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재계의 원칙주의자 전경련 새 리더십 세운다

[포춘 코리아 CEO 500] 허창수 GS그룹 회장

허창수 회장은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짐을 떠안았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다. 전국경제인 연합회 회장으로서 전경련의 새로운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 재계 7위 GS그룹의 창업주로서 새로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 허창수 회장의 리더십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신기주 기자 jerry114@hk.co.kr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혼자였다. 지난 10월 5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선 전국경제인연합회 창립 50주년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대통령과 국회의장까지 참석하는 큰자리였다. 전경련 회장을 역임한 손길승, 조석래, 강신호 명예회장이 자리를 지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오지 않았다. 애초에 참석하기로 했던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사정이 생겨서 오지 못했다.

전날이 부인 고 이정화 여사의 2주기였다. 결국 4대 그룹 총수 가운데에선 최태원 SK그룹 회장만이 허창수 회장과 함께 손님을 맞았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도 허창수 회장은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재벌과 재계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돼 있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재벌의 편법 증여와 이익 독점에 대해 비판하는 상황이었다. 자연히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서 그 십자포화를 견뎌내야 했다. 그래도 언론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창립 50주년기념식에서 또 다시 공식적인 인사말을 해야 했다. 허창수 회장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여론이 또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들썩일 수도 있었다. 여론을 의식해서 다른 총수들은 다 기피한 자리였다. 허창수 회장은 혼자였다.

재계의 대변인
허창수 회장다웠다. 허창수 회장은 재계를 대표하는 원칙론자다. 허창수 회장은 매일 자로 잰 듯 생활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맑은 정신에 책을 읽는다.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운동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역삼동 GS타워로 출근한다. 눈비가 오지 않으면 걷는다. 수행원이 따라 붙는 걸 싫어한다. 일정을 챙기는 비서가 한 명 정도 있을 뿐이다. 먼 출장길도 혼자 다니길 좋아한다. 허창수 회장은 2004년 GS그룹이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될 때까진 대외 활동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구 씨는 사업을 확장하고 허 씨는 조직을관리한다는 LG그룹의 동업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이렇게 자기 자신한테 엄격한 탓에 대외적으로도 엄격한 원칙을 강조할 수가 있었다.

지난 2월 허창수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자리를 수락한 것도 원칙론에 입각한 결정이란 평가가 많았다. 2004년 계열 분리된 이후 GS그룹은 매출 규모만 50조 원이 넘는 재계 8위 그룹으로 자리를 잡았다.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될 때만 해도 에너지와 건설과 유통에 머문 GS그룹의 미래를 확신하기 어려웠다. 신사업 개척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허창수 회장은 "내 대에 LG그룹과의 영역 다툼은 없다"며 사업 확장보단 내실 경영에 방점을 찍었다. 그렇게 원칙을 지키면서도 허창수 회장은 GS그룹을 출범 7년 만에 재계의 간판 기업 집단으로 도약시켰다. 이젠 재계 간판기업으로서 책무를 다할 시기일 수 있었다. 결국 허창수 회장은 4대 그룹 회장이 모두 고사하면서 재계의 리더십 공백이 발생한 상황에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한때 고 이병철 회장과 고 정주영 회장과 김우중 회장 등 빛나는 별 같은 경영인들이 거쳐갔던 재계의 좌장인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자리는 이젠 그저 가시 방석일 뿐이었다. 허창수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정부와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그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공청회에서 허창수 회장은 국회 의원들의 질타에 시달려야 했다. 의원들은 허창수 회장이 애당초 공청회에 불참하려고 했었단 사실 때문에 더 매섭게 굴었다. 대쪽 같은 허창수 회장은 정치권의 기업 때리기를 위한공청회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면서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자칫 하다간 재계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우습게 본다는 여론으로 비화돼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될 수도 있었다. 결국 허창수 회장은 급거 귀국했다. 1시간 늦게 공청회에 참석했다. 사실 허창수 회장은 지난 6월 29일에 열렸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공청회’에는 끝내 불참했다. 결국 의원들한테 미운 털이 박혀버렸다. 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허창수 회장한테 이렇게 질문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합니까.” 허창수 회장이 “네”라고 대답하자 강창일 의원은 맞받아쳤다. “국회는 의회민주주의의 핵인데 왜 이렇게 국회를 무시하고 능멸하는 태도로 일관합니까.” 결국 8월 17일 공청회는 허창수 때리기 자리가 됐다. 공청회엔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자리했다. 하지만 의원들은 허창수 회장만 물고 늘어졌다. 급기야 김영환 지식경제위원장이 “손경식 회장과 이희범 회장한테도 질문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8월 17일 공청회에서 허창수 회장은 각오한 듯 몸을 낮췄다. 어쩌면 그것도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 회장의 숙제일 수도 있었다. 정주영 회장과 김우중 회장이 재계를 대변하던 시절에도 전경련 회장은 쉬운 자리가 아니었다. 기업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해야 했다. 정부의 요구를 여러 기업들과 나눠 져야 했다. 단지 예전과 달라진 건 상대해야 할 정치 권력이 청와대하나에서 이제 국회까지로 다양해졌고 협상의 방식도 최고권력자와의 독대에서 국민이 지켜보는 공청회로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이제 전경련 회장은 재계의 이익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재계를 대표해서 대신 뭇매를 맞아주는 일도 해야 했다.

