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빈 라덴 헌터

실험실에서 빈 라덴을 추적했던 대학생들

2008년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의 한 지리학 강의실. 톰 길레스피 교수는 학생들과 학기 중 수행할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짜고 있었다.

난상토론 끝에 학생들은 수단의 난민수용소 면적 변화를 계산하는 프로젝트와 이라크 바그다드의 야간 항공사진을 활용한 미군 군사작전의 효율성 측정 프로젝트를 낙점했다.


그리고 이의 실행을 위해 그동안 배웠던 지리정보시스템(GIS), 인공위성 원격탐사, GPS 등을 주축으로 한 인공위성 기반 시스템들을 활용키로 했다. 학생들은 이들 시스템이 매우 어려운 과제도 가능케 해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때 한 학생이 길레스피 교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혹시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는 것도 가능할까요?” 길레스피 교수는 그동안 누구도 과학적 방법론으로 빈 라덴의 소재를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정말로 진지하게 해볼 생각이 있나? 그럼 우리 한번 해볼까.”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생들은 인공위성 자료를 이용, 지난 10년간 진행된 급속한 지리적 변화를 파악해야 했다. 방법은 앞서 언급한 인공위성 기반 시스템들이다.

실제로 2000년 이후 미 항공우주국(NASA)은 약 73대의 관측위성을 지구 궤도에 쏘아 올렸고 덕분에 지금은 일반인들도 지구 표면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입수할 수 있다. 또한 지리공간 데이터를 수집·분석·가공하여 지형과 관련된 정보들을 생산하는 GIS와 레이더·소나·레이저 같은 공중탐지센서를 활용한 원격감지시스템의 등장도 과학자들의 역량을 급격히 넓혀 놓았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특정지역의 환경파괴 예측은 물론 포도농장주를 위해 포도의 생산성을 파악해줄 수도 있다. 길레스피 교수의 경우 멸종위기식물이자 하와이주의 주화(州花)인 하와이무궁화(Hibiscus brackenridgei)의 분포 예측 연구를 수행 중이다.

“현재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위성과 정보들을 총망라했어요. 그 다음엔 지적인 방식으로 어떤 질문을 던질지 결정하고 해결에 매달리면 됐죠.” 빈 라덴 수색을 위해 학생들은 지도제작이나 야생동식물 분포 범위 분석에 쓰이는 두 가지 이론, 즉 감쇠거리(decay distance)와 섬 생물지리학(island biogeography) 이론을 적용했다. 이중 전자에 따르면 특정 종(種)이 특정지점에서 멀리 이동할수록 해당 종의 서식밀도가 낮아진다. 또한 후자는 큰 섬들 사이의 간격이 좁을수록 동물들의 이동이 활발해지며 그로 인해 큰 섬이 작은 섬이나 고립되어 있는 섬보다 생물다양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물론 빈 라덴은 동물도, 식물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이론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멸종위기종의 탐색에 효과가 있다면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거물급 범죄자의 추적에 효용성을 발휘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

“감쇠거리 이론에 의거해 보면 만일 빈 라덴이 파키스탄 내륙 깊숙한 곳이나 인도처럼 생각보다 멀리 도망갔을 경우 종교적·정치적 신념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섞이면서 생포되거나 살해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또한 작은 마을이나 고립된 마을에 숨는다면 섬 생물지리학 이론에 의해 위치가 발각될 개연성이 커지죠. 결국 우리는 빈 라덴이 마지막으로 발견됐던 아프가니스탄 동부 토라보라 지역의 산악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적당한 규모의 도시에 숨어 있을 것으로 추론했습니다.” 이 추론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위성 촬영 이미지 위에 감쇠거리 이론을 적용, 예상 은신처를 표시했다. 그리고 빈 라덴이 파키스탄의 7개 부족연합자치구(FATA) 중 한 곳에 머물고 있을 확률이 86.6%라고 결론지었다.

"멸종위기종 분포예측이 가능한 지리학 이론이라면 거물급 범죄자 추적에도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했어요."

이후 토라보라와 가장 가까운 자치구인 쿠람을 조사한 결과, 26개의 도시가 있었고 가장 큰 도시는 파라치나르였다. 길레스피 교수는 정치적·상식적 관점에서 이곳이야말로 미 연방수사국(FBI)의 지명수배 명단 1위에 오른 테러리스트가 숨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했다. 가능성은 98%나 됐다.

