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지난해 역대 최다인 1850만 명을 돌파했다.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서며 국내 관광산업이 완연한 회복 국면에 들어섰지만 지역별로는 여전히 뚜렷하게 성적이 갈린다. 한국관광공사가 외국인 신용카드 결제 데이터를 기준으로 2025년 지역별 외국인 관광 소비액(관광총소비)을 분석한 결과 서울의 독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처음으로 부산이 인천을 제치고 전국 2위에 올라서며 지역 관광의 판도가 변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총소비는 관광업으로 등록된 업종에서 해외 카드로 결제된 매출을 합산한 지표로, 외국인 관광의 ‘실제 지갑’ 흐름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통계로 활용된다.
13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외국인들이 관광 소비로 지출한 금액은 9조 5921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4년의 7조 9180억 원에 비해 21.1% 증가한 수치로 압도적인 1위다. 숙박·식음·쇼핑 등 주요 소비 항목 전반에서 증가세를 나타내면서 외국인 관광 소비의 상당 부분이 서울에 집중되는 구조가 고착화된 모습이다.
대형 쇼핑 시설과 숙박 인프라, 공연·전시 등 체험 요소가 서울 한 곳에 몰려 있는 구조가 외국인 쏠림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도권 전체의 관광 수입은 회복되는 모습이지만 ‘서울과 그 밖’의 격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전국에 골고루 분산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부산의 경우 외국인 관광 소비액은 전년 대비 32.4% 증가한 1조 531억 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인천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부산은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수가 30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체류와 소비를 동반한 관광으로 외국인의 지출 구조가 바뀌고 있는 모습을 수치로 증명했다. 실제 부산시가 도입한 외국인 대상 교통·관광 통합 상품인 ‘비짓 부산 패스(Visit Busan Pass)’는 지난해 9월 기준 누적 판매 60만 장을 기록하며 이용객이 크게 늘었다. 대표 축제인 ‘페스티벌 시월’의 관람객도 93만 명으로 전년 대비 39.6% 증가하는 등 체류형 콘텐츠가 안착하는 흐름을 보였다. 해운대 인근 벡스코 제3전시장 조성도 추진되면서 워케이션 콘텐츠 발굴과 마이스(MICE) 관광 육성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인천의 외국인 관광 소비액도 전년 대비 19.7% 증가한 1조 408억 원을 기록했으나 부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가율이 낮은 영향으로 2위 자리를 빼앗겼다.
상위권 아래의 ‘중위권 그룹’은 회복 속도는 비슷했지만 절대 규모에서 차이를 보였다. 경기 지역의 외국인 관광 소비액은 9811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4% 증가했지만 서울과의 격차는 여전히 컸다. 경북(820억 원)과 경남(763억 원)도 각각 24.0%, 28.9% 늘며 회복 흐름에 올라탔지만 상위권과 비교하면 규모 차가 분명했다. 충북·충남·전북 등도 전년 대비 늘었지만 외국인 관광 소비가 지역 경제를 본격적으로 견인하는 단계로 보기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위권 지역은 ‘얼마나 많은 외국인이 오게 하느냐’보다 ‘온 뒤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게 하느냐’가 더 중요해진 국면”이라고 말했다.
반면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늘었음에도 소비 회복이 더딘 지역도 적지 않았다. 제주는 지난해 외국인 소비액이 4503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8% 증가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강원은 673억 원으로 4.7% 증가에 그쳤고 전남은 251억 원으로 유일하게 전년(268억 원)보다 줄었다. 자연·휴양 중심 관광지는 계절성과 상대적으로 높은 당일치기 방문 비중, 제한적인 소비 동선 등 구조적 요인이 맞물리면서 관광객 수 회복이 곧바로 지역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 못했다.
수도권 내부에서도 성적은 엇갈렸다. 인천은 국제공항을 통한 외국인 유입 효과에도 불구하고 환승 및 단기 체류 비중이 높아 지역 내 소비 확대로 연결하는 것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관광객이 많이 ‘지나가는 곳’과 실제로 ‘돈을 쓰는 곳’이 다르다는 점이 연간 소비 지표에서도 확인된 셈이다. 공항 접근성이 높은 것만으로는 소비를 유도하기 어려운 만큼 체류 동선을 설계할 수 있는 관광·쇼핑·체험의 결합이 관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연간 데이터는 외국인 관광 회복 이후 지역별 성과가 얼마나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국인 관광객 수는 전반적으로 늘었지만 실제 소비는 특정 지역에 집중되거나 체류·소비 요소를 다양하게 갖춘 지역으로 쏠리는 양상이 뚜렷했다. 절대적인 관광객 수보다는 ‘어디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며 소비했는가’가 지역 관광 성적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