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인체자연발화, 당신의 몸이 잿더미로 변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아연실색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온몸에 불이 붙어 죽는 것만큼 황당한 일도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의 신체가 외부의 어떤 점화원 없이 발화해 연소하는 현상을 ‘인체자연발화(Spontaneous Human Combustion, SHC)’라고 하는데 놀랍게도 전 세계에서 수백여 건 이상의 관련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오직 인체만을 태우고 사그라진다는 미스터리한 불. 그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박소란 기자 psr@sed.co.kr

“한순간 그의 몸에서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주위에 불씨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의 몸은 순식간에 재로 변해갔다. 그 불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의 어떤 물건에도 옮겨 붙지 않았다.”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1852년작 ‘황폐한 집(Bleak House)’에 등장하는 넝마주이 주정꾼은 이렇게 사망했 다. 이른바 인체자연발화(SHC)다.


디킨스가 소설 속에 이처럼 범상치 않은 사인(死因)을 차용한 데는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소설가 조지 엘리엇의 애인 G.

H. 루이스가 디킨스에게 “SHC 현상은 결코 있을 수 없는 허구”라고 강력히 주장했다는 것. 이에 디킨스는 황폐한 집의 서문에서 신문에 게재된 30 여건의 SHC 사건을 증거로 제시하며 루이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말하자면, 디킨스는 SHC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상당한 자료를 수집했으며 과학적으로 신뢰했던 것이다.

무엇이 디킨스를 SHC에 심취하게 만들었을까. 지금에 와서 그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어쩌면 단순한 작가적 호기심의 발동, 혹은 소설에 이용할 재미있는 소재 차원의 접근이었을지 모른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디킨스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두 세기가 지나며 화성탐사·휴머노이드 개발·DNA 조작 등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했음에도 여전히 SHC가 미스터리의 영역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SHC를 현 과학 이론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한 현상, 혹은 오해에 따른 루머로 간주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의 과학지식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 한다.

몸이 저절로 타오른다
현재 인터넷상에는 수많은 SHC 사례 들이 떠돌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미스터리 소재를 다루는 국내외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들이다.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면 이렇다.

1964년 영국 런던의 한 가정집에서 헬렌이라는 노인이 몸에 불이 붙어 거의 재가 된 상태에서 손녀에 의해 발견됐다. 3분여 뒤 신고를 받은 소방관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완전연소가 완료된 상태였다.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불이 옮겨 붙지도, 그을음이 생기지도 않았다고 한다.

196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노의사 벤트리도 자신의 집에서 불에 타 사망했다. 발견 당시 그의 몸은 다리 한 쪽을 제외하고 모두 재로 변해 있었다.

또한 헬렌의 경우처럼 몸만 온전히 연소됐을 뿐 신고 있던 신발 등 주변물건은 조금도 타지 않았다.

3년 뒤 미국 뉴욕의 한 술집에서는 만취 상태로 잠든 알코올 중독자 케리엇의 복부에서 SHC로 추정되는 원인 미상의 불이 일어났다. 동석했던 친구들이 물을 끼얹으며 진압에 나섰지만 결국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유명을 달리했다. 사고를 접한 경찰은 케리엇의 친구들을 살해 용의자로 보고 수사했다. 그러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불길은 몸 안에서 시작된 것이 확실하다”는 담당의사의 증언에 의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아주 드물지만 SHC를 겪고 생존한 이도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살았던 회사원 르아크가 그 실례다.

그는 1979년 승용차로 출근을 하던 중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를 맡고 차를 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다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통증도 전혀 없이 말이다. 이렇게 다리에서 시작된 불이 전신으로 퍼졌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고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르아크의 의료진은 차량에서 떨어진 기름이 다리에 묻은 상태에서 우연히 불이 붙은 것으로 추정했다. 물론 차량이나 바지에서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르아크는 1년 뒤 유사한 일을 또 다시 겪었고 그 뒤로는 항상 휴대용 소화기를 지니고 다녔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SHC로 추정되는 사건들은 이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빈번히 일어났다. 1982년, 1998년, 그리고 바로 작년에도 영국, 호주, 중극 등지에서 관련사고가 보고됐다. 특히 한 연구에 의하면 영국과 미국에서만 각각 400여건, 200 여건의 SHC 의심 사례가 확인됐다.



한 노의사는 자신의 집에서 불에 타 사망했다. 발견 당시 그의 몸은 다리 한쪽을 제외하고 모두 재로 변해 있었다.

2,000℃ 이상의 열에너지
이들 사례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SHC는 불과 몇 분만에 인체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처음에는 국부적으로 발화가 일어나지만 빠른 속도로 전신으로 번져 3분여 정도면 몸 전체가 전소된다. 또한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SHC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발견되는 현상이다.

SHC의 실재 가능성을 확신하는 화재 조사원이자 ‘어블레이즈: 인체자연 발화의 미스터리한 불’의 저자 래리 아놀드에 따르면 SHC가 일어나면 피부에서 푸른빛이 나고 불길이 공중으로 솟구치며 성냥을 켤 때처럼 소음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물체의 연소와 달리 불쾌한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SHC 피해자들은 대개 조직이 탈수되고 피가 증발되는 증상을 보인다. 특히 상체만 훼손되고 하체는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SHC 추정 사진 중에도 피해자의 다리만 남아있는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드물게는 머리를 제외한 전신이 연소된다.

