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한국화학연구원이 첨단화학기술의 이전을 통해 중소기업들의 강소기업 도약을 위한 특급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총 3회에 걸쳐 국내 강소기업 육성의 토대가 된 화학연의 우수 연구 성과와 기술이전 성공사례를 살펴보고, 창조적 국가 발전의 미래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3] 친환경 특수윤활유
윤활유는 기계의 마찰·마모 감소와 과열·소음 방지를 위해 사용되는 필수 소재다. 자동차 1대의 생산에만 100종 이상의 오일과 윤활유가 쓰인다. 특히 윤활유 중에는 일반 윤활유의 주입이 어려운 부분에 사용하도록 개발된 특수윤활유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특수윤활유는 국산화가 이뤄지지 않아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으로부터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다.
한국화학연구원 산업바이오화학연구센터의 정근우 박사팀은 이 같은 특수윤활유 국산화 연구에 앞장서온 국내 최강 연구팀으로 꼽힌다. 지난 1996년부터 윤활유 제조기업 장암칼스와 공동연구를 통해 특수윤활유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 성과는 자동차 등속조인트용 그리스(grease). 전륜구동 차량의 앞차축을 구성하는 등속조인트에 고성능 그리스 윤활유가 사용되는데 과거에는 일본산 제품이 국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연구팀은 장암칼스 연구진과 함께 등속조인트 성능평가 시험기까지 도입하는 열의를 보인 끝에 기존보다 성능은 뛰어나고 가격경쟁력도 높은 그리스의 개발에 성공했다.
정 박사는 “실험실 합성 제품의 신속한 성능평가와 빠른 피드백에 기반을 둔 효과적 대응이 최대 성공 요인”이라며 “양산화 공정 개발에도 직접 참여하는 등 현장기술 전수에도 주력했다”고 밝혔다. 현재 이 제품은 자동차용 그리스 시장의 50%, 전자제품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출시 이후 수입의존도 저하는 물론 국내 그리스 가격의 대폭적인 인하를 이끌어내며 국익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련 기술을 이전받은 장암칼스도 3만㎡ 규모의 제조공장을 가동한 데 이어 4만㎡의 공장을 추가 준공하는 등 국내 특수윤활유 업계의 선도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최근에는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인 미국 GM과 대규모 납품계약을 체결하는 등 미국·일본·유럽 등지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정 박사는 “그리스 윤활유의 원천기술 확보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기초소재를 국산화하고 수입대체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정 박사팀은 제철산업 연속주조라인에 사용되는 우레아계 그리스를 개발해 현대제철 철강 생산라인에 적용한 바 있으며 얼마 전에는 석유에서 추출한 오일 대신 식물성 오일을 사용한 그리스 제조기술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정 박사는 “앞으로 자동차와 전자·조선 등 국내 주력산업이 지속 성장하고 신성장동력을 창출해내려면 화학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원천기술들을 확보해야 한다”고 화학원천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4] 화학신소재 개발·사업화 원스톱 서비스
21세기 산업경쟁력 패러다임이 소재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소재원천기술이 전 산업의 근간이자 국가경쟁력의 핵심요소로 떠올랐다. 소재원천기술은 부품과 완제품의 성능, 품질, 가격 경쟁력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디스플레이, 반도체, 핸드폰, 자동차 등의 산업에서 화학소재는 혁신 제품 개발의 근간으로 작용한다. 정부가 오는 2018년 세계 4대 부품·소재 강국 도약을 목표로 소재산업 육성에 앞장서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소재솔루션센터 이재흥 박사팀은 바로 이런 국내 풀뿌리 화학소재 산업 육성의 첨병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현재 화학소재정보은행(CMiB)을 통한 중소기업들의 화학 신소재 개발 및 사업화를 지원하는 한편 개발된 소재의 성능을 평가할 테스트 설비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중 CMiB는 플라스틱, 고무, 정밀화학제품 등의 화학소재 물성·기술정보를 기업과 연구자, 개발자들에게 무료 제공함으로써 소재개발 역량 강화를 전방위 지원한다. CMiB를 활용하면 공정·기술·시장·특허·인력 등 신소재 개발이나 사업화에 필요한 제반정보를 원스톱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개발 성공률은 높이고, 개발비와 개발비용은 대폭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 박사는 “이미 40만건의 DB가 구축돼 있고, 매년 가시적 성과창출이 도출되고 있는 상태”라며 “지난 2010년 오픈 이래 지난 3년간 기업 매출증진 870억원, 비용절감 153억원, 그리고 183개월의 개발기간 단축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일례로 에너지전문기업 시온텍은 지난해 초 화학연의 화학소재 솔루션센터와 함께 CMiB를 활용, 물에서 이온을 제거하는 탈이온 소재의 제품화에 성공해 괄목할만한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플라스틱 관련 기업인 스몰랩 또한 CMiB에 힘입어 불연성 소방용 파이프 소재를 개발, 시제품 테스트 중에 있다.
특히 연구팀은 CMiB의 효과를 배가시키고자 개발이 완료된 화학소재의 상용화를 위한 스케일업 합성공정과 LCD, 디스플레이, 터치패널 등에 관련된 코팅공정 평가설비도 구축·운용하고 있다. 덕분에 고가의 설비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연구실에서 개발한 소재의 성능을 사전에 테스트할 수 있으며, 이는 제품 경쟁력과 성공적인 시장진출로 이어지고 있다. 시온텍의 한 관계자는 “화학연의 경험과 노하우가 접목되면서 소재와 공정기술, 시제품 개발 속도를 배가시킬 수 있다”며 “특히 소재 및 제품 개발의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은 중소기업들에게 가장 큰 메리트”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이어 “소재 선진국들의 경우 현재 약 100만건 이상의 최신 화학소재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CMiB 또한 지속적으로 DB를 확충, 우리나라의 소재강국 도약에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앞장설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