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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친구들

Invisible World<br>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세계의 지도를 만들려는 사람이 있다. 탐사의 출발점은 바로 당신의 주방이다.

2월의 어느 날 아침. 미국 콜로라도대학 볼더캠퍼스의 생태학·진화생물학자인 노아 피에러 교수는 콜로라도주 동부에 있는 농경지대의 해발 300m 지점에 있었다. 1977년 기상 연구를 위해 세워진 볼더대기 관측소(BAO)의 꼭대기 근처였다. BAO는 마치 이동통신 기지국 첨탑처럼 생겼는데 정상까지 오르기 위해 피에러 교수는 동료인 조앤 에머슨 박사와 함께 5분간 비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90층까지 올라와서는 다시 비좁은 통로를 기어 올라가야 했다.

안전모와 안전벨트를 착용한 두 사람은 몸을 구부려 BAO의 격자형 구조에 매달린 작은 기기를 점검했다. 수개월 전 설치해놓은 이 기기는 매일 저녁 공기를 흡입해서 필터로 거른 다음 그 잔존물을 2주일 단위로 모아놓는다. 기본적으로 진공청소기와 동일한 원리지만 이 녀석이 필터링 하는 것은 먼지가 아니라 미생물이다.


미생물은 우리 주변 도처에 있다. 지표면 근처의 공기 속에는 1㎥당 10만 마리, 300m 상공에서조차 1㎥당 약 1,000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티스푼 하나의 흙속에서 발견되는 미생물은 무려 500억 마리에 달한다. 한줌도 안 되는 흙속에 지구상의 인류보다 7배 이상 많은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사람의 피부도 미생물이 선호하는 주거지다. 피부 1㎠당 1,000만 마리가 꿈틀대고 있다. 갑자기 몸이 근질거리지 않나? 어쨌든 우리는 미생물들의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정작 과학자들은 이들의 생태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평범한 가정집에 서식하는 미생물에 대한 지식이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에 서식하는 동물에 대한 지식보다 적다. 그러니 그 미생물들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더욱 알 턱이 없다.

도대체 미생물들은 우리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우리는 또 미생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미생물들은 천식이나 알레르기의 유발자일까, 아니면 예방자일까.

미국 최고의 미생물 생태학자로 꼽히는 피에러 교수는 이 모든 의문을 풀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의 세상을 눈에 보이는 도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첫 단계는 다양한 장소에서 박테리아, 바이러스, 고세균, 진균 등 온갖 미생물을 포집해 분류하는 것이다.
“저는 미생물계의 자연사학자인 셈입니다.”

수년전만 해도 미생물 생태학은 상대적으로 고루한 학문이었다. 실제로 미생물은 크기가 워낙 작고, 실험실에서 증식이 불가능한 종(種)도 많다. 그래서 대다수 미생물군집 연구는 아마존 우림에서 미생물 생태를 조사한 뒤 기껏해야 5종의 표본을 실험실로 가져와 DNA서열을 분석하는 형태로 진행돼 왔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현재 피에러 교수를 비롯한 미생물 생태학자들은 수천 종의 미생물을 쉽고 빠르게 분류해 그 기능을 파악할 수 있다.

