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브리스톨-마이어 스퀴브 Bristol-Myers Squibb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제약회사가 되었을까? 기업 규모가 계속 줄었는데도 말이다.*
BY ERIKA FRY
매출 164억 달러
수익 26억 달러
직원 28,000명
2003~2014년 연평균 총 주주수익률 11.4%
*암 치료제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브리스톨-마이어 스퀴브(이하 브리스톨)의 최고재무책임자(이하 CFO) 찰리 밴크로프트 Charlie Bancroft는 작년 여름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당뇨병 치료제 사업을 접는 것이다.
브리스톨은 오랫동안 당뇨병 치료제 개발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왔다. 거의 15년간 제2형 당뇨병 치료제(온글라이자 Onglyza와 포시가 Forxiga) 개발에 공을 들였다. 성공을 위해 영국 라이벌 기업 아스트라제네카 AstraZeneca와 협력도 진행했다(아스트라제네카는 1차 치료제 전담 판매팀을 운영했다).
2012년 들어 두 기업은 당뇨병 치료제 개발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70억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가능성 높은 두 치료제를 개발 중이던 아미린 Amylin을 인수한 것이다. 덕분에 2013년 브리스톨의 다섯 가지 당뇨병 치료제는 16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총 매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건실한 수준이었다. 수개월 내 포시가가 미식약국(이하 FDA) 허가를 받을 예정이었기에 매출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였다. 때문에 브리스톨은 연차보고서, 실적발표, 보도자료 등에서 계속 일관된 메시지를 보냈다. 당뇨병 치료제는 브리스톨의 미래를 좌우할, 브리스톨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분명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2,600만 명의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3억 1,500만 명의 사람들이 제2형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많은 경우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증상으로 이어지며, 끊임없는 관리와 치료가 요구되고 있었다. 당연히 더 나은 치료제 개발이 시급했다. 위 수치들의 의미는 분명했기 때문에 많은 제약회사들은 당뇨병 치료를 핵심사업으로 삼았다. 시장조사 기업 IMS 헬스에 따르면, 2013년 기준 540억 달러에 이른 당뇨병 치료제 시장의 가치는 2020년까지 매년 두 자리 수 증가를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브리스톨의 CFO는 이런 전도유망한 사업을 포기하려 한 것이다. 다부진 체구에 상냥한 성품을 가진 밴크로프트는 30년간 브리스톨에서 일하며 말단 재정담당 직원에서 최고 중역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도 자신의 생각이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제약회사들이 특정 제약 부문을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밴크로프트는 CEO 람베르토 안드레오티 Lamberto Andreotti에게 그의 생각을 전했지만, 안드레오티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탈리아 총리 집안 출신인 안드레오티는 2000년대 초 브리스톨의 유럽 종양연구 팀에 합류했다. 그때부터 밴크로프트는 오랜 기간 지근 거리에서 안드레오티와 함께 일해왔다. 밴크로프트는 “그의 ‘안 된다’ 반응은 정말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침내 12월 안드레오티를 설득했다. 당뇨병 치료제는 거대한 시장이지만 이미 포화상태였다. 많은 경우 마진은 최소이면서 엄청난 판매재원을 필요로 했다. 사실 당뇨병 치료제는 브리스톨의 마지막 1차 치료제 사업이었다. 브리스톨은 리스크와 기회가 모두 큰 특수 의약품(Specialty Drug)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사실 브리스톨은 이미 혁신적인 암 치료제 개발로 큰 성공을 거둔바 있다. 안드레오티는 “(치료제의) 가격도 적절했다”고 말했다.
브리스톨은 당뇨병 치료제 사업부를 27억 달러에 아스트라제네카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로열티와 사용료를 더하면 매각 금액은 40억 달러를 상회했다. 2010년부터 브리스톨의 CEO를 맡고 있는 안드레오티는 “매각 소식 발표가 다소 두려웠다. 대형 제약회사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사회에 처음 소식을 전했을 때 이사진이 보여준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하며 입을 쩍 벌리고 못 볼 걸 본 것 같은 인상을 썼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브리스톨 주가는 5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매각 거래가 공식 체결된 올해 2월, 브리스톨의 규모는 수 년 만에 가장 작은 수준으로 축소됐다. 전체 직원 수는 2007년 생산직 직원 수의 절반 정도로 줄어 1만 8,000명 이하가 되었다. 그러나 브리스톨의 월가 주가는 지난 3년간 연 19.9%씩 상승해 820억 달러에 기록했다. 동 기간 아멕스 제약지수(Amex Pharmaceutical index) 수익률은 14.4%였다.
