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냉동인간은 실제로 존재한다. 다만 영화 데몰리션맨에서와 달리 아직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 냉동인간은 과연 부활에 성공할 수 있을까.
개구리나 금붕어를 -196℃의 액체 질소에 넣으면 한겨울의 동태처럼 꽁꽁 얼어버린다. 하지만 곧바로 이를 미지근한 물에 넣어 해동시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 움직인다.
이러한 과학실험을 직접 혹은 TV를 통해 목격한 일이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생명을 부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개구리와 금붕어가 회생할 수 있었던 비밀은 초저온 액체 질소에 있다. 이를 사용하면 얼음 결정이 형성될 시간조차 없을 만큼 체액이 빠르게 동결 완료되면서 세포막의 파열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숨은 멎었지만 세포는 죽지 않았으므로 해동을 통해 세포가 살아나면서 소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구리가 아닌 사람도 동일한 방식을 통해 냉동과 소생이 가능하지 않을까. 암이나 에이즈 같은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냉동시킨 뒤 치료법이 개발된 미래에 소생시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또한 이는 난치·불치병, 원인불명의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는 물론 알츠하이머 등 평생토록 정상적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정신질환자들에게도 큰 희망이 될 수 있다. 이렇게만 되면 생명연장이라는 인류의 오랜 꿈이 현실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현실 속 냉동 인간
얼마 전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사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160여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한 냉동인간. 두 눈을 반쯤 감은 채 입을 벌리고 누워 있는 그의 얼굴은 놀라울 만큼 살아있는 사람 그대로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1845년 북극을 탐험하던 중 사망한 존 토링톤이란 이름의 탐험가다.
그는 사망 이후 줄곧 얼음 속에 방치돼 있다가 1983년 처음 발견됐으며 온갖 우여곡절 끝에 1998년 냉동인간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던 독일의 한 연구팀에 의해 그 존재가 외부로 알려졌다.
심지어 2008년에는 한 국내 방송에 의해 독일 연구팀이 토링톤이 부활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부활했다는 토링톤의 모습이 공개된 바 없어 진위여부는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이 소식은 많은 이들을 경악케 하기에 충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79년 생을 마감한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 존 웨인이 현재까지 냉동인간으로 보존돼 있다는 설도 있다. 1940~1950년대 할리우드의 대표배우였던 그는 1954년 영화 '징키스칸'을 찍을 당시 암 선고를 받았는 데 영화 촬영지가 미국의 핵실험 장소였음을 알고 정부를 상대로 고소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웨인에게 최고의 의술을 제공하는 한편 치료에 성공하지 못하면 냉동인간으로 만들어 훗날 소생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 존 웨인 냉동인간설의 골자다. 이를 믿는 사람들은 그의 시신이 냉동된 채 워싱턴의 한 지하벙커에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글자 그대로 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설이 아닌 실제 냉동인간들이 존재한다. 서구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냉동인간 연구를 본격 시작했으며 지금껏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가능성을 믿고 자신의 신체를 냉동시키는 데 동의했던 것이다.
공식적(?)인 최초의 냉동인간은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던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베드포드다. 그는 73세였던 1967년 미래에 암 치료법이 나오기를 희망하며 냉동인간이 되기를 자처했고, 현재까지 액체질소를 채운 금속 용기 안에 동결된 상태로 안치돼 있다.
냉동인간을 말할 때는 인체 냉동보존 서비스 기관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미국 애리조나에 위치한 알코르생명연장재단(Alcor Life Extension Foundation)이다.
이 재단은 인체 냉동보존의 연구와 실행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단체로서 1972년부터 인체 냉동보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재단 의료진들은 냉동인간을 생체적으로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모든 조직과 세포들이 일시적으로 활동을 정지한 것일 뿐 사망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이들은 냉동인간을 그저 '환자'라고 부른다. 현재 약 100여명의 냉동인간이 이곳에서 부활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며 냉동인간이 되기를 희망하는 회원수만 1,000여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냉동된 사람들의 신분은 대부분 비밀에 부쳐지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설적인 타자 테드 윌리암스나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 제작자 월트 디즈니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 인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특히 그중에는 한국인 고객이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인체 냉동보존술
혹시라도 알코르 재단의 회원이 되고 싶은가. 그러려면 우선 40세 무렵 미리 정밀 검사를 받고 냉동 보존과 관련된 준비를 마쳐야 한다. 그리고는 위치 추적 팔찌를 차야 한다. 그 팔찌를 차고 있으면 죽음에 임박할 즈음 재단의 특수차량이 나타나 당신을 재단으로 수송해 간다.
