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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라는 이름의 생태계

우리 몸에는 박테리아가 가득 차 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점에서 과학자들은 인간의 질병이 인체 면역체계와 인체에 거주하는 미생물들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체를 하나의 생태계로 보는 것이다. 이들은 이 상호작용을 밝혀내면 여러 질병들의 실체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언젠가 수백만 명의 습진 환자들을 가려움증으로부터 영원히 해방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위치한 미 국립보건원(NIH)에서 만난 제이크 하비는 14 세의 소년 치고는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피부는 불결했고, 습진으로 인해 극심한 가려움증에 시달렸으며, 숨소리는 천식을 앓는 듯 쌕쌕거렸다. 하지만 의사들은 제이크에게 당혹스러운 요구를 했다.

앞으로는 병원에 오기 전 24 시간 동안 목욕을 하거나 습진 연고를 발라서는 안 되며 천식을 진정시켜주는 흡입기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의 질병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평상시의 모습 그대로를 봐야한다는 게 그 이유다.

제이크의 입장에서 보면 더없 이 불편한 하루가 되겠지만 그의 희생은 습진이나 각종 알레르기 증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더욱 나은 치료를 받도록 해줄 수 있다.

현재 몇몇 과학자들은 건조한 붉은색 발진이 나타나는 습진의 원인이 피부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들과 인체 면역 시스템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무엇이 습진을 촉발하는지, 위생 시스템이 잘 갖춰진 선진국에서 왜 지난 수십 년간 습진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를 희망한다.

NIH 암연구센터의 피부과 전문의이자 제이크의 주치의인 하이디 콩 박사와 NIH의 유전학자 줄리 세그레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도 그중 하나 다. 두 사람은 5 년간 1억 7,300만 달러 가 투입되는 ‘인간 미생물군집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 HMP)’에 참여하고 있다.

HMP의 목표는 몸속이나 피부에서 살아가는 미생물 수천 종의 특징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생후 수개월 만에 습진에 걸려 지금껏 시달려온 제이크도 바로 이 프로젝트를 위해 자신의 집에서 무려 100㎞나 떨어진 NIH에 5~6번이나 찾아가 피부세포를 제공했다.

지난 14 년간 옷조차 편안히 입지 못했을 만큼 습진과 가려움증에 고통 받았던 제이크는 항생제, 국소 스테로이드 치료제, 식이요법 등 온갖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어느 방법도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어렸을 적에는 손가락 끝에 반창고를 붙이고 학교에 갔으며 잠을 잘 때 손에 양말을 끼우기도 했다. 그래야만 무의식적으로 피부를 긁어서 옷과 이불에 피가 묻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크는 숙면을 취해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 사실 습진은 일부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 세계 어린이의 약 30%가 습진에 걸린다. 그런데도 어떤 유전적 혹은 환경적 요인이 습진을 유발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습진에 걸린 아이들의 60%가 사춘기 시절 초기에 자연스럽게 완치된다는 점이다. 반면 나머지 40%는 평생토록 습진을 달고 살아야 한다. 또한 이들 40% 중에서도 운이 나쁜 약 3분의 1은 천식과 건초 열까지 동시에 걸린다. 제이크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습진과 천식, 건초열이라는 3가지 질병이 동시에 침범할 수 있는 인간 면역체계의 구멍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려진 바 없다. 제이크의 어머니 데비의 말이다. “지난 몇 년간 소아과 전문의, 피부과 전문의, 알레르기 전문의를 모두 만나봤지만 누구도 제이크의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질병과 박테리아

인간의 몸은 보통 수조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세포보다 약 10배나 많은 박테리아들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이 인체의 박테리아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 1863년 네덜란드의 박물학자 안톤 판 레벤후크가 직접 만든 현미경으로 자신의 치아에 낀 치석을 떼어내 관찰하면서부터다.

물론 그가치석에 현미경을 들이댄 이유는 박테리아가 아닌 치석에 사는 극소동물을 찾기 위해서였지만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과학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인체의 내·외부에 얼마나 많은 박테리아 가 살아가고 있는지를 본격 연구하기 시작했다.

근래들어 이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이 걸리는 질병의 상당수가 지금까지의 생각처럼 특정한 하나의 박테리아가 아닌 인체에 있는 다양한 박테리아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병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HMP의 연구자들은 인체에 사는 수많은 박테리아와 진균, 원생동물, 바이러스의 DNA 염기서열을 분석할 계획이다.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그 성공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실제로 인체에서 미생물의 존재를 식별하려면 원래의 거주지인 몸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 표본을 배양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에는 해당 미생물의 최적 성장환경을 파악하는 데만 엄청난 연구노력이 필요했다.

