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트럼프에서 시작된 부유세 논란, 왜 캘리포니아만 시끄러울까[김창영의 실리콘밸리Look]

챗GPT로 생성한 주요 억만장자들의 모습. 사진제공=챗GPT챗GPT로 생성한 주요 억만장자들의 모습. 사진제공=챗GPT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연일 부유세 논란으로 시끄럽다. 올해 1월 1일 기준으로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순자산 10억 달러 이상의 억만장자에게 재산세 5%를 내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 종사자 10만 명을 대표하는 전미서비스노조 서부의료지부(SEIU-UHW)는 올해 11월 이 방안을 주민투표에 부치기 위해 이달부터 서명 운동에 돌입했다. 6월말까지 87만 5000명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SEIU-UHW 주도 법안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캘리포니아에서 현재 논의 중인 부유세 부과 방안은 더 있다. 오클랜드에 지역구를 둔 미아 본타 캘리포니아 주의회 보건위원장은 직원들이 공공 의료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낮은 임금을 주는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직원 수가 100명 이상이고 임원의 연봉이 직원 중간 연봉의 50배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법인세를 인상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이같은 움직임에 억만장자와 기업들은 캘리포니아를 떠나겠다며 맞선다.

부유세 논란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예산 삭감에서 출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발표한 감세안에는 10년간 의료 시스템인 메디케이드 지출을 1조 달러 삭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메디케이드는 저소득층 의료보험과 장애인 의료·요양 서비스를 말한다. 미 의회예산처는 법안 시행으로 2034년까지 미국인 약 1000만 명이 건강보험을 잃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연방정부 지원에 크게 의존했던 주 정부는 자체 예산으로 메디케이드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연방정부 예산 삭감으로 캘리포니아 지역 헬스케어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는 홍보문. 김창영 특파원연방정부 예산 삭감으로 캘리포니아 지역 헬스케어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는 홍보문. 김창영 특파원


캘리포니아는 5년간 의료 예산 1000억 달러가 삭감돼 메디칼(캘리포니아 메디케이드)에 비상이 걸렸다며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캘리포니아 최대 카운티이자 애플·구글·엔비디아·인텔 등 빅테크 본사가 있는 산타클라라 카운티는 가장 적극적인 지역이다. 산타클라라 카운티는 각 가정에 “연방정부가 카운티 예산에서 매년 10억 달러를 삭감하기로 하면서 우리 지역사회는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며 “전례없는 예산 삭감에 지역의 수천가구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병원 서비스와 식량 지원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유세는 연방정부 예산 삭감 대처 수단이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에서만 언급되는 주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북동부에 위치한 미국의 가장 작은 주(州)인 로드아일랜드에서는 소득 상위 1%에 해당하는 64만 달러 이상 소득자에 대한 3% 추가 소득세 부과안이 추진 중이다. 로드아일랜드 주가 정부 예삭 삭감으로 1억 달러가 넘는 재정적자에 시달리면서 부유세에 반대했던 댄 맥키 주지사조차 입장을 바꿨다. 진보 진영 주지사가 이끄는 워싱턴·미시간·뉴욕도 부유층 증세 주장이 나오는 지역이다. 이처럼 연방정부 예산 삭감으로 주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부유세 갈등은 캘리포니아에서 유독 심하다. 왜 그럴까.

메디칼에 들어가는 주 일반 기금 지출 추이. 자료제공=캘리포니아주의회 분석국메디칼에 들어가는 주 일반 기금 지출 추이. 자료제공=캘리포니아주의회 분석국


연방정부 예산 삭감 타격 집중




우선 연방정부 메디케이드 지출 삭감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이 바로 캘리포니아다. 월드 파퓰레이션 리뷰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인구는 약 3990만 명으로 미 50개주 가운데 1위다. 메디칼에 들어가는 지출은 2000억 달러로 주 지출의 40%를 차지하는데, 연방 자금 지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2025·2026 회계연도 기준으로 주 일반 지금으로 메디칼을 충당하는 금액은 449억 달러에 불과하다. 캘리포니아 시민단체와 진보 정치인들은 부자들에게 1000억 달러를 걷어 90%는 의료 서비스에, 10%는 공교육과 주정부 식량 지원에 사용하면 연방정부 지출 삭감 충격을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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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오라클·엔비디아 창업자 등 억만장자 200여명 거주


두번째는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 캘리포니아라는 사실이다. 전세계 IT와 벤처 중심인 실리콘밸리에는 애플·구글·메타·엔비디아·인텔 등 빅테크 본사가 있고 창업자들이 거주한다. 시민단체인 '미국 조세 정의를 위한 사람들'이 포브스 자료를 바탕으로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 기준으로 캘리포니아에는 214명의 억만장자가 있다.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2618억 달러),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2474억 달러),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2416억 달러),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2267억 달러),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1665억 달러), 에릭 슈미츠 구글 전 최고경영자(362억 달러), 팔란티어 공동 창업자 피터 틸(258억 달러) 등이다.

캘리포니아 억만장자들은 부유세 추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들은 '캘리포니아를 구하라'라는 이름의 온라인 채팅방을 만들어 대응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채팅방에는 방산 기술업체 안두릴 공동 창업자인 팔머 러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AI 정책을 총괄하는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장, 가상화폐업체 리플 공동창업자 크리스 라슨 등이 참여 중이다. 색스 위원장이 운영하는 벤처투자사 '크래프트 벤처스'는 최근 텍사스주 오스틴에 새 사무실을 열었고,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플로리다에 새 주택을 물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피터 틸은 억만장자세 저지 활동을 준비 중인 로비 단체 '캘리포니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300만달러를 기부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민주당 대권 잠룡


개빈 뉴섬 주지사. AFP연합뉴스개빈 뉴섬 주지사. AFP연합뉴스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차기 민주당 대선주자 개빈 뉴섬이라는 점도 캘리포니아에 관심이 집중되는 배경이다. 뉴섬 주지사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부자 증세가 기업인들의 이주를 부추기고 기업이 떠나면 세수도 쪼그라들 수 있다면서 억만장자 부유세 도입에 반대한다. 그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이 법안은 반드시 저지될 것"이라며 "주(州)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밝혔다.

뉴섬 주지사는 소득이 아니라 자산 자체에 세금을 매기는 부유세는 "전혀 다른 문제"라면서 캘리포니아주에서 이미 시행 중인 누진 소득세 제도가 정당한 접근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서명 운동 초기 단계부터 부유세에 반대하고 나서자 지지층에서도 비판이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뉴섬 주지사가 빅테크 거물들과 우호적 관계를 쌓아온 만큼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가 2028년 대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기업인들의 후원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AP통신은 “부유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IT 거물들을 가까이 두어야 할 이유가 있다”며 “올해 주지사 임기를 마친 후 대선에 출마할 경우 이들은 잠재적인 후원자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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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김창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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