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그림 같은 전원주택 내 손으로 직접 지어볼까

대한항공 최형경 수석기장의 DIY 주택 탐방기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누구나 한번쯤 불러봤을 법한 유행가 가사다.
여기 그런 집을 그것도 손수 지어본 사람이 있다.
은퇴 후 자신에게 꼭 맞는 그림 같은 집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대한항공 최형경 수석기장이 직접 설계하고 완성한 도시 외곽의 한적한 주택을 찾아가 봤다.
차병선 기자 ac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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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집을 지으라면 아마 지루해서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계단, 다음은 벽난로 식으로 스텝 바이 스텝 목표를 세워 일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성취감이 크고 재미가 있었어요"

넓은 잔디밭 위에 세워진 집
은 말 그대로 외국 잡 지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집이었다. 뾰족하게 솟은 지붕과 아치형 창문은 디즈니 동화책에 나오는 주인공이 살던 집을 연상시켰다. 경기 도 고양시 일산동구 설문동에 위치한 최형경 (58) 대한항공 수석기장이 사는 집이었다. 아 니 최 기장이 직접 만든 집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일꾼 하나 부리지 않고 손수 만든 DIY 주택이었다.
최 기장이 전원주택을 꿈꾸기 시작한 건 젊 은 시절부터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던 그는 해외 전원주택에 마음을 빼앗겼다. 최 기장은 “스위스 취리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아 름다운 시골마을을 볼 때마다 나도 이런 집을 짓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을 갖게 됐죠”라고 말 한다. 그는 일산 신도시가 형성되던 90년대 초 반 일산 정발산에서 그 꿈을 처음 실현시켰다. 당시 집짓기 경험이 전무했던 최 기장은 전문 건축업자에게 일을 맡겼다. 절반은 업자가, 나 머지 절반은 최 기장이 직접 공사를 했다. 하지 만 전문업자와 일을 해보니 맘에 들지 않는 구 석이 적지 않았다. 또 자기 혼자서 해볼 만하겠 다는 요량도 섰다. 손재주에 자신 있었을 뿐 아 니라 틈틈히 국내외 집짓는 현장을 돌아다니 며 연구도 많이 했기 때문에 자신감도 꽤 생겨 있었다.
1996년 현재 살고 있는 설문동 택지를 구입 한 최 기장은 또 한 번 집짓기에 들어갔다. 이 번엔 설계부터 기초공사, 전기 및 상하수도 설 비 모두 혼자 하기 시작했다. 설계는 외국 잡 지에서 따왔다. 예쁜 집 사진과 단면도만 보 고 직접 미니어처를 만들고 이를 기초로 외관 과 실내 디자인 구상을 완성해 나갔다. 인근에 전세를 살면서 토목 작업을 시작했고 2000년 부터는 본격적인 집짓기에 들어갔다. 지하실을 먼저 꾸며놓고 아예 가족과 입주해 살면서 공 사를 계속했다. 비행이 없는 날이면 항상 집짓 기에 매달렸다. 한 달에 보름 정도 하루 평균 8 시간 이상 일을 했다.
2006년이 되자 제법 외관이 갖춰졌다. 가 장 오래 걸린 작업은 창문이었다. 사각모양이 싫어 직접 눈썹 모양을 만들었고, 그 작업을 완성 시키는 데 꼬박 5개월을 투입했다. 싱크대 만드는 데 3개월, 계단은 한 달이 걸렸다. 마루 샌딩 작 업은 끝이 없었다. 칠하고 다시 벗기고 샌딩 작업 하기를 8번 반복했다. 인테리어 작업을 마칠 때 쯤엔 어느새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최 기장은 말한다. “10년간 집을 지으라면 아마 지루해서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계단, 다 음은 벽난로, 이런 식으로 스텝 바이 스텝 목표를 세워 일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성취감이 크고 재 미가 있었어요.”
