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금융일반

[30대 그룹은 지금] 한화케미칼

뚝심 있는 추진력과 투자<br>태양광 사업에 서광 비치다

태양광 사업이 바닥을 치며 실적이 좋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태양광에 주력하던 한화그룹의 실적도 반등했다. 무리수로 평가받던 태양광 투자가 신의 한 수로 재평가 되고 있다. 수뇌부에 앉은 한화그룹의 3세 김동관 실장에게도 서광이 비치고 있다.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김동관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은 최근 언론에서 주목받는 3세 경영인 중 한 사람이다. 김 실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최근 그룹 안팎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며 주위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김 회장이 재판과 옥고, 신병 치료로 장기간 자리를 비운 동안 후계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난 1월엔 한화그룹을 대표해 다보스포럼에도 참석했다. 방한홍 한화케미칼 사장, 차남규 한화생명 사장, 김희철 한화큐셀 사장 등 한화그룹 주력사 대표들이 김 실장을 보좌했다.

다보스포럼은 한화의 태양광 사업을 알리는 주요 무대 중 하나다. 지난 2012년 다포스포럼에선 김 실장이 친환경 정신에 동참한다는 취지로 스위스 다보스 시에 태양광 모듈 기증을 제안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지난해 12월 280㎾의 태양광 발전설비가 설치됐다. 이번 다보스포럼이 열린 다보스 콩그레스센터 Davos Congress Center에 공급된 전력도 그때 설치한 태양광 설비에서 발전한 전력이었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도 김 실장은 태양광 사업을 알리는 데 힘썼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언론과 만나 “한화그룹은 태양광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며 “인류의 미래에 이바지하겠다는 김승연 회장의 확고한 철학에 따라 태양광 등 에너지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어 “단순한 태양광 관련 셀이나 모듈 제조뿐만 아니라 태양광 발전소까지 운영하고 투자하면 시장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라며 “전기에너지 생산에서 태양광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보스포럼 이후에도 김 실장은 활발한 대외 행보를 이어갔다. 2월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PV엑스포에 참가했고, 4월에는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국제 석유화학 산업 콘퍼런스 행사에 참가했다. 행사 때마다 김 실장은 관련 기업 최고경영자들과 만나 태양광과 에너지 사업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는 데 힘썼다.

김 실장이 대외활동을 이어가는 가운데 때마침 사업 실적에도 볕이 들었다. 태양광 사업이 3년 적자의 먹구름을 걷어 내고 올 1분기 실적전환에 성공했다.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화케미칼 태양광 사업부문(한화솔라원, 한화큐셀)은 지난 1분기 241억 원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태양광 제품인 셀, 모듈 등의 가격이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장기적인 전망도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다.

태양광 사업은 한화그룹 차원과 김 실장 개인 차원에서 모두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그룹은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태양광에 올인하고 있고, 김 실장은 중추 수뇌부에서 사업을 컨트롤하고 있다. 태양광 사업이 곧 김 실장의 경영능력을 시험하는 무대이자 승계의 발판이 되고 있다.

김 실장은 다른 3세에 비해 비교적 일찍 무대에 올랐다. 3세 경영인을 대표하는 투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40대 중반인 데 비해 김 실장은 31세밖에 되지 않는다. 50~60대 경영인이 대다수를 이루는 재계 기준으론 분명 젊은 나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김승연 회장이 총수직을 맡은 나이가 29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김 실장 나이가 그리 어리다고만 할 수도 없다.

김 회장은 1981년 한화 창업주인 고 김종희 회장이 급작스레 타계하자 그룹을 떠맡게 됐다. 그룹에게나 김 회장 일가에게나 모두 위기였다. 총수가 사망한 뒤 조직이 와해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더욱이 재벌 오너 한 사람이 전체 그룹을 좌지우지하던 당시 재계 상황을 고려하면, 리더십의 부재는 돌이킬 수 없는 패망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그렇지만 김승연 회장은 한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81년 당시 매출 1조 원이던 기업을 30여 년 만에 46조 원 규모로 키워냈다.

김 회장은 젊은 패기와 뚝심으로 성공 신화를 만들어 갔다. 취임 1년 만에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을 인수하며 석유화학 사업에 진출했고, 1983년에는 경인에너지를 인수하며 그룹 매출을 2배 이상 키웠다. 한양화학은 당시 제2차 석유파동으로 경영난에 빠져 있던 상태였다. 인수에 부정적인 우려가 많았지만, 김 회장 특유의 결단력으로 밀 어붙여 한화그룹의 주력계열사로 안착할 수 있었다.

