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은퇴 코치가 필요하세요?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저물어가는 '물고기 자리 시대* 역주:점성술에서 현 시대를 일컫는 말'는 많은 도전과제들을 던질 수 있다. 여기 전문가들의 도움말을 들어보자.
BY Paul Keegan

버드 로버트슨 Bud Robertson은 최근 은퇴한 62세 남성이다. 오랜 직장생활 동안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돈을 모아뒀다. 탄탄한 몸에 활기가 넘치는 그는 매사추세츠 주 그로턴 Groton에 있는 저택에 산다. 그의 집은 마치 남북전쟁 전 조지아 주 대농장의 저택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 으리으리하다. 6년 전 이혼한 로버트슨에겐 여자친구와 보낼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는 58년형 버그아이 스프라이트 Bugeye Sprite, 56년형 셰비 Chevy 하 드톱, 81년형 콜벳 Corvette 등 세 대의 스포츠카를 소유하고 있다. 자녀는 두 명, 손주는 다섯 명이다.

버드 로버트슨을 질투하지는 말자. 잠시만 함께 있어 보면, 그가 가엾어질 것이다. 올봄 어느 날 아침 그는 파자마 차림으로 집에서 쉬지도 못 했고, 바하마에서 스노클링을 즐기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보스턴의 한 회의실에서 마이크 진스 Mike Jeans 뉴 디렉션스 New Directions 사장을 만났다. 뉴 디렉션스는 로버트슨 같은 은퇴한 회사 중역들을 위해 은퇴 상담을 해 주는 곳이다.


진스가 "종이에 만나고 싶은 사람 200명의 리스트를 만들어봐요"라고 말하자 로버트슨은 "200명이나요?"라며 당황한 기색으로 반문했다. "스무 명이면 몰라도 200명은 어려울 겁니다." 그러자 진스는 "예전 동료, 변호사, 회계사, 재무 설계사, 채용담당자, 대학 동문, 교회 사람 등 아는 사람을 모두 생각해봐요"라고 재차 말했다.

원래 필자는 '벽에 붙어 있는 파리 fly on the wall *역주: 잠자코 관찰만 한다는 의미'처럼 이 은퇴 코칭을 조용히 관찰해야 마땅했지만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만요. 이건 은퇴 후 설계가 아니라 구직 네트워킹 같은데요." 진스의 대답은 이랬다. "네트워킹엔 두 가지 목적이 있죠. 임원이 되기 위한 것,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머무르는 것이에요." 사람들 관심에서 벗어난들 어떻단 말인가? 경쟁 속에서 평생을 보냈는데, 사람들 관심에서 이제 좀 자유로워지면 안 된다는 건가? 진스는 로버트슨에게 고개를 돌리며 "버드, 6개월 정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어보면 어떨까요?"라고 물었다. "싫습니다." 로버트슨의 답변은 단호했다.

이게 바로 성공적인 사회생활로부터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의 실존적 딜레마다. 예전엔 40년을 꼬박 일에 바친 후, 골프를 치거나 흔들의자에 앉아서 동맥경화에 시달리게 될 때를 맥없이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싫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 비아그라와 지방흡입술, 토니 로빈스 Tony Robbins *역주: 미국의 유명한 심리상담사, 그 밖에 베이비붐 세대를 '역사 상 가장 짜증나는 세대'로 만들어준 다양한 발명품들이 등장했다. 이제 베이비 부머들이 은퇴연령에 접어들고 있다. 첫 베이비붐 세대가 올해 65세가 된 것이다. 이들은 고분고분히 은퇴하지는 않을 요량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들의 시대가 저물어가는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들은 혼돈을 겪고 있다. 진스는 "많은 이들이 정서적인 만신창이 상태"라고 진단했다.

지난 12월, 로버트슨은 매사추세츠 베드포드 Bed ford에 위치한 프로그레스 소프트웨어 Progress Software의 재무담당 최고책임자 직책에서 은퇴했다. "38년간의 일 중독자 생활을 마무리한 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고 로버트슨은 털어놓았다.

당연하다. 그는 에너지 넘치는 인간 발전기일 뿐만 아니라 너무나 긍정적이고 호감 가는 사람이 아니던가. 매일 아침 6시 45분이면 어김없이 사무실에 도착해온 그는 회사가 달성한 분기 수익 정보를 월 스트리트에 10년 반 동안이나 제공해온 인물이었다.