관련기사



또 앞선 사례에서 언급됐듯이 그토록 강력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SHC는 주변 물건의 훼손 없이 오로지 인체만 태운다. 시신 주위에는 불에 탄 흔적이 없으며 가전제품 등 인화성 물체들도 불에 손상되지 않았다. 벤트리의 사례처럼 피해자가 신고 있던 신발이나 입고 있던 옷이 멀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래리 아놀드는 인체가 재로 변하려면 최소 2,000℃ 이상의 고온에 노출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그 정도 온도에서조차 불과 몇 분만에 뼈와 살이 완전히 재로 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시신을 화장할 때도 소각로의 온도는 1,200℃ 에 이르지만 뼈는 전혀 타지 않고 남아있다. 그러므로 뼈까지 재로 변하는 SHC는 일반적인 화재 사건과는 전혀 다른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아놀드의 판단이다.

우리의 지식으로는 사람의 몸 속에서 이 같이 엄청난 온도의 열에너지를 생성하는 메커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인체만 태우고 사라지는 SHC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학자들은 SHC가 실재하는 현상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아놀드는 사람들이 SHC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단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처음 접한 현상이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아울러 아놀드는 오지 못한다는 것. 아울러 아놀드는 오래 전에도 SHC에 대한 흔적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구약성경 레위기에 등장하는 ‘이상한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아론의 아들들을 삼켰다’는 구절이 바로 SHC 현상을 상징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촛불 효과? 정전기 효과?
아놀드에 더해 SHC를 과학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시도는 끊임없이 있어왔다. 그 결과, 몇 가지 가설들이 도출돼 있다.

학자들이 SHC를 설명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펼치는 논지는 ‘촛불 효과’ 다. 인체에 불이 붙으면 그 열로 인해 체지방이 녹으면서 양초처럼 끝까지 타 버린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 가설에서는 인체를 양초, 옷과 체지방은 각각 심지와 연료원으로 본다.

몇 년 전 영국 BBC의 한 프로그램 에서 죽은 돼지에 불을 붙여 촛불 효과가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다. 많은 동물 중 돼지를 택한 것은 식성, 해부학적 구조, 생리 특성, 지방분포가 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실험을 주도했던 연구진은 돼지 실험과 SHC 현상이 동일하다며 SHC가 원인불명의 초자연적 현상이 아닌 특정 환경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고라고 풀이했다.

SHC 희생자들이 주로 상체만 훼손되는 것 역시 촛불 효과로 추정이 가능하다. 간을 비롯한 상체 내장 조직에 비해 다리 등 하체는 지방이 적어 연소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설에는 큰 허점이 있다. 돼지의 뼈까지 완전히 연소시키는 데 최소 6~7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촛불 효과가 ‘믿거나 말거나’식의 가설이라는 옷을 벗으려면 반드시 이 부분을 설명해야만 한다.



구약성경 레위기에는 이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이상한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아론의 아들들을 삼켰다.’



과학인가, 허구인가
일각에서는 SHC가 영국, 미국 등 선진국의 노인들에게서 주로 발생했다는 점을 들어 화학물질 과다사용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약품과 같은 화학물질을 장기간 사용하면서 인체에너지의 균형이 깨져 SHC를 촉발한다는 것.

이 밖에도 SHC와 관련해 정신을 고도로 집중시키면 인체 고유의 전기가 발생한다는 ‘생체 전 기설’, 천둥 번개가 친 후 대기 중에 떠돌던 전하 덩어리가 특별 한 원인으로 인체를 발화시킨다는 ‘구전(球電) 현상설’, 체내 방사성 물질들이 서로 충돌해 핵폭탄과 유사한 핵분열 반응을 일으킨다는 ‘체내 핵분열 반응설’ 등의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다.

덧붙여 음주나 고열 때문에 체온이 급상승해 발화한다는 ‘고열설’, 화병 및 화증으로 인한 체내의 화기(火氣)를 원흉으로 보는 ‘화병설’ 등 다소 엉뚱한 추론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모든 가설들은 어떤 것도 확고한 지지나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SHC를 과학적·합리적으로 논증하는 이렇다 할 학설이 없다는 의미며 과학의 눈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얘기다.

더욱이 세간에 알려진 SHC 사례 대다수는 완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거나 소문에 의존한 일명 ‘카더라 통신’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SHC 자체가 처음부터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는 음모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 모든 것들을 감안할 때 현재 SHC 현상은 끝 모를 미궁 속에 빠져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고 언젠가 과학에 의해 진실이 명명백백히 규명될 개연성을 완전히 배재할 수 는 없지만 앞으로도 미스터리의 한자리를 꿰차고 있을 공산이 매우 크다.

이를 보면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체야말로 그 어떤 미스터리보다 신비로운 미지의 영역임을.

파퓰러사이언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