실제로 전경련은 매를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나 편법 증여는 전경련이나 허창수 회장만 탓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경련이 회장의 국회 출석을 피하고 기업한테 불리한 입법을 막기 위해 로비를 하려 했다는 정황이 포착된 건 얘기가 달랐다. 전경련이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로비가 아직 합법화되지 않은 한국에서 로비 시도 정황이 포착된 건 다른 문제였다. 김영환 지식경제위원장은 “대기업에 대한 국민감정이 안 좋은데 전경련이 죽을 꾀를 냈다”고까지 비난했다. 결국 허창수 회장도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의원들은 아예 전경련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말했다. “전경련은 재벌 총수 사랑방도 아니고 이익 창출만을 위한 단체도 아닙니다. 개발 시대 이익단체의 성격을 탈피해 발전적인 해체를 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미국 헤리티지 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를 설립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허창수 회장 역시 답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이번에 과제가 주어져서 어떻게 발전할지 검토하고 있으며 결과가 나오면 얘기하겠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듯이 전경련도 사회적 역할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전경련이 기업 집단의 이익만 대변해선 오히려 기업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게 된다. 사회적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전경련의 개혁가
사실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 회장에 막 취임했을 때만 해도 직선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중요한 정책결정에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과연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많은 의문이 든다”고 발언했다.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추진되던 감세 철회 정책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며 비난한 직후였다. 결국 허창수 회장의 발언은 정치권의 공청회 출석 요구로 이어졌다. 허창수 회장의 소신 발언은 전경련과 재계의 강경 기류가 반영된 결과였다. 기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재계에선 전경련의 역할론이 대두됐다. 여론전의 선봉에 서야 할 전경련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허창수 회장 역시 이런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끝내 허창수 회장조차 공청회 증언대에 서야 했다.

취임 이후 반년 동안 이어진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과제는 분명해졌다. 전경련의 새로운 리더십을 복원해야 했다. 예전처럼 전경련이 최고권력자와 독대만 하면 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듯이 전경련의 사회적 역할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전경련이 기업 집단의 이익만 대변해선 오히려 기업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할 수없게 된다. 사회적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결국 전경련 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인 자리가 됐다.

