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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여행과 인체의 한계

항공여행의 한계는 항공기의 성능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승객이 항공기의 성능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더 핵심적 요인이다. 인체가 견뎌낼 수 있는 한계치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By Jacob Ward . ILLUSTRATIONS By ollie BLAND


1999년 10월 25일 아침.

마이클 클링 기장과 스테파니 벨가리그 부기장은 비즈니스 제트기 '리어제트 35'를 몰고 올랜도를 떠나 댈러스로 향했다. 탑승객은 프로골퍼 페인 스튜어트와 그의 에이전트 로버트 프레일리, 그리고 골프코스 설계자 브루스 볼랜드. 이들은 새로운 골프장 설계를 위해 이번 여행길에 올랐다.

비즈니스제트기로 명성이 자자한 리어제트는 기계공학의 결정체다. 분당 1,300m의 고도 상승이 가능하고 최고 시속은 850㎞에 달한다. 1976년 리어제트 36 모델은 최단 시간 세계일주 비행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을 정도다.

기수를 북으로 돌렸을 때 조종사는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관제사로부터 고도를 높이라는 지시를 받았다. 처음에는 2만6,000피트(7,920m), 그 다음에는 3만9,000피트(1만 1,890m)로의 상승 명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부기장은 "쓰리 나인 제로 브라보 알파"를 외치며 관제내용을 정확히 수신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였다. 몇 분 후 리어제트가 제 고도에 오른 것을 확인한 관제사가 다른 지시를 내렸지만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다. 관제사는 이후 4분30초 동안 5차례 더 접촉을 시도한 후 미 연방항공청(FAA)에 이 사실을 알렸고 FAA는 인근의 군용기에 연락해 리어제트의 육안 확인을 요청했다.

이윽고 사고지역 주변에서 시험비행 중이던 F-16 전투기가 수색에 투입됐고 머지않아 리어제트를 발견했다. 전투기조종사는 1차로 리어제트의 엔진이 모두 잘 작동 중이며 별다른 문제점은 보이지 않는다고 알려왔지만 곧바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보고했다. 제트기의 창문에 성에가 낀 것처럼 불투명해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조종사가 무전을 보낸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어떤 이유로 인해 기내 기압 유지에 실패하면서 내부의 산소가 모두 빠져나간 것이 확실했다. 이 경우 단 8초 내에 승객과 승무원들이 저산소증을 일으킬 수 있다.

혈류 속 산소부족은 인간의 기본적 운동기능과 인지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이들은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인식조차 못할 수 있으며 산소 공급 없이 수 분이 지나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럼에도 리어제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비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탑승자의 편안함은 항공기의 비행능력과는 무관한 탓이다. 설령 조종사와 승객이 사망한 상태에서도 비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 인간은 연약하기 그지없는 생물이다. 몇 m 높이에서 떨어져도 뼈가 골절되고 나무 스토브의 작동온도에서 피부에 불이 붙는다. 또한 현존하는 인간의 거주지 중 최고 고도는 5,950m에 불과하며 생명유지장치의 도움 없이는 7,925m 이상에서 누구도 생존하지 못한다.

반면 기계는 상대적으로 강하다. 일례로 보잉 777 항공기의 주 날개는 원래의 위치에서 상하로 7m나 휘어져도 끄떡없다. 아무리 강력한 난기류를 만나도 승객이 다칠지언정 기체 손상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지난 1997년 유나이티드항공 소속 도쿄발 호놀룰루행 826편 항공기의 사고가 그 실례다.

당시 난기류에 의해 승객들은 좌석에 처박혔다가 천장으로 집어던져졌다. 이 사고로 승객 1명이 숨지고 70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조종사는 항공기를 몰아 도쿄로 무사히 회항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형태의 여행이 지닌 근본적 한계다.

전직 미 공군 엔지니어로서 민간항공사의 컨설턴트로 재직 중인 마이클 플래니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항공기의 개발은 오히려 쉽습니다. 하지만 그 항공기가 탑승자의 생명과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항공기 성능과 인체 한계의 접점을 찾는 것이 진정한 도전과제입니다."

