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의 복합체로 불리는 이러한 자기부상열차의 개발을 주도해 온 곳은 바로 한국기계연구원이다. 지난 11월로 취임 1년을 맞은 최태인 원장은 남은 임기 동안에도 자기부상열차와 같은 미래 유망 융·복합기술의 개발을 진두지휘하는 한편 협력시스템 구축을 통한 국제적 경쟁력 확보, 국방분야의 첨단 원천기술 개발에 핵심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Q. 한국기계연구원의 역할과 미션을 간단히 설명해주십시오.
한국기계연구원은 기계분야의 산업원천기술 개발과 성과 확산, 신뢰성 평가, 시험평가 등을 통해 국가와 산업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모토로 설립된 기관입니다. 이 목적에 맞춰 연구개발·기획, 신뢰성·시험 평가, 기술이전 및 지원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구원의 중기 목표는 창의와 융합, 미래와 실용, 신뢰와 원칙을 핵심가치로 삼아 세계 최고의 융·복합 기술을 개발해 국부창출을 선도하는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입니다.
Q. 취임 후 1년 동안의 핵심 성과를 꼽아주신다면.
집약하자면 강소형 연구조직으로의 체제 변환과 주요 사업부문의 태스크포스팀을 구축함으로써 기관 자체 미션을 중심으로 한 연구체제를 확립한 것을 꼽고 싶습니다. 우선 저희 연구원은 올해 초에 강소형 연구조직 전환을 위해 2개의 연구본부를 신설, 총 5개의 본부와 1개의 센터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각각의 본부들이 글로벌 선도 기관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임무를 세분화한 것입니다.
신설된 본부 중 첨단생산장비연구본부는 신성장동력 분야 중 반도체, 디스플레이, LED, 태양광 등의 생산장비 연구개발을 담당합니다. 또한 극한기계부품연구본부는 극저온, 초고온, 초고압, 초고속 등 극한환경 분야에서 활용되는 기계류 및 부품의 개발과 기존 기술을 뛰어넘는 차세대 기술영역 육성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올해 가동된 태스크포스팀의 경우 정부 출연금이 투입되는 주요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주요 사업들의 면밀한 검토야말로 기관의 미래 발전 방향을 가늠할 시금석이라는 판단 아래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어떤 기술에 중점 투자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지속적으로 점검·보완할 계획입니다.
Q. 구체적인 연구 성과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앞서 언급한 제도적 개선의 결실인지 올해는 유달리 훌륭한 연구성과들이 도출됐습니다. 일례로 차세대 나노 소재인 그래핀의 우수한 특성을 유지하면서 고온다습한 환경이나 기계적 마찰에서 보호할 수 있는 폴리머 박막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바 있습니다. 또한 지구온난화의 원흉인 이산화탄소(CO₂)를 90기압 이상의 초임계 상태로 전환, 땅 속에 영구적으로 매립·저장하는 핵심 기자재와 지상시스템을 국내 최초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고가의 노광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3차원 나노 금형을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는 원천기술, 톱밥을 급속 가열한 뒤 냉각함으로써 휘발유나 경유를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원유 생산 플랜트 등도 개발을 완료했습니다. 이중 바이오 원유 플랜트는 시간당 15㎏의 톱밥에서 9㎏의 원유 생산이 가능해 상용화 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Q. 자기부상열차도 빼놓을 수 없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1989년에 시작한 도시형 자기부상열차 기술개발이 현재 진행 중인 실용화 사업으로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공항철도 용유역을 잇는 6.1㎞ 구간에서 시범 운행이 진행 중에 있는데 1년간의 시운전을 마친 2013년 9월경 본격적인 상용 운행에 나서게 됩니다. 저소음, 저진동, 저분진의 장점을 갖고 있는 환경친화적인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향후 많은 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계연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실용화 사업의 총괄과 열차 개발을 담당하고 있으며, 국토해양부를 대리하여 열차의 성능시험과 인증도 맡았습니다. 참고로 대전광역시가 도시철도 2호선을 자기부상열차로 도입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는 중입니다. 기계연은 도시형 자기부상열차의 기술 개발에 더해 개발된 기술들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용될 수 있도록 기술적 마케팅을 지원하는 한편 해외와의 협력 연구 등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Q. 시속 500㎞의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시형 자기부상열차의 실용화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 설계시속이 550㎞인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미 독일에서 상용화된 세계 최초의 자기부상열차(시속 500㎞)보다 안정적이면서 경제적인 모델을 20년 내에 실용화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해 나갈 방침입니다. 그리고 첫 단계로 오는 2014년까지 실물 열차 크기의 시제품 모델을 제작, 핵심 기능을 검증할 것입니다. 기계연은 초고속 자기부상열차가 기존의 철도는 물론 항공기를 보완할 교통수단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Q. 내년의 중점 연구 프로젝트를 몇 가지 설명해주십시오.