“미생물 생태학의 황금기가 도래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 5년간 피에러 교수는 공공 화장실, 겨드랑이, 배꼽, 애벌레의 뱃속 등에서 미생물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조사했다. BAO의 첨탑을 오른 것도 캘리포니아주의 바람 속에 들어있던 미생물 중 어떤 종이 콜로라도주까지 살아 남는지를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그는 지금껏 미생물에 대해 많은 사실들을 새로 밝혀냈다. 일례로 피에러 교수는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지문 속 미생물군집도 다르며, 꽤 오랜 시간동안 비교 가능한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얼마 전 미국 범죄수사드라마 CSI에서 이에 착안한 에피소드가 방영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그는 미생물이 매우 풍부하지만 관련정보가 거의 없는 환경, 즉 가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1년에는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생물학자 롭 던 박사가 이끄는 ‘우리집의 야생생물(Wildlife of Our Homes)’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미국 내 모든 가정의 미생물 다양성을 도식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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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선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조차 불가합니다.”
이와 관련 던 박사는 평범한 가정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종류가 지구상에 현존하는 조류의 종류보다 많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집안에서 수천 종의 미생물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집안에 살게 됐는지는 알 수 없어요. 일부는 질병을 유발하고, 일부는 그렇지 않는다는 정도 외에는 어떤 종이 우리에게 유익한지, 또는 해로운지도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던 박사는 연구를 도와줄 지원자들을 공개 모집했고, 미 전역 50개주에서 1,400여명이 지원했다. 던 박사는 이들에게 평상시 청소 습관과 병력, 기르고 있는 애완동물이나 식물 등 다양한 내용이 적힌 설문지를 작성토록 한 뒤 표본 채취 장비를 지급했다. 그것으로 주방 조리대, 베갯잇, 문턱 등에서 표본을 채취해 보내면 피에러 교수의 연구실에서 화학 용액과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표본 속 미생물의 DNA를 추출한다. 이후 특정한 표지 유전자들을 화학적으로 증폭시켜서 염기서열을 분석하면 미생물의 종류와 기능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연구팀은 불과 수개월 만에 사상 최대 규모의 미생물 생태학 데이터 세트를 축적했다. 여기에는 수억 개의 DNA 염기서열이 포함돼 있어 연구결과의 의미를 거의 즉각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구팀은 현관문의 테두리에서 3,500여종의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이는 미국의 일반 가정에 3,500여종의 박테리아가 떠다니고 있다는 뜻이다. 기존 연구에서 발견된 박테리아보다 500종이나 많은 숫자다.

특히 피에러 교수는 미국 내 여러 지역 가정의 데이터를 분석, 문지방의 박테리아 및 진균 군집에서 2가지 독특한 패턴을 찾아냈다. 하나는 미국 동해안 및 태평양 연안 북서부 지역에서 집중 발견되는 패턴이고, 다른 하나는 미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다.

무엇이 이런 미생물 분포의 패턴을 만들었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 피에러 교수는 그 원인이 강수량, 토양의 산성도(pH), 삼림의 면적 등 지리학적 요인에 있다고 본다. 물론 확실한 것은 추가 연구를 해야 알 수 있다.
“저희 연구는 법의학에도 응용될 수 있어요. 집 안팎에서 발견되는 미생물의 종류 차이를 이용하면 특정 가옥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고, 범죄자의 옷이나 자동차 시트의 미생물을 분석하면 그가 어느 곳에 머물렀었는지 확인이 가능합니다.”

우리 집의 야생생물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각 지원자들이 자신의 집에 어떤 미생물이 있고, 그 환경적 출처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연구팀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디지털 분석카드도 개발 중이다.

피에러 교수는 이에 더해 피부 미생물과 체취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며, 멸종 위기에 처한 미생물종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동식물 보호에 관한 연구문헌은 엄청나게 많은 반면 미생물을 보호하자는 문헌은 거의 없습니다. 멸종된 후에 그 미생물의 유용성을 발견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요.”




우리 집의 미생물 식구
당신도 모르게 당신 곁에 머물고 있는 수조 명의 친구들

1년 6개월 전 필자는 뉴욕 브루클린의 아파트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났다. 그때 강아지가 침대로 뛰어올라와 베개에 얼굴을 문질렀다. 그 순간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이 녀석이 무엇을 묻혀왔을까. 그리고 애완동물과 함께 살면 집안의 미생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래서 필자도 롭 던 박사의 ‘우리 집의 야생생물’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생활공간 내 특정장소에서 표본을 채취해 보내면 연구팀이 DNA 서열을 분석, 어떤 종류의 미생물이 살고 있는지 밝혀내게 된다. 이 일러스트는 다른 18명의 자원자와 필자의 집을 비교한 것이다.

고세균 (archaebacteria) 원핵생물의 일종. 고온, 극지, 고압, 고염도 등 일반 세균은 살수 없는 원시 지구와 유사한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간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원시세균이라고도 한다.
표지 유전자 (marker gene) 특정 유전자의 존재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전자. 예컨대 A라는 유전자를 오직 B라는 생물만 지녔다면 A가 B의 표지 유전자가 될 수 있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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