(제약업계의 다운사이징) 추세를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5월 말 매출기준 세계 4대 제약회사 가운데 한 곳인 화이자 Pfizer가 (한때 브리스톨과 제휴했던) 세계 9위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를 인수하기 위해 1,200억 달러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런 대형 인수합병 소식에 제약업계를 휩쓸고 있는 큰 변화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 변화란 대형 제약회사들이 기업규모를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말이다.
미국 제약회사 머크 Merck는 5월 소비자 건강 사업을 접었다.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 Sanofi도 특허만료를 앞둔 의약품 포트폴리오(약 80억 달러 규모)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다국적 의료회사 박스터 Baxter는 회사를 두 개로 분할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제약회사 애보트 Abbott도 바이오 제약 사업부 애브비 AbbieVie를 분사했다. 존슨 앤드 존슨 Johnson & Johnson에 이어 세계 제2위의 제약회사인 노바티스 Norvatis마저도 항암제 부문에 주력하기 위해 4개 사업부를 정리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주요 제약회사들이 추구하는 모델이 화이자가 아닌 업계 176위 브리스톨이란 것이다(2012년 134위, 2013년 158위에서 하락했다. 내년 순위는 더 낮아질 수도 있다).
이런 변화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져왔다. 시작은 2006년 9월 짐 코넬리우스 Jim Cornelius가 갑자기 고향 인디애나폴리스 Indianapolis에서 뉴욕으로 날아가 브리스톨의 이사회에 참석하면서 부터였다.
2005년 브리스톨의 이사진에 합류한 의료기기 업체 가이던트 Guidant의 전직 CEO 코넬리우스는 이번 이사회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여분의 셔츠도 챙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이사회에서 중대한 의제가 논의됐다. 당시 브리스톨은 연방정부의 감시 하에 운영되고 있었다(부실회계 혐의로 정부조사를 받은 뒤 당시 뉴저지 New Jersey 연방검사였던 크리스 크리스티 Chris Christie와 협상 끝에 내려진 조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브리스톨의 경영진과 캐나다 제약회사 아포텍스 Apotex가 부당 계약을 통해 브리스톨의 최고 효자상품(crown jewel)인 혈액 희석제 플라빅스 Plavix의 복제약 생산을 늦추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브리스톨 경영진이 아포텍스에 뇌물을 줬고, 이사회와 충분한 논의 없이-연방 정부가 문제를 삼은 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복제약 출시를 연기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브리스톨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아포텍스는 플라빅스 복제약 여섯 달 분량을 시장에 풀었다.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미 법원이 과잉공급을 멈출 새도 없이 브리스톨은 12억 달러가량의 손실을 입었다.
이 일로 당시 브리스톨 CEO 피터 돌런 Peter Dolan이 해고됐다. 9월 12일 이른 아침 코넬리우스가 후임 CEO에 임명됐다. 그가 넘겨받은 브리스톨의 상황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뉴욕의 타임 워너 센터 Time Warner Center 회의실에서-코넬리우스가 빌린 숙소는 회의실 바로 몇 층 아래였다-임시 CEO 코넬리우스는 브리스톨의 고위 경영진에게 그가 느낀 바를 상세히 설명했다. “현재 브리스톨의 모습은 존슨 앤드 존슨이 과도한 사업확장으로 어떤 분야에서도 최고가 되지 못했던 것과 유사하다.” 2000년대 초 존슨 앤드 존슨은 연구개발에 실패했다. 특히 고혈압 치료제 반레브 Vanlev의 실패가 치명적이었다. 대성공이 확실시 되는 제품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았지만 결국 FDA 승인도 받지 못했다.
