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기술 우선주의 기업으로 손꼽히는 구글이 최근 디자인 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글 정경원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장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가장 잘나가는 회사를 꼽으라면 단연 구글이다. 구글은 2012년 인터브랜드 세계 베스트 브랜드 평가에서 4위를 차지했다. 검색창의 로고 디자인이 그날의 특성에 따라 바뀌어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구글은 기술자들이 이끌어가는 기업답게 디자인에는 관심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 5월 15일 자 ‘더 뉴요커’에는 ‘구글을 정복한 디자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불과 몇 년 전, 구글에서 디자인을 결정할 때 너무 공학적인 데이터에 의존한다고 지적하며 그래픽 디자인 책임자가 회사를 떠나기도 했었는데, 요즘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 검색 비즈니스의 선구자
구글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컴퓨터 대학원 학생이었던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 Sergey Brin이 창안한 웹 검색 엔진 기술을 상용화한 벤처 회사로 출발했다. 구글이라는 이름은 구골(10을 100제곱 한 천문학적인 수)이라는 단어를 잘못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99년 6월 공동출자 지원을 받아 검색 서비스를 시작한 구글의 운명은 2001년 에릭 슈밋을 CEO로 영입하면서 크게 달라졌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학사(전기공학), 버클리 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컴퓨터 과학)를 취득한 슈밋은 제록스, 벨, 선 마이크로 등을 거쳐 노벨의 CEO로 기술과 경영 능력을 갖고 있었다.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던 구글은 ‘구글 뉴스’와 ‘구글 프로덕트 서치’, 지메일 서비스 등 사업을 다각화했으며, 광고 배너 대신, 검색어에 따라 관련된 광고를 문자 형태로 보여주는 애드워즈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2004년 8월 나스닥에 상장한 구글은 2006년 유튜브에 이어 2007년 더블 클릭(디지털 마케팅 회사)을 인수한 구글은 인터넷 검색과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크게 성장했다. 구글은 2011년 현재, 자산 총액 725억 달러, 총 매출 379억 달러에 순이익이 97억 달러나 되는 알짜기업이다.
구태 경영과 데이터에 디자인의 혁신 필요성 대두
그러나 인터넷 비즈니스 특유의 급격한 환경 변화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구글의 경영은 구태의연하여 후발 기업 특히 페이스북에 밀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에 2004년에 창업한 페이스북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여 세계 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회사가 됨에 따라 구글의 핵심 인력들이 페이스북으로 이탈했다. 특히 구글의 디자인은 구태의연하여 후발업체들에게 밀린다는 지적이 일었다. 그런 와중에, 2009년 당시 구글의 그래픽 디자인 책임자였던 더그 바우만 Doug Bauman는 디자인 의사결정과정을 문제 삼아 회사를 떠났다. 창업 당시부터 구글에서 일했던 바우만은 디자이너의 안목과 판단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데이터로 입증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창조적인 굿 디자인을 하기 어렵다며 기업문화를 비판했다. 구글은 웹사이트의 색을 선정할 때도 두 개의 후보 중에서 하나를 결정하기 위해 41개의 파란 색상을 모두 테스트했다는 것이다. 괘선의 디자인에서 3픽셀과 4, 5픽셀 중 어느 것이 좋을지를 결정할 때도 논쟁을 했는데 각각의 효율성을 데이터로 증명해야만 했다. 바우만은 데이터라는 칼에 의해서 살거나 죽는 디자인은 진정한 디자인이 아니라며, 디자인에 대한 그 같은 데이터 중심적인 접근이 디자인의 원칙과 요소의 친근감을 떨어뜨린다고 했다. 바우만은 41가지 색상 테스트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해 사직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공동창업자의 CEO 복귀와 디자인의 변화
2011년 초, 구글의 경영은 큰 전환점을 맞았다. 2001년부터 10년간 CEO로 일했던 에릭 슈밋은 대외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회장으로 물러나고, 공동창업자 중 한 사람인 래리 페이지가 CEO로 선임되었다. ‘왕의 귀환’이라고 할 만한 변화는 곧바로 회사 좌우명 의 변화로 이어졌다. 에릭 슈밋의 시대에는 ‘사악해지지 말자 Don’t be evil’ 가 모토였다. 즉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페이지가 ‘못생겨지지 말자 Don’t be ugly’를 모토를 제시하여 디자인을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어 페이지 CEO는 “여러분, 우리는 구글의 모든 제품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디자인을 강조했다. CEO의 지시에 따라 구글 브랜드의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을 책임지고 있는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 Google Creative Lab’은 새로운 디자인 비전의 설정에 착수했다. 먼저 매력적인 제품에 적용될 디자인 원칙을 결정하기 위해 구글의 다양한 사업부문의 디자인을 이끌어가는 시니어 디자이너들이 크리에이티브 랩에 모였다. 그들은 구글이 전반적으로 고객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모든 것을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끝에 새로운 디자인 비전의 수립에 성공했다. '케네디 프로젝트’라는 코드네임을 갖고 있는 구글의 새 디자인 비전은 ‘정제됨, 여백 공간, 깨끗함, 탄력적, 유용함, 그리고 단순함’이라는 6가지 키워드를 핵심으로 정리되었다.
그 결과 페이지가 돌아온 이후 불과 몇 달 사이에 디자인이 멋진 제품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구글 플러스, 유튜브, 지메일은 물론 구글맵스 등의 디자인이 하나같이 아름답고 일관성을 갖추게 되어 이전과는 사뭇 대조적이 되었다. 특히 2012년 포퓰러 사이언스에 의해 ‘올해의 혁신’으로 선정된 구글 나우는 아름답고, 성숙하고, 사용하기 편한 디자인으로 케네디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향방이 주목되는 위원회 디자인
사업 영역이 다양한 인터넷 비즈니스의 특성상, 구글은 회사 전체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디자인센터나 디자인본부와 같은 조직을 갖고 있지 않다. 구글에는 애플의 조나선 아이브처럼 디자인을 모두 총괄하는 한 사람의 최고디자인책임자(CDO)는 없을지라도, 여러 사업부문의 디자인 책임자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일관된 비전에 따라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기능이 있다. 케네디 프로젝트의 원활한 수행을 돕기 위해 뉴욕에 새로 설립된 UXA 그룹이다. 구글이 공식적으로 홍보를 하지는 않으나, 이 그룹은 구글의 수많은 앱들을 일관된 플랫폼으로 바꾸어주는 UI 프레임워크를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즉, UXA 그룹은 구글의 제품이 일관된 디자인 비전에 따라 아름답고, 성숙하고, 접근가능하게 디자인되도록 지원해준다. 주요 사업부서의 ‘선임 디자이너’들이 정기적으로 UXA에 모여 정보와 디자인 언어를 공유함에 따라 ‘구글다움’이 형성되는 ‘열린 문화’ 방식이다. 새로 만든 제품 중에서 널리 적용될만한 흥미로운 요소가 있으면 그것을 회사 전체의 디자인 언어로 만들어 공유한다.
이처럼 비교적 느슨한 구조의 위원회를 통해 불과 2년여 만에 너무도 많은 것을 변화시키며 구글의 디자인 경영은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이 지속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 짓기 어렵다. UXA의 위원회 모임은 앱의 ‘외관과 느낌(look and feel)’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을하지 않고, 단지 가이드와 같은 역할을 하는 데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구글 디자인 경영이 과연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경원 교수는…
한국 디자인 진흥원장을 역임한 정경원 교수는 국내 산업디자인 분야를 대표하는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 본부장(부시장)을 지냈으며 현재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