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혼자 있다가도 위로받고 싶은 날…감정의 여정을 담다

◆무나씨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먹빛의 떨림으로 감정의 순간 포착

BTS 리더 RM 소장 작품 포함 등

젊은 컬렉터들 사로잡은 32점 전시

마곡 스페이스K서…내년 2월까지

코오롱그룹의 문화예술나눔 공간인 서울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에서 무나씨의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이 열리고 있다. 작가가 15세기 조선 문인화가 강희안의 ‘고산관수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동명의 작품과 가로 7미터 병풍 형태의 작품 ‘마음을 담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은 관람객이 이곳에 잠시 머물 수 있도록 방석을 놓는 등 공간을 명상적 장소로 만드는 연출을 더했다. /사진 제공=스페이스K코오롱그룹의 문화예술나눔 공간인 서울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에서 무나씨의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이 열리고 있다. 작가가 15세기 조선 문인화가 강희안의 ‘고산관수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동명의 작품과 가로 7미터 병풍 형태의 작품 ‘마음을 담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은 관람객이 이곳에 잠시 머물 수 있도록 방석을 놓는 등 공간을 명상적 장소로 만드는 연출을 더했다. /사진 제공=스페이스K




어둡고 고요한 전시장 한가운데 높이 5m에 달하는 거대한 형상이 떠올랐다. 끌어안은 두 팔 위로 고개를 기댄 이 비현실적이며 압도적인 존재의 시선 끝에는 잔잔한 물결이 길게 이어지는 병풍 하나가 펼쳐졌다. 작품 속 두 사람은 물가에 앉아 한 명이 흘린 눈물을 다른 한 명이 받아 연꽃으로 빚어내는 중이다. 완성된 연꽃들은 물길을 따라 저 거대한 형상에게 흘러든다.



이 풍경을 위로의 여정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슬픔이 다른 누군가를 통해 형태를 바꾸고, 긴 물길을 느리게 건너 마침내 아득히 멀어진다. 작가 무나씨(45·본명 김대현)의 세계는 이처럼 우리 모두가 한번쯤 품어본 감정을 건드린다.

흑과 백의 간결한 세계로 사람의 감정을 담아내는 무나씨의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가 서울 강서구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여러 수집가에게 빌려온 작품 14점과 신작 18점 등 총 32점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빌려온 작품 중에는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소장 중인 ‘영원의 소리(2023)’도 포함됐다. 검은 배경 속 서로 닮은 세 사람이 등장하는데 한 명은 말하고 한 명은 듣고 또 한 명은 듣는 사람의 귀를 막고 있는 묘한 상황을 그렸다.



젊은 컬렉터들에 인기가 높은 작가지만 미술관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는 “경험이 많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실제 작가는 개관 전날까지 약 6일간 전시장에 머물며 작품을 마무리하고 공간에 어울리는 음악을 직접 고민하는 등 여러모로 공을 들였다.

관련기사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소장한 작품인 무나씨의 ‘영원의 소리’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제공=스페이스K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소장한 작품인 무나씨의 ‘영원의 소리’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제공=스페이스K


한 관람객이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무나씨의 신작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를 관람하고 있다. /제공=스페이스K한 관람객이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무나씨의 신작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를 관람하고 있다. /제공=스페이스K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무나씨는 한지 위에 붓으로 수없이 획을 그어 완성한 흑백의 세계로 인간의 마음 속에 자라는 수많은 감정을 표현해왔다. 작품에는 부처를 닮은 무표정한 인물이 항상 등장하는데 작가 스스로를 표현한 ‘나’이거나 ‘나’와 관계하는 ‘너’이다. 나와 너의 사이에서 어떤 수많은 감정이 피어오르고 또 사라지는지를 화면에 포착하는 것이다. 작가는 “감정을 주제로 하는 것은 내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처음에는 내가 느낀 개별 감정 자체에 관심을 가졌지만 점점 감정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일어나고 형태가 있다면 어떤 모습이고 질감일까, 생겨난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소할까 등 근본적이고 일반적인 질문을 따라가는데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무나씨, ‘나는 저기 그것’ /제공=스페이스K무나씨, ‘나는 저기 그것’ /제공=스페이스K


무나씨, ‘석원’ /제공=스페이스K무나씨, ‘석원’ /제공=스페이스K


‘무아(無我)’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나씨라는 이름을 쓴다는 작가지만 그가 그리는 감정들은 개인적이고 깊숙한 내면의 것들이 많다. 작가가 일찍이 젊은 컬렉터들의 공감을 받은 것도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다가도 홀로 있고 싶은 현대인의 이중적인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하기 때문이다. 물결 치는 수면 위로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거나 내면의 무수한 자아가 실제가 되어 겹치고 포개지는 모습도 무나씨가 자주 그리는 장면이다. 작가는 “그림만 보면 감정에 초연한듯 보이지만 나 역시 가장 어렵고 두려운 것이 내 감정을 마주하는 일”이라며 “나의 그림들은 그런 시끄러운 마음을 견디고 혼란을 이겨내길 바라는 다짐을 담은 것이라 이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의 변화는 개인으로 고립되기보다 타자와의 경계를 허무는 일에 마음이 좀 더 간다는 점이다. 실제 전시장에는 인물들이 강한 유대로 맺어진 다정한 풍경이 여럿 자리했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가 대표적이다. 차가운 눈밭에 웅크린 한 사람을 다른 이가 꼭 끌어안은 모습인데 둘 위로 흰 눈이 소복이 쌓여 마치 하나가 된 듯 보인다. 단단한 바위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을 빈틈없이 끌어안은 두 사람이 채우고 있는 ‘석원’도 비슷하다. 작가는 “이전에는 타자와의 경계를 강하게 긋고 혼자만의 자유를 추구했다면 이제는 경계 없는 관계에서 느끼는 자유의 감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3일까지.


김경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