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경제상황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빚을 갚지 못해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는 기업 수가 올 상반기에만 사상 최대치인 500곳에 육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제조업이 몰린 지방의 기업들이 이를 주도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게다가 올 들어 파산신청이 사상 처음 6개월 연속 월별 최대치를 경신하면서 재기를 노리는 회생신청 수와 엇비슷해져 경기 악화 속도가 가팔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28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각 지방법원이 접수한 법인 파산신청 건수는 485건을 기록해 전고점이었던 지난해 상반기(393건)보다 19%(92건)나 많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2016년 상반기(345건)보다 43% 증가한 것은 물론 이명박 정부 시절의 5년치 연간 건수(192~399건)를 이미 넘어섰다.
올 들어 상반기 내내 단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월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결과다. 법인 파산신청이 6개월 연속 최대치를 경신한 것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특히 올 4월 파산신청 건수는 107건으로, 월별 기준 사상 처음 세자릿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 상반기 개인 파산신청 건수(2만2,924건)가 2010년 상반기(4만5,017건)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음을 감안하면 법인 파산 건수만 유독 폭증한 셈이다.
다만 상반기 기준 개인 파산신청 건수는 2010년 이후 지난해(2만1,175건)까지 매년 감소세를 보이다 올해 처음 반등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최근의 법인 파산신청은 제조업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서울 외 지역 기업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485건 가운데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건수는 236건에 불과한 반면 지방법원 파산부에 접수된 건수는 249건에 달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과 2016년의 경우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건수는 지방보다 27건, 40건씩 많았다가 2017년 격차가 3건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서울 402건, 서울 외 지역 405건으로 4년 만에 역전 현상이 벌어지더니 올해는 그 기조가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역별로는 관할지역에 전자·자동차부품 업체들이 몰린 수원지방법원 접수 건수(64건)가 지난해 같은 기간(39건)보다 25건이나 급증했다. 대전(34건), 인천(33건), 대구(21건), 창원(20건), 의정부(18건), 부산(16건), 전주(12건), 울산(10건) 등도 지난해 상반기보다 많은 업체가 파산부를 찾았다.
법인 회생신청 건수도 올 상반기 497건으로 사상 최대치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443건)에 비해 12%(54건) 늘어난 수준이다.
그러나 파산신청 기업 수 증가세가 빨라 재기를 노리는 회생기업 신청 수 간 격차는 급격히 좁혀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경우 연간 법인 파산신청 건수는 807건으로 980건이었던 회생신청 건수보다 173건이나 적었지만, 올해는 반년간 12건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올 1월 파산(63건)과 회생신청(82건) 건수 차가 19건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후부터는 그 격차가 점점 줄고 있어 연말께는 파산신청이 회생신청을 앞지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법인 파산신청의 급격한 증가에 대해 지난해부터 이어진 경기 하강 국면이 후행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게다가 최근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사이클이 꺾인데다 일본의 통상보복 논란까지 겹치면서 하반기로 갈수록 빚도 못 갚는 중소기업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법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법원 파산부에 몰리는 파산·회생 건수를 경기후행지표로서 잘 지켜봐야 한다”며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추세만 볼 때 하반기에도 사업을 접는 회사들이 줄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