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위기를 넘어 더 강해진 브랜드, 남심과 여심 모두를 사로잡았다

시계 이야기 ④ 쇼파드

쇼파드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다. 한때 존폐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슈펠레 가문이 경영을 맡으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로 우뚝 섰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들은 남성 시계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 층 수요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시계보단 반지, 목걸이, 팔찌 같은 주얼리를 더 선호하는 것도 한 이유다. 때문에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의 여성 시계들은 남성 시계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남성 시계 모델에서 사이즈를 조금 줄여서 나오거나 ‘남녀 모두에게 어울리는 사이즈’ 같은 멘트가 첨부되기도 한다. 단독 컬렉션으로 나온 시계임에도 무브먼트의 수준이나 디자인 등이 브랜드 이름값에 못 미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아주 효율적인 경영전략이다. 수요가 적은 일부 고객층을 위해 새로 시계를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가뜩이나 대상 고객층이 협소한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들은 더욱 그렇다. 남녀 모두를 아우르는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를 찾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쇼파드는 이런 점에서 매우 특별한 브랜드다. ‘여성에게 추천해 줄만한 하이엔드 워치 컬렉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시계 마니아들의 90% 이상은 ‘해피 다이아몬드’ 혹은 ‘해피 스포츠’ 컬렉션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들 시리즈를 보노라면 ‘화사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이 브랜드의 정체성이구나’ 싶지만, 쇼파드의 다른 컬렉션인 ‘밀레 밀리아 Mille Miglia’를 접하게 되면 ‘이런 마초적인 브랜드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쇼파드는 야누스 같은 브랜드다.

쇼파드는 1860년 스위스 쥐라산맥에 있는 작은 마을 송빌리에 Sonvilier에서 시작됐다. 창립자는 루이 율리스 쇼파드 Louis Ulysse Chopard다. 창립 당시에는 포켓워치와 크로노미터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브랜드였다. 쇼파드는 루이 율리스 쇼파드로부터 그의 아들을 거쳐 손자인 폴 앙드레 쇼파드 Paul Andre Chopard에 이르기까지 순조롭게 성장을 이어갔다. 폴 앙드레 쇼파드는 1920년 송빌리에에서 제네바로 작업장을 이전하는 등 사업 확장에도 공을 들였다.

승승장구하던 쇼파드에 위기가 찾아온 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부터다. 수년간의 전쟁 여파로 거래처 및 주요 고객들과 연락이 끊기는 등 여러 악재가 겹쳤다. 그리고 악화된 경영환경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쇼파드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반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쇠락해 갔다. 장기 침체 중이던 쇼파드에 새로운 바람이 분 건 1960년대 초의 일이었다. 슈펠레 Scheufele 집안의 가족회사인 에스제하 Eszeha가 접촉해 온 것이다. 당시 에스제하는 독일에서 고품질 시계와 주얼리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지역 기반 역시 독일 주얼리 산업의 중심지인 포르츠하임 Pforzheim이었다.

에스제하는 잘나가는 브랜드였다. 하지만 시계의 중심 ‘메이드 인 스위스’ 타이틀을 갖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폴 앙드레 쇼파드 역시 후계자로 삼을 두 아들이 있었지만, 이미 경영이 기운 만큼 튼튼한 기업에 쇼파드가 인수되길 희망했다. 둘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셈이다. 결국 1963년, 폴 앙드레 쇼파드는 에스제하의 CEO 카를 슈펠레 Karl Scheufele에게 쇼파드의 경영권을 넘겨줬다. 쇼파드의 역사와 기술력을 존중한 카를 슈펠레는 쇼파드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결론적으로, 에스제하의 쇼파드 인수는 쇼파드 브랜드 역사에 있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에스제하는 시계의 성지라 불리는 ‘스위스’ 타이틀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쇼파드는 새 CEO의 역동적인 경영전략으로 다시 안정적인 성장가도에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쇼파드의 새 CEO 카를 슈펠레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 문화권을 몸소 체험한 매우 활동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경험한 세계의 독특한 디자인과 그에 따른 안목의 성장은 정체된 쇼파드 브랜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에스제하의 주얼리 가공 기술과 디자인 역량 역시 쇼파드의 자산이 되었다.