그렇다면 비전문가가 혼자 집을 짓는다는 게 가 능한 일일까? “친구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그겁니 다. 으레 ‘일꾼을 썼겠지’ 의심하다가도, 제가 직접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제야 수긍을 하며 혀를 내 두르더군요.” 무거운 자재를 들 때는 한쪽을 먼저 삼발이에 걸치고 다른 쪽을 드는 식으로 했다. 콘 크리트나 통나무 대신 목조 주택을 선택한 이유도 나홀로 집짓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최 기장은 넓고 탁 트인 집을 지었다. 1,236㎡ (374평) 대지 위에 1층 185㎡(56평), 2층 82㎡(25 평), 지하 99㎡(30평)인 집을 세웠고 나머지 마당 은 잔디밭으로 덮었다. 집 내부에는 갤러리 형식을 도입했다. 방을 최소화하고 거실을 넓게 만들었다. 직접 만든 싱크대도 개방형 홈바 형식으로 꾸몄다. 사실 이렇게 넓은 공간은 필요 없었지만 어차피 취 미 삼아 만드는 집, 마음껏 제대로 지어보고 싶었 다. 들어간 비용은 총 4억 원 정도. 땅값 1억5,000 만 원을 제외하면 건축비로는 2억5,000만 원 정도 를 썼다. 그 중에는 대형 평면TV, 냉장고 같은 생 활가전 구매 비용도 포함된다. 요즘 시세론 땅값 9 억 원을 합쳐 약 15억 원 가량이 든다고 하니, 혼자 땅을 사서 집을 지음으로써 비용의 약 3분의 2를 세이브한 셈이다.
친구들이 감탄하고 인정해줄 때 최 기장은 가 장 큰 보람을 느낀다. 최 기장은 말한다. “사실 초 반엔 걱정이 좀 있었어요. 시골에서 집만 짓다 보 면 친구들 만나는 시간이 적어져 사이가 멀어지지 않을까 우려했죠. 하지만 오히려 친구들이 더 많아 졌습니다.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우리 집으로 찾아 와요. 도시에선 외식을 하겠지만, 제 친구들은 항 상 저희 집 잔디밭에 모여 바비큐를 해먹지요. 지 난 10년 동안 송년회는 항상 우리 집에서 했습니 다. 동료들과의 사이가 오히려 더 돈독해졌어요.”
최 기장은 은퇴가 2년 남짓 남았다. 퇴직한 후 다시 비행직업을 가질지는 아직까지 확실하지 않 다. 그렇지만 집짓기는 계속할 작정이다. 인근 성석 동에 또 땅을 구입해 놓았다. “평생 집 짓는 일을 재미로 삼아왔기 때문에 더 이상 집을 짓지 않는 다는 게 더 이상하죠.” 최 기장은 노후 전원생활을 적극 추천한다. “흔히들 전원주택하면 외지고 불편 한 생활을 우려하죠. 하지만 요즘 도시형 전원주 택은 그렇지 않아요. 신도시 주변 10㎞ 내외면 병 원, 백화점 같은 편의시설도 15분 거리에 다 있어 요. 쾌적함은 말할 것도 없고요.” 옆에 있던 부인 김송숙(56) 씨도 말을 거든다. “서울 친구 집에 가 보면 숨이 막혀요. 비싸고 좋다는 강남에서도 여 름엔 밤새 에어컨 켜고 창도 못 열잖아요. 그래서 인지 친구들도 애들 아빠만 없으면 항상 우리 집 에 놀러 오려고 해요.” 김 씨는 10년 넘게 남편 조 수로 일하며 고생을 했지만 그 세월이 나쁘지 않았 다고 강조한다. “매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부부싸 움을 해도 다음날이면 금방 풀렸어요. 남편 따라 해외 여행도 많이 갔고요. 외로운 적은 없었습니다.” 그의 집을 가보니 그림 같은 집에서 그림 같은 노후 를 보내는 것이 꿈같은 일만은 아닌 듯했다.

"제 친구들은 항상 저희 집 잔디밭에 모여 바비큐를 해먹지요. 지난 10년 동안 송년회는 항상 우리 집에서 했습니다. 그래서 동료들과의 사이가 오히려 더 돈독해졌어요."

최 기장이 말하는 집 짓는 요령

일반인이 최 기장처럼 손수 집을 짓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전문업자에게 일을 맡기더라도, 건축주가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고 최 기장은 말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돼 구조변경을 하게 되면 그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이 물거품이 되고 비용 또한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건축업자에게 의중을 확실히 전달하고 계획대로 움직여야 쓸데없는 지출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자재의 가격, 재질, 성능 등을 알면 계약을 할 때에도 유리하다. 건축업자는 가능한 한 싼 자재를 이용해 부가가치를 많이 남기려 하기 때문에, 건축주에게 자재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야 비용의 누수나 날림공사를 막을 수 있다.
창문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최 기장은 업자가 권하는 것 이상으로 투자하라고 적극 권한다. 열 손실 중 60%가 창문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열 손실만 최소화해도 장기적으론 설비 비용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광에 지장이 없다면 북쪽 창문은 최소 크기로, 남쪽은 최대로 하는 게 좋다고 그는 말한다.


FOR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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