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는 기업의 핵심가치로 ‘상생추구’를 꼽는다. 협력사들과의 R&D를 통해 개발한 주요기술을 과감하게 이전해 협력사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KT&G는 이 같은 기술상생을 통한 기업가치 향상이 지속가능한 기업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부혁 기자 yoo@hmgp.co.kr
‘홀로 가면 8,000km, 함께 가면 40,000km’ KT&G의 최근 광고 카피다. KT&G가 추구하는 상생경영의 정신을 ‘홀로 나는 기러기 보다 함께 나는 기러기가 훨씬 멀리 갈 수 있다’로 표현한 것이다.
‘함께하는 기업’은 KT&G의 3대 경영 이념 중 하나다. 그리고 이를 협력업체들에게 우선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담배 향캡슐, 회오리 필터, 품질측정장비 등 최근 국내 최초로 개발한 제품 모두 기술 경쟁력이 뛰어난 협력업체들과의 공동 작품이다.
지난 6월 24일, 서울 대치동 KT&G타워에서 이영택 KT&G R&D 본부장과 김영택 에이티랩 사장은 두 기업이 공동으로 개발한 ‘심리스seamless 향캡슐’ 기술이전 계약을 했다. 심리스 향캡슐은 향료와 천연오일 등을 조합한 원료를 이음선이 없는 얇은 막으로 감싼 것으로 담배필터에 들어 있는 이 캡슐을 터뜨리면 독특한 맛이 난다.
화장품 원료개발 전문기업인 에이티랩은 KT&G의 연구비 지원 등 공동연구를 통해 화장품용 향캡슐 제조기술을 담배필터에 적용했다. KT&G는 향캡슐 자체생산으로 외화절감과 함께 생산원가 60% 절감효과(1kg당 19만 1,000원에서 7만 6,000원으로 낮춤)를 거뒀다. KT&G는 에이티랩 사 고유기술에 상응하는 기술료를 추가로 지급했다. 에이티랩은 KT&G와의 기술교류를 통해 응용기술을 축적하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성장발판까지 마련하게 됐다.
이영택 R&D 본부장에게 협력업체 기술이전 계기를 물었다. “담배캡슐은 담배 제조에 꼭 필요하지만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습니다. 그래서 담배용 향캡슐 제조기술 확보가 시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국내 캡슐제조 OEM 업체들에 개발을 의뢰했죠.” 당시엔 담배필터용 ‘심리스 향캡슐’의 상용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KT&G는 캡슐 제조 업체들의 기술력에 협조를 구한 것이다. “이 캡슐 제작은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요. 향 손실 없이 건조된 형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선지 선뜻 나서는 업체가 없어 고민했죠. 그러던 중 화장품용 심리스 타입 향캡슐을 제조하는 국내 벤처 에이티랩 사를 찾게 된 거죠.”
협력업체와의 기술 협력을 통한 상생사례는 기존 제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시장에 선보인 ‘토니노 람보르기니 아이스볼트 토네이도 버전’은 중소업체인 현대필터산업과KT&G가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출시한 회오리 필터를 적용했다. 현대필터산업은 대표적인 담배표준 필터인 모노필터를 제작하는 업체이다. 이 업체의 기술을 응용해 만든 회오리 필터는 토네이도 모양의 홈을 따라 담배연기가 강하게 회전하며 전달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출시 첫해 홍콩과 대만 등에 수출한 데 이어 올해는 러시아와 중동지역 등으로 수출지역을 확대해 현재 11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카르디엔 KARDIEN’은 국내최초 담배 품질측정장비로 외국계 대형회사로부터 조달해 오던 고가의 장비를 국산제품으로 대체한 사례다. 이 기기는 담배 한 개비의 무게, 둘레길이 등을 세밀하게 측정하는 필수 측정장비로 개발과 동시에 국내 필터제작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KT&G와 연백엔지니어링이 2년이 넘도록 공동 연구에 매달려 개발에 성공했다.
KT&G는 필터 제조기 제작회사 JK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카르디엔’과 필터제조기를 하나의 세트로 구성해 해외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규모 내수시장에 머물던 연백엔지니어링은 매출증대와 함께 글로벌시장 판로 개척 효과까지 얻게 됐고 KT&G는 관련 원가를 20% 이상 낮추고 장비의 완성도를 높였을 뿐 아니라 유지, 보수비용 절감 효과까지 톡톡히 누리게 됐다.
KT&G의 동반성장 정책은 협렵사와 공동으로 기술 개발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KT&G가 민영화된 2002년 이전부터 협력사들에 매월 전액 현금으로 납품대금을 지급하고 있다. 특히 연말연시와 명절에는 원활한 자금 유동을 위해 대금 지급을 보름 정도 앞당겨 시행하고 있으며 2차 협력사까지 지급대상을 확대했다.
특히 KT&G의 협력사에 대한 상생정신이 돋보이는 부분은 ‘ 90일 구매계약 금액 조정’이다. 납품단가가 고정되어 있는 현실에서 원재료 가격 상승은 협력사들의 큰 고충이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KT&G는 90일이 지나면 협력사와 구매계약 금액을 재조정한다. 또 목표원가제를 도입해 목표를 초과하는 성과에 대해선 협력사와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웹 기반의 생산정보 공유시스템 구축으로 협력사와 구매 프로세스 효율성을 높이기도 했다. 협력사가 KT&G의 생산계획과 재료품 재고수량을 실시간 공유할 수 있도록 공급·구매 프로세스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협력사는 재료품 생산에 집중할 수 있게 됐고 KT&G는 궁극적으로 향상된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이 밖에 KT&G는 기술지도, 신규재료 개발 등을 지원하는 협력사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KT&G는 지난해 국내 시장점유율 62%를 기록했다. 2010년 50%대로 떨어진 이후 2년 연속 상승했다. 전 세계 로컬 담배기업들이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나온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세계최초 품질실명제, 맛·품질 보증시스템, 2중 검증 시스템 도입 등 최상의 상품 출하 노력이 기반이 됐다. 그리고 최상의 상품은 협력업체와의 끊임없는 R&D를 통한 기술혁신으로 이뤄졌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지난 4월 민영진 KT&G 사장은 고객 가치 2.0전략을 발표했다. 품질과 기술, 신뢰를 목표로 협력업체와 지역사회의 만족을 극대화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경영원칙이었다.
KT&G가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통해 8,000km가 아닌 4만km를 나는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