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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인재는 궤도열차에서 나올 수 없어"

[과학의 달 확대인터뷰]<br>이상희 국립과천과학관 관장<br>

국가 발전에 있어 인재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대한민국이 전란(戰亂)을 딛고 고도 압축성장을 구가하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도 우수한 인재가 있었다.
그렇다면 21세기 선진국 도약을 앞둔 우리에게는 어떤 인재가 필요할까. 바로 창의 인재다. 미래는 과학적 창의성으로 혁신적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창의 인재가 주도하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방향적 주입식 교육으로 정답 찾기 전문가의 배출에만 통달해온 우리에게 창의 인재의 육성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과제다.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어린이는 20년 앞서가고 어른은 20년 젊어진다'를 모토로 과학 대중화 및 창의성 계발의 첨병을 자임하고 있는 국립과천과학관 이상희 관장에게 그 해법을 들어봤다.


전 세계적으로 창의적 인재 양성이 화두가 되고 있습 니다. 그 사회적·시대적 배경은 무엇입니까


최근 국가들 사이에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알 수 있듯 현재 지구촌은 국경이 없는 진정한 글로벌 사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미래 사회의 핵심 화두는 '이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이익은 지적재산권과 같은 무형자산을 의미합니다.

미국만 해도 과거에는 기업 자산 중 70~80%가 토지, 건물, 제품 등의 유형자산이었지만 지금은 특허권, 상표권, 저작 권 등 무형자산의 비중이 70% 이상을 점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무형 자산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두뇌에서 나옵니다. 농업사회에서 농기구, 산업사회에서 공장의 생산성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두뇌의 생산성, 즉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인재인지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 같은 인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기존 틀을 깨는 단 한명의 창의적 영웅이 국가와 사회,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산증인입니다.

사실 이들 세 명에게는 한 가지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습 니다. 모두 대학중퇴자라는 점이 그것입니다. 창의력은 절대로 정해진 레일을 따라 이동하는 궤도 열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무궤도 열차에서 나옵니다. 창의적 인재에 괴짜 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1등을 할 수 없습니다. 나만의 창의적 길을 찾아내고 다른 사람에게 그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일탈을 하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물론입니다. 제도권 교육이나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교육환경 보다는 자율성에 기초한 다양한 경험과 과학적·합리적 호기심, 상상력이 창의성 계발에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함입니다.

창의성을 말할 때 종종 상상력과 혼동이 일어나고는 합니다. 두 개념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상상력이 과거를 향해 나아가면 창의성이 아닙니다. 미래지향적인 상상력이 곧 창의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혼부부를 예로 들어보죠. 신혼여행지에서 배우자에게 과거를 다 털고 가자며 지난날의 이성교제 경험을 얘기해보라고 하는 것은 창의와 거리가 멉니다.

반대로 미래의 자녀 계획이나 인생 계획을 논의한다면 창의적인 활동에 해당합니다. 몇몇 전문가들은 상상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상상을 가치 있는 결과물로 창출해내는 것이 창의성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미래지향적이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의성 시대에 걸맞은 과학관의 역할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 국립과천과학관이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국가는 물론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과학적 창의성은 모든 국민들이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 돼야 합니 다. 이 같은 창의성 계발의 기본 출발점은 재미와 흥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 대상이 아이들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에 국립과천과학관은 창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과학 체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과학관에 설치.운용 중인 688개 주제, 2,000여개 이상의 전시품 중 52%가 체험형입니다. 지난해 국제우주정거장 도킹 체험, 착시의 세계, 사이버 아바타 등 다양한 체험형 전시물을 추가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전 연령대가 과학관을 찾아와 창의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어머니, 노인 등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들을 운용 중입니다.

덧붙여 주요 체험형 전시물의 경우 개관 후 한동안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우선권을 부여, 성인들의 이용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온 가족 누구나 과학관의 대다수 전시물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재 과학관의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 역시 동일한 맥락입니다. 지금의 공무원 조직으로는 능동적이고 재미있는 과학관 만들기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이를 개선하기 위함입니다.

아이들의 창의성 계발에는 학부모의 역할도 중요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뜨겁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너무 뜨거운 탓에 간혹 난폭운전이 일어나기도 합니 다. 우리 아이들 중 상당수가 우울증에 걸려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그 단적인 방증입니다.

그럼에도 병력이 남는 것을 우려해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정신과적 병력을 말소시켜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교육열에서는 우리에게 뒤지지 않는 이스라엘의 경우 자녀들에게 배낭여행을 권하고, 또한 이를 중시합니다. 자율적이고 다양한 체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와 달리 학교 교육은 크게 중요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자녀를 통제하려고만 들지 말고 아이들이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키워줘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자녀의 미래를 위한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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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이의 실천이 쉽지 않습니다

현재의 국내 교육환경에서 부모님들이 창의 교육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자녀를 갖기 이전에 그러한 신념을 가졌던 부모들조차 막상 자녀를 갖게 되면 주변 아이들과 자신의 자녀를 비교하며 신념을 꺾는 경우가 많습니다.

