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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이 쏘아올린 무인기

잠수함 + 드론 = 잠수 항공모함

잠수함은 탁월한 기밀성과 은닉성을 바탕으로 현대 해전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잠수함이 전쟁 전체의 승패를 결정짓게 될 지도 모른다. 미래의 잠수함은 함내에 공격형 무인기를 탑재, 해전은 물론 지상전과 공중전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잠수함에 드론이 웬 말이냐고? 최근 미 해군이 잠수함에서 소형 무인기를 수중 발사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향후 잠수함의 무인기 운용이 보편화된다면 전쟁의 양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것이다.


초기의 무인기가 단순 정찰·감시 임무를 시작으로 자체 공격능력을 갖춘 무인공격기로 거듭났듯이 XFC UAS 또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진화가 이뤄질 것이다.

작년 12월 5일 바다 속의 스나이퍼, 심해의 게릴라라고 불리는 잠수함의 미래를 바꿔놓을 혁신적 사건이 일어났다. 미 해군이 잠수함에서 소형 무인기를 발사하는 실험에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잠수함을 수면 위로 부상시킨 상태가 아닌 수중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듯 무인기를 쏘아 올렸다.

무인기 운용의 패러다임 전환

이번 실험은 미 해군연구국(ONR)과 펜타곤 산하 방어·신속대응기술국(DoD/RRTO)이 자금을 지원하는 ‘실험용 연료전지 무인항공 시스템(XFC UA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무인기는 로스엔젤리스급 원자력 잠수함 USS 프로비던스(SSN-719)호의 어뢰 발사관에서 ‘시 로빈(Sea Robin)’이라는 시스템에 의해 발사됐는데 오셔니어링 인터내셔널이 개발한 시로빈은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 캐니스터에 맞춰 설계된 XFC UAS 발사시스템이다. 무인기를 바닷물과 수압으로부터 지켜주는 캡슐이자 수면까지 이동시켜주는 부스터의 역할을 수행한다. 쉽게 말해 어뢰발사관에서 분출된 캡슐이 수면에 도달한 뒤 캡슐 속 무인기가 분리되는 메커니즘이다.

프로젝트 코디네이터인 미 해군연구소(NRL)의 워렌 슐츠는 “NRL과 관련업계가 6년여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해군 특수전 부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혁신 기술을 개발했다”며 “오늘의 성공은 무인기 추진·발사시스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자평했다.

NRL의 발표에 따르면 실험에 사용된 XFC UAS는 NRL의 화학 및 전술 전자전 부서가 개발한 1회용 장기체공 정보·감시·정찰용(ISR) 무인기로 자율비행이 가능하며, 연료전지를 통해 모든 동력을 제공받는다.

특히 시 로빈의 캡슐에 수납이 용이하도록 가위처럼 접을 수 있는 X자형 날개를 채택했다. 캡슐과 분리되는 순간 X자로 날개가 펴지면서 양력을 제공하게 된다. 비행시간은 6시간 정도며, 전기로 구동되는 만큼 소음과 열 발생이 적어 은밀한 운용이
가능하다는 게 NRL의 설명이다. 다만 화물탑재량과 체공 시간이 기존 무인기보다 뒤처지기 때문에 향후 수소연료전지를 채용, 이 문제를 극복할 계획이다.

이날 XFC UAS는 수시간 동안 성공적으로 비행하면서 동영상을 촬영해 잠수함과 수상지원함, 노퍽 해군기지 등에 전송했으며 예정된 정찰비행을 마치고 바하마 제도에 위치한 해군시스템사령부(NAVSEA) 대서양 수중시험평가센터(AUTEC)에 안착·회수됐다.





잠수 항공모함의 효시

향후 XFC UAS가 상용화돼 실전 배치된다면 잠수함의 작전능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다. 무인기의 성능에 따라 수중을 넘어 해상, 지상, 공중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전방위 공격능력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XFC UAS는 공격능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지만 초기단계의 무인기가 단순 정찰·감시 임무를 시작으로 지금은 자체 공격능력을 갖춘 무인공격기로 거듭났듯이 XFC UAS 또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진화가 이뤄질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이때는 육해공을 아우르는 잠수함전이 미래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

사실 잠수함에서의 항공기 운용 시도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 와중에 잠수함과 항공모함을 융합한 이른바 ‘잠수 항공모함(submarine aircraft carrier)’이라는 개념이 대두되기도 했다.

최초의 잠수 항공모함 출현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인 1914년 독일이 SM U-12 잠수함에 FF-29 수상기를 탑재, 발진시키는 데 성공한 것.

다만 이 시도는 요즘의 시각에서 볼 때 지극히 원시적이었다. SM U-12에는 항공기 격납시설이 없어 FF-29를 잠수함의 갑판 위, 즉 함외에 올려놓고 항해하는 구조였던 것. 때문에 항공기와 함께 잠항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항해 중 잠항해야 하거나 큰 폭풍을 만나면 항공기를 버려야만 했다. 사출시스템도 구비되지 않아 항공기는 철저히 자체 동력만으로 이함해야 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원시적인 시스템을 가지고도 이 잠수함은 1914년 12월 25일 영국 런던의 기습 폭격에 성공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영국이 1916년 4월 HMS E22 잠수함에 솝위드 슈나이더 수상기 2대를 탑재, 해상 운용 시험을 했지만 실용화에는 이르지 못한 채 1차 대전 종전을 맞았다.