암 치료제 택솔 Taxol 덕분에 굴지의 제약회사 반열에 올랐던 브리스톨도 후속제품 개발에 거듭 실패했다. 대신 택솔의 복제품 출시를 막으려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 결과 50개 주에서 소송을 당했고, 합의금으로만 1억 3,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또 항불안제 부스파 BuSpar를 둘러싼 유사 소송에 합의하기 위해 5억 3,500만 달러를 썼다). 악명 높은 임클론 ImClone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브리스톨은 혁신적인 대장암 치료제로 여겨지던 어비툭스 Erbitux를 개발한 임클론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하지만 곧이어 임클론의 CEO와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 Martha Stewart가 내부거래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자 각종 루머와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각종 스캔들 외에도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특허들이 머지않아 만료·소멸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때 코넬리우스가 CEO에 오른 이유는 브리스톨을 (플라빅스 개발을 위해 제휴했던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에 매각하기 위해서였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뉴저지 프린스턴 Princeton에 위치한 브리스톨 생산공장은 종업원들이 불안감 속에서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코넬리우스가 CEO가 됐을 때 법무 자문위원을 맡게 된 샌드라 렁 Sandra Leung은 “무척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낯선 인물이 CEO로 취임해 사고의 전환을 촉구했다. 직원들은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코넬리우스 자신도 확신이 없었기에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야 했다. 취임 후 1년간 코넬리우스와 핵심 경영진은 브리스톨의 ‘R&D 전문 기업화’부터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베이 에이리어 Bay Area로의 이전’까지 다양한 방안을 검토했다. 코넬리우스는 하루 종일 빡빡하게 진행되는 전략회의 때문에 두통을 느낄 지경이었다. 아직도 거대 제약회사에 대한 미련을 붙들고 있는 경영진과 논쟁할 때는 특히 더 골치가 아팠다. 충격적인 것은 경영진 대다수가 브리스톨이 제약업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낮은 기업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2007년 12월 마침내 코넬리우스와 안드레오티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hief Operating Officer)를 맡고 있었다가 해답을 찾아냈다. 바로 ‘소규모’ 성장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소규모라는 단어는 브리스톨의 사전에 없던 말이었다. 1989년 브리스톨-마이어와 스퀴브가 합병하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제약회사가 탄생했다(브리스톨-마이어의 주요 제품으로는 드래노 Drano, 윈덱스 Windex, 클레롤 Clairol 등이 있었다). 두 기업 모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거물 제약회사였다. 스퀴브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북부군에 의료품을 지원했으며, 최초로 전자 칫솔을 출시하기도 했다. 브리스톨-마이어는 2차 대전 당시 미군에 페니실린을 공급했고, 공상과학 스릴러 ‘스텝포드 와이브스 The Stepford Wives’를 제작한 팔로마 픽처스 Palomar Pictures를 운영하기도 했다. 개별 기업으로든 합병된 형태로든 브리스톨 마이어스와 스퀴브는 역대 포춘 500대 기업에 꾸준히 선정된 소수의 기업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브리스톨은 빠르게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우선, 1,800만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 항공사업 부문을 없앴다. 걸프스트림 Gulfstream 제트기 2대를 매각하고, 조종사 및 정비 팀을 해체했다. 뉴욕 본사는 가격이 저렴한 파크 애비뉴 Park Avenue 구역으로 이전했다. 심지어 의약품 정보 보고서 출력 때 기존보다 가볍고 저렴한 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브리스톨은 이 점이 무척 자랑스러웠는지 연례보고서에도 언급했다).
2012년까지 브리스톨은 25억 달러의 비용절감을 달성했다. 직원의 3분의 1과 28개 생산시설 중 12개를 줄였다. 구조조정의 상당 부분은 의료영상 부문과 상처치료제 제조사 콘바텍 ConvaTec 같은 비제약부문 자산을 신속히 정리하고, 잘나가던 분유업체 미드-존슨 Mead-Johnson을 분사시키며 이뤄졌다. 신흥시장 진출도 속도를 한 단계 낮췄다.
처음 제약업계의 여론은 ‘사업분할은 바보 같은 결정’이라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특허 만료가 코 앞에 닥친 브리스톨이 스스로 낙하산 줄을 끊고 있다며 비난했다. 하지만 실제 브리스톨 수뇌부가 역점을 기울인 부분은 단순한 기업회생이 아닌 대변신(metamorphosis)이었고,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골드만 삭스의 애널리스트 자미 루빈 Jami Rubin은 브리스톨의 변신이 제약업계 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정말 놀랍다. 브리스톨은 2007년과 전혀 다른 기업이 됐다. 다양한 사업을 하던 초대형 기업에서 바이오 신약개발 전문회사로 탈바꿈했다”고 평가했다.
2013년 브리스톨의 매출은 전년보다 7% 하락해 164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약 26억 달러로 31%나 증가했다.