김 회장은 또 1985년 정아그룹(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과 1996년 한양유통(현 한화갤러리아)을 인수했다. 이는 2차 산업에 머물러 있던 한화가 3차 산업으로 진출한 첫 사례로 이후 한화의 사업재편에 시발점이 되었다.

한국의 산업 구조가 변하고 있었다. 제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중화학에서 금융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었다. 특히 외환위기는 금융의 힘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김 회장은 외환위기를 전후해 혹독한 구조조정에 나섰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알짜 사업도 아낌없이 매각했다. 계열사를 정리하며 한때 그룹 순위(매출액 기준)가 재계 20위권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사세가 위축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02년 대한생명(현 한화생명)과 신동아화재해상보험(현 한화화재) 등을 인수하며 새로운 중흥기를 열었다. 그 후 한화그룹은 화학제조업 중심에서 금융업과 도소매업, 건설업, 레저서비스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한화는 화학기업에서 벗어나 금융 그룹이 되었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금융업에서 올리고 있다. 2차 산업 중심에서 3차 산업으로 성공적인 변신이 이뤄졌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한계가 있었다.

금융업은 내수 산업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그렇다. 해외 진출이 용이하지 않다. 국내 금융사 대부분이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글로벌 경쟁사에 밀리고, 신흥시장에선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정부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금융업을 중심으로 하는 (혹은 금융업에서 절반 이상 매출을 올리는) 한화도 내수 기업이다. 전체 매출 중 약 80%를 국내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게 해선 밝은 미래를 찾기 어렵다. 삼성과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클 수 있던 건 수출시장 덕분이었다. 내수만으론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화에게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했다. 그때 김 회장이 다시 눈을 돌린 곳은 화학이었다.

김 회장이 금융업을 키우는 동안 화학계열사는 힘을 받지 못했다. 이는 화학업이 가진 특성에도 기인한다. 화학산업은 변화가 더딘 산업이다. 한번 장치를 설치하면 수십 년간 가동이 가능하고 수요도 안정적이다. 제품이 산업재와 소비재에 골고루 사용되기 때문이다. 화학제조업은 회장이 관심을 덜 주더라도 잘 굴러가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화학산업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불확실성이 과도하게 높아졌다. 중국과 같은 신흥국가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커졌다. 중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한때 세계의 석유화학제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지만, 지금은 저가 제품을 화이트홀처럼 내뱉고 있다. 게다가 세계 경제 회복세는 뚜렷하지 않고, 중국의 성장도 둔화되고 있다. 이는 수요와 공급, 경쟁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셰일가스 혁명이 불고 있다. 셰일 가스가 대량 개발되며 북미 화학 기업이 다시 범용 석유화학 제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16년부터는 저가 원료에 기반한 범용 제품이 미국에서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의 유기돈 연구위원은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시련의 계절을 앞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화학업계가 절실하게 새로운 활로 모색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화학산업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제품이 아주 뛰어나거나, 아니면 생산성이 뛰어나야 한다. 유 연구위원은 ‘시련의 계절 앞둔 국내 석유화학 핵심역량 중심의 변화 일궈내야’라는 리포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1970년부터 1990년까지 석유화학 산업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성패를 가른 건 두 가지 상반된 전략입니다. 하나는 프로덕트 리더십에 기반한 전략이고, 또 하나는 프로세스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전략입니다.” 듀폰은 기초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대신 신제품 개발에 적극 나서 경쟁 우위를 점했다. 이에 반해 다우케미칼은 수직계열화에 집중하며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2010년대에도 이 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살아남는 건 기업이 어떤 전략을 취하느냐에 달려 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등은 프로덕트 리더십을 선택하고 2차 전지에 발 빠르게 투자해 입지를 굳혀 나갔다. 한화는 프로덕트와 프로세스 리더십이 모두 필요한 태양광 사업에 미래를 걸었다.