따라서 황색 포도상구균, 화농성 연쇄상구균 등 그 숫자가 많아 표본 채취가 용이하고 생명력도 강한 미생물들만이 연구대상이 됐다. 반면 지금은 DNA의 염기서열 순서를 결정하는 시퀀싱(sequencing)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상태다.

지난 2003년 인류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통해 30억개의 염기쌍 서열해독에 성공했는데 HMP에서의 DNA다. 건강한 인간의 표준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HMP의 연구자들은 현재 약 3,000 종의 박테리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지문을 만들고 있다. 연구과정에서 참조할 기본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서다.

또한 건강한 일반인 300명을 선발해 피부, 입, 복부, 사타구니 등을 포함한 6개 인체 부위에서 살고 있는 미생물 군집의 구성 상태를 철저히 분석 중이다. 이 연구가 완료되면 여기서 얻어진 결과와 습진,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등 질병에 걸린 사람들의 관찰결과를 비교해 그 차이점을 찾아낼 계획이다.

아울러 제이크를 포함, 습진에 걸린 아이들로부터 제공받은 피부 표본은 콩 박사와 세그레 박사가 피부의 상재균 총(resident flora, 인체에 항상 거주하는 세포군) 상태 변화, 질병 발병률 상승에 관련된 인간 면역체계와 상재균총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설득력 있는 주장

세그레 박사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천식, 습진, 건초열 등 알레르기 장애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 30년 동안에만 환자수가 3배나 증가했다. 미국만 해도 천식 환자가 3,410만 명에 이르며 최대 5,000만 명이 계절성 알레르기를 앓고 있다.

세그레 박사는 너무나 짧은 시간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단순히 인간 게놈의 변화가 이 사태의 범인 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말한다. 그녀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인간 유전자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체의 박테리아가 그 상호작용을 조절한다고 믿습니다.” 이제 NIH에 위치한 콩 박사의 진료실로 돌아가 보자. 그는 소년 환자 제이크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졌다. “현재 어떤 약을 먹고 있니?” “학교에서는 항균비누를 쓰니?” “이번 달에 알레르기 상태는 어땠니?” 그리고는 제이크의 몸에서 발진이 있었던 모든 부위를 차트에 기록했다.

이후 콩 박사는 표본 채취에 들어갔다. 살균된 면봉으로 제이크의 팔꿈치 안쪽을 원을 그리며 문지른 뒤 솜이 있는 부분을 잘라 소독액이 담긴 플라스틱 시험관에 넣었다. 이 시험관을 드라이아이스 양동이에 넣은 그는 곧바로 메스를 집었다. 그리고 면봉으로 문지른 곳의 바로 옆 부분을 조심스레 긁어냈다.

그러자 메스 날에 작은 표피들이 묻었고 이를 면봉으로 채취해 다시 플라스틱 시험관에 넣었다. 콩 박사는 이 작업을 양쪽 팔꿈치와 양 팔뚝의 안쪽, 양 무릎 뒤쪽, 그리고 양쪽 콧구멍을 대상으로 반복했다. 이렇게 표본 채취를 끝내고도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제이크의 몸에 있는 발진들의 사진을 찍었으며 맥박, 호흡, 체온, 혈압 등 생체기능까지 점검했다.

제이크는 자신의 피부 표본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정확히 말해 그리 큰 관심도 없다. 콩 박사는 습진이 심할 때는 표백제를 물에 섞어 목욕을 하면 좋다고 권하는데 제이크가 그녀의 연구대상이 되려고 결심한 주된 이유도 바로 이러한 비법을 듣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제이크는 자신의 표본이 질병 퇴치에 기여할 수 있으며 이때는 미래의 자녀에게 자신과 동일한 고통을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제이크를 비롯해 이번 실험에 참가한 20명의 아이들에게서 수거된 피부 표본은 NIH로부터 약 8㎞ 떨어진 한 연구실로 보내져 영하 80℃의 대형 냉동고에 보관된다.


이곳에서 생물학자 클레이 데밍 박사가 표본들을 콩 박사의 연구 자료로 변모시킨다. 그의 작업은 이렇다. 일단 표본이 담긴 시험관을 꺼내 해동시키고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붕괴시키는 라이소자임(lysozyme)을 첨가한다. 이 시험관을 혼합기(vortex mixer)로 잘 섞으면 라이소자임이 작용, 표본 속 박테리아에서 DNA가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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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시험관의 내용물을 젤라틴 필터로 거르면 DNA 단편(DNA fragment)들을 얻을 수 있다. 데밍 박사는 이렇게 얻은 박테리아의 DNA 단편에 ‘중합효소 연쇄반응(PCR)’ 기술을 적용한다. PCR은 DNA의 특정 부분만 대량 증식시키는 기술로서 이를 통해 그는 ‘16SRNA’라는 유전자를 수백만 개로 복제한다.