안전과 안락함의 충돌

앞으로의 여행방식을 결정하는 요소는 아마도 승객들의 신체적 한계가 될 것이다. 인체가 버텨낼 수 있는 가속도의 한계,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을 수 있는 최대 시간, 한 대의 이동 수단에 최대 몇 명을 태우는 것이 적당한지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이러한 인체의 한계에 대한 대략적 지식밖에 없다. 그나마 이런 지식들도 예기치 않게 사고를 당했거나 위험상황에 처했던 항공기 승무원 및 우주비행사들로부터 얻은 것이 대다수다. 1996년 SR-71 블랙버드 정찰기의 테스트파일럿이었던 빌 위버도 그중 한사람. 그는 마하 3.18의 속도로 비행 중이던 블랙버드의 기체가 산산이 분해되기 시작하자 부기장과 함께 2만3,800m 상공에서 비상탈출을 시도했다.

탈출 후 두 사람의 신체는 시속 3,200㎞라는 엄청난 공기저항에 부딪혔지만 부기장과 달리 그는 목숨을 건졌다. 위버로 인해 우리는 최소한 조종사용 여압복을 입고 있다면 고공에서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아도 생존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됐다.

1960년에는 미 공군의 조세프 키팅거 대위가 낙하산을 메고 10만2,800피트(3만1,333m)에서 고공점프해 대기권을 시속 988㎞로 자유낙하한 뒤 지면 착륙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는 아직도 세계 최고 고도점프, 세계 최고 속도 자유 낙하 기록으로 남아있다.

또한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라이트항공개발센터 항공의학연구소 연구원인 존 스탭 공군 대령은 수차례 고속으로 질주하는 로켓썰매를 타고 인간의 한계를 실험했다. 그러던 중 그는 시속 1,000㎞로 주행하던 썰매를 수백 m의 제동거리 내에서 정지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때 그에게 가해진 중력가속도는 무려 46G였다.

인체의 내구성(?)에 대한 표준화된 데이터 구축은 이렇듯 상당히 어려운 사안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의학 부장인 J.D. 포크 박사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우주여행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 발사장의 우주선 속에 갇혀 몇 시간 동안 대기했다거나 무중력 공간에서 수개월을 거주했던 우주비행사들을 많이 만나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인간이 정신적·육체적으로 더 이상 견뎌 낼 수 없는 한계점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기계부품을 다루듯 사람을 실험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포크 박사의 말이다.

"부품이라면 부서질 때까지 내구성을 실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실험 중 절대로 고장을 내서는 안 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지금껏 NASA나 군대에서는 인간이 느끼는 안락함의 한계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설령 비밀리에 조사가 이뤄졌다고 해도 우주비행사나 군인이 아닌 평범한 일반인 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반 여행객들을 특정 항공사나 특정 승용차를 선택하도록 설득할 인간중심의 공학적 조건을 연구해본 사례도 없다.

항공사나 자동차회사들은 그저 비행기나 승용차 자체의 성능이 뛰어남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분위기는 이라크 전쟁 기간 중 극명하게 나타났다.

바그다드 국제공항이 군사적 효율을 위해 민간인의 불편을 강제하는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장소가 돼 버린 것. 실제로 여객기는 승객의 편의를 위해 착륙을 앞두고 오랫동안 저공 접근비행을 하지만 바그다드 국제공항의 경우 1만600m 상공에서 코르크 병따개의 모양처럼 나선형 급강하 비행을 해야 했다. 공항 주변에 숨어있는 게릴라의 총기 및 지대공미사일로부터 안전을 확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군용기라면 이 같은 착륙 방식은 지극히 당연한 조치겠지만 민간들에게는 악몽과 다름없었다. 바그다드를 수차례 방문한 프리랜서 기자 톰 A. 피터 역시 "항공기가 그런 비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다"며 "항공기 추락 사고를 당한 경험은 없지만 꼭 사고가 나는 줄 알았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이와 관련 NASA의 차세대 우주선 '오리온(Orion)'의 선실 좌석시스템 설계를 맡고 있는 더스틴 고머트는 승객의 편안함에 대한 엔지니어들의 시각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편안함은 계량화가 힘든 가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편안함이 아닌 탑승자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죠." 상황이 이러한데 우주선이라고 편안할리는 만무하다. 안전기준만 놓고 보면 NASA의 우주선은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주선이 고장을 일으키면 도움을 받을 때까지 최소 몇 시간에서 최대 며칠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비상시 우주선 승무원들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우주선을 설계해야 한다. 이로 인해 편안함의 개념은 안전에 밀려 포기될 때가 많다.

