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마이클 델의 딜레마


델의 실적과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델의 CEO가 IBM, 애플과의 경쟁에 필요한 만큼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을까? By Katie Benner

델 Dell Inc.은 더 이상 최고의 PC를 만드는 회 사가 아니지만, 창업주 겸 CEO인 마이클 델 Michael Dell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델은 사업 분야가 다양한 기술 기 업으로, 서버에서 시스템 통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제공한다. 그는 회사의 미래가 그 어 느 때보다 밝다고 주장한다. 텍사스 라운드 락 Round Rock 사무실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 서 그는 “델의 실적은 꾸준히 상승해왔다. 이익 률 또한 확대해 나가고 있다. 델은 얻고 싶은 게 많은 기업이다. 현금 흐름도 견실하다”고 말했 다. 그는 “델이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느 정도까지는 모두 사실이다. 델은 최근 10억 달러에 육박하는 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시 장 기대치를 가뿐히 넘어섰다. 이는 기업들의 PC 및 서버에 대한 높은 수요 덕분이다. 여러 애 널리스트가 델의 주가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M&A도 몇 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최근 9 억4,000만 달러에 인수한 데이터 스토리지 업 체 컴펠런트 테크놀로지 Compellent Technologies와 지난 2009년 39억 달러에 인수한 페로 시스템 즈 Perot Systems다. 공격경영 측면은 어떤가? 마이 클 델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델이 PC 사업을 넘어 영역을 확대해왔다고 말 하고 있다. PC사업은 이익률이 낮지만 델의 매 출에서 55%를 차지하며, PC관련 소프트웨어와 주변장치를 더하면 약 70%에 이른다.

그러나 오라클이나 IBM, HP 같은 공룡들 이 업계를 장악하며 기업 고객에게 훨씬 폭넓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메뉴를 제공하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이 중 어느 것도 델이 정체 성을 찾느라 고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지는 못한다. (개인 고객 측면에선 제동을 걸 수 없을 듯한 거인 애플과 마주하고 있다.) 마이클 델의 모든 낙관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재의 델을 PC 제조사이자 탄탄한 틈새서비스 제공 업체(델은 정부, 의료 등 중견 기업 및 산업을 대상으로 좋 은 실적을 보이고 있다)에서 IBM을 쓰러뜨릴 IT업계의 거인으로 변모시키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델의 전 middot; 현직 임직원 12명과 인터뷰한 결과, 신중한 관리자인 마이클 델은 IT업계를 재편하 고 있는 시장과 기술 변화 예측에 고전해왔다. 본지는 델의 전 CEO 케빈 롤린스 Kevin Rollins 가 2002년부터 스토리지 장비 제조사 EMC 를 인수해 PC 이상으로 사업을 확장하려 애를 썼지만, 마이클 델이 이를 번번히 가로막았음 을 알게 되었다. 롤린스는 델 퇴직 후 처음 가 진 인터뷰에서 “나는 마이클이 (내 의견에) 동 의하도록 만들지 못했다”며 “그는 그런 시도가 회사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마이클 델의 위험 회피 경영스타일이나 그가 휴대폰과 태블릿의 부상 등 주요 IT 트렌드를 포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미국의 위대한 IT 기 업가 중 한 사람으로 대중에게 비친 그의 모습 과 배치된다. 그러나 마이클 델의 혁신에 있어 그 중심은 비즈니스 모델과 물류였지 획기적인 기술이 아니었다. 델은 특허나 발명품을 양산하 지 않는다. R&D 지출은 매출의 약 1% 수준이 다. 반면, 애플은 매출의 3%, HP는 2% 이상을 연구개발에 지출한다. 경영진은 대규모 인수나 자체 연구개발에 대 한 지출을 주저한다. 그래서 일부 애널리스트들 은 델이 더 큰 경쟁 업체들을 따라잡지 못할 것 이라고 전망한다. “델은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보 다 공격적인 조치가 필요하며, 만약 그렇게 조치 하지 않으면 이렇다 할 성장 없이 별 볼일 없는 업체로 남게 될 것”이라고 스턴 에지 Sterne Agee의 애널리스트 쇼 우 Shaw Wu 는 지적한다.

마이클 델은 2004년 CEO직에서 물러났다가 회사를 구하기 위해 2007년 다시 CEO로 복 귀했다. 그러나 물러나서도 회장직에 있었 던 그는 실제적으론 회사를 떠난 적이 없었 고, 사실상 롤린스와 공동 CEO를 맡고 있었 다. “회사 전략과 운영에 관해 우리는 함께 의 사결정을 내렸다”고 롤린스는 말한다. “회사 의 방향에 대해 뚜렷한 이견이 생기기 전까 지는 이 체제가 놀라울 만큼 효과적이었다.” 2002년이 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가 PC에 지 나치게 편중된 것 아니냐를 놓고 델과 롤린스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롤린스는 당시 시가 총액 약 160억 달러짜리 EMC를 인수하려 했다(현재 가치는 570억 달러다). 전 고위급 임원 4명의 말 을 들어보면, 델은 자신이 “회사를 건 내기”라 부르던 일은 실제 실행에 옮기려 하지 않았다. 그를 움츠리게 만든 또 한 가지 이유는 서비스 업체 컨버지넷 ConvergeNet이 1999년 델에 인수 된 후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대신 그는 프린터와 TV, MP3 플레이어 등 PC 이외의 소비재를 제조하여 사업을 다각화 하고자 했다. “마이클은 대규모 기업 인수에 대 한 위험부담 없이 이런 사업으로도 충분히 유 기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기업 전 략담당 부사장이었던 루이스 오브라이언 Louise O’Brien은 전한다. 그녀는 델이 취했던 기존의 원 가 절감 방식이 PC와 달리 이들 분야에는 통하 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고 말한다. “이들 분야는 R&D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했고, 낮은 원가 와 신속한 출시는 성공할 만큼 차별화된 요소는 아니었다”고 오브라이언은 덧붙인다.

