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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비 초음속 비즈니스 제트기

BEYOND THE BOOM<br>콩코드가 이루지 못한 초음속 여행 전성시대를 열기 위한 한 기업의 야심찬 도전





2003년 10월의 어느 날 오후. 콩코드 여객기 1대가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을 뚫고 고도를 낮추더니 런던 히드로 공항에 안착했다. 100명의 승객을 싣고 뉴욕 JFK 공항을 이륙한 지 불과 3시간 30분 만에 런던에 도착한 것이었다.


콩코드 여객기는 1976년부터 이날까지 수천 명의 승객들에게 초음속 비행의 진가를 선사해왔지만 이번 비행은 의미가 달랐다. 콩코드의 마지막 상업 비행이었기 때문이다. 이날의 해가 저물면서 콩코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초음속 여객 수송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그리고 여전히 다시 시작되지 않고 있다.

콩코드의 퇴역을 말할 때 사람들은 지난 2000년 프랑스 파리의 샤를드골국제공항에서 이륙 직후 추락해 113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고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사고가 아니었어도 콩코드는 성공적인 작품으로 보기에는 많은 허점이 있었던 여객기였다.

예컨대 콩코드는 미국 본토와 유럽 일부 지역의 상공에서는 초음속 비행이 제한됐다. 천지를 뒤흔드는 소닉붐 때문이었다. 또한 콩코드 여객기의 상징이었던 델타(Δ)형 날개는 저속에서 충분한 양력 생성이 어려웠다. 그래서 설계자들은 거대한데다가 막대한 연료를 잡아먹는 후기연소기부착형 터보제트 엔진을 4기나 채용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를 놓고 미국 네바다주 리노에 위치한 첨단항공기업 아에리온(Aerion)의 더그 니콜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말했다.

“콩코드는 당대 공학 기술의 결정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만한 성능을 얻기 위해 포기한 부분도 있었어요. 불과 100명의 승객을 태우고 비교적 짧은 거리를 비행하는데도 연료소비량이 엄청났던 겁니다. 상업용 항공기의 기준으로 보면 결코 성공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항공업계는 콩코드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 그동안 보잉, 닷소, 걸프스트림 등 유명 항공기업들이 초음속 항공기 프로젝트를 추진했었지만 실제로 항공기를 완성해 띄운 적은 없다. 조용히 미 연방항공청(FAA)과 민간항공기구들이 소닉붐 관련 규정을 개정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아에리온의 경우 오는 2021년 첫 인도를 목표로 초음속 비즈니스 제트기(SBJ)를 개발 중이다. 초음속 비행 능력과 우수한 연비를 겸비한 차세대 SBJ를 통해 규제당국과 고객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목표다.



초음속 비행과 관련된 난제들은 단적으로 보면 매우 기본적인 공기역학의 문제, 즉 항공기 동체 주변의 공기가 어떻게 흐르는 지로 모아진다.

실제로 초음속 항공기의 연비가 나쁜 이유는 이렇다. 항공기가 하늘로 떠오르기 위해 필요한 양력은 주 날개의 위아래로 흐르는 공기에 의해 생성되는데 이 공기는 동체와 부딪치면서 마찰에 의한 항력도 함께 발생시킨다. 그리고 항공기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항력도 커진다. 초음속 항공기는 일반 항공기에 비해 앞으로 나아가기가 더 어렵다는 얘기다. 이는 곧 동일한 거리를 비행할 때 더 많은 연료를 소모해야한다는 뜻과도 같다.

이외에도 항공기가 음속에 근접해갈수록 공기의 흐름 제어는 모든 면에서 더욱 어려워진다. 또 속도가 마하 1을 돌파하는 순간 초음속 항공기의 최대 아킬레스건 중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소닉붐이다.

사람들은 소닉붐이 음속 돌파 순간에 단 한 번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항공기가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내내 발생한다. 지상의 개인들은 항공기가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갈 때에만 잠시 소닉붐을 듣는 것뿐이다. 항공기로부터 최대 반경 40㎞ 내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소리의 크기도 엄청나다.

