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외계 행성 탐사의 교두보
지난 1월 30일 나로호(KSLV-I)의 발사 성공은 대한민국의 우주개발 역사에 있어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우리 땅에 건설한 우주센터에서, 우리가 만든 우주발사체를 이용해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외계 행성 탐사를 위한 우주발사체, 그리고 우주발사체에 궤도선이나 탐사로버 같은 탑재체를 실어 보낼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는 게 그것이다.
미국을 위시한 우주강국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역시 최종 목표는 외계 행성의 탐사다. 태양계를 구성하는 화성, 목성, 토성 등의 행성과 이들의 위성들이 주 타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본격적인 외계 행성 탐사에 앞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중간 기착지가 하나 있다. 바로 달이다. 지구의 위성인 달은 외계 행성 탐사의 교두보이자 우주항공 기술력을 점검할 최적의 테스트베드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아폴로 11호를 통해 세계 최초의 유인 달 탐사에 성공한 미국도 재차 유인 달 탐사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차세대 달 착륙캡슐 '오리온(Orion)'의 개발에 착수했으며 오는 5월 달의 대기와 먼지를 관측할 궤도선 '라디(Ladee)'를 쏘아올린 뒤 2021년 유인 달 탐사선을 보낸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맞수라 할 수 있는 러시아도 오는 2015년 무인 달 궤도선과 착륙선을 쏘아 올릴 계획으로 알려졌다.
후발주자에 속하는 일본, 중국, 인도도 이 같은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가구야 1호', '창어 1호', '찬드라얀-1호' 등 달 탐사의 첫 단추에 해당하는 달 궤도선의 발사에 성공한 상태다. 우리가 달 궤도선을 보낼 때쯤이면 한 발 앞서 달착륙선 또는 유인 달 착륙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주항공 전문가들에 따르면 달 탐사를 위해서는 최소 1.5톤의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우주발사체가 필요하다. 나로호의 경우 발사 가능한 탑재체 중량이 100㎏에 불과했다. 이외에도 궤도선 및 착륙선 제작·운용기술, 발사체에서 방출된 탐사선을 달 궤도까지 보내는 기술, 지상 3만6,000㎞의 지구정지궤도(GSO)보다 10배 이상 먼 거리에 있는 달 궤도에서 운용할 원격통신기술 등 필수적으로 확보해야할 기술이 하나 둘이 아니다. 나로호의 발사 성공이 달 탐사로 가는 첫 걸음이 된 것만큼은 분명하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은 너무나 멀고 험하다는 얘기다.
달로 떠날 한국형 발사체 KSLV-Ⅱ
앞서 언급했듯 달 탐사에는 일단 새로운 우주발사체의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까지는 나로호의 후속모델이자 1.5톤급 실용위성을 고도 700~800㎞의 저궤도에 올려놓는 것을 목표로 오는 2018년 발사될 예정인 '한국형 발사체(KSLV-Ⅱ)'가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KSLV-Ⅱ는 3단 로켓으로 설계될 예정이며 중량 약 200톤, 길이 45m, 직경 약 3.3m의 모습을 가지게 될 전망이다. 이를 달 탐사에 활용하려면 발사체의 추력을 키우거나 지구궤도에서 달 궤도까지 탐사위성 및 착륙선을 보낼 일명 TLI(Trans Lunar Injection)를 맡을 4단 로켓을 추가 개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TLI는 고체추진제를 사용하며, KSLV-Ⅱ의 추력 등을 고려할 때 중량이 2,010㎏(고체추진제 1,710㎏, 자체 중량 300㎏) 이하로 개발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달 탐사를 위한 또 다른 양대 핵심요소는 달 궤도선과 달착륙선이다. 