이후 전 세계 군사 강대국들은 독일과 영국의 시도에 주목했다. 잠수함의 기도비닉 능력과 항공기의 신속 타격 능력을 결합한 잠수항공모함은 적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기습 공격을 감행해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할 필살의 무기로 본 것이다. 그래서 1차 대전 이후 2차 대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잠수 항공모함 개발과 건조붐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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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만 42척 건조

이중 미국, 이탈리아, 영국은 프로토타입을 개발해냈으나 실전배치 하지는 않은 반면 프랑스와 일본은 끝내 실용화에 성공했다. 프랑스 해군의 경우 1934년 ‘쉬르쿠프’호를 취역시켰고, 미국을 가상의 적으로 삼고 있었던 일본은 기습에 용이한 잠수 항공모함의 개념에 병적일 정도로 집착해 1938년 I-8을 시작으로 무려 42척의 잠수 항공모함을 건조했다.

단 1척을 제외하면 모두가 제대로 된 격납고와 사출장치를 갖춘 실질적 잠수 항공모함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으며, 3대의 항공기 탑재 능력을 지닌 배수량 6,670톤의 당대 세계 최대 규모 잠수함인 I-400급 모델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은 잠수 항공모함의 운용에서 다른 국가들과는 차별화된 전략을 가졌다. 여타 국가들이 주로 정찰과 연락, 관측 등의 비전투 임무로 함재기를 운용할 생각이었던데 반해 일본은 폭격 등의 전투 임무로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었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한 I-400급에 실린 M6A1 세이란 수상기만 해도 800㎏의 폭탄 탑재가 가능했으며,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일본은 I-400급 잠수 항공모함 3척을 동원해 파나마 운하를 폭격할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 같은 잠수 항공모함 개발 붐은 2차 대전 종전 후 급격히 사그라졌다. 제트 엔진 항공기 시대가 도래하면서 잠수함에 격납하기 버거울 정도로 함재기의 덩치가 커진데다 장거리 미사일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굳이 유인기를 운용하지 않아도 목표물 타격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수함과 항공기의 만남은 끝이 나는 듯 보였다.





코모란트 프로젝트

하지만 꺼질 뻔 했던 불씨는 무인기의 등장으로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유인기 운용의 위험부담, 적은 수의 함재기 탑재 능력 등 과거 잠수 항공모함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문제들이 무인기 운용을 통해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일례로 무인기는 유인기 대비 크기가 작아 많은 수를 함내에 탑재할 수 있다. 로스앤젤리스급 잠수함이라면 어뢰발사관 4기와 수직발사관 12기가 있어 최대 16대의 무인기를 동시에 발사할 수 있다.

또한 무인기는 인명피해 발생의 우려가 전혀 없으며, 상호 네트워킹을 통한 편대 임무수행이나 비행경로를 사전 설정해 반(半) 자율비행으로 임무에 투입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6년 미국 록히드마틴이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지원을 받아 실제로 잠수함 탑재무인기의 개발에 뛰어든 바 있다. ‘코모란트(cormorant)’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U-2와 블랙버드 정찰기를 개발해낸 록히드마틴의 비밀실험실에서 주도했는데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의 핵발사관을 통해 수중 45m에서 발사돼 적진을 정찰하거나 목표물을 파괴하는 공격형 무인기의 개발이 목표였다.

이후 연구팀은 티타늄 동체의 접이식 날개를 지닌 4톤짜리 비행체를 그 해결책으로 내놓고 프로토타입 모델을 개발해냈다. 발사시스템은 미사일이나 XFC UAS처럼 캡슐에 넣어 쏘아 올리지 않고, 별도의 도킹선과 함께 천천히 수면으로 부상한 뒤 잠수함이 현장을 빠져나가면 엔진을 점화해 적진으로 날아가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갑작스런 무인기의 출현으로 잠수함의 존재가 발각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연구는 1년만에 중단됐다. 발사시스템, 회수시스템 등 기초 단계의 연구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2007년 DARPA의 예산 삭감으로 자금지원이 끊기면서 프로젝트가 사실상 폐기되는 운명을 맞은 것이다.

이를 감안할 때 이번 XFC UAS 프로젝트는 어떤 면에서 코모란트 프로젝트의 부활이라고 해도 지나친 허언은 아니다.

미 해군은 XFC UAS 실험 성공으로 인해 장차 미군 잠수함들이 엄청난 ISR 능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미군은 현재 잠수함 내부에 탑재하거나 외부 선체에 결착시킨 채 다니다가 필요시 수중에서 발사, 다양한 군사적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소형 무인잠수정(UUV) 개발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무인기에 더해 무인잠수정까지 더해진 미래의 잠수함은 가히 난공불락의 해상 요새로 떠오를 것이다.

UUV Unmanned Undersea Vehicle의 약자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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