그는 그쯤에서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로키 마르시아노 Rocky Marciano *역주: 매사추세츠 주 출신 미국 프로복서처럼 무패 기록으로 은퇴했습니다. 49전 전승이었죠." 그 후 모든게 멈춰 버렸다. 버드 로버트슨은 평범하고 나이 지긋한 남자가 되어 버렸다. 아침엔 조깅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지만 오후가 되면 오래된 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기대수명이 길어져 그는 앞으로 20~30년 정도를 더 살 수 있다. 인생의 세 번째 30년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도 없이 이상하고도 공허한 인생 경로를 탐색해야 한다. 누가 좀 도와줘요!

다행히 해결책이 있었다. 그 해결책의 주인공은 로버트슨 맞은편에 앉아 그가 하는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로버트슨과 마찬가지로 62세인 진스는 마케팅, 영업, 경영 등 분야에서 28년을 일하고 지난 2001 년 수석 컨설턴트로 뉴 디렉션스에 합류했다(진스 역시 92년 이 회사의 상담을 받은 바 있다). 뉴 디렉션스는 최상위층 고객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 전문회사다. 1만 5,000~7만 5,000달러의 상담료를 받고 회사 경영진이 개인적 혹은 직업 차원의 변화를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여기에는 '퇴직 후 post-career' 삶을 꾸려나가는 것도 포함된다(고객은 '은퇴'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막 은퇴했을 때, 혼자 상황을 파악한다는 건 정말 암담한 일일 것이다. 은퇴 상담은 주위에 귀하를 지원할 가족을 두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해 은퇴 상담이다!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소설가 존 치버 John Cheever의 작품에 나오는 외로운 통근자가 몇 세대를 건너 뛰어 미래로 이동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는 여전히 공허함 속에 살고 있고, 결혼생활도 엉망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이라면 은퇴 코치에게 여피 yuppie *역 주: 도시나 그 주변을 기반으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이들. Young Urban Professionals의 약어 정신을 유지할 방법을 물어볼 수 있다.

은퇴 코치의 수가 몇이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은퇴 코치 retirement coach'라는 단어를 구글 검색창에 치면 많은 웹사이트가 검색결과로 뜬다. '투영투리타이어닷컴 2young2retire.com' 이나 웹사이트 이용료 119달러 혹은 전화 상담비 175달러에 '진정한 자아를 발견' 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마이 넥스트페이즈닷컴 mynextphase.com' 등이 그것이다. 허가를 요하는 정부 규제나 법안이 없는 은퇴 상담 분야에는 이미 재무 설계사, HR 전문가, 컨설턴트 등이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청중의 대다수가 은퇴 코치인 점에 놀랐다"고 '빅 시프트 The Big Shift: Navigating the New Stage Beyond Midlife' 의 저자 마크 프 리드먼 Marc Freedman은 말한다.

프리드먼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가 전(前) 세대에 비해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아직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삶의 한 단계에 봉착했다고 주장한다. 샌타 바버라에서 은퇴 코치로 활약 중인 패티 드도미 닉 Patty DeDominic은 고객에게 "은퇴 retire하지 말고 열정을 재점화 re-fire할 것"을 권유한다. 작가인 바버라 막스 허버드 Barbara Marx Hubbard는 갱년기는 축하해야 할 일이라 주장한 바 있고, 프리드먼도 "마지막에서 두 째 개를 기르는 중" 이라는 64세 장모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시기를 설명했다.

대부분의 은퇴 코치들이 시간당 상담료 100달러를 받는 전화상담 자영업자들인 데 비해 대형 회사인 뉴 디렉션스는 업계의 롤스로이스라 할 수 있다. 사실 뉴 디렉션스의 상담이 시작되면 롤스로이스 한 대 가격에 해당하는 큰돈을 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고급 상담프로그램에 가입해서 평생회원 고객이 되고 나면 보스턴 하버에 위치한 뉴 디렉션스의 세련된 사무실을 언제든지 찾아 상담받을 수 있다. 이 회사의 고객들은 심리전문가인 빌 윈 Bill Winn의 상담을 받고 작은 도서관과 사무실을 이용할 수 있다. 은퇴 전까진 부하직원이 대신해줬던 구글검색이나 링크드인 Linked n *역주:비즈니스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에 프로필 사진 올리기 등을 직접 하는 법을 배우는 세미나에 참석할 수도 있다. 진스 사장은 "은퇴한 고객 중에는 'e메일 사용법을 안다. 비서가 문서를 프린트해서 주면 집에 가져가 읽어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뉴 디렉션스는 올해 73세가 된 데이비드 코베트 David Corbett 전직 채용 최고책임자 executive recruiter가 25년 전 창립한 회사다. 이 회사의 문을 두드렸던 2,600명의 고객 중엔 메이저리그 선수, CEO, 의사, 변호사, 항공사 사장도 있다. 40대 중반에 뉴 디렉션스의 상담을 받고 교육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찾은 마티 미헌 Marty Meehan 전 매사추세츠 주 의원 등 정치 인도 포함되어 있다. 미헌 전 의원은 현재 매사추세츠 대학교 로웰 Lowell 캠퍼스에서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로버트슨은 지난 2월 처음 뉴 디렉션스를 방문해 15명의 직원과 만났고 빌 윈의 심리 평가 단계도 거쳤다(빌 윈은 마이어브릭스 Myers-Briggs 성격유형지표 같은 표준 테스트를 이용하고 있다). 로버트슨은 지인 다섯 명의 연락처를 뉴 디렉션스에 제공했다. 그리고 뉴 디렉션스 직원은 이들을 만나 로버트슨의 장단점에 대해 알아보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고객이 원 하는 은퇴 후 일과 그들에게 적합한 일을 잘 조율해주고 싶다"는게 빌 윈의 생각이다.

