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아리엘 가튼의 뇌파 인터페이스

마인드센서

대학시절 아리엘 가튼은 신경과학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한 의류의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녀의 작품 중에는 뇌전도(EEG) 기록장치를 이용해 고객의 뇌파를 기록한 뒤 그 파형을 인쇄한 T셔츠와 37개의 주머니가 달린 치마도 있다. 치마 주머니를 37개나 부착한 이유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의사과학이었던 골상학에서 착안했다. 이 분야 연구자들은 뇌의 기능이 37가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올해 34세가 된 가튼은 여전히 독특하고 괴짜스러운 디자인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진짜로 읽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필자는 캐나다 토론토를 찾았다. 그녀가 2007년 공동설립한 인터액손(InteraXon)의 본사가 그곳에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화이트보드와 이곳저곳 아무렇게나 붙어있는 형광색 포스트잇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전문용어를 사용한 온갖 말장난과 수식들이 잔뜩 적혀있었다.


맨발 차림으로 일에 열중하고 있던 가튼과 간단히 수인사를 나누고 회의실로 자리를 옮기자 그녀는 이렇게 운을 뗐다.
“저는 언제나 미술과 과학의 경계선에서 두 학문의 융합하는데 관심이 많았어요.”

실제로 가튼은 토론토대학 시절 심리학과 생물학을 복수전공하면서 패션디자이너로 활동했다. 당시 스티브 만 교수팀의 일원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참고로 만 교수는 1980년대 초에 증강현실 안경, 요즘 용어로 스마트안경을 개발한 웨어러블 컴퓨터 분야의 선구자다. 또한 1990년대 MIT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는 초기단계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를 개발하기도 했다.

어느 날 가튼과 몇몇 학생들은 ‘사고 통제 컴퓨팅(thought controlled computing)’을 연구하기 위해 만 교수의 BCI 연구를 부활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파일럿 프로젝트로 청중들에게 BCI를 착용시킨 채 뇌파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청중 스스로 자신의 뇌파를 조절, 무대 위의 악기들을 연주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그들은 BCI에 매료돼 관련기술을 더 심도 깊게 연구했으며, 활용성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 그만큼 야망도 커졌고, 생각만으로 생맥주를 따르는 디스펜서나 뇌파로 높이가 조절되는 의자 같은 것들을 개발하고 싶어졌다.

인터액손의 설립은 바로 그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들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전세계 방문객들이 BCI 헤드셋을 이용해 CN타워와 오타와 국회의사당, 나이아가라 폭포 등 캐나다의 랜드마크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설을 운용하기도 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이 시스템이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를 응용할 더 복잡한 장치를 찾기 시작했죠.”




인터액손은 그렇게 뇌신경 활동을 측정하는 웨어러블 바이오피드백 기기의 개발에 착수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의 정신에 큰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정신적 세계를 현실세계로 꺼낼 통로가 없었을 뿐이죠.”

이렇게 말한 가튼은 필자에게 뮤‘ 즈(Muse)’라고 명명된 흰색의 헤드밴드를 쥐어줬다. 인터액손이 출시한 최초의 상용 제품이 이것이다.

인간의 뇌에는 약 850억개의 뉴런이 있으며, 수조개의 시냅스를 통해 전기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상호 연결돼 있다. 바로 이 무수한 전기 자극들에 의해 서로 다른 진폭을 가진 뇌파가 생성된다. 예컨대 알파(α)파는 긴장하지 않은 편안한 상태나 뭔가에 집중할 때 발생하고, 베타(β)파는 일상적인 의식 상태에서 나온다. 뮤즈는 이런 뇌파의 변화를 감지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의 앱으로 전송함으로써 착용자가 자신의 뇌파를 시각 정보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전용 앱의 이름은 ‘캄(Calm)’이며, 집중력 및 스트레스 제어를 도와주는 3분짜리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동안 뮤즈에서는 착용자의 뇌파 상태에 따라 특정 바람소리가 송출된다. 평온한 뇌파는 조용한 바람소리, 집중력이 흐트러진 뇌파는 거친 바람소리가 들린다.

이와 관련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팀은 사람들이 깨어있는 시간의 약 47%를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으며 보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이처럼 정신적 표류를 지향(?)하는 인간의 본성을 가리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라 부른다.

가튼은 뮤즈를 이용해 훈련을 하면 뇌파를 인위적으로 제어해 인지능력을 강화하고 DMN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 최악의 하루를 보냈더라도 뮤즈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당장은 마음이 평온하지 않지만 어떻게 평온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지 뮤즈가 알려주죠.”

