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섭 기자 sup@hk.co.kr
"일주일에 5일은 서울에서 지내고 2일은 홍천으로 가서 농사일을 합니다. 서서히 부담 없이 농사에 접근해야 은퇴 후 오랫동안 농사일을 할 수 있어요"
서울 공릉동에 사는 사립학교 영어교사 백희선(60) 씨는 올해로 30년째 교편을 잡고 있다. 정년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사립학교에 재직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은퇴에 대해 남모를 고민을 가지고 있다. 미리 들어둔 든든한 보장성보험과 변액연금보험, 교직원연금 외에도 각종 재테크 수단을 통해 모아 둔 돈이 제법 있어 노후자금에는 걱정이 없는 편이다.
그가 가장 걱정하는 건 갑작스럽게 일이 없어질 경우 다가올 적막감과 허탈감이다. 교육과 연구에 힘써온 탓에 변변한 취미 하나도 없다. 누구나 그렇듯이 백씨 역시 부자로 은퇴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가 그리는 부자는 다른 이들과 사뭇 다르다. 그는 마음의 부자가 되길 원한다.
백씨처럼 은퇴 후 여가생활을 걱정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곰곰이 생각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활동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한 취업포털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은퇴를 앞둔 50대 직장인들이 은퇴 후 가장 꿈꾸는 여가 생활은 여행과 농사, 봉사활동 크게 세 가지였다. 여행과 봉사활동이야 여가생활로 볼 수 있다지만, 농사를 여가시간에 취미로 한다는게 가능할까? 농촌 진흥청 기술연수과 김부성 지도관은 말한다.
"물론 가능합니다. 하지만 만만치는 않아요. 귀농을 포함해 농사일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분들 이 많이 찾아옵니다. 그중엔 은퇴하신 분들과 은퇴를 준비하시는 도시 직장인들이 많지요. 하지만 농사일은 꿈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제대로 된 농사일에 대해 교육을 받고 현실을 알기 전에 무작정 농촌으로 향하면 꿈을 실현하기가 어려워요. 중간에 포기하시는 분들도 많이 봤습니다."
농촌진흥청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는 귀농을 포함 해 농사를 배우고자 하는 은퇴자와 도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른바 '소비자 녹색기술' 이라는 교육 카테고리 안에는 가벼운 농촌 체험 교육부터 실질적인 귀농을 위한 이론 및 기술 교육 연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엘리트귀농대학' 과정은 농업과 농촌생활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과 실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수강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12주간 100시간 교육을 받는다. 이론 60시간과 실습 40시간을 번갈아 가며 교육받는다. 농업과 실질적인 농장경영에 대한 이론적인 내용을 배우는 공통 전공 강의와 각자가 원하는 농사 분야에 대한 특화 전공 강의를 들을 수 있다.
특화 전공 강의는 특용작물반, 채소반, 과수반으로 나뉘며, 한 클래스당 20명까지 수강이 가능하다. 교육을 원하는 사람들이 주로 서울에 분포하는 관계로 서울역사 내부 대회의실과 세미나실에서 교육을 진행 중이다.
이 교육은 지난해부터 실시되어 올해 4월에 2기 수강생들을 맞이했다. 1기 수료생 중 10여 명은 벌써 강원도 홍천 시골마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김부성 지도관은 말한다. "일주일에 5일은 서울에서 지내고 2일은 홍천으로 가서 농사일을 합니다. 서서히 부담 없이 농사에 접근해야 은퇴 후 오랫동안 농사일을 할 수 있어요. 테스트 차원이란 성격도 있어요. 정말 농사일을 하며 지낼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는 거죠."
국내 철강업계 중견기업 임원이라고 밝힌 한 은퇴 준비자는 말했다. "다시금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특히 농사일은 배우는 것도 실제로 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일에 대한 보람은 다른 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죠. 벼농사 같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농사가 아니라 단기간에 수확이 가능한 식용 작물 같은 것을 재배할 경우, 결과가 금방금방 나타나니까 더욱 재미가 있습니다. 수확한 농작물을 주변 지인들이나 자식들과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농업진흥청이 진행하는 이 교육과정의 한 학기 수강료는 50만 원이다. 전체 수강료 150만 원 중 100만 원은 정부에서 보조를 해준다. 농업의 저변확대와 도시민들의 귀농을 돕기 위해서다. 오는 8월에 맞춰 하반기 개강을 준비 중이다.
