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컴퓨터에 날벼락이 떨어진다

인텔과 애플의 걸작품 '썬더볼트' 인터페이스

언제나 애플은 '윈텔(윈도와 인텔)'로 대변되는 기존 PC 업계와 차별화 된 길을 걸어왔다. 독자적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는 물론 IEEE 1394(파이어와이어) 등의 인터페이스에 이르기까지 '최씨'를 능가하는 고집으로 마이웨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애플이 얼마 전 변했다. 그리고 인텔과의 기술합작을 통해 '썬더볼트'라는 혁신적 창조물을 내놓으며 직렬버스 시장에 초대형 쓰나미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이기원 기자 jack@hmg p.co.kr

USB의 약진


윈텔 진영이 IBM, 컴팩 등과 연합해 USB 1.0 버전을 내놓은 것은 1996년의 일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USB가 적용된 제품은 보기 힘들었다. 메인보드나 주변기기 업체들이 이를 전혀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용직렬버스(Universal Serial Bus)의 약자인 USB는 범용성이 가장 큰 특징인데 당시에는 이를 요하는 주변기기도, 유저들도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 1998년 프로토콜을 재정비해 1.1 버전이 발표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IT 디바이스 간의 통신이 필요한 곳에 USB가 쓰이기 시작했고 2000년 2.0 버전이 나오며 속도에 대한 갈증마저 해소되면서 지금은 USB 인터페이스를 지원하지 않는 IT 기기를 찾는 것이 오히려 힘든 상태가 됐다. 물론 여기에는 2.0버전 발표 직전 출시된 윈도98의 공도 적지 않았지만 말이다.

직렬버스 선구자

사실 직렬버스 인터페이스 분야의 선구자는 애플이다. 애플은 USB보다 1년 빠른 1995년에 독자 개발하던 파이어와이어를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과 연합, IEEE 1394라는 업계 표준으로 발표했다.

최대 400Mbps의 황당한(?) 속도를 표방했던 이 인터페이스의 등장은 당시 고용량의 데이터 전송을 필요로 하는 영상업계로부터 대대적 환영을 받았다. 참고로 USB는 1.1 버전조차 고작 12Mbps의 거북이 속도를 벗어나지 못했고 2.0 버전에 이르러서야 480Mbps에 도달했다.

그나마도 디바이스 상호간에 직접 데이터를 전달하는 파이어와이어와 달리 USB는 중간에서 데이터를 제어하는 호스트의 존재 때문에 속도 저하가 심하다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이를 감안하면 파이어와이어는 USB를 단박에 넉다운시키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시장상황은 전혀 달랐다.

팔리지 않는 최고

USB는 하루가 다르게 시장을 장악해 나갔지만 파이어와이어는 개발에 참여했던 몇몇 업체들의 제품에만 장착된 것.

이런 상황은 애플 특유의 폐쇄적 판매방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례로 많이 알려졌다시피 애플은 자사 컴퓨터를 오직 자사에서만 생산한다. 1990년대 중반 잠시 외주 생산을 했던 것을 제외하면 이는 애플에게 타협불능의 원칙으로 꼽힌다.

IBM이 자사의 플랫폼을 개방, 전 세계 모든 업체들이 '퍼스널 컴퓨터'라는 고유명사를 마음껏 사용하게 하면서 다양한 호환제품의 개발을 꾀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애플의 방침이 파이어와이어에도 고스란히 적용돼 파이어와이어를 사용하려는 기업들은 값비싼 라이선스 비용을 내야했고 이것이 디바이스 제조업체들의 외면을 초래했다.


참담한 상황에서도 애플은 버전업을 지속했고 2008년 3.2Gbps까지 속도를 높였지만 같은 해 발표된 5Gbps의 USB 3.0이 실낱 같이 남아있던 마지막 숨을 끊어버렸다. 결국 애플은 이렇게 직렬버스 인터페이스 전쟁에서 USB에 백기를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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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변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애플은 2006년 놀랄만한 변화를 꾀했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를 외치며 외길을 걷던 행보를 버리고 인텔의 CPU를 채용한 것.

1994년부터 애플은 '파워 PC'라는 CPU를 고집스레 사용하면서 인텔의 CISC CPU보다 우월한 RISC 방식임을 자랑했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 우월한지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아무런 장점도 되지 못했다. 사용자들은 좀 더 많은 호환성을 지닌 PC로 몰렸기 때문이다.

결국 애플도 이를 인정하고 인텔 CPU를 채용한 맥북과 아이맥을 출시하며 인텔과 대타협을 시도했다. 특히 OSX 운영체제를 버전업하여 윈도와 리눅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부트캠프(Boot Camp) 프로그램까지 제공했다.

주지하다시피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는 그동안 애플의 디자인은 마음에 들지만 낯선 OSX 환경 때문에 구입을 망설였던 소비자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그리고 마침내 애플은 단순히 인텔의 칩을 구매하는 것을 벗어나 기술적 합작을 맺기에 이른다. 이렇게 컴퓨팅 업계의 양대 거목이 손잡으며 놀라운 결과물이 탄생했으니 이름하여 '썬더볼트'라는 인터페이스다.

모든 케이블은 썬더볼트로

썬더볼트는 과연 얼마나 놀라운 인터페이스일까? 일단 속도에서 USB 대비 월등한 우위를 점한다. 최대 전송속도가 10Gb㎰로 USB 최신 버전인 USB 3.0의 2배에 이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혁명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모자란다. 썬더볼트의 진정한 가치는 다양한 인터페이스 기능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데이터 전달에 국한된 USB와 달리 영상과 음성도 전송할 수 있어 HDMI, eSATA, DVI, VGA까지 모두 썬더볼트로 연결된다. 컴퓨터에 별도의 영상포트∙음성포트를 채용하지 않아도 썬더볼트만으로 TV, 모니터, 스피커 등과 연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어댑터가 필요하기는 해도 단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거의 모든 주변기기와 디바이스를 연결한다는 것은 그 발상부터 혁명이 아닐 수 없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무기는 데이터용 PCI 익스프레스와 영상 및 음성용 디스플레이 포트를 동시 지원해주는 막강 프로토콜이다. 더군다나 썬더볼트는 '데이지 체인(daisy chain)' 기능을 이용, 별도의 허브 없이 각 디바이스를 거미줄처럼 연속 연결할 수도 있다. 컴퓨터와 TV를 연결하고 TV와 외부저장장치를 연결하면 컴퓨터로 외부저장장치에 접속이 가능한 것이다.

IEEE1394 포럼 회장을 지낸 경원대 정보통신연구실의 전호인 교수는 "썬더볼트는 세계 최고 전송속도와 데이터∙음성∙영상 지원, 데이지 체인 기능 등 IEEE1394 진영이 꿈꿔왔던 기기 간 통합인터페이스의 꿈을 이룰 강력한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전 교수는 또 "애플에 더해 세계적 저장장치 업체와 카메라 기업들의 참여가 결정되면서 썬더볼트의 빠른 확산이 예견된다"며 "우리나라도 시장 선점을 위해 조속한 도입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껏 직렬버스 인터페이스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속도의 상승이 아닌 인터페이스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기술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설령 썬더볼트가 USB보다 높은 단가로 인해 시장의 외면을 받게 되더라도 썬더볼트가 제안한 '케이블 통합'이라는 개념은 차세대 인터페이스 모두에게 영향을 줄 것이 확실하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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