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패권 경쟁이 ‘나노(nm·10억분의 1m) 전쟁’의 정점인 2나노 시대로 공식 진입했다.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가 2나노 양산 시작을 알리며 독주 체제 굳히기에 돌입하자 추격자 삼성전자(005930)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삼성전자는 TSMC의 생산 능력 포화와 가격 인상에 부담을 느낀 빅테크 기업들을 공략해 역전의 틈을 만들 전망이다.
1일 연합보 등 대만언론에 따르면 TSMC는 “2나노 반도체 대량 생산은 기존 계획대로 4분기 중 시작됐다”며 “트랜지스터 밀도와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현재 반도체 산업 내 가장 앞선 기술”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실적 발표 당시 웨이저자 회장이 언급한 양산 시점을 공식 확인한 것이다. 구체적인 수율이나 초도 물량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기술 리더십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행보로 풀이된다.
TSMC 2나노 주문 1년치 조기 마감
삼성전자 SF2 공정 성능 개선이 관건
삼성전자 SF2 공정 성능 개선이 관건
TSMC 2나노 기술(N2)은 기존 3나노 대비 전력 효율은 25~30% 높이고 성능은 10~15% 향상됐다. 4면에서 전류를 제어하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처음 도입하며 미세 공정의 한계를 돌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플과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 주문이 몰리며 이미 1년 치 생산 물량이 조기 마감됐다. TSMC는 폭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고자 대만 내 2나노 생산 공장을 기존 7곳에서 10곳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2나노 공정(SF2) 양산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TSMC와 격차 좁히기가 녹록지 않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모바일용 AP 엑시노스 2600을 SF2 공정으로 양산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밝힌 SF2 성능 개선 폭은 3나노 2세대 대비 전력 효율 8%, 성능 5% 수준이다. TSMC가 제시한 두 자릿수 개선 폭에 비하면 수치상 열세다. 업계 일각에서는 SF2 공정이 본래 3나노 3세대 공정이었으나 2나노로 리브랜딩된 점을 성능 차이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대만 기술 유출 제한 규제는 기회
테슬라·암바렐라 수주로 추격 불씨
테슬라·암바렐라 수주로 추격 불씨
대만 정부의 기술 보호 정책은 삼성전자에 새로운 기회다. 대만 정부가 최근 국가핵심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N-2’ 규정을 신설함에 따라 TSMC는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 최신 공정을 즉각 도입하기 어려워졌다. 미국 본토에서 최선단 공정 칩을 조달해야 하는 빅테크 기업들에 텍사스 테일러 공장 가동을 앞둔 삼성전자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여지가 생긴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수주 전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7월 테슬라 자율주행 칩 AI5·6을 수주한 데 이어 9월에는 암바렐라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칩 물량을 확보했다. TSMC에 집중된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팹리스 고객사 수요를 파고든 결과다.
가격 인상에 퀄컴 등 ‘삼성 행’ 거론
메타·구글·AMD도 잠재 고객 부상
메타·구글·AMD도 잠재 고객 부상
TSMC가 2나노 공정 가격을 인상하고 주문이 폭주하자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삼성전자를 주목하고 있다. 1위 사업자의 생산 능력 포화는 2위 사업자에게 명확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패키징을 일괄 공급하는 턴키 솔루션을 앞세워 퀄컴과 메타 등 거대 고객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2나노 수주를 위해 가장 공들이는 곳은 퀄컴이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강자 퀄컴은 전통적으로 TSMC와 삼성전자를 오가는 ‘멀티 파운드리’ 전략을 취해왔다. 퀄컴은 차세대 칩 ‘스냅드래곤 8 5세대(가칭)’ 생산을 두고 양사 공정 성능과 가격을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현지 언론조차 TSMC 2나노 가격이 웨이퍼당 3만 달러(약 4100만 원)를 웃돌 것으로 예상돼 퀄컴이 일부 물량을 삼성전자에 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자체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에 나선 메타(페이스북)와 구글도 유력한 잠재 고객이다. 메타는 자사 AI 가속기 ‘MTIA’ 생산을 위해 TSMC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구글 역시 자사 모바일 칩 ‘텐서’ 시리즈를 삼성 파운드리에서 생산해 온 이력이 있다. 차세대 칩 생산을 두고 TSMC로의 이탈설이 돌기도 했으나 삼성전자가 2나노 공정 수율을 입증한다면 관계를 지속할 공산이 크다.
리사 수 AMD CEO가 최근 “공급망 안정을 위해 차세대 칩 생산에 듀얼 소싱(이원화)을 고려한다”고 발언한 점도 삼성전자엔 호재다. AMD는 엔비디아 추격을 위해 고성능 AI 칩 생산이 시급하다. TSMC 라인을 엔비디아가 독점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2나노 공정과 HBM(고대역폭메모리) 패키징 기술은 매력적인 선택지다. 이미 삼성전자는 일본 인공지능 기업 프리퍼드네트웍스(PFN)의 2나노 AI 가속기를 수주하며 물꼬를 텄다.
삼성, 가격 경쟁력·적시 납기 강점
삼성전자 무기는 가격 경쟁력과 납기다.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가 TSMC 대비 유연한 가격 정책을 제시하며 고객사를 유인하고 있다고 본다. AI 반도체 시장이 커지면서 팹리스(설계) 기업들은 비용 절감 압박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2나노 수율만 안정권에 올려놓는다면 비용 효율을 중시하는 팹리스들의 대규모 이동이 현실화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와 애플이 TSMC 2나노 초기 물량을 선점하면서 나머지 빅테크 기업들은 대안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라며 “삼성전자가 이 틈을 파고들어 퀄컴이나 메타 중 한 곳이라도 2나노 주력 공급사 자리를 확보한다면 파운드리 시장의 판도는 단숨에 뒤집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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