만일 냉동인간 보존처리가 시작되기 전에 심장이 멈추면 의료진이 신속히 심폐소생술을 시행, 호흡을 되살리고 산소 부족에 의한 뇌 손상을 막는다.
인체 냉동보존술은 앞서 언급한 개구리나 금붕어처럼 액체질소 속에 몸을 통째로 넣어 얼려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생물보다 복잡한 생체구조를 지닌 사람의 냉동은 개구리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알코르 재단에서 시행 중이라는 냉동보존술은 이렇다. 먼저 시신의 가슴을 절개해 늑골을 분리한다. 그리고 변질을 막기 위해 신체를 냉각시키고 삼투압을 이용해 혈액을 비롯한 체액을 모두 제거, 체액의 동결을 방지한다. 체액이 얼면 자연히 몸의 부피가 늘어나게 되고, 이는 수많은 혈관들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특수액체를 주입해 내부 기관이 손상되지 않도록 한다. 이어 시신을 냉동보존실로 옮겨 글리세롤과 같은 부동액 성질의 특수액체를 체액 대신 주입, 저온 상태를 유지시킨다.
인체의 온도가 내려가면 체액이 조직과 세포들 사이에 얼음 결정을 생성시켜 주변 세포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부동액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렇듯 냉동보존술에서 부동액을 이용한 보존기술을 유리화(vitrifica-tion)라 한다.
유리화는 액체를 냉각할 때 급격히 굳는 현상을 말하는데 -100~120℃에 이르면 액체가 유리처럼 고체 상태로 변해 얼음 결정의 발생을 막고 조직 형태를 고정시킨다.
이를 통해 세포가 아무런 화학반응 없이 보존될 수 있다. 단지 부동액은 독성이 있어 세포손상의 우려가 있다. 따라서 고농도를 사용하면 치명적이다. 이 문제는 미래 기술로 해결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어쨌든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신체는 액체질소로 급속 냉동되어 '듀어(dewar)'라 불리는 질소탱크 속에 보존된다. 미래의 어느 날 냉동인간을 되살려낼 때는 이 과정을 거꾸로 반복한 다음 전기 충격을 가해 심장을 소생시키게 된다.
알코르 재단에서는 몸 전체는 물론 뇌나 장기만을 따로 보존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보통 전신 보존에 약 15만 달러, 뇌만 보존하는 데는 약 8만 달러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뇌만 보존하는 이유는 미래에는 머리만 있다면 몸까지 재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인한다. 결코 만만찮은 액수의 비용이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현재 많은 사람들이 냉동인간이 되기 위해 알코르 재단 혹은 이와 유사한 기관과 접촉하고 있는 상태라고.
이렇듯 현재의 냉동보존술은 미국이 선도하고 있지만 세계 각국은 앞다퉈 이의 현실화 방안을 찾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극한의 추위에서 생존하는 극지생물을 통해 생물의 냉동 보관에 필수적인 결빙 방지 단백질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 냉동 후 해동하여 되살리는 확률을 높이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열쇠는 나노기술?!
일찍이 1962년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에틴거는 사람을 냉동시켜 보존하는 것이 가능하며 해동시키면 다시 살아난다는 주장을 펼쳐 학계를 놀라게 했다. 영화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인체 냉동보존술의 과학적 가능성을 밝힌 최초의 학술서로 평가 받는 그의 저서는 최근 국내에서 '냉동인간'이란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여기서 에틴거는 "죽음이란 제대로 보존되지 못해 다시 태어날 수 없는 상태일 뿐이다"고 강조한다. 또한 극단적으로 낮은 온도에서는 화학적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다는 과학적 사실을 전제로 하여 쥐를 평상시 체온(18℃)보다 한참 낮은 온도로 1시간 이상 냉각시키고도 이전의 기억을 유지한 채 완벽히 소생시킨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그는 가까운 미래에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며 냉동인간의 부활을 확신했다. 심지어 자신의 1,000번째 생일에 친지들을 미리 초대해 두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에틴거가 이 책을 집필할 때로부터 5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인체 냉동보존술은 여전히 미완의 기술로 남아있다.
