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들어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박근혜 정부는 정책적 화두로 ‘창조경제’를 제시하며 그 핵심이 중소·벤처기업의 올바른 육성에 있음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중소기업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특정 문제에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경영활동 전반에 관심을 기울이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문제 해결 방식 역시 스마트해졌다.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박철규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 이사장을 만나 최근 중소기업 이슈에 대한 이사장의 생각을 들어봤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Q 글로벌 불황의 여파로 일부 대기업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데, 중소기업들의 현재 자금 운용 상황은 어떻습니까?
중진공에서 하고 있는 업무 중 ‘정책중개 시스템’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름과 같이 중소기업들이 겪고 있는 문제나 애로사항 등을 정부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입니다. 2011년부터 올해 8월까지 총 3,913건의 애로사항이 접수됐는데 이 중 1,054건이 금융관련 문제였습니다. 전체 애로사항 중 1위로 27% 비율을 차지했죠. 4개 애로사항 가운데 1개는 자금 문제라는 말이죠. 중진공에서는 이 같은 중소기업 자금난 해소를 위해 하반기 정책자금 1조1,500억 원을 증액했습니다. 직접대출 및 신용대출, 소상공인 대출의 폭을 넓혀 중소기업 자금지원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죠. 특허권을 담보로 자금을 지원하는 ‘특허담보 대출’ 등도 신설해 자금운용의 융통성을 키웠습니다.
중진공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자금 규모는 적정한 수준입니까?
우리나라 전체 중소기업 금융이 450조 원 정도 됩니다. 이 중 거의 대부분을 커머셜뱅크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시중에 풀린 중진공 정책자금 잔액은 현재 약 15조 원 정도입니다. 중소기업 정책자금은 중소기업에 흘러 들어가 상환기간이 되기 전까지 시중에 남아 있게 되는데 이 금액이 15조 원으로 전체 중소기업 금융의 3.3~3.5%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 물량으로만 따진다면 현재 중소기업 금융이나 중소기업 지원 정책자금 규모는 꽤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자금난에 처한 중소기업이 실제 쓸 수 있는 금융 규모가 어느 정도냐 하는 거죠. 시중에 자금은 많지만 정작 어려운 상황에 처한 기업들이 쓸 수 있는 금융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중진공에서는 기업의 신용등급이 너무 낮거나 혹은 담보가 없어 시중 금융권에서 대출이 안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대출을 해 주고 있습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김제남 의원(정의당)이 국감 자료를 통해 중소기업 정책자금이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실채권액이 1,592억 원, 부실률이 3.6%였습니다. 평년 기준보다 조금씩 높았죠. 하지만 이는 착시효과 때문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중소기업 대출자금이 급격히 늘어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5조9,000억 원을 풀었는데 이는 중진공 역사상 최대 금액이었죠. 이때 대출했던 자금의 만기가 지난해에 돌아왔습니다. 금액 규모도 컸던 데다가 당시 상황이 어려웠던 만큼 부실채권금액이나 부실률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현재는 예전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습니다.
중진공의 역할과 부실률 관리가 정책적으로 충돌할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시죠.
중소기업 정책자금은 저희가 채권을 발행해 마련한 재원을 바탕으로 금융지원이 필요한 중소기업에게 조달금리 혹은 그보다 낮은 금리로 융자해주는 자금을 말합니다. 금리 차액에 대해서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요. 정책자금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 적정결손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가 대출해 주는 기업들 대부분이 정상적인 금융 대출을 받기 힘든 곳이거든요. 저희가 해주는 대출의 70% 이상이 신용대출입니다. 당연히 시중 금융권보다는 부실률이 높을 수밖에 없죠.
지난해 부실채권금액이나 부실률이 상대적으로 좀 늘긴 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대출 금액 상환이 일시에 몰리는 등의) 특정 이벤트를 제외한다면 대출 부실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재도 관리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이고요. 적정 부실이 나는 경우 정부보조를 받아야 하는데 정부 재정 사정 때문에 이를 못 받고 있는 것도 부실 문제가 좀 더 도드라져 보였던 원인인 것 같습니다.
