당국이 요구한 피해 회복·재발 방지 조치를 회사가 적절히 이행했는지 등이 핵심 쟁점이 된다. 구조상 ‘즉각 셧다운’이 아니라 ‘시정→이행 점검→제재 강화’로 이어지는 단계형 제재인 만큼, 영업정지는 ‘최후의 수단’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재 수단을 둘러싼 또 다른 관건은 ‘플랫폼 셧다운이 오히려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역설이다. 전자상거래법은 영업정지가 소비자에게 ‘심한 불편’을 주거나 공익을 해칠 우려가 있으면 영업정지 대신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쿠팡처럼 이용 규모가 큰 플랫폼의 전면 중단이 배송·환불·정산 등 일상 거래 전반을 흔들어 소비자 피해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될 경우, 실제 결론은 시정·개선명령과 과징금 등 ‘제재 조합’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영업정지가 현실화할 때 파급력이 큰 점도 논쟁을 키운다. 쿠팡의 물류·배송 운영이 급감하면 고용과 거래가 동시에 흔들릴 수 있어서다. 올 10월 국민연금 사업장 가입자 기준 쿠팡 직고용 인원은 9만3065명으로 집계됐다. 배송 기사와 협력사 인력 등을 포함하면 쿠팡 생태계 고용 규모가 40만 명 이상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쿠팡은 2023년 기준 거래 중인 소상공인 파트너가 23만 명, 이들의 연간 거래 금액이 약 12조 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플랫폼이 갑자기 멈추면 정산·재고·광고 집행 등 운영 전반에 혼선이 생기고, 쿠팡 거래 비중이 큰 판매자일수록 단기간 매출 공백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영업정지보다 시정·개선 명령을 촘촘히 내리고 과징금 등과 결합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주 위원장도 “영업정지가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면 그것에 갈음해 과징금을 처분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하며 영업정지 미집행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영업정지는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고 해서 아예 출입을 막아버리는 것과 같다”며 “과징금과 보안 개선 명령 등 실효성 있는 수단을 조합하는 방식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위법 행위의 비용을 확실히 치르게 하되, 재발 방지 의무를 구체화하고 이행 점검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과도한 영업정지가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영업정지는 감정적으로 비칠 수 있고,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과잉 처분이 되면 산업 전반에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해외 투자자와 글로벌 기업에 주는 메시지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관건은 ‘강한 처벌’과 ‘현실적 집행’ 사이의 균형이다. 피해 회복과 재발 방지 조치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강제하면서도, 플랫폼 셧다운이 노동자·판매자·소비자에게 2차 충격을 주지 않도록 제재 수단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