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동의의결제도와 실효성 있는 소비자 구제

김승열의 ‘Law & Business’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과정에서 논의되어 도입된 ‘동의의결제도’가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네이버의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자적 지위 남용과 관련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동의의결제도란 무엇이며 우리 기업들에 미칠 영향은 어떨지 살펴보자.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겸 KAIST 겸직 교수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동의의결제도는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혁신적인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제도다. 일각에서는 이 제도가 우리 실정에 맞지 않고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경계의 눈초리로 보고 있으나, 이를 제대로만 정착시킨다면 과거 당국의 일방적인 제재일변도의 규제정책에서 탈피, 위반혐의 사업자와 피해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특히 이 제도는 피해자 혹은 소비자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어 실효성 있는 피해자구제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동의의결의 개념

그렇다면 과연 동의의결제도란 무엇일까? 통상적으론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는 사업자가 스스로 경쟁제한 상태의 자발적 해소, 소비자 피해구제, 거래질서 개선 등 시정방안을 제시하면 공정위가 그 타당성을 인정할 경우 의결을 함으로써 사건을 해결하는 제도를 말한다.

미 법무부는 동의판결, 미 연방거래위원회는 동의명령 형태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화해결정, 독일은 의무부담부 확약, 일본은 동의심결제도의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거래위원회의 감시대상이 되는 독점금지법사건의 70% 정도가 동의명령을 통해 해결된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운동화 제조회사의 기망적 광고에 대한 동의명령이다. 2,500만 달러의 소비자 배상기금을 설정해 일정한 절차에 따라 소비자에게 이를 배상하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사후적으로 해당 기업이 연방거래위원회에 서류를 제출하거나 조사에 협조하도록 하는 절차규정도 명시되었다. 유럽연합의 경우 2005년에 음료회사의 시장지배자 지위남용행위와 관련해 배타적 약정을 금지하고, 인기상품을 이용해 비인기상품의 구매를 강요하는 것을 금지하는 화해결정을 내린바 있다.

이해관계인의 참여 유도와 피해자 구제의 실효성 제고

동의의결 제도는 규제당국에겐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의 해소, 사업자에겐 불필요한 비용의 절감, 소비자에겐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도모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면죄부로 악용되거나, 야합 등에 의한 남용 가능성의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규제와 관련한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모든 이해관계인의 적정이익을 도모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디지털시대의 절차적 투명성이 보장되는 경우 큰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된다. 이 제도를 활성화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카르텔 분야에도 제도 도입 필요성

현행법상 카르텔, 즉 부당공동행위는 동의의결제도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문제는 실제로 공정위에서 부과하는 과징금의 대다수가 카르텔 위반에 부과된다는 점에 있다.

과징금은 매출액의 100분의 10 범위 내에서 책정되어 상당한 액수이지만, 해당 금액이 국고로 들어감으로 인해 실제 피해자들에게 집행되지 못하는 문제점도 있다. 사업자에게는 상당한 재정적인 부담이 되고, 막상 피해자에게도 걷은 과징금이 사용되지 못하는 법제도적 맹점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징금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 전환하거나, 동의의결제도를 카르텔에까지 확대 적용하여 위반혐의 사업자가 시정방안을 작성하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구제수단을 강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카르텔의 경우 동의의결에 의한 구제만으로는 부족하거나 다소 부적절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지만, 검찰총장과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따라서 법률에 의해 획일적으로 카르텔 전반에 동의의결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점은 개선되어야 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하여 피해자 구제의 실효성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소송제도 도입 검토해야

실효적인 구제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집단소송의 도입을 검토함과 동시에, 소액이거나 피해자 수가 많은 사안의 경우, 피해자를 대표해 정부가 소송을 담당하는 정부소송제도의 도입도 검토되어야 한다. 개별적인 당사자의 피해금액은 적으나 피해자 수가 대규모인 경우, 개별적으로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개별 소비자의 경우 그 절차가 익숙지 않아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공정거래법이나 소비자보호법 위반의 경우, 연방거래위원회가 피해자를 대리해 위반자에 소송을 제기하여 그 배상액을 기금 등의 형태로 피해자에게 배분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 변혁 하에서는, 규제와 관련된 영역에서도 피해자나 소비자를 단순히 규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들이 주체로서 참여하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카르텔, 즉 부당공동행위로부터 피해를 입은 다수의 소액피해자를 위한 정부소송제도의 도입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 스스로가 공공복리의 서비스제공자라는 냉철한 자기 인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동의의결제도의 의미는 크다.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과거 규제당국의 일방적 독단적 분쟁해결이 아닌, 모든 이해관계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모든 당사자들을 위한 최적의 해결방안을 도출하고, 실효성 있는 피해자 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범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김승열 변호사는…
서울법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소재 폴 와이스 Paul Weiss 로펌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양헌의 대표변호사 겸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 겸직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통령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민간위원 및 방통위, 환경부, 교과부, 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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