부실률 관리는 특히 중진공의 역할과 맞물려 있는 문제라 균형을 맞추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 부실률이 시중 금융권처럼 적게 난다면 중소기업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의 역할을 못하는 것이고, 부실률이 너무 높으면 리스크 관리가 안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저희도 부실률이 낮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당장 중소기업 현장에 돈이 안 흘러가요. 따라서 어느 정도 부실은 불가피합니다.
중소기업들은 자금난도 문제지만 인력난도 큰 문제입니다. 사회에서는 구직자들의 취업난이 연일 화두이지만 정작 중소기업에서는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어 대비됩니다.
중진공에서는 취업난과 인력난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만·늘·지’ 활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만·늘·지는 일자리를 만들고 늘리고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사업을 확대 추진하는 게 골자입니다. 이외에도 새로 인력을 채용하는 중소기업에 금융이자를 깎아주고, 구직자들에겐 알짜 중소기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취업 선택의 폭을 중소기업까지 넓히게 하는 활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소기업 인식개선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구직자들에게 ‘중소기업도 일하기 괜찮은 곳이구나, 좋은 곳도 많구나’ 하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죠. 그동안 중소기업 인력난을 제도적으로만 해결하려 했는데 이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은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이들이 중소기업에 취직할 수 있도록 돕는 실제 액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구직자들의 중소기업 인식 개선을 위한 구체적 활동들을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중진공이 지난해부터 주력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로 스마일스토리지 사업이란 게 있습니다. 구직자들에게 알짜 중소기업을 제대로 알려주자는 게 핵심입니다. 중소기업들도 찾아보면 좋은 기업들이 많거든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죠. 이들 기업이 겪고 있는 문제 중 제일 큰 게 고급인력들이 안 들어온다는 거예요. 생산라인 인력이야 외국인 노동자들을 채용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데 기획, 마케팅, 재무, 회계 등 경영활동에 필요한 인력들을 구하기가 어려운 거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이들 고급인력의 수급이 꼭 필요한데 말이죠.
스마일스토리지 사업은 알짜 중소기업을 구직자들에게 소개해 주는 사업입니다. 주로 대학생들의 시선에서 맞춰서요. 각종 취업 사이트들에서는 전부 공급자 위주의 정보인 회사 설립연도, 생산품목, 대표자명 등으로만 기업을 설명하다 보니 실제 구직자들은 이 기업이 내가 갈만한 기업인지 아닌지에 대해 잘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스마일스토리지 사업에서는 선별된 알짜 중소기업에 대학생 기자들을 직접 보내 실제로 보고 오게 합니다. 비전이나 발전 가능성, 복지 수준, 근무환경 등을 직접 보면 적어도 찾아간 중소기업에 한해서는 인식이 바뀔 것 아닙니까? 이들이 또 다른 친구들한테 이야기하고 해서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뀔 수 있게 하는 거죠. 지난해 503개 업체를 대상으로 했는데 올해는 1,004개로 확대할 생각입니다. 이른바 ‘1004 프로젝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는 중소·벤처기업의 육성이 핵심’이라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해왔습니다. 정부정책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중진공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까?
저 역시 창조경제의 주역은 중소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경제라는 게 창조와 혁신, 융합이 핵심 아닙니까? 특히 신규 중소기업들은 창업과 동시에 창조를 경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중소기업들은 리스크를 감내하는 것에도 익숙합니다. 혁신에는 리스크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게다가 의사결정도 빠릅니다. 대기업은 덩치가 크기 때문에 그러기가 쉽지 않죠. 보수적인 경향도 있고요. 또 대기업에서는 직원이 입사와 동시에 한 분야에 구속돼 넓게 보질 못하지만 중소기업의 직원들이나 CEO는 처음부터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을 요구 받기 때문에 융합에서도 장점을 가지고 있죠. 중진공에서는 창업 열기를 다시 꽃피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해왔던 사업들의 상당수도 이와 관련된 것들이 많았죠. 2년 전부터 해 온 청년창업사관학교 운영이나 청년전용창업자금 지원 등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중소기업들 간 융합 사업 지원도 해오고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이 서로 기술 아이디어를 교환해 새로운 융합거리를 발견하고 사업화하면 필요한 지원을 해줍니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 동반성장 등도 이슈입니다. 긍정적인 평가도 많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근 나타난 대·중소기업 간 갑을 관계 갈등사례 등이 이런 지적에 무게를 실어 줍니다. 이들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를 적대관계나 상충관계로 볼 시기는 지났다고 봅니다. 전체 산업생태계의 관점에서 봐야 올바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갑을 관계 문제는 남양유업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주목 받게 된 건데 당시 사건은 관련 업무 담당자가 코앞의 실적을 채우느라 유발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 기업들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업 CEO들이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가 있더라도 실제 을 회사들과 접촉하는 직원의 입장에선 당장의 실적이 더 신경 쓰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밖으로 드러나는 상생퍼포먼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대기업들의 업무실적평가 지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생이나 동반성장 관련해서도 실적 점수를 줬다면 남양유업 사태 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상생 관련 정책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또 어떤 정책들이 추가로 필요할까요?