기계연은 내년에 추진할 연구프로젝트의 기본 방향을 크게 세 가지로 잡았습니다. 첫째는 그린화, 스마트화, 융합화 등 기계기술의 메가 트렌드에 부응하고 잠재적 미래시장을 선도하는 융합산업 종자형 연구개발입니다. 나노급 자연 모사 기술, 미세 진단·치료기기 등 미래유망 융·복합기술의 개발과 함정의 생존성 향상, 연구소·산업체·군(軍)이 전략적으로 협력한 민·군 융합기술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됨에 따라 성장세 둔화가 예견되는 기계산업의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신산업 창출형 연구개발입니다. 나노 측정 및 신뢰성 향상 기술, 산업용 플라즈마 원천기술을 필두로 한 세계 최초 기술과 플렉시블 소자 인쇄장비 기술, 극한환경 유체기계 기술, 극한환경 열공정 기계 기술, 나노·마이크로 가공 및 성형기술 등 개발 중인원천기술의 상용화를 위한 신기술 산업화 기술이 그것입니다.
마지막은 중국과 같은 신흥국들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주력산업의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고부가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주력·기간산업의 일류화 연구로 요약됩니다. 레이저 정밀 가공 기술, 메카트로닉스 기반 산업용 로봇기술, 저탄소 연료 엔진시스템 기술, 원전 유체관로기기 기술 등이 그 실례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방향에 맞춰 수립한 세부 추진전략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과제들이 수행될 것입니다.
Q. 민·군 기술협력은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한 연구분야 같습니다.
산업경쟁력과 국방기술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융복합 기술 개발을 위해 최근 부각되고 있는 트렌드입니다. 사실 그동안 국방분야와 민간분야의 연구는 국가 안보와 보안 문제, 서로 다른 관할 정부부처, 과제 수행 방식의 차이 등의 이유로 상호협력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이 문제가 국가적 이슈로 떠올랐고 여러 가지 정책적, 제도적 보완책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문제가 지난 8월 청와대 비상경제대책회의의 주요 안건으로 상정된 뒤 국가 과학기술위원회가 수립한 민군기술협력추진계획(안)이 지난 11월 15일 민·군 기술협력 특별위원회에서 보고됐습니다.
Q. 기계연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요?
기계연의 경우 이러한 분위기가 생성되기 이전인 지난해 말부터 민·군기술협력에 체계적 준비를 해왔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던 제 경험을 살린 선제적 조치였습니다.
이를 통해 올 초부터 ADD와 네 차례의 워크숍을 가지며 협력 가능한 연구주제를 도출해냈고, 4월에는 국방기술품질원과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민·군기술협력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려면 기획·관리기관과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산업기술연구회와 ADD가 기술협력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하면서 기계연이 모든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대표해 가교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함정 생존성 향상 시뮬레이션 기술이나 적외선 센서 냉각용 극저온 냉각기, 터보시스템, 기어박스 기술 등 기계연이 보유 중인 첨단 군사기술과 앞서 말한 다방면의 공조 노력이 더해지면 민과 군이 협력하는 연구개발이 꽃을 피울 것이라 믿습니다.
Q. 산업계가 주목하는 롤투롤(Roll to Roll) 전자인쇄 기술의 연구현황은 어떻습니까?
롤투롤 인쇄는 전자회로, 센서, 디스플레이, 전자 부품 등의 전자 재료들을 신문을 인쇄하듯 유연한 종이나 필름 위에 인쇄하는 기술입니다. 전자산업의 혁신적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미래 선도 기술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기존의 반도체 공정과 달리 생산공정 중 재료의 손실이 거의 없는데다 유해물질이 배출되지 않아 친환경성의 극대화가 가능합니다.
기계연은 이미 롤투롤 인쇄와 관련해 수많은 국내외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등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지녔다고 자부합니다. 그중에서도 수 마이크로미터(㎛)에서 수십 ㎛의 미세선폭을 5% 이내의 편차로 정밀 인쇄하는 기술은 향후 태양전지, 디스플레이 등을 위한 플렉시블 전자소자 투명전극에 적용할 경우 막대한 산업적 파급효과를 이끌어낼 것입니다. 현재 기술 신뢰성을 제고한 뒤 장비와 공정기술을 실용화하는 형태로 연구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Q. 지금껏 언급한 목표를 이루려면 국제적 협력도 중요할 듯합니다.
얼마 전 '파티 끝난 브릭스, 동남아 VIP 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무릎을 쳤던 적이 있습니다. VIP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3국을 의미하는데요. 이미 기계연은 올 초부터 주한 VIP 대사관 교류회를 기획하는 등 동남아 국가들과의 협력 기반을 쌓아왔습니다.