물론, 로버트슨에게 가장 적합한 일은 기업 임원이다. 그는 스포츠카와 골프 외에 관심을 가져본 분야가 없다. 그의 삶은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 Amherst 캠퍼스에서 학사학위를 땄고, GM에 입사한 뒤에는 보스턴대 야간 MBA과정을 다녔다. 디트로이트의 GM 전 기부품 부문 재무 디렉터로 일했던 32세 때에는 일주일 내내 일에 매달리며 업무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일곱 살이던 아들 데릭이 어느 "아빠, 난 아빠같이 일하긴 싫어요"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로버트슨의 머리 속에는 해리 차핀 Harry Chapin의 노래 '요람 속 고양이 Cat's in the Cradle'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공 사줘서 고마워요, 아빠. 같이 놀아요/ 공 던지는 법 가르쳐주세요/나는 말했네, 오늘은 안 된다/ 아빠가 바쁘거든. 아들이 말했네. 괜찮아요, 아빠.'


로버트슨은 자신이 자랐던 뉴 잉글랜드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곳에 가면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하이테크 회사를 다니던 그는 여전히 엄청난 업무 부담에 시달리고 있었 다. 지난 96년 그는 프로그레스 소프트웨어로 이직했다. 회사는 로버트슨 의 성장 전략에 힘입어 그 후 10년 동안 매출액을 두 배, 시가총액을 세 배로 신장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로버트슨의 결혼생활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저 관계가 멀어졌을 뿐"이라 말하는 그는 직장을 탓하진 않지만, 매일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밤이 돼서야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 결혼생활에 지장을 줬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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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슨이 60세가 되자 아들 데릭이 말했다. "아버지에겐 아직 '백 나인 back nine *역주: 골프 18홀 중 후반 9홀'이 남아 있습니다. 벌써부터 골프장 바에서 시간을 보내실 생각이라면 제가 아버지 돈을 모두 써버릴 거예요. 다른 일을 한번 찾아보시지요." 그 후 프로그레스 소프트웨어 사정이 급변함에 따라 로버트슨은 최고운영책임자 수준의 역할을 포기해야 했다. 일에 흥미도 없어졌고, 도전하고 싶지도 않았다. 로버트슨은 아들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준비가 됐건 안됐건 은퇴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뉴 디렉션스의 은퇴상담을 받기 시작할 때 로버트슨은 진스에게 회사의 이사회 임원이 되고 싶었노라고 고백했다. 사실 로버트슨은 이미 오실 로스코프 제조사와 신생 하이테크 회사에서 두 차례 이사직을 지낸바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마약 중독자에게 찰리 신*역주: 최근 마약으로 파문을 일으킨 할리우드의 악동의 집 열쇠를 주는 것처럼 위험한 것일 수 있다. "계속해서 일을 해보겠다는 열망은 직장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려는 발상이다"라고 신시내티에 위치한 은퇴 상담회사 임원은퇴센터의 밥 파샌코 Bob Parsanko는 지적한다. "출근용 정장을 입지 않고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본인들도 파악하지 못하는 게 문제 입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열정과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회사 임원이 되는 것이나 다른 일들은 다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전체적인 계획의 일부라면 이사회에 들어가겠다는 생각도 괜찮다고 진 스는 로버트슨에게 말해줬다. 그는 로버트슨에게 코베트의 2007년 저서 '포트폴리오 라이프'를 읽어볼 것을 권유했다. 이 책은 뉴 디렉션스의 창립자가 은퇴상담가 세계에서 스타로 떠오를 수 있게 만들어준 책이다. 저자 코베트는 회사 중역 출신이 이해할 만한 언어를 활용해 사람들이 금융 포트폴리오를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삶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과 여가, 학습, 가족, 공동체 등이 다각적으로 조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남을 따분하게 만드는 성공한 비즈니스맨들 특유의 외골수 성향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베트는 "채용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나이 든 사람들이 일터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풍조가 분야를 막론하고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직장을 다녀야 할지를 상담해오곤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금융 포트폴리오 방식을 빌리기로 했다. 나이가 들면 삶은 변화하고 자산을 재배치할 필요가 생긴다. 그렇다면 삶의 포트폴리오도 재배열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라고 그는 덧붙였다.