“파라치나르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무자헤딘의 근거지였던 곳입니다. 게다가 자치 비중이 높은 FATA는 전통적으로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좋은 은신처였죠.” 이렇게 도시를 특정한 학생들은 빈 라덴의 생활패턴 특징을 바탕으로 추적범위를 더욱 좁혀나갔다. 특히 빈 라덴은 키가 193㎝나 돼 천장이 높아야 하며, 많은 경호원들이 딸려 있고 정기적인 투석을 받아야해 적지 않은 전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고해상도 위성사진에서도 파라치나르에는 다른 도시들보다 빈 라덴이 숨기 좋은 큰 건물들이 많았다.

그중 학생들이 세운 기준에 부합하는 건물은 총 세 곳이었다. 얼마 후 길레스피 교수는 빈 라덴이 세 건물 중 한곳에 은신 중일 것이라는 결론을 담은 논문을 MIT 인터내셔널 리뷰에 발표했다.

올 5월 미 해군 특수부대가 빈 라덴을 사살한 장소는 파라치나르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89%의 확률을 보였던 아보타바드였다.

“정확한 예측은 빗나갔죠. 하지만 그가 동굴이 아닌 FATA에 머물렀고 평범한 소형 가옥이 아닌 대형 주택에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맞힌 것도 많아요.


당시에는 빈 라덴이 동굴 속에 피신해 있을 거라는 추측이 난무했거든요.” 현재 길레스피 교수의 지리학과 학생들은 여러 분야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항공사진 평가가 필요한 공원관리사무소, 신규 버스노선을 정해야 하는 교통당국, 현금인출기 설치 장소 결정이 필요한 은행 등이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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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정보기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검은 양복 차림의 사람들이 연구실로 찾아와 학생들의 신원을 조사해 가기도 했다. 미군 간부들은 안식년을 맞으면 UCLA를 찾아와 감쇠거리 및 섬 생물지리학 이론을 직접 배우고 있다.

이런 세간의 관심에도 길레스피 교수는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

“저는 하와이무궁화의 멸종을 막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국지 탐색
각 도시의 탐색에는 민간상업위성 '퀵버드(QuickBird)’가 촬영한 1m급 공간 해상도의 이미지를 활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빈 라덴의 키, 건강 상태, 다수의 경호원 운용 등 특징적 정보를 감안해 최종 예상 은신처를 특정했다.'



예상 은신처
UCLA 지리학과 학생들은 빈 라덴의 은신처로 파라치나르에 위치한 건물 세 곳을 지목했다. 실제 빈 라덴은 이와 유사한 건물에서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됐다.

포위망 구축

데이터를 활용한 희대의 테러리스트 추적 기법
FBI의 1급 지명수배범 위치탐색을 위해 길레스피 교수와 학생들은 일반인에게 자료가 공개된 NASA의 랜드샛 지상관측위성 프로그램과 우주왕복선 레이더 지형 임무(SRTM) 프로젝트로부터 빈 라덴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토라보라 지역의 3D 지형도를 다운로드 받았다. 이후 지형도에 다양한 종(種) 이동 이론을 작용, 예상 은닉 장소를 찾아냈고 미 정부의 군사기상위성이 촬영한 해당 지역의 야간 이미지를 16달러에 구입했다.

야간의 조명 불빛을 통해 인구밀도를 추정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최종 후보지를 결정한 학생들은 상업위성이 촬영한 해당 도시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1,000달러에 구입, 빈 라덴이 숨어 있을만한 건물을 탐색했다.

“필요한 모든 데이터는 주변에 있어요.

이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알고 있는지가 중요할 뿐이죠.”

빈 라덴 추적 도구



랜드샛 ETM+ 센서
랜드샛 위성의 ETM+ 센서는 지구가 반사한 태양의 복사에너지를 측정, 공간 해상도 30m급(30×30m 면적을 한 픽셀로 표시)의 고해상도 토지이용 이미지를 생성한다. 이미지 1장의 용량은 3.8GB며 183×170㎞의 지표면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파푸아뉴기니]



SRTM
2000년 2월 11일 엔데버호가 2대의 합성개구레이더(SAR)를 싣고 발사됐다. 우주왕복선 레이더 지형 임무(SRTM)로 명명된 이번 미션에서 엔데버호는 11일 동안 SAR을 활용, 지표면의 80%에 대한 3D 지형 데이터를 수집했다. 데이터 정확도가 ㎝ 단위로 정밀하다.
[사진: 캄차카 반도]



군사기상위성
미 국방부가 발사하고 미 공군에서 운용 중인 4대의 군사기상위성은 가시광선과 자외선을 이용해 지구 대기의 분석이 가능한 이미지를 촬영한다.
[사진: 유럽의 야경]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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