동남아는 유럽 실물경제의 침체로 직격탄을 맞은 브릭스와 달리 내수가 탄탄하고 재정 건전성도 양호해 전 세계 투자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들 신흥국의 공업화가 본격화 되면 모든 산업의 근간인 기계산업이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연구원이 지난해 말 신흥 성장국 중심의 능동적 국제협력전략을 수립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렇게 형성한 긴밀한 관계에 힘입어 필리핀 산업자원부 장관, 주한 필리핀 대사 등이 기계연 연구현장을 방문해 필리핀의 국책 연구소나 정부 기관들과의 공동연구 토대를 확보했습니다. 베트남과의 협력 교류도 활발합니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베트남 학생 9명이 기계연에 소속돼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베트남 과학기술부 산하 과학기술국제진흥센터와 업무협약을 맺고 기계기술 분야의 연구개발과 기술이전, 우수인력 교류, 양국 연구기관과 협력 증진에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이뤄지는 원조 성격의 일방적인 협력 모델을 탈피, 동반성장 동력을 창출하면서 상호 호혜적인 기계연 고유의 모델을 개발·실행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Q. 평상시 공감에 기반한 소통과 화합문화를 강조하고 계신데?
요즘은 기술과 기술의 융합을 넘어 기술과 예술, 기술과 경제 등이 만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입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연구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과 인문·문화적 소양이 결합한다면 지금까지 없었던 획기적 융·복합 연구의 단초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연구원들의 감성과 독창적 연구개발 성과는 결코 별개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올해 연구원 내에서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 것이나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대전시립교향악단,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 등 지역 문화예술기관과 연계해 공연 티켓 제공, 할인 예매, 무료입장 등의 혜택을 제공 중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연구원 직원들 대상의 전체 월례회나 '화합의 날' 행사에 오케스트라 공연, OX 퀴즈쇼 등을 열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새롭게 도입한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틈나는 데로 직원들을 만나 허심탄회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려 노력했습니다. 시쳇말로 계급장 떼고 말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기존의 수직적 소통에서 벗어나 수평적 소통의 길이 열리면서 처음보다 직원들의 마음이 많이 열렸다고 느낍니다. 연구원 안팎의 크고 작은 이슈들을 듣게 되면서 기관 운영에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Q. 남은 기간 동안의 운용 모토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중언부언이 될 수도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융복합 원천기술 보유 역량 및 그에 기반한 활용 역량의 강화이며, 다른 하나는 공감 경영에 토대를 둔 창의적 조직문화 구현입니다.
먼저 전자를 얘기하자면 기계산업분야의 원천기술 개발과 성과확산을 통한 중소기업기술 지원은 우리 연구원의 태생적 의무로, 35년여간 축적된 세계적 수준의 융복합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매년 300여개의 특허가 출원되고 있고, 기술료 수입은 연간 50억원에 달합니다. 내년에는 중소기업 지원의 실효성을 강화해 동반성장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할 예정입니다.
창의적 조직문화와 관련해서는 올해 개선된 분위기가 실질적 성과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조직원들의 숨어있는 역량 발굴에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 일환으로 연말에 브레인스토밍 대회를 열어서 모든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창의적 아이디어들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도출된 아이디어를 기관 운영에 반영함으로써 모든 구성원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한가지 추가로 덧붙이자면 내년에는 매칭펀드형 공동연구를 강화할 방침입니다. 이를 통해 파트너 기관과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분야를 명확히 한다면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으며 파트너십 또한 긴밀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태인 원장 프로필 학력 1974년 서울대 응용물리학과 학사 1984년 미국 플로리다대학원 전기공학 석·박사 경력 1992~2000년 국방과학연구소(ADD) 기술개발 부장/해상시험장장 2000~2002년 ADD 항만감시체계 사업책임자 2002~2004년 ADD 기술협력부장 2004~2005년 ADD 본부장 2005~2010년 ADD 부소장 2011~2011년 ADD 정책위원 2011~2011년 한국과학기술원 해양시스템공학과 대우교수 2011.11~현재 한국기계연구원장 |
그래핀(Graphene) 흑연에서 벗겨낸 한 겹의 탄소 원자막. 두께가 탄소 원자 하나, 즉 0.35나노미터(㎚)인 세상에서 가장 얇은 물질이자 강도가 강철의 200배나 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물질이다. 또한 전자 이동도가 실리콘의 140배, 열전도율과 허용 전류 밀도는 각각 구리의 100배와 1,000배에 달한다.
초임계(Supercritical) 온도와 압력이 특정 수치(임계점)를 넘어서 더 이상 물성이 변하지 않는 상태.
브릭스(BRICs) 브라질(B), 러시아(R), 인도(I), 중국(C), 남아프리카공화국(S) 등 신흥경제 5개국을 지칭하는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