오리온 우주선의 선실을 예로 들면 고머트 팀은 안전상의 이유로 좌석에서 쿠션을 모두 제거했다. 쿠션이 있으면 그것이 비록 수 ㎜일지라도 인체와 의자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게 되고 로켓발사 시 인체가 좌석에 부딪혀 부상을 당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NASA는 또 우주선 탑승자의 선발에 극히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있다.



범용성을 갖추고 우주선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에 중점을 두고 우주선을 설계한 후 그에 맞는 탑승자를 찾는 것이다. 모든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선 내의 작업환경에 확실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려면 신장, 체중을 포함한 모든 신체의 치수를 꼼꼼히 제한해야 한다는 게 NASA의 설명이다.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우주비행사가 될 수 없다. 고머트의 설명이다. "우주비행사를 선발할 때 지원자의 전신을 3D 스캔합니다. 만일 대퇴부가 규정보다 길면 탈락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항공기에 몸을 맞춰야 하는 것은 공군 조종사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다리가 기준보다 길면 비상탈출 시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다. 이를 보면 민간 항공기는 그나마 양반이다. FAA는 민간항공기의 경우 거의 모든 체격의 사람들을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수한 신체구조라 할 수 있는 상위 5%, 하위 5%를 제외한 신장 152.5㎝의 여성부터 192㎝의 남성까지 탑승할 수 있어야 한다.


교통수단 공공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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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과 달리 민간인 승객들은 자신의 키나 몸집에 상관없이 항상 정중한 대접을 원한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승객의 인내력 한계치를 인색하게 설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승객의 만족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단적인 예로 철도 설계자들은 선가속도와 횡가속도가 0.15G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선가속도는 가속 및 감속, 횡가속도는 선회 과정에서 좌우로 가해지는 힘으로서 0.15G는 달 표면에서 느끼는 중력가속도의 수준이다.

덕분에 열차가 이동 중인 상태에서도 승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편안히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이러한 선가속도, 횡가속도의 제약이 항공기나 열차의 속도까지 함께 제한한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편 항공여행에 있어 인체의 한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멀미다. 1990년 미국의 자기부상열차 이니셔티브에 참여했던 엔지니어들은 미국 내 자기부상열차의 잠재력을 조사했다. 당시 다니엘 패트릭 모이니헌 상원 의원이 고속도로 중앙에 자기부상열차용 레일을 건설하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1992년 7월 4명의 엔지니어가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자기부상열차의 속도로 고속도로 위를 이동했다. 현재 자기부상열차 컨설턴트로 일하는 로렌스 블로우는 그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시속 290㎞로 비행하며 고속도로를 따라 이리저리 제트기의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몸이 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메스꺼움이 몰려오더군요. 메스꺼움은 속도나 가속도 때문이 아닌 제트기의 경사각, 즉 뱅크 (bank)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멀미는 민간과 군대를 막론하고 모든 교통수단이 극복해야 할 공공의 적이다. 그만큼 관련연구도 다수 이뤄 져 많은 데이터가 확보돼 있다. 1995년 영국 해군 군의관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똑바로 앉은 사람과 누워있는 사람을 반복해서 수직·수평으로 흔들었더니 누운 상태보다 앉은 상태에서 수평 운동에 더 취약한 것을 확인했다. 2006년의 연구에서는 낙타를 타듯 흔들림이 완만한 이동이 경주마를 탔을 때처럼 급격히 흔들릴 때보다 오히려 심한 구토를 유발한다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1881년 영국인 내과의사 J.A. 어윈은 시각에 입력되는 자극이 귀 안쪽의 균형 감지 기관인 내이전정(內耳前庭)에 입력되는 자극과 상충돼 멀미를 느낀다는 가설을 제시 한 바 있다. 항공기 좌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고 가정하면 눈은 몸이 정지해 있다는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반면 내이전정은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이라고 알리면서 뇌가 혼란에 빠져 구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시각정보와 감각 정보의 차이로 멀미가 유발된다는 이 가설은 1970년 NASA에 의해 상당부분 입증됐다. 이 때문에 항상 밖을 주시하고 있는 자동차 운전자가 승객들 보다 멀미를 덜 느끼며, 멀미를 느낄 때 직접 운전을 하면 메스꺼움도 사라지게 된다. 이 법칙은 항공기에도 적용된다.