16SRNA는 모든 박테리아가 보유하고 있 지만 종(種)마다 염기서열이 달라 이를 분석하면 종 판별이 가능하다. 데밍 박사는 이런 방식으로 환자의 몸 곳곳에서 채취된 박테리아의 DNA 단편을 증폭, 각각의 16SRNA 유전자를 새로운 시험관에 넣어 NIH의 국제 시퀀싱센터(ISC)로 보낸다.



그러면 ISC에서 16SRNA의 염기 1,500개의 정확한 서열을 밝혀 각종 고유의 화학적 신호를 파악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기술자들이 각 염기서열 데이터를 내부 네트워크에 입력하면 콩 박사와 세그레 박사의 연구가 본격화되는 것이다.

피부 생태계

두 사람에게 피부는 하나의 생태계다. 다른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피부 생태계에도 1년 내내 머무르는 생물종이 있는 가 하면 특정부위에 특정기간만 활동하는 철새 같은 생물종도 있다. 또한 피부 생태계의 변화는 당연히 피부의 기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표피 포도상구균은 피부 면 역시스템이 특정 분자들을 식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덕분에 피부는 유해한 생물종의 공격에 한층 효과적으로 대응할 능력을 가진다. 이 균은 또 유해물질이 피부에 들러붙는 것을 막아주는 단백질들을 대량 분비하기도 한다.

만일 이러한 미생물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방해를 받게 된다면 피부에 문제가 생길 개연성이 매우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세그레 박사는 습진 연구를 통해 향후 습진에 걸리게 될 아동들에게 발병 시점을 예보해 줄 미생물 군집을 발견하거나 환자별로 최적화된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어떤 환자에게는 표백제 목욕이 습진을 진정시키는 데 좋지만 어떤 환자들은 항염 스테로이드 처방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콩 박사와 세그레 박사만이 미생물 군집과 피부염증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뉴욕대학의 미생물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마틴블레이저 박사의 경우 미생물 군집이 만성 염증성 피부병인 건선의 발병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가벼운 건선 환자인 그는 25년 전통풍 치료제 ‘알로 퓨리놀’을 먹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고 그렇게 했는 데 실제로 증세가 호전되는 경험을 했다. 이후 그는 알로 퓨리놀이 박테리아의 DNA 합성을 방해해 박테리아를 사멸시키거나 성장을 막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알로뉴 리놀과 미생물의 상관관계 연구에 본격 돌입했다. 연구초기 그는 수십 년 전 한 연구팀이 알로 퓨리놀의 건선 치료효과를 확인하는 임상시험을 실시했지만 명확한 결론을 도출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특정 부류의 건선 환자들에게 알로 퓨리놀이 치료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02년 이를 검증할 연구 예산이 확보됐다. 당시 그는 건강한 사람 6명의 팔뚝 안쪽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들을 조사한 뒤 건선 환자들의 그것과 비교했다.

그 차이는 명백했다. 건선 환자들에게서 페르미쿠테스(Firmicutes) 문(門)에 속하는 미생물들이 훨씬 많이 발견된 것. 반면 건강한 피부에서 가장 흔히 관찰되는 액티노박테리아(Actinobacteria)의 양은 현저히 적었다. 블레이저 박사는 “당시 이 결과는 중요한 성과로 받아들여졌지만 피실험 자 숫자가 너무 적었던 탓에 이제는 웃음거리로 치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그의 연구팀은 지금 HMP의 자금지원에 힘입어 서로 다른 건선 환자들을 대상으로 인체 미생물의 전체 개체수와 각 미생물 종들의 분포 상태 등을 면밀히 연구하고 있다.

개인 맞춤형 습진 치료

콩 박사와 세그레 박사팀도 앞서 언급한 16SRNA를 분석,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지난 2009년 5월 10명의 건강한 사람의 신체 20개 부위에서 채취한 표본을 연구, 인간의 피부에 살고 있는 모든 미생물의 목록을 발표한 것이다. 연구팀은 수백 개의 16SRNA 유전자 염기서열을 파악해 인간의 피부 생태계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함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사람의 귀 뒤에만 15종, 팔뚝에는 무려 44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연구팀은 또 개인별 미생물 군집의 차이, 다시 말해 개인마다 아예 다른 종류의 박테리아가 거주하는지도 관찰했다.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인체의 박테리아는 인체 부위별로 특화돼 있었을 뿐 개인별 차이는 많지 않았다.