그렇다면 여행은 어떨까. 우선 국내에선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여행시장이 아직 크지 않은 상황이다. 50~60년대 베이비붐세대가 아직 은퇴 시장에 많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 세대도 존재하지만, 여행을 능동적으로 즐기기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모두투어 크루즈 인터내셔널 사업부 정용현 차장은 말한다. "지금 황혼기에 있는 세대들은 스스로의 의지보단 자식들에 의해 여행을 다니는게 거의 대부분입니다. 효도관광 상품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죠. 그래서 저희는 지금 60~70대 은퇴자들을 직접 타깃으로 하기보단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녀 세대가 곧 은퇴 시장에 나옵니다. 5년 정도 후부터 은퇴 시장에 쏟아지기 시작할 베이비 부머들을 유치하기 위해 전략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장 은퇴 이후 여행계획을 세우려는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해외 여행을 다녀온 지인들의 말만 듣고 혼자 여행계획을 세우기엔 뭔가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모두투어 홍기정 사장은 말한다. "여행을 취미생활로 시작하는 단계에서 개별 여행을 계획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실제 가봐도 힘든 여행이 될 거고요. 일단 가까운 곳으로 패키지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의 전체적인 맛을 대략적으로 익히는 게 필요합니다. 그후 개별 여행을 계획해서 차츰 거리를 늘리면 자신만의 세밀한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정해진 시간 안에 넓은 지역을 돌아볼 수 있는 패키지 여행을 이용해 해당 지역의 전체적인 맛을 느낀 후, 인상적이었거나 마음에 든 여행지를 개별여행 계획을 세워 다시 찾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주의할 점은 있다. 하나투어 제우스팀 김희정 차장은 말한다. "국내 여행사들의 패키지 여행은 보통 일정이 좀 빡빡한 편입니다. 대부분 60~70대인 은퇴자들이 소화하기에 무리가 따를 수 있어요. 식사 시간과 이동 시간을 은퇴자들에게 맞춰주는 여유로운 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투어는 이런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올해 초 맞춤형 여행상품을 내 놓았다. 여행 기획 단계에서부터 여행객과 컨설팅을 통해 모든 일정을 맞춤형으로 기획해주는 서비스다. 기존 패키지 여행 상품처럼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니지만, 일정은 훨씬 여유롭다. 패키지 여행을 다니면 으레 거쳐야 하는 선물가게에도 갈 필요가 없다.
가격대는 패키지 여행 상품보단 다소 높지만, 기존 고가 여행 상품들에 비하면 저렴한 수준이다. 김희정 차장은 말한다. "기획여행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서비스의 품질입니다. 호텔은 물론 현지 가이드와 코스 등 그 어떤 여행 요소라도 수준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상품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크루즈 여행은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면서도 번번이 짐을 쌀 필요가 없고, 선상에서 바다의 풍경을 만끽하며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돈이 좀 들더라도 수준 높은 여행을 원하면 모두투어의 크루즈 여행 상품도 고려해볼 만하다. 가깝게는 한국과 중국을 6박 7일간 오가는 상품부터 100일간 전 세계를 유람하는 상품까지 크루즈의 매력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모두투어 정용현 차장은 말한다. "미래 은퇴 시장에선 크루즈 여행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봅니다. 최근엔 50~60대 부부 단위 여행객들이 크루즈 여행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면서도 번번이 짐을 쌀 필요가 없고, 고급 크루즈에서 바다의 풍경을 만끽하며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루즈 여행을 계획할 때는 선사마다 다른 배의 특징을 잘 고려해야 한다. 흔히 크루즈 여행객들은 무조건 규모가 큰 최신식 배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크기가 크지 않더라도 다양한 장점을 갖춘 배들은 분명 존재한다. 수준급 요리와 객실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배도 있고, 레저스포츠 같은 엔터테인먼트에 초점을 맞춘 배도 있다. 여행 준비 단계에서 철저한 상담을 통해 각각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격대는 110 만 원짜리 한middot;중 코스부터 1억 원짜리 세계 일주 상품까지 다양하다.
크루즈 여행을 할 때도 주의할 점은 있다. 크루즈는 장기간 배에서 생활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건강상 무리가 올 수 있다. 정용현 차장은 말한다. "1달 이상 장기 여행을 계획하는 은퇴자들은 여행 계획단계에서 반드시 병원을 찾아 몸 상태를 체크해야 합니다. 여행을 취미로 갖기 위해선 꾸준한 건강관리와 체력관리가 꽤 중요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