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을 침범한 진행성 간암 환자라도 위험도를 정밀하게 분류해 맞춤형 치료를 적용하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희철·유정일·김나리 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연구팀은 혈관 침범이 있는 간암 환자 526명을 대상으로 치료 방법에 따른 예후를 분석해 국제학술지 '방사선종양학' 최근호에 발표했다고 2일 밝혔다.
암세포가 간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을 침범하면 간 전체로 암이 퍼지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될 확률이 매우 높다. 간 기능도 급격히 나빠지는 경향을 보인다.
간으로 들어오는 혈액의 75%를 공급하는 간 문맥(Portal vein) 등 주요 혈관을 암세포가 침범한 경우 보통 ‘바르셀로나 간암 병기 분류(BCLC·Barcelona Clinic Liver Cancer)’ 기준 3기(C기)로 분류된다. BCLC는 간암의 진행 정도와 간 기능, 환자 전신 상태를 종합해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국제 표준 분류체계다. 간암 중에서도 비교적 진행된 단계로 치료가 까다롭다고 알려졌다. 수술이 어렵다보니 간동맥화학색전술과 표적치료제, 항암화학요법 등과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티쎈트릭(성분명 아테졸리주맙) 같은 면역항암제와 함께 혈관 신생을 억제해 종양의 성장을 막는 베바시주맙을 투여하거나 이들 약물을 방사선 치료와 병합해 쓰는 등 다양한 치료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치료를 받더라도 환자에 따라 생존 기간이 5.8개월에서 98.4개월로 편차가 컸다. 간암을 전문으로 보는 의료진들조차 치료법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박 교수팀은 환자의 간 기능과 종양의 크기, 침범 형태, 간 외 전이 여부 등을 종합해 보다 정밀한 ‘위험도 예측 모델’을 개발하고, 위험도에 맞는 최적 치료법을 찾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우선 진행성 간암 환자를 초저위험~저위험 그룹, 중등도~고위험 그룹으로 나눈 뒤 치료법에 따른 예후를 비교했다.
현행 가이드라인에 따라 가장 많은 417명에게는 간동맥화학색전술과 방사선 복합 치료가 시행됐다. 간동맥화학 색전술은 간동맥 중에서 간암을 공급하는 영양혈관을 가느다란 카테터로 선택해 간암을 괴사시키는 항암제를 주입함으로써 간암이 살 수 없도록 혈관을 막아주는 시술이다. 정상 간 조직은 크게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암 조직만을 선택적으로 괴사시킬 수 있다. 나머지 그룹은 개별 환자의 상태에 맞춰 표적항암제와 방사선 복합 치료(67명),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 병용 투여와 방사선 복합 치료(17명),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 병용 투여(25명)가 이뤄졌다.
평균 11.6개월(중앙값)의 추적관찰 기간 동안 연구팀이 개발한 위험도 모델은 진행성 간암 환자의 예후를 효과적으로 예측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양 크기가 더 나빠지지 않은 채 생존한 기간인 무진행 생존기간(중앙값)의 경우 초저위험군은 11.4개월, 고위험군은 1.9개월로 10개월 가까이 차이가 벌어졌다. 특정 항암제나 치료법이 환자의 생명을 얼마나 연장시킬 수 있을지를 직접적으로 측정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인 전체 생존기간 역시 초저위험군은 47.3개월에 달한 반면 고위험군은 6.6개월에 그쳤다.
새 모델은 기존 모델(IMbrave150)과 비교했을 때 1년·2년·3년 경과 시점 모두에서 생존율 및 재발 예측 정확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연구팀은 환자의 생존 혜택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치료방법이 위험도 별로 달라진다는 점도 밝혀냈다.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초저위험·저위험군은 가이드라인에서 권고하는 대로 간동맥화학색전술과 방사선치료를 병행했을 때 치료 효과가 가장 좋았다. 반면 중등도·고위험군은 면역항암제 투여로 인한 혜택이 두드러졌다. 티쎈트릭과 베바시주맙을 병용 투여하면서 방사선 치료를 병행할 경우 간동맥화학색전술과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기존 치료방식보다 암이 진행할 위험이 43% 낮았고, 사망 위험도 2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지 않고 티쎈트릭과 베바시주맙 병용 투여만 진행했을 때도 기존 간동맥화학색전술과 방사선 복합 치료 대비 사망 위험이 62%나 낮아졌다. 연구팀은 방사선 치료가 암세포를 파괴해 면역 체계를 활성화하는 일종의 ‘백신 효과’를 냄으로써 면역항암제의 효능을 높여줬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번 연구는 진행성 간암 치료의 기준으로 ‘위험도 기반 맞춤 치료’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된다.
유정일 교수는 "혈관 침범 간암은 매우 다양한 임상적 특성을 가진 집단"이라며 "단순히 병기만으로 치료법을 결정하지 말고, 위험도 예측 모델을 통해 환자 개개인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최적의 치료 조합을 찾는 것이 생존율 향상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