이슈화된 몇몇 문제들은 지금 시스템 내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 인력 빼앗기, 거래선 끊기 등은 당장에 공정거래법만 엄격히 시행해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현재가 제일 좋다는 건 아닙니다. 필요한 것들은 제도적으로 규제를 추가할 필요도 있습니다. 최근 납품단가조정권 등의 시행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부작용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저는 이런 규제들이 그동안 일부 대기업들이 너무 지나쳤기 때문에 생겨난 반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교정됐어야 할 문제인데, 기업 생태계 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가 사회문제로 발전한 이상 법적인 강제성을 빌리더라도 시행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대기업의 자세변화와 정부 정책 등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결국 중소기업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중소기업들도 끊임없이 혁신해야 합니다. 특히 요구되는 건 경영능력의 향상입니다. 우리 중소기업들을 살펴보면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 기업이 다 성공하는 건 아니에요. 재무관리와 마케팅 등이 안되는 거죠. ▲자본 ▲인력 ▲기술 ▲판로가 중소기업의 생존과 성공을 위한 네 가지 기본 조건인데 우리 중소기업들은 기술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소기업인들에게 기술만능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특히 기술자 출신 중소기업 CEO들은 기업 운영에 실패해 놓고 자기가 왜 실패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이렇게 뛰어난 기술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었는데 왜 내 물건을 사지 않느냐 이거죠. 시장의 반응을 꾸준히 관찰하고 니즈를 파악하고 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을 소홀히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재도전을 해도 또 실패합니다.
이 문제는 여러모로 복합적입니다. 중진공 애로사항 접수에서는 금융 문제가 1위를 차지했지만 다른 설문을 보면 마케팅이 1위를 차지한 조사들도 있어요. 실제 회사 경영에 대한 실무 지원들이 많이 필요했던 거죠. 중진공에서도 얼마 전부턴 이런 부분에 좀 더 집중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소기업 현장을 보면 CEO 혼자서 재무, 회계, 마케팅 등 1인5역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당연히 자기가 모르던 분야에 대해선 소홀해질 수밖에요. 고급인력의 수급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들 중소기업에 마케팅 또는 재무·회계와 관련한 고급 인력이 뒷받침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앞서 말한 1004 프로젝트는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까? 또 중진공 역할 중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중소기업이나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인식개선 활동이 좀 더 일찍 이뤄지지 못했던 점이 아쉽습니다. 지난해부터 소비자단체와 손잡고 중소기업 제품을 대기업 제품이나 수입 제품과 비교해 품질 결과를 발표하는 ‘스마트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는데, 중소기업 제품의 품질도 대기업 제품 못지않다는 것을 소비자들한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중소기업 자체에 대한 인식개선 활동은 앞서 말한 1004 프로젝트가 대표적이고요. 이런 활동이 좀 더 일렀더라면 중소기업 제품들도 지금보다 더 인정받았을 것이고 중소기업 인력난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또 그동안 중소기업 지원이 금융 분야에 치우쳐 있었던 점도 아쉽습니다. 실제 중소기업들의 성공 사례나 실패 사례들을 살펴보면 마케팅과 인력 문제가 컸거든요. 그런데도 과거에는 이런 문제들을 소홀히 하고 금융 문제 해결에만 매달린 측면이 있습니다. 시기가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런 부분을 보완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스마트하게 진행해 나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