앨라배마주 소재 미 육군 항공의학연구소에서 멀미를 연구 중인 심리학자 캐서린 웹은 이렇게 설명한다. "항공기를 제어하는 조종사들은 항공기가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알고 있죠. 그래서 사전에 준비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승객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항공기가 움직인 후에야 뒤늦게 반응을 하게 돼 멀미가 일어납니다."

멀미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디멘히드리네이트 (dimenhydrinate) 성분이 함유된 멀미약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약들은 졸음을 불러오고, 가끔은 환각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에 NASA가 대체물 확보에 나섰으며 현재 LCD 셔터글라스 방식 3D 안경의 멀미 진정 효과를 연구 중에 있다.

눈의 움직임에 따른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전정기관(前 庭器官)이 교란되면 망막에 안정적으로 상(像)이 맺히는 것 을 방해, 구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3D 안경을 활용해 뚜렷한 상이 맺히도록 함으로써 전정기관과 눈이 보내는 정보를 일치시켜 구토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치유법으로는 외부의 경치를 보는 것이 최상이다. 하지만 항공기는 승객들에게 실제 항공기의 움직임을 여과없이 보여주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소지가 있다. 항공기의 동체는 난기류 상황에서 파손을 막기 위해 일정부분 휘어질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이를 보면 불안감이 더 커질 수 있는 탓이다. 그래서 초현대식 민항기 설계자들은 화장실, 커튼 등의 배치와 인테리어를 통해 승객들이 동체의 휘어짐을 인지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속도보다는 안락함

과연 지구상에서 실현 가능한 상업용 이동수단의 진정한 한계는 어디일까. 현존하는 세상에게 가장 긴 상업용 무착륙 항공노선은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와 싱가포르를 잇는 노선이다. 이 노선의 길이는 1만5,345㎞로서 목적지 도착까지 장장 19시간이 걸린다.

만일 먼 미래에 이들 두 도시를 직선으로 잇고 있으며 무한한 속도를 낼 수 있는 자기부상열차가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의 여행은 이렇게 바뀔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열차 기관사는 승객들의 안락함을 위해 가속과 감속에 의한 중력가속도가 0.15G를 초과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를 철저히 지키며 가속할 경우 열차는 두 도시의 중간지점, 즉 북극권 어디쯤에 이르러 최대속도인 시속 1만7,700㎞에 도달한다. 이후 열차는 다시 0.15G의 한계를 준수하면서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감속해 나간다. 그래도 열차는 단 2시간이면 뉴어크-싱가포르 노선을 완주할 수 있다.



일부 승객들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가속 시 1.5G, 감속 시 1G의 중력가속도를 한계 삼아 이동한다면 운행시간은 더 짧아진다. 출발 후 전체 노선의 3분의 1 지점에 서 이미 최고속도인 4만8,280㎞에 도달하며 나머지 노선 3 분의 1을 감속하면서 주행해도 46분이면 충분하다.

열차가 음속을 돌파할 때 생기는 소닉붐에 의한 선로 주변 지역주민들의 피해 등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좀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이처럼 빠른 이동수단에 기꺼이 몸을 맡길 것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이러한 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까. 2001년 3월 보잉은 일명 '소닉 크루저(Sonic Cruiser)'라는 개념을 발표했다.

이 항공기는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상업용 제트기 중 하나인 보잉 747-400보다도 20%나 더 빠른 아음속으로 비행한다. 보잉은 소닉 크루저가 실제로 개발된다면 비행거리 3,000마일(약 4,830㎞)당 약 1시간의 시간 단축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대다수 항공사들은 이 같은 첨단기술을 동원해 항공기 속도를 높이고 비행시간을 줄이는 것보다 승객들의 주의를 비행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한층 간단하고 저렴한 해결책임을 이미 알고 있다.