옆집 아이처럼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내 아이만 바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기 때문이죠. 이 점에서 부모님들에게는 주변과 비교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비교가 없다면 자신의 올바른 신념을 꺾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 몸은 성인의 20분의 1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뇌의 크기와 무게는 성인의 3분의 1이나 됩니다. 4~5세가 되면 이미 90%에 이르고요.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몸을 기준으로 삼아 아이들을 평가하고 있는데 그 속에 담긴 뇌를 보고 키워야 합니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의 두뇌 능력은 뛰어납니다. 이는 교사들도 주지해야 할 부분입니다. 브레인스토밍 기법 등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부여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답을 주려하기 보다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가 돼야 합니다.

저 자신을 예로 들자면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 절대로 제가 생각하는 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질문을 던져서 학생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논의를 유도, 창의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제 역할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정도입니다. 다만 여기에는 학생들의 내재적 동기, 다시 말해 토론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요구됩니다. 저의 경우에는 문화상품권을 경품으로 내걸어 학생들의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결국 교사와 부모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인지요

교사와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은 사실상 창의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잘 알고 있고,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교육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창의 교육과 창의 인재 육성도 요원한 일이 될 수 있습 니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이를 염두에 두고 교육부 예산의 약 30%가 어머니의 재교육에 투자됩니다. 우리 또한 부모와 교사들의 생각을 바꿔주는 노력이 사회적으로 수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그러한 역할을 하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당연히 있습니다. 법인화 문제 등 현안 과제들이 원활히 해결되는 대로 그런 부분에 더욱 많은 신경을 쓸 계획입니다. 현재 어머니들을 위해 유전자 기술을 접목한 피부미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렇듯 재미와 관심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어머니, 더 나아가 사회적 창의성 기반 마련에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기성세대들이 창의 인재 육성을 위해 생활 속에서 수행할 수 있는 팁을 주신다면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아이나 학생들의 말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지 말라는 점입니다. 다소 당혹스러운 말을 해도 왜 그런 말을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아닌 아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의도를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다음은 많은 대화를 나눌 것을 권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어렸을 적 할아버지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다빈치가 과학자, 의학자, 화가 등 다방면에서 천재적· 창의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이처럼 대화를 통해 할아버지의 경륜과 지혜를 습득한 덕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화 시 주의할 점은 앞서 설명했듯 아이들의 몸이 아닌 뇌를 바라보며 나와 동일한 인격체라는 마음가짐으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창의성을 키우려 면 '옛날에 엄마는~' '아빠가 어렸을 적에는~'과 같은 과거의 얘기가 아닌 미래지향적인 주제로 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마지막으로 입학사정관제 등과 관련해 창의성의 계량화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창의성이 계량화 가능한 것인지, 혹은 계량화가 옳은 것인지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개인적으로 창의성은 계량화가 불가능한 가치라고 여깁니다. 단지 입학사정관제로 인해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명확한 창의성 평가기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창의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잣대가 없기 때문에 계량화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창의 인재를 발굴, 육성하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위험은 무릅써야 할 것입니다.

창의성이 바탕돼야 하는 연구개발(R&D)로 설명해보죠. 원래 R&D는 'Research & Development'지만 'Risk & Danger'에서 'Revenue & Deposit'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확실치 않은 모호함에 의한 위험성을 거쳐야 보상과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창의성 역시 이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입 니다.

PROFILE

학력_ 1966 서울대 약학과 학사, 1973 서울대 약학대 박사, 1973 변리사 자격 취득, 1976 미국 조지타운대학 로스쿨 수학, 1978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서울대 행정대학원 발전정책연구원과정 수료, 2000 고려대 컴퓨터과학기술 대학원 최고위정보통신과정 수료, 2001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언론과정 수료, 2001 부경대 명예 경제학 박사

경력_ 1966 동아제약 연구개발담당 상무, 1981 한국과학기술원 대우교수, 1981 제11대 국회의원, 1985 제12대 국회의원, 1985 한국산업경제정책 연구원 이사장, 1988 제11대 과학기술처 장관, 1991 한국기계연구소 이사장, 1993 대통령국가과학기술 자문회의 위원장, 1994 한국발명특허협회 회장, 1996 제15대 국회의원, 1995~2001 한국영재학회 회장, 1997 한국발명진흥회 회장, 2000 제16대 국회의원, 2002~현재 한국 과학발명영재단 이사장, 2004 대한변리사회 회장, 2005~2009 세계사회체육연맹 회장, 2008 대한변리사회 회장, 2010~현재 대한변리사회 회장

상훈_ 1990 청조근정 훈장, 2004 장영실과학문화상 대상

저서_ IQ 100의 천재 IQ 150의 바보(공저), 과학원 괴짜들 특허전쟁에 뛰어들다, 21세기 대통령감이 읽어야 할 책, 어머니를 위한 영재 뇌 자연발육법(공저), 남다른 발상이 성공을 부른다, 꼴찌과학대통령 외 다수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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