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80년來 최악 인도적 위기…'효율적 원조' 시급"

■이은영 국제구조위원회 한국대표

2차대전 이후 세계 분쟁 가장 많아

수단 등 2.4억명 고통받는데 원조 줄어

제한된 자원 생명 구하는데 사용 필요

3년전 사무소 개설 국내 지원 이끌어

한국도 위기국가·기후대응 집중해야

이은영 국제구조위원회 한국대표가 “위기를 숫자가 아닌 사람의 삶으로 바라보고 책임 있게 응답하려는 선택이 모일 때 변화는 시작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이은영 국제구조위원회 한국대표가 “위기를 숫자가 아닌 사람의 삶으로 바라보고 책임 있게 응답하려는 선택이 모일 때 변화는 시작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지금 전 세계적 위기는 커지는데 지원은 줄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인도적 위기 상황입니다.”



이은영 국제구조위원회(IRC) 한국대표는 1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도적 도움이 필요한 곳의 상황은 느리게 악화하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진행된다”며 “원조 축소는 가장 먼저 의료·영양·식량 같은 필수 서비스의 붕괴로 나타나고 그 결과는 취약계층의 생명 위협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IRC는 1933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도움을 받아 설립된 기구다. 분쟁과 재난, 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생존과 회복을 지원하고 있으며 현재 시리아를 비롯한 40여개 위기국가와 미국 내 28개 도시에서 의료·안전·경제적 안정·교육·권리 증진에 이르기까지 통합 지원을 제공한다. 국내에는 2022년 11월 아시아 최초로 사무소가 개설됐고, 이 대표는 설립 때부터 한국사무소를 이끌고 있다.



IRC가 현 위기를 ‘2차대전 이후 최악’으로 규정하는 배경에는 수요와 공급의 급격한 비대칭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인도적 수요와 위기의 규모는 계속 커지는데 이를 뒷받침해야 할 국제사회의 대응 역량은 오히려 약화하고 있다”며 “IRC가 최근 발간한 ‘2026 세계 위기국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분쟁은 2차대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으로 늘었는데 지난해에만 61건의 주요 분쟁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인구는 2억 3900만 명으로 확대됐고, 강제 이주 인구도 1억 1730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주요 공여국인 미국과 유럽 등을 중심으로 원조 예산은 감소세다.

관련기사



이번 보고서가 위기의 원인으로 제시한 키워드는 ‘새로운 세계, 무너진 질서’다. 그는 “오늘날의 위기는 우연이나 일시적 분쟁 증가가 아니라 국제 질서 자체가 흔들리며 구조적으로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최근 국가 간 경쟁이 격화되고 동맹 구도가 급변하면서 분쟁은 장기화하고 민간인 보호와 인도적 접근은 어려워 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최근 심화하는 인도적 위기가 일부 국가에 고착되는 동시에 짧은 시간 내 급격히 악화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단이다. 이 대표는 “수단은 3년 연속 위기국가 1위로 분류돼 현재 3370만 명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며 “에티오피아와 콩고민주공화국도 위기국가 상위 10위권에 진입했는데 두 나라 모두 분쟁 장기화와 기후변화가 겹쳐있지만 국제적 원조는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은영 국제구조위원회 한국대표가 인터뷰를 마친 후 홍보 책자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이은영 국제구조위원회 한국대표가 인터뷰를 마친 후 홍보 책자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이 대표는 인도적 위기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 ‘원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위기는 확대되는데 재정 여력이 줄어드는 만큼 제한된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적 고려나 외교적 가시성 중심의 지원이 아니라 실제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현장에서 효과가 확인된 방식은 현금 지원인데, 식량·생필품을 직접 배분하는 방식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지역 시장과 가계의 회복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가 과거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OECD DAC) 회원국으로 성장한 만큼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라고 당부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경제·문화적 성취를 넘어 인도주의적 책임과 리더십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선택해야 하는 전환점”이라며 “정부는 인도적 지원 예산을 전략적으로 운용해 위기국가의 생존과 기후 대응에 집중할 필요가 있고, 기업은 기술과 혁신 역량을 통해 위기 대응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위기를 숫자가 아닌 사람의 삶으로 바라보고 책임 있게 응답하려는 선택이 모일 때 변화는 시작된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도울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왜 개입해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