마이클 플래니의 말을 빌리면 디스플레이로 항공노선도를 보거나, 인터넷을 사용하거나, TV를 시청하는 것 모두가 승객들의 행복감 유지에 도움이 된다. 이를 인식한 보잉도 지금은 속도를 포기하고 비행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 2002년 소닉 크루저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787 드림라이너의 개발에 주력한 것이 그 방증이다.

내년 중 첫 상용비행이 예정돼 있는 드림라이너의 비행시간은 기존 항공기와 다르 지 않다. 다만 보잉 777은 고강도 경량 복합소재의 사용 비중이 20%였던데 반해 드림라이너는 50%나 된다.

이의 이점은 많다. 가장 먼저 항공기 중량이 가벼워져 연료소비량이 줄어든다. 그리고 보잉은 이 덕택에 승객들의 안락함도 증진된다고 주장한다. 기존 알루미늄 동체 항공기는 객실 습도 때문에 알루미늄이 부식될 수 있어 습도를 최대한 낮춰야 했지만 복합재는 부식 우려가 없어 습도를 더 쾌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보잉 777의 내부 객실 환경은 해발 2,400m 고도와 비슷하지만 드림라이너는 해발 1,800m 수준이다. 보잉의 지원을 받아 오클라호마주립대학이 실시한 연구에서도 500명의 피험자를 선발해 20시간의 모의 비행에 참여시킨 결과, 드림라이너의 기내 환경과 유사한 모의 객실 탑승객들이 신체적 통증이나 긴장감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비행 중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오락도구와 적절한 조명으로 항공여행의 안락함을 얻을 수 있다면 더 빠른 항공기는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안락함에 젖어 지금의 비행시간도 짧다고 느끼게 될 승객들을 위해 그런 항공기를 개발하느라 머리를 싸맬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인체의 한계와 항공여행의 안락함, 그리고 속도의 상관관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락함이라 할 수 있다.

선(線) 가속도

극단적인 고속이동 여행은 승객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자칫 치명적 상황도 배재키 어렵다. 따라서 엔지니어들은 승객 부상을 막고, 즐겁고 편안한 장거리 여행 경험을 주기 위해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최우선 고려사항은 속도다. 하지만 이의 결정은 결코 쉽지 않다. 인체는 최대 46G의 선가속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몇몇 사람들은 0.15G부터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객기 조종사가 이륙 시 중력가속도를 1G 이하로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대로 너무 편안함에 치중하면 이동시간이 길어지는 또 다른 불편함에 직면하게 된다.

급격한 신체 이동

인체의 급격한 이동은 가속도의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자동차 운전 중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항공기가 난기류를 만나 승객들의 몸을 위 아래로 내동댕이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는 승객이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원인이면서 잠재적으로는 매우 높은 신체적 위해를 초래할 수 있는 힘이다.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쏟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경추부 염좌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최적 탑승인원

항공사는 최소의 공간에 최대한 많은 승객을 태우고 싶어 한다. 현재 승객수의 상한선 결정 기준은 뭘까. 안락함? 당연히 아니다. 바로 안전이다. 작년 한 유럽항공사가 입석 전용 항공기의 운항을 제안하자 보잉의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항공기는 엄격한 안전규정을 충족해야 합니다. 그중에는 좌석이 16G의 중력가속도를 견뎌야 한다는 것도 있습니다. 따라서 좌석이 없는 항공기 자체가 규정 위반입니다."

지구력

장거리 항공여행 시 승객들은 좌석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종종 움직임 부족, 산소 부족, 낮은 기압에 의해 하지 정맥에 혈전이 생겨 생명을 위협하는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을 유발한다. 산소와 수분의 추가 공급도 이의 예방에 도움이 되지만 궁극적 해결책은 승객에게 몸을 움직일 충분한 공간을 제공, 원활한 혈액순환을 유지토록 하는 것이다.

경사각

항공기 선회 시 동체가 적절히 기우는 것은 승객의 안락함과 선회효율을 높인다. 하지만 기울기가 너무 크면 불편함이 촉발된다. 이에 자동조종장치는 항공기가 최대 30도 이상 기울어지지 않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다. 다만 1994년의 한 연구에서는 고속철도의 경우 대부분의 승객이 37도의 경사각까지 용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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