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경제가 심상치 않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인도가 성장딜레마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그는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소비시장 급랭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부혁 기자 yoo@hmgp.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미국의 양적 완화 출구전략이 현실화 되면 그것을 버텨 낼지가 관건이 됩니다.” 서울 시내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은 인도경제 위기의 분수령이 미국 출구전략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인도 경제는 지난 10여 년 동안 훈풍이 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바람이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도경제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심지어 외환위기가 올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도 경제의 성장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국내외 경제연구소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세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오 회장은 “경제가 성장하면 언제나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예를 들어 과잉 투자가 그렇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초기에 일자리를 원했던 근로자들이 점점 좋은 대우를 요구한다. 이런 전환기를 통해 고정투자 비용이 높아지면서 위기가 찾아온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경제구조 변화 과정에서 금융위기를 겪었다. 인도뿐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이른바 신흥국들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이런 과정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오 회장은 인도 위기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견해도 밝혔다. 그는 “자생력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 인도 경제의 문제”라면서 “제조업이 강한 것도 아니고 산업 인프라나 물류가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그리고 인도 경제의 핵심은 해외 직접 투자다. 하지만 2013년 3월 인도 정부가 해외투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면서 해외직접투자가 급감해 버렸다”고 설명했다. 과세 강화만이 해외 직접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은 아니었다. 오 회장은 “외국인 투자자의 입장에선 채권투자 수익이 낮고 주식도 하락하고 환차손까지 발생하니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인도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실제) 영업이익이 나더라도 환차손으로 인해 오히려 영업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한마디로 투자자들이 자본이득을 볼 수 없는 환경이 지금 인도에 있어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인도가 해외투자에 대한 과세까지 한 내부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오 회장의 설명은 이어졌다.“지출은 많고 돈은 없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인도 정부는 부정부패로 인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함께 보조금 지급 등 지출규모가 크다. 게다가 현재 쌍둥이 적자(무역수지와 재정수지 적자)도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고 금리까지 올려놨으니…. 라잔 인도중앙은행 총재의 역할이 막중해졌다.”
라구람 라잔 인도중앙은행(RBI) 총재는 인도 정부가 경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임명한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스타 경제학자다. 오 회장은 “그는 IMF 최연소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면서 국제 금융무대에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또 미국의 금융위기를 가장 정확하게 분석한 인물로 기억한다. 내가 만나본 바로는 성장 딜레마에 빠진 인도 경제에 긴축규제 정책을 쓰진 않을 것이다. 또 라잔 총재의 인맥과 명성이라면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보단 국제금융외교를 통해 지금의 상황을 풀어보고자 노력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오정근 회장은 인도 정부가 미국 출구전략 대비책으로 “우선 외환보유액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도중앙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인도의 외환보유고는 2,600만 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오 회장은 “유동 외채만 해도 2,720억 달러로 현 외환보유고인 2,600억 달러보다 많다. 게다가 인도는 순수입 국가다.
연료 같은 꼭 필수 수입품의 3개월치가 1,500억 달러니 외환위기설이 나올 수밖에 없다. 환율 방어를 적극적으로 하기에도 모자란 액수다”라고 말했다. 루피화 가격은 계속 하락하다 최근 라잔 인도중앙은행 총재 취임 후 하락세가 잠시 주춤해졌다. 연초에 달러당 54루피였지만 9월 들어 달러당 67루피까지 화폐 가치가 떨어졌다. 오 회장은 “결국엔 70루피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인도는 내년 5월에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경제, 사회적 중요 이슈이자 또 하나의 경기 분수령이 될 총선에 대해 오정근 회장은 “추진력이 약한 연립정부가 막을 내리고 단독 정부가 들어서면 정책 추진력에 탄력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우선 긍정적인 점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난 인도 총선을 볼 때 이번에도 지나친 포퓰리즘이 판칠 우려가 있다. 그로 인해 재정지출이 마구 늘어나면 재정수지가 더 악화될 소지가 있다. 결론적으로 총선은 경제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인도의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나 투자자들은 어떤 점에 특히 유의해야 하는지 물었다. 오 회장은 “인도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영 여건이 단시간에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12억 소비시장이라고 넋 놓고 있으면 큰일 난다. 앞으로 수요급감에 대비해야 한다”고 국내 기업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그는 또 “해외 시장에서 거둬들인 영업이익을 단시간에 상쇄시켜 기업 이윤을 마이너스로 만드는 게 환율”이라고 강조한 뒤 “무엇보다 우리 기업들이 현지에서 경영 환경 개선에 필요한 중요한 한가지를 잊고 있어 안타깝다. 우리 기업들은 기계, 시설 인프라 등 제조 여건 개선을 위한 투자 규모에 비해 경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비용은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환율 전문가를 고용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격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선 환율 전문가를 고용해 리스크에 꼭 대비해야 한다. 인도에 진출한 기업이 영업이익 10%를 냈다고 하더라고 떨어진 루피화 가치(올 초와 비교해 15%)를 적용하면 마이너스가 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개인 투자자들에겐 “포트폴리오 시장에 투자하는 것이 환차익에 대비하는 좋은 방법”이라며 “하지만 신흥국 펀드 투자에는 앞으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는 원유 등 소비재에 대한 펀드 투자에 주의하라는 것이다. 정부부채와 신용등급, 경기둔화 등 악재가 겹친 만큼 신흥국 리스크가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오정근 회장은 “인도의 우선 과제는 미 출구전략을 피해 자본시장의 이탈을 막는 것”이라며 “그 밖에 유럽이 회복조짐을 보인다 할지라도 인도를 구사회생시킬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오 회장은 인도경제의 현 사태가 대내외적으로 오랫동안 문제들이 누적되어 발생한 만큼 단기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금융학회는 …
지난 2012년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태국 5개국 국제금융학자들이 모여 만든 국제학회다. 현재 200여 명 정도의 다양한 금융전공 교수들이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주로 동아시아 통화금융 관련 아젠다를 논의하며 각 국의 정책적 협력방안을 연구,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