A라는 사람의 팔뚝에서 발견된 미생물 군집은 그 사람의 뒷무릎에 사는 미생물 군집보다 B라는 사람의 팔뚝 미생물 군집과 더 유사하다는 얘기다. 제이크가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물질은 곰팡이, 땅콩버터, 개, 고양이 등 다양하다. 게다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죽을 뻔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천식이 심각하다.



제이크의 어머니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불과 몇 초 만에 호흡정지와 심장발작이 왔어요. 입술이 붓는다거나 어지럽다거나 하는 사전 징후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순식간에 쓰러져 버렸죠.” 습진과 알레르기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이는 인체 면역체계가 습진의 악화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알레르기 분야의 많은 연구자들이 수십 년간 염증을 연구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피부의 미생물 군집은 이 상황에 어떻게 들어맞을까. 지난 2006 년 미국, 프랑스, 아일랜드, 영국의 연구자들은 습진 환자 중 절반이 피부 표피의 필라그린(filaggrin)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일어났음을 밝혀냈다.

몇몇 연구자들은 이러한 면역체계의 결함이 알레르기 등 면역반응을 초래하는 입자의 침입을 허용하며 기존에 살고 있 지 않던 다른 미생물들이 면역체계의 방해 없이 피부에 안착할 생태학적 틈새를 만들어준다고 여긴다. 콩 박사팀은 제이크 등 습진에 걸린 아이들에게서 총 3차례 표본을 채취했다.

습진 발작이 일어나지 않은 정상 상태, 습진 발작이 일어났을 때 그리고 치료 후 2주가 지났을 때가 그것이다. 1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예비 분석에서 콩 박사는 습진 발작이 일어난 피부에서 방대한 양의 황색 포도상구균이 발견된다는 기존 연구결과를 재 확인했다.

또한 이들 황색 포도상구균 이 기존에 살고 있던 다른 박테리아 종을 몰아낸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 콩 박사는 이 점에 근거해 환자들의 박테리아 다양성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개인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한다는 복안이다.

메타지노믹스 분석

다만 콩 박사와 세그레 박사는 아직까지 습진과 유관한 박테리아들이 실제로 습진의 원인인지, 아니면 습진이 발병했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세그레 박사는 표본들을 가지고 최신 유전체 분석 기술인 메타지노믹스(metagenomic) 분석을 실시할 계획이다.

분석 과정 동안 연구자들은 특정 종의 DNA에 들어 있는 수천 개의 유전자를 비교하게 된다. 유전자의 생물학적 기능, 즉 어떤 단백질을 생성하고 생성된 단백질의 생물학적 경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각 미생물 종의 역할과 기능을 한층 학문적으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각종별로 다른 미생물들 및 인간 게놈과의 상호 작용 방식도 알 수 있다. 메릴랜드대학 산하 게놈과학연구소(IGS)의 클레어 프레저리게트 소장은 “우리는 각각의 미생물들이 상호의존성을 지닌다고 본다”며 “이들은 생존을 위해 자기 주변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에 크게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메타지노믹스 분석은 말처럼 쉽지 않다. 연구자들은 또 수백만 개의 미생물 유전자들이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는지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설령 알아낸다고 해도 어떤 상호작용이 정상인과 환자를 구분 짓는지의 기준 패턴을 찾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이와 관련 세그레 박사의 초기연구 결과를 보면 아이들의 피부병 치료를 위해 굳이 미생물 군집 전체를 해독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또한 그녀는 머지않은 미래에 피부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직접 환자의 피부 표본을 채취, 분석장치에 넣으면 즉시 미생물 군집의 특성을 알려주는 날이 올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이미 병원에서는 다수의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균치료에 이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 중이다.

환자의 코를 면봉으로 닦아 박테리아를 검출하고 있는 것. 이때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반코마이신 내성 포도상구균(VRSA), 카바페 넴 내성장내균(CRE) 등이 검출되면 해당 박테리아가 내성을 갖지 않은 종류의 항생제를 처방한다. 세그레 박사에 의하면 박테리아 검출에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이내다.

특히 그녀의 바람대로 연구를 통해 습진의 발병 여부를 예측할 수 있는 확실한 생물학적 프로파일을 발견할 경우 의사들에게 치료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줄 수 있다. 환자에게 표백제 목욕의 빈도를 높이라거나 축구 연습을 그만두라는 등의 처방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습진 발병 후 부족해진 피부 미생물들을 보충하기 위한 생균제의 개발도 가능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방식이 습진 치료에 도입되려면 앞으로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제이크의 가족들은 HMP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머니 데비의 말이다. “제이크가 HMP 연구의 혜택을 보려면 오랜 시일이 걸리겠죠. 그래도 언젠가 밤새 다리를 긁으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정말 대단합니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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