그런 만큼 오늘날 여러 항공 관련 기관들이 상업용 항공기의 소닉붐을 규제하고 있다. 항공분야 국제표준과 정책을 결정하는 UN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항공기가 지상에서 감지할 수 있는 소닉붐을 일으켜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FAA는 미 대륙 상공에서 항공기의 초음속 비행 자체를 금하고 있다.

앞으로 이들 기관이 소닉붐의 계량화된 소음 기준을 마련, 무조건적인 규제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콩코드는 이러한 규제에서 자유로운 공해상에서만 초음속 비행을 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그러나 초음속 항공기가 상업적 유용성을 지니려면 모든 곳에서 초음속 비행이 가능해야한다. 때문에 많은 엔지니어들이 현재 소닉붐의 강도를 낮출 비책을 찾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노스롭 그루먼, 펜타곤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이미 소‘ 닉붐 실증(SSBD)’프로그램을 통해 소닉붐 소리를 대폭 줄인 실증기를 만들어 시험비행을 수행한 바 있으며, 걸프스트림도 NASA와의 공동연구를 거쳐 소닉붐 저감기술인 ‘콰이어트 스파이크(Quiet Spike)’를 개발해냈다. 콰이어트 스파이크는 굵기가 조금씩 얇아지는 뾰족한 다단식 막대를 항공기의 맨 앞에 부착, 충격파의 크기를 줄이는 기법이다.

그런데 아에리온의 테스트 매니저인 제이슨 마티셰크는 이런 방식이 소음 개선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연비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소닉붐을 줄이려고 동체를 변형시키면 최악의 공기역학 설계가 적용된 항공기 보다 더 많은 항력을 받습니다.”

그래서 아에리온은 이들과는 전혀 다른 설계 철학을 정립했다. 소닉붐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대신 세상에서 가장 연비가 뛰어난 초음속 항공기를 개발한다는 게 그것이다.




이 목표를 현실화하고자 아에리온은 과거의 항공기 설계자들이 너무나도 다루기 힘겨워했던 유형의 공기 흐름을 이용하고 있다. 다름 아닌 ‘층류(層流,laminar flow)’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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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와 항공기의 동체 사이에는 경계층(boundary layer)이라 불리는 얇은 공기층이 생성된다. 층류는 이 경계층이 흔들림 없이 동체 주변을 깔끔하고 부드럽게 흘러갈 때를 지칭하는데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층류가 많을수록 공기역학성이 높아져 연비 향상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대다수 항공기의 경우 경계층이 난기류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 이때는 항력이 높아져 연비 저하가 초래된다.

1970년대 공학자들은 ‘자연 층류(NLF)’를 철저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에리온의 리처드 트레이시 최고기술경영자(CTO)나 넥스트젠 에어로사이언스의 설립자 겸 CEO인 브루스 홈즈, 그리고 NASA의 연구자들은 많은 실험을 거쳐 항공기 부품의 디자인을 바꿔서 NFL의 이점을 더 많이 누릴 수 있음을 알아냈다.

이후 보잉, 닷소, 에어버스 등의 유명 항공기 제작사들도 NFL 연구에 뛰어들었고, NFL로 얻을 수 있는 메리트의 한계치를 파악하는 동시에 관련기술들을 항공기 설계에 적용했다. 아에리온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초음속 비행의 연비 향상을 위해 NFL을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삼은 첫 번째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이 회사의 공기역학 엔지니어들은 지금껏 주날개의 배치와 동체 및 엔진의 형상 등을 개선함으로써 SBJ 동체 표면 중 거의 60%의 면적에 흐르는 NFL을 최적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휘어지지 않은 직선형 날개를 채용하고도 초음속 비행 시 충분한 연비 향상이 이뤄졌다. 홈즈 CEO는 이를 아에리온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이라 말한다.

