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스마트 그리드 최전선 프랑스를 가다] 에너지풀

프랑스 전력 수요관리 독과점 기업<br>뛰어난 퍼포먼스로 블랙아웃 막았다

프랑스 샹베리 Chambery 이노베이션 벤처타운에는 프랑스 수요관리 독과점 기업 에너지풀이 위치하고 있다. 창립 5년 만에 시장점유율 75%를 기록 중인 에너지풀과 성숙기에 접어든 프랑스 수요관리 시장에서 우리나라 전력 수요 시장이 참고해야 할 시사점을 찾아봤다.
프랑스(샹베리)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20011년 9월 15일, 전력거래소가 사전 통보 없이 지역별 순환 정전을 실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뒤늦게 찾아온 무더위로 전력 이용량이 6,725만kW까지 급증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 사건은 블랙아웃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짧은 정전이었음에도 당시 정부가 추산한 금전적 피해만 620억 원에 달했다.

3년이나 지났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냉방 전력 사용이 많은 여름철을 앞두고 정부의 주름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원자력 발전소가 잦은 고장으로 가동과 정지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 공급 불안정성은 오히려 더 커졌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전기사업법 개정을 통해 수요관리의 융통성을 확보했으나, 워낙 생소한 부분이어서 활성화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와 기업으로는 프랑스와 프랑스 에너지 수요관리 전문기업 에너지풀을 꼽을 만하다. 수요관리 기업이란 전력 감축 요청이 있을 때 계약된 산업체에 주문을 넣어 불필요한 전력소비를 중단, 전력 감축을 유도하는 기업을 말한다. 절전에 협력한 업체들은 수요관리 기업이나 전력회사로부터 계약된 인센티브를 받는다. 감축된 전력량만큼 전기요금 역시 절약돼 기업 입장에선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에너지풀은 2009년 올리비에 바우드 Olivier Baud CEO가 창립했다. 2010년에는 스마트 그리드 선도기업 슈나이더 일렉트릭이 51% 지분을 인수해 이 기업의 경영권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만 2,000만 유로의 매출을 올렸으며, 6억 유로 1,000mW에 달하는 에너지 거래량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해외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3년 11월에는 슈나이더 일렉트릭과 함께 일본시장에도 진입, 아시아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

바우드 CEO는 말한다. “2003년 프랑스는 가뭄과 폭염으로 심각한 전력난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알루미늄 생산 회사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회사에서도 전력난 대응책 찾기에 분주했죠. 그때 저는 새로운 전력공급원을 찾는 대신 오히려 생산량을 감축해 전력 소비를 줄이고, 줄인 전력량만큼 송배전 회사에 인센티브 비용을 청구하자고 제안했었습니다. 이 방법으로 회사는 상당한 이익을 거둘 수 있었죠.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큰 교차점에 서 있다고요. 에너지 부족, 불규칙한 신재생에너지, 기업의 에너지 경쟁력 등이 한창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을 때 저는 오히려 거기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탐색했습니다.”

에너지풀은 프랑스 수요관리 시장에서 7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다른 경쟁사들이 나머지 25% 시장을 나누고 있는데, 이들 기업은 워낙 영세해 오퍼레이터라기보다는 단순 트레이더에 가까운 실정이다. 에너지풀은 설립 연차만 보면 아직 스타트업 티도 못 벗은 신생기업이지만 압도적인 경쟁력을 앞세워 독과점기업으로 성장, 프랑스 수요관리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해 4월 5일 있었던 505mW 피크 감축 달성은 에너지풀이 수요관리 시장에서 가지고 있는 경쟁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날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난방 전력 수요가 급증했다. 설상가상으로 원자력 발전소 정기 점검까지 겹쳐 전력 공급량이 평소보다도 훨씬 못 미쳤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프랑스 독점 송전 기업인 RTE는 이날 오전 5시부터 총 3회에 걸쳐 에너지풀에 전력 감축 요청을 해왔다.

이때 에너지풀은 최대 505mW 피크를 줄여 1,783mWh의 전력량을 절감했다. 이는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요 반응이었다. 결과는 달랐지만 당시 전력 위기 상황은 2011년 우리나라 순환 정전사고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았다. 냉난방 전력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점과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두 나라는 전력 공급구조도 비슷하다. 프랑스에선 우리나라 한국전력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RTE사가 전력을 독점 공급한다.

길리엄 페르넷 Guillaume Fernet 에너지풀 비즈니스 개발 매니저는 말한다. “프랑스는 클래식한 전력망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송전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RTE가 프랑스 전체 전력을 관리합니다. RTE는 과거에는 자체적으로 수요관리를 했지만, 최근에는 시장 규제가 완화되면서 우리 같은 수요관리 사업자들과 일을 분담하고 있습니다. 에너지풀은 에너지 수요관리 요청이 있을 경우 13분 안에 200mW를 줄인다는 계약을 RTE와 맺고 있습니다. RTE는 저희와 계약을 한 이후 최소 200mW의 여유 전력분을 확보하고 있는 셈입니다.”

RTE가 굳이 외부 업체에 수요관리 업무를 맡기는 까닭은 이들 기업의 뛰어난 퍼포먼스 때문이다. RTE의 수요관리 능력도 이미 자동화에 접어든 지 오래고 그 용량 또한 6,000mW에 달하고 있지만, 문제는 잠재력에 비해 성과가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전력 감축 반응 시간이 긴 데다 감축량도 일정치 않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수요관리 대상이 점점 고도화되는 까닭에 전력 감축 계약을 체결한 산업체 컨트롤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뢰도가 낮은 까닭에 독자적인 수요관리 업무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에너지풀은 굉장한 신뢰도를 자랑한다. 에너지풀은 프랑스에서 화력발전소 1개와 같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화력발전소는 가장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 통하는데, 에너지풀 역시 필요 시 수요 감축을 통해 화력발전소만큼이나 안정적인 수급 조정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RTE가 일시적으로 추가 전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화력발전소와 에너지풀이 동등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에너지풀이 수요관리를 통해 공급할 수 있는 잠재전력 최대치는 1,200mW로 화력발전소 1기(500mW)의 설비 용량을 훨씬 넘어선다. 이는 큰 원자력 발전소 1기(1,000mW) 설비 용량과 맞먹는 수치다.

바우드 CEO는 말한다. “저희는 그동안 단 한 차례도 수요관리에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RTE가 대단히 많은 양을 한꺼번에 줄여달라고 요청하면, 저희는 이 양을 작은 블록들로 나눠 계약 업체들에게 분배합니다. 워낙 많은 산업체와 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몇몇 업체에서 줄이기로 한 양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전체 양을 맞추는 데 전혀 문제가 없죠. 각 산업체 공정을 워낙 잘 이해하고 있어 업체들이 실제 줄일 수 있는 양만큼만 요청하기 때문에 업체들도 부담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에너지풀이 실패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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