결국 허창수 회장은 큰 교훈을 얻었다. 이미 전경련 개혁이 공론화된 상황이다. 지난 2월 허창수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되는 과정에선 LG그룹 CEO 출신인 정병철 상근부회장의역할이 컸던 걸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병철 부회장은 소문난 강경파다. 심지어 허창수 회장과 엇박자 발언을 한 적도 있다. 국회 공청회에서 허창수 회장이 “전경련을 쇄신하겠다”고 말한 직후 정병철 부회장은 “쇄신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언했다. 결국 전경련 쇄신 여론은 정병철 부회장의 교체 주장으로까지 번졌다. 인적 쇄신부터 해야 한다는 강경 여론으로 선회한 꼴이었다. 급기야 재계 안에서도 비판 여론이 흘러나왔다. 가뜩이나 기업에 대한 여론이 안 좋은데 전경련이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화만 키우고 있었다.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취임 초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허창수 회장은 말했다. “효율 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국제 경쟁 시대에 기업이 원칙을 지키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배려가 부족했던 아쉬움도 남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기업을 둘러싼 이해 관계자들과 공생발전해 성장의 과실이 구석구석 닿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덧붙였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우리 기업들이 제대로 성장해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라경제를 견인할 수 있도록 변함없이 성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1960년대 초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그 과정에는 국민, 정부와 함께 혼연일체가 돼 노력한 기업인들의 구심체로서 전경련이 있었습니다. 지난 50년간 여러 공과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이 모두를 뛰어 넘어 더 높이 도약해야 합니다. 이에 전경련은 모두가 다 함께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경제비전을 추구하겠습니다.” 허창수 회장도 이젠 전경련이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기업 역시 사회적 역할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어쩌면 이제야 허창수 회장이 전경련을 자기 방식대로 이끌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초창기 강경 발언은 말하기보단 듣기를 더 좋아하고 원칙 이외는 타협하지 않는 허창수 회장에겐 지나치게 공격적인 행보였다. 자기 행보를 보여준 덕분에 그날 허창수 회장은 혼자였지만 당당했다.

초창기 강경 발언은 말하기보단 듣기를 더 좋아하고 원칙 이외는 타협하지 않는 허창수 회장에겐 지나치게 공격적인 행보였다

GS의 창업주
허창수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렸다. 2004년 GS그룹이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될 때까지 허창수 회장은 늘 구본무 회장의 한 발짝 뒤에 서 있었다.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의 57년 동업은 그런 인화를 통해 가능했다. 허창수 회장은 허 씨 일가를 대표하는 좌장이었지만 한 번도 대외 활동에 나선 적이 없었다. 그러나 GS그룹이 출범한 이후부턴 달랐다. 허창수 회장은 GS그룹을 에너지 유통 명가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곧바로 과감한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유통 부분에선 경쟁력이 낮은 백화점과 마트는 정리하고 편의점과 슈퍼마켓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덕분에 GS리테일의 매출과 영업 이익은 2004년 계열 분리 시점보다 모두 두 배 넘게 늘어났다. 에너지 사업 분야도 재편했다. GS칼텍스는 GS그룹의 주력 계열사다. 허창수 회장은 정유시설 고도화를 위해 과감한 설비 투자를 감행했다. 2조 원을 투자해서 중질유분해시설을 설비한 덕분에 GS칼텍스의 고도화 설비 비율은 20%를 웃돌게 됐다. 수출 비중 역시 60%가 넘어선 상태다.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GS건설은 기업 설비 건설 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켰다. 아파트 건설사가아니라 가스 설비나 발전소 설비를 짓는 토목기업으로 진화했다. GS건설의 연간 수주액은 13조 원이 넘는다. 허창수 회장은 GS칼텍스와 GS건설과 GS리테일을 중심으로 빠르게 그룹의 초석을 다졌다.

하지만 허창수 회장은 GS그룹의 약점 역시 잘 알고 있다. GS그룹은 GS칼텍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에너지 사업은 막강한 캐시카우여서 자칫 안주하기 쉽다. 허창수 회장은 이미 GS그룹 출범 초기부터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노력해왔다. 일단 허창수 회장이 주목하는 분야는 신재생 에너지 분야다. GS칼렉스와의 연관성이 높기 때문이다. 바이오연료와 폐기물 에너지, 스마트그리드, 녹색 물류, 2차 전지 같은 분야가 GS그룹이 주목하는 분야다. 허창수 회장은 GS그룹의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매년 2조 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있다. 인수합병 역시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그런 고민 끝에 뛰어든 판이었다. 하지만 허창수 회장은 깊은 고민 끝에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조선업 업황을 밝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허창수 회장의 숨겨뒀던 추진력이 빛을 발했다. 사실 허창수 회장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건설 CEO라고 할 수 있다. 과거 LG그룹 안에서도 허씨 일가는 전통적으로 건설 부분을 맡았다. 허창수 회장은 그 시절부터 중동까지 날아가서 현지 공사를 독려했다. 이때부터 다져진 추진력은 계열 분리 이후 허창수 회장의 새로운 색깔이 됐다. 또 GS그룹은 깜짝인사가 없는 안정된 조직으로도 유명하다. 허창수 회장은 전문경영인 CEO를 존중하고 책임 경영을 강조한다. 한 번 사람을 믿으면 쉽게 버리지 않는다. 불과 7년 만에 GS그룹이 재계를대표하는 탄탄한 기업 집단으로 성장한 건 허창수 회장의 외유내강 리더십 덕분이다.