델은 딱히 출시할 만한 제품이 없어 PC 판 매에 의존해야 했다. 판매량 확대를 위해 가격 을 크게 낮추고 공급 업체에 납품가 대폭 할인 을 요구했다. 증권거래위원회는 소송에서, 델이 재무 목표 달성을 위해 라이벌 업체의 칩을 사 용하지 않는 대가로 인텔로부터 ‘독점사용에 대 한 리베이트’를 받고도 이를 공시하지 않은 혐 의가 있다며, 그 액수가 2003년부터 2007년까 지 델 영업이익의 10~76%에 이른다고 밝혔다. 마이클 델과 롤린스, 회사는 2010년 합의로 소 송을 마무리 지었지만, 해당 혐의에 대해 의견 을 말할 수 없는 상태다.

2007년 1월 롤린스가 해임됐지만, 마이클 델 의 단독 지휘 하에서 사업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가 델의 하락세를 반전시킬 방법을 찾느라 고 심하는 동안 라이벌들은 휴대폰을 개발 중이었 고, 기업고객에 집중하던 경쟁사들은 IT 아웃 소싱과 시스템 통합 등의 서비스에 진출하고 있 었다. IBM은 2002년 PwC 컨설팅을 인수했고, HP는 2008년 EDS를 140억 달러에 인수한다 고 발표했다. 마이클 델은 좀 더 일찍 사업을 다 각화해야 했음을 인정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신 중했고, 컴퓨터만으로 50억 달러에서 100억, 150억, 그리고 300억 달러로 성장해 나갈 수 있 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델의 손익계산서는 여전히 PC가 중 심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이익률이 더 높은 서비스인 소프트웨어 부문은 최근 페로 시스템 즈를 인수하고도 재무제표의 주석에만 등장할 정도다. 564억 달러 규모인 IBM의 서비스 사업 (거의 델 전체와 맞먹는 규모)은 2010년 매출 의 56%, 세전 이익의 39%를 차지했다. 349억 달러 규모의 HP 서비스 부문은 매출의 28%, 영 업이익의 49%를 구성한다. 델에서는 서비스 사 업이 77억 달러로 매출의 13%만을 차지한다. 크레딧 스위스 Credit Suisse의 애널리스트 쿨빈더 가르챠 Kulbinder Garcha는 델의 서비스 부문 매출 의 절반가량이 가장 수익성 높은 컨설팅 유형의 사업이 아닌 하드웨어 유지보수 및 지원에서 창 출되고 있다고 추정한다.

마이클 델은 기업 인수를 통해 소프트웨어 와 서비스 경쟁을 선도하려는 계획이 없다는 사 실을 분명히 해왔다. 대신 그는 동질감이 느껴 지는 진취적인 신생기업 인수를 선호한다. “신생 기업은 델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인재, 신선한 사 고를 수혈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1999년 발간된 자신의 책 ‘다이렉트 경영 Direct From Dell’에서 마이클 델은 “시장 점유율이 겨우 한자릿수일 때는 (게다가 대형 업체와 경쟁하고 있는 경우) 차별화하거나 망할 수밖에 없다”라 고 썼다. 크레딧 스위스의 조사 결과, 소프트웨 어와 네트워킹, 서비스 부문에서 델의 시장 점 유율은 현재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힘겨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독자 OS가 없어 에이서 Acer와 아수스 Asus, 삼 성, LG, HTC 등과 마찬가지로 자사 생산 기기 의 두뇌를 윈도와 안드로이드, 리눅스에 의존하 고 있다. 서비스 부문에선 고객이 이미 보유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솔루션을 만든다. 변경 사항이나 신규 아이템을 가능한 곳에 끼워 넣는 방식이다. 반면 IBM과 HP 등 은 대개 자사의 소프트웨어와 장비가 포함되는 통합 솔루션 일체를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델이 강점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델의 주가는 올해 20% 상승했다. 소규모 기업 대상 PC 판매 분야에서 탄탄한 기반을 보유하 고 있고, 이들 기업이 더욱 고도의 기술과 서비 스를 요구하면서 델은 자연스럽게 그들과 파트 너가 되었다. 정부, 교육, 의료 분야 고객과의 관 계도 좋은데, 일부는 페로의 인수 덕분이다. 다 수의 애널리스트와 심지어 몇몇의 전 직원들도 델이 단순히 틈새시장(슈퍼마켓이 아닌 IT전문 스토어로서의 역할) 장악만으로도 견실한 사업 을 일궈나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마이클 델은 자신의 회사를 그런 식 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상황이 바뀌고 있다” 며 “델은 이기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럴지 모르지만, CEO인 그가 대형 업체와 장기전을 치르는 데 꼭 맞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는 궁 금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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