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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INTERVIEW] 정광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선진국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국가 분석연구능력 제고할 터"

"연구자들이 몰입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기관장의 첫 번째 소임이라 생각합니다. 이 경영철학에 소통과 화합의 모토를 덧붙여 나갈 계획이에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10대 원장으로 취임한 정광화 원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과학자다. 2005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2009년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 그리고 이번 기초연 원장에 이르기까지 정 원장이 걸어온 길은 젊은 여성과학자들에게 롤 모델이 되고 있다. 표준연에서 '여성 기관장'이 아닌 '기관장'으로서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보여줬던 정 원장은 기초연에서도 이 같은 자신의 강점을 펼쳐낼 예정이다.



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Q. 표준연에 이어 기초연의 수장이 된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만.

서로 다른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기관장을 맡게 된 것이 흔치 않은 사례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도 이에 대해 많은 축하인사를 건넸는데 제 자신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두 기관으로부터 제게 소명이 주어진 것이라 생각해요. 기초연의 경우 다소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 직원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통해 안정적으로 기관을 운영해 나가라는 소명이 주어졌다고 봅니다.

여성 과학자가 두 기관의 수장이 됐다는 점에서 조금 더 두드러져 보이는 면도 없지 않겠지만 제 스스로는 후배 여성 과학자들의 롤 모델로서도 역할이 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Q. 출연연에서 대학을 거쳐 출연연으로 돌아왔는데 대학과 출연연을 비교한다면?

대부분의 시간을 출연연에서 보냈지만 충남대학교 재임기간과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 민간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출연연을 제3자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요.

대학과 출연연을 수평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대학은 각 교수들이 학생들과 함께 독립적 단위로 연구가 이뤄지는 만큼 기초연구의 수행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출연연은 연구조직 중심의 연구가 이뤄지므로 대형연구나 공공연구, 국가 차원의 장기적 프로젝트 수행에 더 최적화 돼 있어요.

사족을 조금 덧붙이자면 연구자들도 비슷한 연령대끼리 교류를 하고, 그 연령대에 맞는 논의와 공감대가 있기 마련이죠. 그런데 출연연의 연구자들은 50대 후반쯤부터 퇴직준비를 해야 하지만 대학에서는 60세가 돼도 4~5년은 더 일해야 하는 책임감을 갖아요. 이렇다 보니 서로 마주해도 동일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논의를 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Q. 그간의 경험이 기초연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각론적으로 보면 표준연과 기초연은 설립목적과 미션은 다릅니다. 기관별 특수성도 존재하죠. 하지만 출연연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당연히 도움이 됩니다. 특히 기초연은 표준연의 직할기관이나 부설기관으로 함께 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실제로 기초연은 첨단 대형연구장비를 중심으로 한 기초과학 연구지원의 비중이 크고, 이를 통한 분석지원과 공동연구가 중요한 미션이에요. 범용적 활용이 가능한 분석과 연구지원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표준연의 분석기술과 오버랩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준연에서의 경험을 기초연의 특성에 맞춰 수정·보완함으로써 기초연을 한 단계 도약시킬 아이템들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또 취임 직전에 맡았던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역시 충남대와 기초연이 공동 설립했던 기관으로서 간접적으로 기초연에 대한 현황과 정보를 익히 들어서 알고 있기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Q. 전임 원장의 중도 퇴진에 따른 내홍을 쇄신할 방안이 있는지.

이런 비유를 하고 싶네요. 질병에 걸렸다면 가장 먼저 필요한 부분은 진단일 거예요. 전임 원장의 퇴진한 시기가 작년 9월이었고, 감사기관이나 상위기관과 함께 상당한 진단이 이뤄졌습니다. 이 점에서 기초연은 이미 일정부분 수술까지 이뤄진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이제는 수술경과를 지켜보며 병에 걸리기 이전으로 체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기가 바닥에 떨어지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으며 많은 반성을 했던 직원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화합하며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이끌어 낼 계획입니다.