에스제하로 인수된 이후 쇼파드는 여러 실험적인 시계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시계 디자인에 주얼리의 활용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976년 처음 내놓은 ‘해피 다이아몬드 Happy Diamond’다. 이 모델은 다이얼 내부에 투명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창 2개를 설치해 그 사이에서 다이아몬드가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게 한 혁신적인 컬렉션이었다.

여성을 타깃으로 내놓은 시계 모델로선 드물게 해피 다이아몬드는 빅히트를 쳤다. 다이아몬드가 다이얼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디자인적인 독창성 외에도 ‘다이아몬드는 자유로울 때 가장 행복하다’는 컬렉션 구호가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한 결과였다.

쇼파드는 1993년에 해피 다이아몬드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해피 스포트 Happy Sport ’ 컬렉션을 내놓아 또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해피 스포트는 쇼파드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컬렉션이다. 다이아몬드가 다이얼 내부를 유영하는 건 해피 다이아몬드와 같지만, 여성 시계 최초로 스틸과 다이아몬드를 결합해 현대적이고 다이내믹한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올해는 해피 스포트 20주년을 기념해 ‘해피 스포트 미디엄 오토 매틱 Happy Sport Medium Automatic’을 내놓아 다시 한번 시계마니아들의 관심을 끌었다. 해피 비치 Happy Beach , 해피 스피릿 Happy Spirit, 해피 미키 Happy Mickey 등으로 꾸준히 해피 시리즈의 인기를 이어가던 쇼파드는 이 시리즈에 기계식 무브먼트를 이식함으로써 또 다른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피 시리즈가 여심을 흔들었다면 밀레 밀리아는 남심을 동하게 만들었다. 이 컬렉션은 1927년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의 자동차 경주에서 이름을 따왔다. 때문에 외관 디자인부터가 자동차를 연상시킨다. 자동차 계기판을 닮은 다이얼은 물론, 크라운 같은 세부 디자인에서도 와일드한 자동차 부품의 질감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특히 2012년형, 2013년형 GMT 크로노 버전 밀레 밀리아는 마초적인 디자인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밀레 밀리아는 카를 슈펠레(현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누이 카롤리네 슈펠레 Caroline Scheufele 와 함께 현재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카를-프리드리히 슈펠레 Karl-Friedrich Scheufele의 작품이다. 밀레 밀리아는 광적인 자동차 마니아인 카를 프리드리히 슈펠레의 취향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강한 무브먼트와 견고한 외관을 1988년 론칭 때부터 꾸준히 채택해왔다. 스포티한 디자인과 자동차 타이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러버 밴드가 특징이다.

쇼파드는 여러 컬렉션의 성공적인 론칭과 함께 외형적인 성장도 이뤄냈다. 현재 매뉴팩처는 1996년 1월에 설립된 쇼파드 플러리에 Fleurier 를 사용하고 있다. 이 매뉴팩처에는 100명 이상의 장인들이 소속되어 있다. 설립 당시에는 2명의 장인만이 등록돼 있었다. 이 매뉴팩처는 그간 흩어져 있던 쇼파드의 기술적 역량이 결집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쇼파드 시계 기술의 정수인 L.U.C. 무브먼트도 이곳에서 개발됐다. L.U.C.는 창립자인 루이 율리스 쇼파드의 이니셜이다. ISO 9001를 포함한 2,000여 개의 인증서 및 퀄리테 플러리에 Qualite′ Fleurier 설립 등이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퀄리테 플러리에는 플러리에 지역에 기반을 둔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들의 품질 인증 시스템 조직이다.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던 쇼파드가 완전히 부활해 시계브랜드로서 절정을 맞고 있다. 한 해에만 L.U.C. 무브먼트 3,000여 개, 완성시계 2만5,000여 개를 생산한다. 클래식과 소프트 스포츠 시계들 간의 조화도 경이롭다. 여성과 남성, 기술과 디자인, 기계식과 쿼츠 등 보통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모든 시계 부문에서 최상의 시계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관련기사



FORTUNE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