태양광 사업은 한화를 위한 사업이었다. 글로벌 진출에 목마른 김 회장에게 더할 나위 없는 비즈니스였다. 세계적으로 청정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이란 데는 이견이 없었다. 또 태양광은 화학제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화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양광은 뚝심 없이는 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일찌감치 태양광 사업에 뛰어든 기업은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그린에너지로 돈이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태양광 산업의 발목을 잡았다. 각국 정부가 지원금을 줄이자 수요가 줄어들었다. 반면 너 나 할 것 없이 기업이 뛰어든 탓에 공급은 과잉상태가 되고 있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나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 회장은 2010년 세계 4위의 중국 태양광 모듈 제조업체 솔라펀파워 홀딩스(현 한화솔라원)를 인수하며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었다. 태양광 경기가 최고점이었던 시기여서 인수가도 어마어마했다(당시에는 태양광 경기의 지표인 폴리실리콘 가격이 1㎏당 80달러였다. 현재 수준인 20달러에 비해 4배가 비쌌다). 인수가는 자그마치 4,300억 원이 넘었다. 늦은 출발을 만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시장에선 무리수라고 평가했다. 태양광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태양광 거품이 터지기 시작했다. 폴리실리콘 가격은 10달러대로 곤두박질쳤다. 한화솔라원의 실적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인수 첫해인 2010년 1,945억 원 반짝 영업이익을 냈다가 2011년에 -2,038억 원으로 적자전환했다. 2012년과 지난해에도 각각 2,130억 원, 72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태양광 사업 진출과 확대를 계획했던 삼성과 LG, 현대중공업 등도 사업을 유보하거나 축소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한 번 내린 결정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저조한 업황에도 불구하고 2012년 독일의 큐셀(현 한화큐셀)을 인수했다. 큐셀은 태양광 셀 제조 분야에서 한때 세계 1위였지만,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법정 관리에 들어간 상태였다. 덕분에 김 회장은 큐셀을 헐값에 인수할 수 있었다. 인수가는 400억 원이었다.

한화케미칼은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했다. 여수에 연산 1만t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을 세우고 올해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이 역시 산업전망이 불투명했던 시기에 추진된 사업이었다.
김 회장은 수직계열화에 힘을 쏟았다. 폴리실리콘(한화케미칼)-잉곳·웨이퍼(한화솔라원)-셀(한화큐셀 및 한화솔라원)-모듈(한화큐셀 및 한화솔라원)-발전시스템(한화큐셀 및 한화솔라원)으로 이어지는 밸류 체인을 모두 갖춰나갔다. 한때 수직계열화는 기피의 대상이었다. 이우현 OCI 사장이 “가장 위험한 전략”이라 말했을 정도였다. 자칫 기업 손실이 불황기 때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시황이 개선되며 수직계열화가 수익성 개선에 더욱 활력을 주고 있다. 손영주 교보증권 연구위원은 말한다. “지난해 이후 중국 업체를 중심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됐습니다. 공급과잉이 해소되어, 최근에는 태양광 수요도 살아나는 추세입니다.”

전문가들은 태양광 시장 회복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 최대 태양광시장인 유럽에 이어 일본, 미국, 중국에서도 태양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2011년 6기가와트(GW) 수준이던 일본, 미국, 중국의 태양광 시장규모(설치기준)는 지난해 20GW 규모로 급성장했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글로벌 태양광시장 규모가 지난해 35.7GW에서 올해 44.3GW로, 내년에는 51.5GW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손영주 연구위원은 말한다. “현재 태양광 증설은 제한적이지만 수요는 2020년까지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파에서 살아남은 업체들이 향후 승자독식 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태양광 사업이 당장 한화의 캐시카우로 탈바꿈하는 건 아니다. 현재 태양광 사업이 그룹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화는 태양광 사업이 뿜어낼 엄청난 에너지에 그룹의 미래를 걸고 있다.

김승연 회장에게 화학업은 고향이다. 29세 때 김 회장은 석유화학업에 진출하며 한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금융업과 서비스업을 돌아 다시 화학, 즉 태양광으로 돌아왔다. 마치 바다를 주유하다 돌아온 연어와 같다. 연어는 고향에서 알을 낳는다. 김 회장도 태양광 사업에서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김 회장은 한화솔라원 인수 때부터 아들 김동관 실장에게 비중 있는 지위와 권한을 맡겼다. 영예와 책임을 모두 짊어지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 실장에겐 태양광 사업이 고향이다. 이제 성공스토리를 쓰는 일만 남았다. 다행스럽게도 김 회장은 아들에 대한 지지가 누구보다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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