달 궤도선은 쉽게 말해 달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의 일종으로 달 표면 촬영, 지질구조 분석 등을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바로 이 궤도선이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착륙선의 착륙지점 및 세부 임무가 확정되는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AIST 등의 국내 인공위성 전문가들은 적어도 착륙선과 궤도선의 개발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중형급 위성인 아리랑 1호·2호와 GSO인 통신해양기상위성 천리안을 개발·운용한 경험, 그리고 올해와 내년 중 발사될 아리랑 5호, 과학기술위성 3호, 다목적실용위성 3A호를 통해 쌓아질 기술력을 감안할 때 충분한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승조 항공우주연구원장은 "아리랑 시리즈와 같은 중·저궤도 위성은 선진국 대비 약 80%, GSO 위성은 60% 정도의 기술 수준을 갖고 있다"며 "위성분야는 향후 10년 이내에 선진국 대비 약 90%의 기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달 탐사 프로젝트 3단계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달 탐사 프로젝트는 오는 2020년 궤도선과 착륙선을 보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항우연이 이를 목표로 기획연구에 착수했으며, 올 하반기 예비타당성 조사에 통과하면 내년부터 관련예산을 확보해 달 궤도선 및 착륙선의 개념설계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2020년 달 탐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현재 논의되고 바에 따르면 달 탐사 프로젝트의 마스터플랜은 크게 3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에서는 달 표면의 100㎞ 상공을 도는 궤도선을 보내 달의 정밀영상을 촬영함으로써 지형분석과 착륙지점 조사 등을 수행하게 된다. 이후 2단계는 달 표면에 터치다운할 착륙선을 보내 지질조사, 지진계 설치, 달의 열유량 등을 조사한다. 마지막 3단계는 착륙선 또는 탐사로버가 채집한 달의 암석이나 토양을 지구로 가져와 직접 연구·분석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수행해온 달 탐사 과정과도 일치한다.
항우연은 1단계인 궤도선 개발에 약 1,800억원의 연구개발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KSLV-Ⅱ를 이용한다는 가정 하에 KSLV-Ⅱ의 노즈 페어링 사양과 발사 성능을 고려해 궤도선과 착륙선의 중량은 550㎏ 내외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중 궤도선에는 고해상도 광학망원경, X선 분광계, 소형 영상 레이더(SAR) 등의 탐사장비가 탑재될 예정이다.
2단계인 착륙선의 경우 착륙선 자체의 개발에는 물의가 없지만 달 지면으로의 착륙기술 확보가 다소 까다로울 전망이다. 우주탐사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미 항공우주국(NASA)조차 작년 8월 700만 달러를 들인 무인 달착륙선 '모르페우스(Morpheus)'가 시험비행 도중 추락해 사망선고를 받았음을 보면 그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특히 달 표면은 14일간은 낮, 15.5일은 밤이어서 1년간의 임무수명을 유지하려면 고성능 배터리 등의 전력시스템 기술 확보가 필수불가결하다. 덧붙여 착륙선에 탐사로버를 탑재한다면 그에 대한 추가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3단계는 더 어렵다. 달에서 재이륙하는 기술, 궤도선과의 도킹 기술, 지구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요구된다. 이는 1~2단계에 적용됐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난도 기술이다.
그러나 항우연 달탐사기반연구팀 주광혁 박사는 "KSLV-Ⅱ 개발이 2017년까지 완료되고 내년부터 궤도선 및 착륙선의 개념설계가 본격화된다고 전제할 때 이르면 2018년 달 궤도선, 2020년 착륙선의 독자 발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루나 레이스
항우연 주광혁 박사팀의 달 탐사선 기본설계안. 궤도선은 높이 1.5m, 너비 1.6m며 착륙선은 높이 1.35m, 너비 1m로 디자인 됐다.