커크 시트론 Kirk Citron은 뉴 디렉션스의 고객은 아니지만, 포트폴리오 방식의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광고회사의 중역이었다. 80년대 새턴 Saturn 승용차의 '다른 회사, 다른 차 A different kind of company. A different kind of car'라는 광고 문구를 써서 유명해졌다. 지난 90년 자기 회사를 시작한 그는 닷컴 붐 동안 호황을 누렸다. 닷컴 거품이 사라지는 동안에도 그럭저럭 살아남아 퇴직 후에 쓸 돈을 풍족하게 모을 수 있었다. 그는 2002년 45세 때 은퇴했다. "다음 10년이 어떻게 변할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고 회사에 머무르기보단 떠나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시트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는 칵테일 파티에서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고 엄청나게 당황했다고 한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곤란했습니다. '은퇴'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저 다른 분야로 옮겨가기 위한 중간 단계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시트론은 그 후 샌프란시스코의 은퇴 코치 바버라 왁스먼 Barbara Waxman에게 상담을 받았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묻자, 왁스먼은 그에게 조바심내지 말고 자신의 열정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라고 권유했다. 시트론은 다양한 저술 프로젝트에 진솔하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올해 54 세가 된 그는 소설 네 편, 희곡 두 편, 영화 시나리오 한 편과 동화 여러 편을 쓴 작가가 되었다. 소설은 출판되지 않았고 시나리오도 팔리지 않았지만, 희곡은 미국 전역에서 상연되었다. 출판업계는 지금도 그의 동화 중 하나에 관심을 갖고 있다. 시트론은 광고 컨설팅도 하고 있다. '롱 뉴스 The Long News'라는 이름의 웹사이트 편집 일도 맡고 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비영리재단 테드 TED의 2010년 컨퍼런스에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또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잠수함에 대한 PBS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 자문을 맡기도 했다. 현재 비영리재단 다섯 곳과 함께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이런 활동을 은퇴로 단정한다면 그의 커리어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는 "바버라는 기업에서 일했던 내가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왔다"며 "기분이 좋을 땐 나 자신을 만능 르네상스맨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우울할 땐 그저 어중이떠중이로 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18개월 동안 이뤄진 상담에 대해 시트론은 "치료에 가까웠다"고 말하지만 왁스먼은 (치료와 다른)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상담을 받는 고객들은 이미 자신이 가진 자산이 뭔지를 알고 있으며 그걸 잘 활용할 줄도 안다"면서 "그러나 이게 부담이 되면 심리치료사에게 이 짐을 덜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상담을 받아야 하므로, 은퇴 코치가 하는 일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뉴 디렉션스에는 고객이 가진 자산과 능력에 대해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로버트슨과 진스의 상담 과정에서 그들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게 아니라 향후 계획을 논한다. 처음 두 달 동안 로버트슨은 이력서와 왜 프로그레스 소프트웨어를 떠났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의 능력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도록 화술 훈련도 했다. 명함을 새로 맞췄고 임원급 채용을 원하는 회사 수십 곳에 편지도 썼다. 진 스는 "CEO, COO, CFO 등 굵직한 직함을 달고 기업체에 다시 돌아가는 게 왜 마땅한 일인지를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승산이 없어 보여도 꼭 해야만 한다."