현 기술 수준으로는 인체의 전체가 아닌 일부 인체기관을 냉동시킨 후 정상적인 상태로 해동, 재건해내는 정도만 가능하다. 물론 전문가들은 개구리 같은 작은 생물이나 인체 장기를 냉동보존할 수 있다면 냉동인간의 해법도 찾을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냉동인간과는 개념적으로 다르지만 짧은 시간 동안 의학적으로 사망했다가 냉동보존술과 유사한 기술을 통해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사람들도 있다. 가령 지난해 미국에서는 심장마비로 사망 진단을 받은 여성이 이틀 동안 몸을 얼렸다 녹이는 저체온치료법으로 다시 깨어난 바 있다.
당시 의사들은 냉동 담요와 냉동 주사로 그녀의 체온을 33℃까지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이틀 후 몸을 서서히 녹이자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는 것.
작년 서울의 한 회사원도 비슷한 경험을 해서 화제가 됐다. 당시 의사들은 심장마비로 쓰러진 그의 몸에 차가운 식염수를 주입하는 한편 얼음주머니를 갖다 대고 물을 뿌리며 선풍기를 틀어댔다.
혈관 내 혈액을 냉각시키는 특수관도 심었다. 그러자 체온이 순식간에 33℃까지 낮아졌고 다음날 체온을 천천히 올리자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왔다고 한다. 현재 그는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 사례를 꿈의 냉동보존술로 보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장기간 극저온 상태로 냉동된 인체를 회생시키는 완전한 의미의 냉동보존술의 실현에는 산더미 같은 기술적 난제가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최대의 난제는 뇌 세포의 복구다.
뇌는 소우주라 불릴 만큼 인체의 다른 어떤 기관보다 민감하고 복잡한 부분인 탓이다. 사실 신체가 성공적으로 소생된다고 해도 냉동 전의 기억이나 의식을 모조리 잃는다면 소생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해법은 없을까.
학계에서는 그 열쇠의 하나로 나노기술에 주목한다. 분자와 원자 단위까지 조작이 가능한 나노기술로 냉동인간의 소생시 발생할 문제점들을 해결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의 발로다.
일례로 나노미터(㎚) 크기의 컴퓨터 센서와 작업 도구 등을 탑재한 나노로봇이 개발된다면 손상된 세포의 회생이 가능해진다. 나노로봇은 백혈구처럼 인체의 조직 속을 돌아다니며 세포막을 여닫고 세포 안팎으로 들락거리며 세포와 조직의 손상된 부위를 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뇌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기억 보존 메커니즘이 명확히 밝혀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과학과 망상의 경계
에틴거가 처음 책을 출간할 당시 나노기술은 세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알코르 재단 의료진을 비롯한 다수의 전문가들은 최근의 과학 발전 속도를 고려 했을 때 대략 2040년경 냉동인간 소생술의 개발이 이뤄질 것으로 예견한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화될 수 있는 개념인 셈이다.
그렇지만 이는 전망일 뿐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30년쯤 지나면 소생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제임스 베드포드가 언제쯤 회생 조치가 취해질지도 모른 채 벌써 40년이 넘도록 냉동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냉동인간의 소생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세포는 곧바로 부패하며 인체를 액체질소에 보관하거나 극저온 응결시키는 방식은 인체 조직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밝혔듯 이는 알코르 재단 등 전 세계 모든 냉동보존 서비스 기관들이 극복하지 못한 과제다. 때문에 냉동 보존술은 과학이라는 미명 하에 행해지는 혹세무민의 전형이며 미완의 기술을 담보로 대중에게 헛된 망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아울러 이 문제는 윤리·철학·종교와도 깊이 연루돼 있다. 과연 인체를 냉동시키는 방법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두고 첨예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에틴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정관념에 이의를 제기하며 냉동 인간도 살아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법적·제도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이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으로서는 냉동인간의 성공적인 부활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 인류의 오랜 소망과 직결된, 그리고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혁신적으로 바꿔놓을 매우 흥미진진한 '사건'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만일 우리의 바람대로 안전하고 성공률 높은 인체 냉동보존술이 완성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아마도 일상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놀라운 일들이 뒤따를 것이다. 100세, 200세는 물론 1,000세가 훌쩍 넘는 사람들이 넘쳐날 것이며 나이에 대한 개념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 태어난 지 1,000년이 지난 20세 청년이 거리를 돌아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질병이나 죽음의 의미가 크게 달라질 것이며 소생 후 새로운 미래사회에 적응하는 일이 인류와 사회의 주요한 숙제로 떠오를 수 있다. 어쩌면 코미디 영화 '이디오크러시'의 주인공 조처럼 얼음 속에 안치됐다가 500년이 지난 어느 날 깨어났더니 바보들만 우글거리는 미래사회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돼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