또한 현재 기초연은 조직쇄신을 위한 외부 전문가 컨설팅이 완료됐고, 조직쇄신위원회와 테스크포스팀 등이 가동 중입니다. 청렴한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들도 상당히 제시돼 있어요. 물론 출연연을 대표하는 청렴한 기관이 되는 것이 일회성 노력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며, 언제 어느 때라도 추가적 쇄신이 필요하다면 적극 나설 방침입니다.

기초연이 작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주변의 지원과 따뜻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Q. 기관운영에 있어 '지원'와 '연구'의 역할 정립은 어떻게 해나갈 계획인지요.

설립목적에도 나와 있듯 기초연의 주요임무는 '지원'이며, 이것이 기초연 고유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구와 지원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기초연에게 있어 '지원'은 범용장비를 활용한 초보적 수준의 분석지원에서부터 장기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공동연구 형태의 최종단계 지원까지 모두 포괄합니다. 특히 최종적 단계의 지원은 첨단 대형연구장비, 첨단 분석지원 능력 등 기초연의 내부역량을 결집하여 외부 연구자들의 공동연구를 지원함으로써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낼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입니다.

최근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에 논문이 게재된 서울대 현택환 교수팀의 '무독성 나노입자를 활용한 고해상도 광학 영상기술 개발' 성과만 해도 서울대와 기초연이 7년여간 수행한 공동연구의 산물입니다. 만일 기초연이 분석지원에만 그쳤다면 이러한 연구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단순 분석지원에서 공동연구를 통한 세계적 연구성과 도출에 이르기까지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지원'이 바로 기초연이 추구하는 '지원'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올해 중점 추진할 프로젝트는 무엇인지요?

지난해의 내홍에 의해 몇몇 사업들의 시급한 의사결정이 지금까지 지연된 것으로 압니다. '슈퍼 바이오 전자현미경 구축 사업'과 '7T 연구용 휴먼 MRI 구축사업' 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기존에 예정됐던 사업들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챙길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연구장비 개발분야에 있어 '초정밀 열영상 현미경 개발'과 'ECR 이온원을 이용한 첨단 중소형 입자빔 이용시설 구축 사업'이 주력사업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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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국가 고자기장 센터'와 '국가 분자 이미징 센터' 구축을 위한 노력도 전개해 나갈 계획입니다. 국가 고자기장 센터는 35테슬라급 고자기장 설비, 21 테슬라급 질량분석장치, 1㎓ 및 1.3㎓급 고자기장 핵자기공명(NMR) 장치 등 첨단 고자기장 분석연구장비를 집적한 시설로서 선진국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분석연구능력을 업그레이드할 토대가 될 것입니다.

국가 분자 이미징 센터의 경우 세계 최고수준의 전자현미경과 첨단 생체영상장비를 집적한 시설이며 역동형 초고전압 전자현미경, 다중 이온빔 가속기, 펨토초 현미경, 동물용 11.7테슬라급 MRI 등의 장비가 구축되는데 이미징 기술에 기초한 NT-BT-IT 융합연구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두 사업은 지난해 기획안을 제출하고, 올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2014년 예산심의 대상이 됩니다. 기초연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기초과학분야 융복합 공동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만큼 상당한 관심을 두고 역량을 집중할 방침입니다.

Q. 중장기 발전 비전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중장기 발전 비전은 '세계일류의 열린 기초과학 공동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열린' 기초과학 공동연구기관이라는 의미는 관련 기관에 대한 오픈(open), 전국 거점지역센터를 통한 오픈, 해외 유수의 연구기관과 대학에 대한 오픈 등을 모두 함축하고 있습니다. 기초연 외부와의 모든 협력이 열려있다는 뜻이에요.

이러한 비전 달성을 위해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연구 지원기관', '대형연구시설 구축·운영 초일류기관', '국내 최고 분석과학 연구 대표기관', '국가 연구시설·장비 총괄관리 기관'이라는 4대 발전목표를 세워두고 있어요.

이를 지원할 경영의 핵심가치로 '클린경영'을 설정하고 청렴경영(Cleanness), 소통경영(Communication), 고객만족경영(Customer-Satisfaction), 창조경영(Creativity)을 4대 추진전략으로 삼았습니다.