지난 5월 로버트슨은 빌 윈으로부터 심리평가 자료를 받았다.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다. 그는 탁월성을 추구하지만 뛰어난 대리인 또는 멘토로서의 자질 또한 갖추고 있기 때문에 모든 걸 혼자서 하는 일에 적성이 맞지 않는다. 윈은 로버트슨이 CEO나 COO, 이사회 임원에 적합한 성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로버트슨은 이제 막 그런 직책에서 물러나지 않았나? 이런 질문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버드 로버트슨은 지금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진스는 그런 질문에 답을 내기엔 아직 시기상조라며 고객들은 때로 예상치 못한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양 목장을 운영하거나, 조각, 와인 양조, 로스쿨, 자원봉사, 의상 디자인 등을 꼽았다. "주식회사 CFO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자마자 다음에 무슨 일을 할지 딱 떨어지는 답을 찾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혹시, 독자 여러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누가 상담 같은 것 필요하다고 했나? 그냥 그 돈을 나한테 주지! 그 돈 갖고 뭐할지 내가 말해줄게!' 라는 생각 말이다. 필자는 로버트슨에게 도대체 왜 뉴 디렉션스에 수만 달러를 지불하는 거냐고 물었다.

로버트슨은 "은퇴 후 혼자 집에서 이력서를 쓰면서 내 자신을 돌이켜 봤다면 암담했을 것이다"라며 "은퇴 상담은 나를 지원해줄 가족 같은 역할을 하면서도 구조를 바로 세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직장 조직구조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럴싸하다. 하지만 그래서 로버트슨이 결국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필자는 돈을 좇는 파우스트식 거래를 택하고 진정한 자아에 대해선 잊어버려야 하는 것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통해 삶을 즐기면서 '프라이에 어떤 소스를 얹어 드릴까요?' 따위를 묻는 일을 해야 하는 것 같은 극단적인 두 가지 중에서 꼭 선택을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나는 이 질문을 코베트에게 던졌다. 고상한 할아버지 풍모를 지닌 코베 트는 은퇴상담 분야의 거성으로, 인터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필자의 본분까지 잊게 만들 정도로 능수능란했다. 가족을 부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서 재즈 5중주에서 취미인 트럼펫을 불 시간도 내지 못하고 집필 중인 희곡 쓸 짬도 없으며, 아내와 딸을 데리고 휴가 갈 시간도 없다고 호소하게 만들었다. 필자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도 노후 자금과 아이 대학 학비도 마련하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코베트에게 물었다. "어차피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면 제가 모르는 타협점이 있어 노후 자금을 마련하면서도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건가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코베트는 "검증이 필요하다"며 운을 뗐다. "재즈 밴드 활동을 하는 게 사람들이 당신을 인정하는 요소라면 괜찮습니다. 건강도 괜찮고, 딸의 대학 교육도 책임질 거니까요. X세대와 Y세대로부터 배울 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일을 덜 하고, 덜 벌었지요. 근무 여건을 보고 회사를 옮겼습니다." 그는 에머슨의 말을 인용했다. "사람에게는 천직이 있다. 재능은 소명이 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한 방향이 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필자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로 화답했다. "두 개의 눈으로 하나의 시야를 만들어내듯 인생의 흐름과 내 천직을 융화시키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간 후, 코베트는 누구도 따르기 힘든 현명한 조언을 들려주었다. 은퇴 후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최대한 일찍 생각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이십 대나 삼십 대에 시작하면 좋다. 그럴법하다. 미래를 생각하면 어쨌거나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기분은 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코베트는 자신의 열정을 놓지 말라고 주문했다. 당장 피아노 레슨을 받을 시간이 나지 않는다면 음악 연주회에 참석해 다른 음악 애호가들과 교류하라. 이는 초심의 빛을 잃지 않도록 도울 것이고, 그러면 은퇴했을 때 열정에 불을 붙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코베트는 "나이가 들 수록 더 먼 과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법" 이란 말도 덧붙였다. "고객에게 첫 직장에서의 첫날을 가장 마지막에 기록하는 이력서를 쓰게 합니다. 초등학교 때, 그리고 고등학교 때를 생각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이 코베트의 조언을 따를 수만 있다면, 은퇴 코치의 필요성은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로버트슨이 뉴 디렉션스 코치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사무실을 나와서 58년형 버그아이 스프라이트(1969년 대학교 재학 시절 구입했지만 MBA 학위를 딴 후엔 운전하지 않았다)를 몰고 집으로 가는 모습을 봤다면, 은퇴 상담이라는 업종이 매우 유망하다는 느낌이 확연히 들 것이다.

이 기사의 필자 폴 키건 Paul Keegan은 영화배우, 극작가, 뉴욕 블루 소울 재즈 5인조 밴드의 트럼펫 주자를 겸하고 있다. 은퇴 전 포트폴리오를 담당하는 포춘과 머니 Money의 외부 필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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