허창수 회장은 지난 10월 1일 중국 현지에서 첫 번째 해외 사장단 회의를 가졌다. GS그룹이 사장단 회의를 해외에서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GS그룹의 내실을 다졌다면 이제부턴 해외 시장 개척을 본격화할거란 선언인 셈이다. 허창수 회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생산거점에서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GS가 지속가능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중국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현지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합니다.” 이런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협력업체와의 공생발전이 필수적이며 이는 해외시장 진출에서도 같습니다. 국내 협력업체와 동반진출이나 판로 지원 등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이미 GS 계열사들은 중국 중원 공략에 나선 상황이다. GS칼텍스는 중국에서 주유소 운영을 시작했다. 석유 화학 제품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판매하면서 중국 매출액이 급증하고 있다. 유통 부문과 건설 부문에서도 중국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허창수 회장은 더 이상 은둔의 경영자가 아니다.

불과 7년 만에 GS그룹이 재계를 대표하는 탄탄한 기업 집단으로 성장한 건 허창수 회장의 외유내강 리더십 덕분이다

멀리 보는 경영인
허창수 회장은 유명한 축구광이다. 2004년 계열 분리 과정에서도 FC서울을 애써 가져왔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소문난 야구광인 것과 대비된다. 결국 LG그룹은 LG트윈스 야구단을운영하고 GS그룹은 FC서울 축구단을 운영하게 됐다. 한국 프로 스포츠 시장에서 K리그의 인기는 한국시리즈만 못하다. 야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지만 축구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그나마 FC서울이 한국 축구의 버팀목이다.

허창수 회장의 축구 사랑은 많은 걸 말해준다. LG그룹과 GS그룹은 계열 분리된 뒤에도 음양으로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허창수 회장의 역삼동 GS타워 집무실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선물한 그림이 걸려 있다. 인화를 강조하는 그림이다. LG그룹이 야구를, GS그룹이 축구를 지지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인화다. 물론 축구는 야구만큼 돋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허창수 회장은 애써 어려운 길을 헤쳐나가면서 한국 축구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허창수 회장이 사업을 이끄는 방식이다. 허창수 회장은 사장단에게 늘 당장의 단기 이익에 매달리지 말고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사업을 전개하라고 강조한다. 당장은 축구가 야구만 못할지 모르지만 언제까지 그러리란 법은 없다. 허창수 회장이 그리는 GS그룹의 미래는 당장 내년이 아니다. 수십 년 뒤를 내다보고 있다. 전경련 회장으로서도 마찬가지다. 허창수 회장은 스스로 총대를 멨다. 매맞을 각오를 하고 소신 발언을 해서 재계의 동정과 지지를 얻었다. 안 그랬다면기업들은 전경련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며 또 다시 쥐고 흔들었을 수도 있다. 스스로 가시밭길을 간 덕분에 이제 누구도 허창수 회장이 몸을 사린다는 얘기를 할 수 없게 됐다. 그러곤 허창수 회장 특유의 온화한 발언으로 정치권과 재계와 국민 여론의 화해를 도모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고 재벌에 대한 대중적 감시가 강화되고 있다. 이제 글로벌화한 재벌 기업들은 더 이상 정부한테 아쉬울 게 없다. 당연히 정부와 재계의 교섭 창구 역할을 해 온 전경련한테도 아쉬울 게 없다. 하지만 재계와 전경련의 변화는 급진적이기 어렵다. 이해 관계가 복잡한 탓에 급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빚을 뿐이다. 허창수 회장의 리더십이 필요한시기다. 전경련을 당장 브루킹스 연구소 같은 정책연구기관으로 변화시킬 순 없겠지만 그 초석을 놓을 순 있다. 당장 GS그룹의 신성장 동력을 모두 다 찾아내긴 어렵겠지만 그 기초를 닦을 순 있다. 은둔의 경영자 시절부터 허창수 회장이 걸어온 길이다. 앞으로도 걸어갈 길이다.

사진 한국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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