기초연구 병행 필요
달 탐사와 관련해 발사체나 궤도선, 착륙선은 항우연의 주도하에 세부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달 탐사와 관련된 원초적 질문, 즉 '왜 달을 탐사하려 하는가'에 명확히 답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더불어 추가적인 기초연구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천문연구원은 달 탐사 시 각종 궤도 정보와 달 궤도 진입에 따른 기초정보의 제공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천문연 우주천문연구부 최영준 박사는 "NASA에서 추진한 엘크로스(LCROSS) 프로젝트의 관측연구에 참여한 바 있다"며 "달의 기원과 달 분화구 형성 등의 연구와 함께 달 궤도 정보 등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엘크로스는 달 표면에 얼음 형태의 물이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2009년 2.4톤의 대형 충돌체를 달의 극지점에 투하했던 프로젝트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국내 주도로 개발된 최초의 GSO 위성인 천리안에 통신장비를 탑재한 경험을 토대로 달 탐사선에 원격지 통신장비를 지원하는 연구개발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현재 행성지질 기초기반기술 연구를 수행 중이다. 다만 미국, 일본, 유럽 등 우주개발 선진국들이 연구용으로 공개한 달 탐사 관련 자료들을 분석해 달 지형도와 지질도를 제작하거나 월석, 운석 등을 통해 달의 지질구조를 파악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지질연 원천지질과학연구실 이승렬 박사는 "이런 상황에서는 달 탐사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만한 실효성 있는 데이터의 확보가 사실상 어렵다"며 "달 탐사의 성공확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구에도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항우연은 1단계인 궤도선 개발에 약 1,800억원의 연구개발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열류량 (heat flow) 물체의 열이 고온부에서 저온부로 이동하는 양.
한국형 달 탐사선 개발
항우연 달탐사기반연구팀 주광혁 박사팀은 오는 2020년 달 탐사선 발사를 목표로 한국형 달 탐사선의 개념 설계 및 핵심 기반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기본 설계에 따르면 궤도선은 높이 1.5m, 너비 1.6m 정도로 나로과학위성보다 약 50% 정도 크다. 착륙선의 경우 높이 1.35m, 너비 1m, 중량은 550㎏이며 연료는 효율이 높은 하이드라진을 채용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연구팀은 이미 작년 12월 전남 고흥군 소재 항공센터에서 달 탐사선 지상모델의 성능시험에 성공한 바 있다. 이날 시험은 컴퓨터 시뮬레이터를 활용, 달의 환경을 가정하고 시험용 구조플랫폼에 달 탐사선 시험모델을 설치하여 추력성능과 달 착륙 제어성능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번 지상시험 모델은 약 100㎏의 중량을 들어 올릴 수 있는 200뉴턴(N)급 대용량 추력기 5기와 자세제어용 5N급 추력기, 밸브제어장치, 착륙제어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로 구성돼 있다. 지구 중력장에서 1㎏의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는 약 10N 정도이기 때문에 200N급 추력기 5기를 사용하면 1,000N의 추력 생성이 가능해 100㎏의 물체를 들 수 있다. 달의 경우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 정도이므로 들 수 있는 중량은 약 600㎏로 껑충 뛰어오른다.
특히 달 중력에 맞춰 무게를 6분의 1로 축소한 탐사선 착륙용 다리를 개발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보는 충격흡수 실험도 수행했다. 이 다리는 지구상에서 중량 대비 강도가 가장 센 육각형 벌집 구조로 내부 골격을 제작, 탐사선이 받게 될 물리적 충격을 최소화했다.
현재 연구팀은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 개념 설계를 수정하면서 요소기술을 확보하는 한편 우주에 있는 탐사선을 지구에서 제어하는 원거리 제어기술 등 미진한 분야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 박사는 "성공적 달 탐사선 개발을 위해서는 대용량 추력기 기술, 달 임무 설계 기술, 달 유도항법기술, 달 착륙 기술, 심우주 통신기술, 달 환경 모사·분석기술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이번 시험은 달 궤도선 및 착륙선에 장착될 추진시스템의 추력 성능과 착륙제어성능을 확인함으로써 향후 한국형 달 탐사 계획의 초석을 놓았다는데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주 박사는 또 "달 궤도선은 70% 이상, 착륙선은 50% 정도 기존 기술의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덧붙였다.
뉴턴(N) 힘의 단위. 질량 1㎏의 물체에 1m/sec2의 가속도를 주는 힘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