그녀에 의하면 캄 앱의 훈련방식은 불교에서 말하는 ‘자각(awareness)’에 기반하고 있으며, 자신의 호흡수를 세면서 현재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는 이른바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법을 따른다. 현재 미 국립보건원(NIH)이 마음챙김과 관련한 수십 건의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을 만큼 이 분야의 학술적 가치는 높게 평가받고 있다.


특히 가튼은 뮤즈가 뇌파 연구자들에게도 귀중한 연구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토론토대학 실험심리학과의 박사과정생 놈 파브는 뮤즈가 스트레스 제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확인하기 위한 6주일간의 예비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동안 명상과 요가를 대상으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그 효용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을 확인했습니다. 과연 뮤즈가 적절한 훈련도구가 될 수 있을지 검증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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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인터액손은 캐나다 맥마스터대학과 뮤즈의 인지기능 향상 원리를 파악하고 있으며, 미국 뉴욕대학 교육연구실은 뮤즈가 학습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있다.



컴퓨터를 활용한 명상에는 명백한 아이러니가 하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챙김 수련을 하는 이유가 현대 (기계)문명에 의해 촉발된 정신적 산란함을 잠재우기 위함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할 때 휴대폰과 컴퓨터,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전자기기를 멀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튼 역시 이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때로는 정신집중을 위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은 인간이 혼자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로 우리를 안내해줄 수 있습니다.”

특히 그녀는 뮤즈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인터액손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누구나 뮤즈와 호환되는 앱의 개발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아동의 치료부터 운동선수들의 경기 전 긴장감 완화까지 활용 폭이 넓습니다. 기업의 경우 원자로 운용, 항공관제 등 스트레스가 높은 직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뇌파를 분석해 피로도가 특정 수준을 넘어서면 경보가 발령되도록 할 수도 있어요.”

회의실을 나온 가튼은 케이블과 시제품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작업장을 지나 건물 중앙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사람의 귀 높이에 스피커가 달려 있는 계란 모양의 의자 2개가 놓여 있었다. 한 의자에 앉은 그녀는 필자에게도 앉아보라고 손짓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자 당신이 힘든 하루를 보냈음을 뮤즈가 알아챘다고 상상해보세요. 알아서 무드조명이 켜지고, 심신을 안정시켜줄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모습을요.”
가튼은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고는 얕고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69% 스트레스에 의한 신체적 이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미국인의 비율

75% 의사를 찾는 환자의 최대 75%가 스트레스에 기인한 질병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HOW IT WORKS] 뮤즈 (Muse)
인터액손의 ‘뮤즈’는 마치 심장박동을 측정하는 심박 모니터처럼 인간의 뇌파를 감지하는 최초의 웨어러블 컴퓨터다.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아리엘 가튼은 뮤즈를 가지고 훈련하면 언제 어디서나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기준점 설정
뮤즈를 머리에 장착하면 7개의 뇌전도(EEG) 센서가 뇌파를 만들어내는 뇌 신경의 진동을 증폭, 뇌파 측정의 기준점을 설정한다.

트레이닝
뮤즈가 측정한 데이터는 스마트폰 앱에 무선 전송된다. 그러면 앱은 착용자가 호흡에 집중해 평정심을 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초당 250차례 뇌파를 측정한 뒤 데이터를 분석, 착용자의 집중력 여부를 판단한다.

측정
분석결과, 집중력이 높으면 앱 화면의 풍경이 고요해진다. 반면 집중력이 저하되거나 스트레스가 강하면 구름이 끼는 등
분위기가 나빠진다. 평온한 상태를 오래 유지할 경우 새의 지저귐 소리가 송출된다.

분석
이렇게 3단계로 이뤄진 세션이 끝나면 착용자의 뇌파 변화가 그래프로 나타난다. 이 앱은 평온한 상태에서 점수를 부여해 착용자가 게임을 하듯 집중력과 스트레스 통제법을 익히도록 도와준다.



의사과학 (pseudoscience, 擬似科學) 일견 과학처럼 보이지만 과학이 가져야할 합리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과학으로 공인받지 못하는 학문, 학설, 이론. 사이비과학이라고도 불린다.
골상학 (Phrenology, 骨相學) 두개골의 형상으로 사람의 성격과 심리적 특성, 운명 등을 추정하는 학문.
시냅스 (synapse) 한 뉴런과 다른 뉴런의 접합 부위. 정확히 말해 한 뉴런의 축삭돌기와 다른 뉴런의 수상돌기가 연결되는 부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efault Mode Network.
바이오피드백 (biofeedback) 뇌파 등 특정인의 생체·생리 정보를 시각·청각·촉각 등의 정보로 변환해 그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 생체 자기 제어, 즉 마인드컨트롤 능력 향상이 목표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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