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로터리] UN80 성패, AI 기반 '공공지능'에 달렸다

차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엔 80주년 개혁 이니셔티브(UN80)의 성패는 인공지능(AI) 기반 ‘공공 지능(public intelligence)’을 누가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유엔 창설 80주년을 앞두고 논의되는 UN80 개혁은 국제기구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국제질서 운영 방식 자체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다중 복합 위기와 AI 대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 국제사회가 직면한 질문은 분명하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전 지구적 판단과 조정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의 배경에는 국제 리더십의 공백이 존재한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유엔 예산과 정치적 관여를 구조적으로 축소해 왔다.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 추세로 굳어지고 있다. 유엔은 더 이상 특정 국가의 재정과 정치적 의지에 의존하는 식으로 기존 방식을 유지할 수 없다. 동시에 유럽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과 재정 압박, 내부 정치 분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미래 기능을 선도할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 UN80 개혁은 바로 이 공백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리더십 교체가 아니다. 오늘의 국제질서는 기후위기, 보건 불안정, 식량과 난민 문제, 지정학적 충돌, 기술 패권 경쟁이 동시에 얽힌 상태다. 이 복합 위기는 사후 대응 중심의 외교나 개별 기구의 분절된 대응으로는 관리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는 위기를 예측하고 통합하고 조정하는 능력, 다시 말해 AI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공공 지능이 필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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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80 개혁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엔이 앞으로 수행해야 할 역할은 더 많은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다. 신뢰 가능한 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정책 선택지를 제시하고 위험을 조기에 경고하며 회원국 간 집단적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본부의 위치가 아니라 그 기능을 실제로 작동시키는 역량이 어디에 있는가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역할은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미중 경쟁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다자주의와 규범 기반 질서를 중시해 온 중견국이다.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 공공데이터 활용 경험, 민주적 거버넌스를 갖춘 국가이기도 하다. 이는 AI 기반 정책 분석, 복합 위기 대응, 글로벌 표준 조정 같은 유엔의 미래 기능을 실험하고 구현하기에 적합하면서도 드문 조건이다.

따라서 한국의 전략은 단순히 ‘본부 유치’라는 상징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AI와 공공 지능을 중심으로 한 기능 선점 전략, 즉 ‘K디플로마시’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다자기구를 외교 무대가 아니라 함께 설계하고 운영하는 거버넌스 플랫폼으로 재정의하는 접근이다. 이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남반구·북반구 저위도의 개발도상국)들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시대에는 말로만 규범을 이야기하는 국가가 아니라 실제로 위기 대응과 정책 설계를 도울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는 국가가 신뢰를 얻기 때문이다.

UN80 개혁은 누군가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영향력이 만들어지는 시기다. AI 시대의 다자 거버넌스는 선언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공공 지능을 누가, 어떤 가치로, 어떤 방식으로 구축하느냐에 따라 국제질서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한국이 이 전환기에 책임질 기능을 제안하고 실행한다면 UN80은 기념이 아니라 미래 질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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