단순히 규모를 줄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브리스톨의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는 투자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다. 강점이 있는 소수의 질병 분야에 집중한 것이다. 2010년 CEO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회장을 맡고 있는 코넬리우스는 “과거에는 개발비를 충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제품을 개발 중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아직 포화되지 않은, 의학 발전 기회가 풍부한 치료제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리스크와 보상을 모두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내야만 했다. 브리스톨은 당뇨병 외에도 바이러스학(에이즈와 간염), 면역학(크론병 *역주: 소화관 전체에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질환과 류마티스 관절염), 종양학 등 주요 분야의 신약을 출시했다. 코넬리우스는 이 분야들을 브리스톨의 ‘진주목걸이(string of pearls)’라고 불렀다.
공교롭게도 포트폴리오에는 또 하나의 진귀한 보석이 있었다.
짐 앨리슨 Jim Allison은 텍사스 홍키통크 밴드 *역주: 바에서 손님들에게 음악을 연주해 주는 밴드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할 때가 아니면 거의 실험용 쥐들과 함께했다. 텍사스 주 앨리스 Alice 태생의 앨리슨은 노던 캘리포니아 UC버클리에서 작은 흰 쥐들의 면역체계를 연구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신체가 암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인간과 쥐에게서 모두 발견되는 복잡한 림프구 T세포를 집중 연구했다. 그가 풀고자 한 문제는 간단명료했다. ‘무엇이 T세포를 활성화해 병마와 싸우게 만드나’였다.
1987년 프랑스 연구팀은 T세포 표면에 돌출된 단백질, CTLA-4를 발견했다. 수많은 생물학자들은 이 단백질 성분이 T셀을 활성화하고, 병원균과 같은 외부 바이러스를 퇴치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신호라고 확신했다. 앨리슨도 오랫동안 그렇게 믿고 있었다(부드러운 말투에 듬성듬성 턱수염이 나 있는 앨리슨은 현재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MD Anderson Cancer Center)의 면역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통념이 현실과 정반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시카고 대학교의 다른 연구팀들도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CTLA-4는 T세포의 활성체가 아니라 면역체계 가동을 방해하는 억제제였다. 앨리슨이 풀어야 할 다음 숙제는 CTLA-4를 제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1년의 연구 끝에 쥐 몸 속의 CTLA-4를 억제하기 위한 항체를 만들어냈다. 항체를 종양이 있는 쥐에게 투입하자 거의 모든 종양이 사라졌다. 그는 “활성체 하나를 제거했을 때 많은 경우 완전한 반응을 보였고 영구적 면역으로도 이어졌다. 정말 놀라운 결과였다”고 설명했다.
앨리슨은 1996년 이 연구결과를 발표했지만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이후 몇 년간 사람의 신체에도 적용할 수 있는 CTLA-4 항생제 개발업체를 찾기 위해 수많은 생명공학 기업 및 제약업체를 방문해 자신의 연구성과를 알렸다.
인간에게 사용할 수 있는 CTLA-4 항생제 개발은 무척 어려운 도전과제였다. 앨리슨은 과학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면역제 치료법 자체가 기업의 관심을 끌기 힘든 분야라고 말했다. 20세기 초 미국인 의사 윌리엄 콜리 William Coley는 박테리아 혼합물질을 주입해 면역 체계에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암을 치료했다. 그때부터 암 치료에 면역체계를 이용하는 아이디어가 큰 기대를 모았지만 실망스러운 결과만 반복되었다. 1970년대 연구자들은 인터페론 Interferon이라는 면역물질이 획기적인 암 치료제가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 또한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다. 1990년대에는 인터루킨2 Interleukin-2라는 자연 단백질에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앨리슨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T세포 내부에 면역 억제신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2년이 지나서야 앨리슨과 두 명의 동료 과학자는 뉴저지 프린스턴의 제약회사 메다렉스 Medarex와 공동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메다렉스 소속 하버드 출신 분자생물학자 닐스 론버그 Nils Lonberg는 쥐에게 인간 면역체계를 이식하기 위한 유전자 조작법뿐만 아니라 인간유전자에서 항생제를 만들 방법도 고안해 냈다.
그럼에도 항생제 개발의 길은 멀고 험했다. 1년 3개월간의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마침내 CTLA-4를 억제할 항생제를 개발했다. 그들은 이 항생제를 이필리무맵 Ipilimumab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09년에는 이 항생제-그 후 여보이 Yervoy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와 이를 개발한 메다렉스가 모두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의 소유가 되었다.
