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한 배경에는 대통령으로서의 헌법 수호 의무를 저버리고 장기 권력 독점을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특검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위법행위가 아닌 국가 권력 작동 구조 자체를 무력화하고 통치 질서를 재편하려 한 헌정 파괴 범죄로 규정했다. 현존하는 최고 수위의 형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특검의 결론이다.
박억수 특별검사보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심리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에 대한 결심공판 최종 의견 진술에서 “비상계엄은 단순한 권한 남용이나 위법한 국정운영을 넘어 헌법이 설계한 국가 구조 자체를 무력화하고 재편하려 한 내란 범행”이라고 강조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을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기획·실행한 내란의 우두머리로 규정하며 이번 사태를 1980년 5·17 비상계엄 이후 45년 만에 발생한 중대한 헌정 위기로 평가했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조지호 전 경찰청장과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이 국회와 야당 당사 봉쇄를 지시했고 다수의 군경 간부가 이를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이는 군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 무력이 오히려 국민을 향해 사용됐다는 점에서 죄질이 극히 무겁다고 특검은 판단했다.
박 특검보는 “공직 엘리트 세력이 헌정 질서를 파괴한 이번 사건은 유사한 친위 쿠데타 시도가 반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보다도 더 엄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검은 또 윤 전 대통령이 2023년 10월 이전부터 비상계엄을 통해 권력을 독점하고 장기 집권을 도모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군경 동원, 국회 봉쇄, 주요 정치인 체포, 비상 입법 기구 설치, 헌법 개정까지 염두에 둔 계획을 핵심 인물들과 공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지시 문건 등을 통해 입증됐다고 특검은 설명했다. 계엄 선포 과정에서 국무회의의 실질적인 심의가 없었고 국회에 대한 통보도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비상계엄 자체가 명백한 위헌·위법 조치라는 점도 꼬집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내란 범행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나 국민에 대한 사과를 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그 책임을 야당과 사회적 갈등으로 전가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출석을 거부하거나 조사를 회피하는 등 형사 사법 체계를 경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시를 따랐던 하급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진실을 밝히려 한 이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은 ‘경고성 계엄’이나 ‘통치 행위’라는 주장을 반복하며 지지자들을 선동했다”며 “그 결과 사회적 갈등과 국론 분열이 장기화됐고 환율 급등과 주가 하락 등 경제적 충격으로 국가 신인도도 크게 훼손됐다”고 밝혔다.
1996년 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에게 사형이 구형된 순간, 윤 전 대통령을 응원하러 나온 방청석 주변에서는 “미친 XX” “재밌다” 등의 박 특검보를 조롱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에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는 방청객을 향해 “조용히 해달라”며 제지했다. 박 특검보의 최종 의견 진술 내내 무표정을 유지하던 윤 전 대통령도 사형 구형이 선언되는 순간에는 어이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 이날 특검의 구형에 앞서 윤 전 대통령 측의 서증조사가 먼저 진행됐다. 서증조사는 오전 9시 30분에 시작돼 오후 8시 40분을 넘겨서야 마무리됐다. 변호인단은 10시간 넘게 재판 절차의 위법성, 수사기관의 증거 수집 문제, 내란죄 수사권 논란, 비상계엄의 사법 심사 가능성 등을 조목조목 제기했다. 재판부가 중복된 주장에 대해 신속한 진행을 요청했지만 변호인단은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사실상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앞서 제기된 ‘법원판 필리버스터’와 재판 지연 비판에 대해 “악의적인 공격이거나 오해”라고 반박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배보윤 변호사는 “법원이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대해 판단하려 한다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도 함께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통치 행위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존 주장도 되풀이했다. 이 과정에서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이론까지 언급됐다. 변호인단은 비상계엄 선포의 원인이 거대 야당의 입법권 남용과 잇단 탄핵소추에 있었다는 점도 끝까지 유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