콩코드를 위시한 다른 초음속 항공기들이 꼬리를 향해 날카롭게 꺾어진 델타형 날개를 채택한 것과 달리 아에리온 SBJ의 주 날개는 동체와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를 이룬다.

“델타형 날개는 초음속 비행에는 최적화된 설계지만 아음속 비행 시의 연비는 최악입니다. 그에 반해 직선형 날개는 한층 뛰어난 연비를 제공하죠.”

그동안 아에리온은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축소모델을 활용한 풍동시험을 수행하면서 SBJ의 설계를 다듬었다. 에어포일을 F-15 전투기에 부착한 채 캘리포니아주 상공에서 공기역학 성능 테스트도 마쳤다.

이렇게 탄생하게 될 아에리온의 SBJ는 초음속과 아음속 모두에서 높은 연비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공해상 비행속도는 마하 1.4(시속 1,700㎞)로 뉴욕과 런던을 4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다.

소닉붐을 일으키기 때문에 미 대륙 상공에선 마하 0.98의 속도로 비행하겠지만 이 정도로도 일반 비즈니스 제트기와 비교해 미 대륙횡단 비행시간이 1시간 이상 단축된다. 해상에서는 초음속 비행이 가능하므로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노선이라면 더 많은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아에리온은 오는 2021년 첫 SBJ를 고객에게 인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5만 달러의 예약금을 지불하고 인도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고객만 이미 50여명이나 된다. 전문가들은 이때쯤 ICAO가 유럽 본토 상공에서 일정 수준의 소닉붐을 허용해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 FAA도 ICAO를 따라 미국 내에서의 초음속 비행을 허가해줄지도 모른다.

물론 아에리온은 그렇게 규정이 바뀌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지 않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소닉붐에 대한 규정 완화가 아니라 효율적인 초음속 비행 그 자체다.



소닉붐과 가장 비슷한 소리는?
항공 전문가들에게 소닉붐이 어떤 소리처럼 들리는지 물었다.

뇌우 (雷雨)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뇌우 한가운데 서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때 연이어 두 차례 천둥이 쳤다. 바로 그게 소닉붐이다. 그리고 조금 멀찍이서 천둥이 우르릉 거리는 걸 떠올리자. 그건 소닉붐 저감기술이 적용된 항공기의 소리라고 보면 된다.
피터 코엔 NASA 초음속 수송(SST) 프로젝트 책임자

베이스 드럼
개인적으로는 베이스 드럼을 연달아 두 번 치는 소리와 가장 가깝다고 느껴진다. 고요한 날에는 두 번의 소리가 명확히 구분되지만 바람이 부는 날엔 소리의 크기도 줄고, 두 소리가 합쳐져 구분이 모호하게 들린다.
브루스 홈즈 넥스트젠 에어로사이언스 설립자

천둥
전형적인 N파 소닉붐은 좀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천둥소리 같다. 천둥과 달리 우르릉 거리는 소리는 없지만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물론 가까운 곳에 벼락이 쳤을 때처럼 두려움을 주는 수준은 아니다.
제이슨 마티세크 아에리온 테스트 매니저

1,223km 해수면 높이에서의 음속, 즉 마하 1.0의 속도.

2 상업서비스를 제공했었던 초음속 항공기의 기종 수. 영국과 프랑스의 합작으로 탄생한 ‘콩코드’와 구 소련이 개발한 ‘투폴레프 Tu-144’가 그 주인공이다.

4:15 아에리온의 SBJ를 이용할 때 미국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까지의 비행시간.

NFL Natural Laminar Flow.
SSBD Shaped Sonic Boom Demonstration.
N파 (N-wave) 소닉붐이 생성될 때 항공기 동체 주변의 압력변화를 파형으로 나타내면 ‘N’자처럼 보여 소닉붐 충격파를 ‘N파’라고 부른다.
에어포일 (airfoil) 항공기 날개의 단면 모양. 우리말로는 ‘익형(翼型)’이라고 한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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