Q. 새 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최근 K-팝이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죠. 이 대목에서 한번쯤 곱씹어볼 사안이 '왜' 또는 '어떤 저력이나 환경이 갖춰졌나'가 아닐까 합니다.

과연 K-팝의 바람이 몇몇 가수의 특출한 재능 때문이었을까요? 혹시 그동안 국내 가요계가 기업화되고,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면서 우수한 재능의 가수를 발굴·육성시키는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우수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가 무관심했던 사이에 세계적 스타를 키워낼 수 있을 정도로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성장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내 과학기술계도 큰 그림의 매니지먼트에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계에 있어 매니지먼트는 총괄적 디자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미 선진국 추격식 연구개발의 힘이 많이 소진된 상황에서 이제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도록 할 지원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소규모 단위의 연구라면 연구자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지만 국가라면 어떤 전략을 수립했는지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믿습니다.

Q. 과학기술인의 사기 진작도 필요하지 않을지요?

그렇습니다. 일단 가장 시급한 것은 정년환원이라고 판단됩니다. 현재 기준으로 본다면 정년환원은 과학기술인의 사기진작을 위한 바로미터라고 볼 수 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사기진작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에요.

또한 연구자들이 몰입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의 제공도 중요하다고 봐요. 연구자가 연구에 빠져 1~2주일 동안 밤샘 연구를 할 수 있는 몰입환경이 필요하죠.

물론 이는 단순한 시간투자에 더해 자신이 수행중인 연구에 대해, 그리고 1년이든 3년이든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일정기간의 몰입을 의미합니다. 이 같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연구비 투자나 성과평가 등에서의 제도 개선이 필요할 거예요.

Q. 개인적인 좌우명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다소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강한 힘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국가와 민족에 충성, 그리고 항상 작은 일에 충실하라'를 좌우명을 삼고 있어요.

국가와 민족에 충성은 비단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현재 제 자신을 둘러싼 가장 큰 단위인 국가와 민족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고 살자는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 또한 항상 작은 일에 충실하자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며 간과하기 쉬운 작은 일들에 충실함으로써 이들이 모여 큰일을 이루어 낼 수 있음을 잊지 않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보면 됩니다.

제가 출연연의 연구자들에게 '월급은 국민의 세금이므로 국가와 경제, 지역사회에 얼마나 되돌려주고 있는 지'를 늘 생각하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Q.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청소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긍정적 마인드로, 적극적으로 용감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가야 할 세상은 너무나 흥미로운 공간이에요. 일의 크고 작음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일에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특히 과학을 좋아하는 청소년이라면 과학과 관련된 요소에서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오락 등에서도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해요. 모든 호기심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모험정신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즐거움은 그러한 도전을 지속시켜 나갈 힘이 되기 때문이죠.

추가로 하나 덧붙이자면 자신의 이익만이 아닌 주변 사람을 배려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내적 소양을 키워나가기를 희망합니다.

정광화 원장 프로필
학력
1966년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
1970년 서울대학교 물리학 학사
1977년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물리학 박사
경력
1978~2005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1999~2003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3대·4대 회장
2001~2007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회 위원
2004~2007 국가핵융합연구개발위원회 위원
2005~2007 한국진공학회 회장
2005~2008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2007~현재 대덕특구위원회 위원
2007~2010 원자력위원회 위원
2007~2010 아시아태평양측정표준협력기구(APMP) 의장
2008~현재 국제도량형위원회(CIPM) 위원
2008~2010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2009~2013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
2009~현재 행정중심 복합도시건설 추진위원회 위원
2010~현재 오송첨단의료복지재단 이사
2011~현재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이사
2012~현재 뿌리산업발전위원회 위원
2013~현재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원장

ECR 전자 사이클로트론 공명(electron cyclotron resonance)의 약자.
테슬라 (tesla) 공간의 한 지점에서 자속밀도의 크기를 나타내는 국제단위. 기호는 T를 사용한다.
펨토초 (femto second) 1펨토초(fs)는 1,000조분의 1초.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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