브리스톨은 24억 달러에 메다렉스를 인수했다(제약업계 애널리스트들은 심심치 않게 이를 업계 사상 최고의 인수거래라고 평가한다). 이를 통해 브리스톨은 새로운 히트상품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면역 종양학(immune-oncology)이라는 떠오르는 의약품 분야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운도 따랐지만 브리스톨 최고 경영진의 남다른 식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그들은 많은 이들이 놓친 여보이라는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것이었다. 2000년 메다렉스는 전립선암이나 피부암의 치명적 형태인 ‘전이성 흑색종’ 환자들을 대상으로 ‘CTLA-4-억제제’의 최초 임상실험을 시행했다. 하지만 실험은 해답보다는 더 많은 의문점을 (심지어 의심도) 낳았다. 브리스톨의 최고과학책임자(Chief Science Officer, CSO) 프랜시스 커스 Francis Cuss는 “반응 패턴이 독특했다. 효과가 있기는 했지만 우리의 생각과는 달랐다”고 말했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Memorial Sloan Kettering 암센터에서 여보이 실험을 주도했던 제드 월쇽 Jedd Wolchock 박사는 임상실험 12주 후에 흑색종 환자의 스캔을 살펴보았다. 결과는 완전히 실망스러웠다. 여느 흑색종 말기 환자처럼 종양이 더 커지고 증가해 있었다. 월쇽 박사는 “누가 봐도 여보이는 실패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자에게 그 소식을 전하려 했을 때 환자는 그의 말을 막고 이렇게 말했다. “스캔결과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라. 몸 상태가 한결 호전된 것 같다.”
월쇽은 방사선 사진이 약효 경과를 따라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월쇽과 환자는 아무런 치료 없이 두 달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 다시 만났을 때 환자는 거의 완치된 상태였다. 그는 지금도 건강하며, 재발 징조도 없다.
이 사례는 임상실험 의사들과 신약 개발업체들이 새로운 치료법을 평가할 때 보다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면역체계는 때때로 신체에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며, 그에 따른 반응도 전통적인 화학요법보다 늦게 나타날 수 있다. 좋은 소식은 효과가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존스 홉킨스의 종양외과 전문의 수전 토팔리언 Suzanne Topalian 박사는 “이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지금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그러나 학습능력이 있는 면역체계는 오래전 반응했던 병원균을 기억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오랜 기간 암을 기억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면역치료 후 종양이 더 커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도 실제로 종양이 커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활성화된 면역 세포의 자극을 받은 종양에 염증이 생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른 제약회사들은 이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했다. 앨리슨은 “10여 년 전 화이자도 메다렉스의 특허 사용권을 얻어 항생제 기반 신약을 개발했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종양을 줄이지 못하자 곧바로 신약개발을 접었다”고 밝혔다.
결국 중요한 점은 종양 크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살리는 것이다. 지난해 은퇴 전까지 브리스톨의 CSO를 역임했던 엘리엇 시걸 Elliot Sigal은 여보이 투약 환자들의 캐플런-마이어 Kaplan-Meier 생존곡선 *역주: 사망이 관측되는 시점마다 생존확률을 계산하는 생존분석 도표 을 봤을 때의 전율을 여전히 기억한다. 커리어의 대부분을 종양학 부문에 종사했고, 2009년 메다렉스 인수에서 큰 역할을 했던 안드레오티도 마찬가지로 그 감동을 기억한다.
곡선은 각기 다른 임상실험에 참여한 환자들(해당 치료를 받은 환자들과 그렇지 않은 환자들)의 생존율을 보여줬다. 흑색종의 경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생존율 곡선이 합쳐졌다. 환자들은 슬퍼할 수밖에 없었고, 수십 년에 걸친 치료제 개발 노력도 무위로 돌아갔다. 치료제 복용여부와 상관없이 10년 내에 10~15%의 환자들이 사망했다.
하지만 여보이는 달랐다. 투약환자의 곡선과 그렇지 않은 환자들의 곡선 사이에는 작지만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면역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20% 이상이 장기간 생존했다. 환자들에게는 너무 낮아 보일지 모르는 수치지만 엄청난 의학적 성과였다.
2011년 흑색종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은 여보이는 흑색종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여주는 최초의 치료제였다. (길리어드 Gilead의 소발디 Sovaldi, 덴드레온 Dendreon의 프로벤지 Provenge, 노바티스의 글리벡 Gleevec, 브리스톨의 스프라이셀 Sprycel 등) 점점 더 그 수가 증가하는 다른 특수 약품과 마찬가지로, 여보이도 과도하게 비싼 가격으로 많은 이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가격은 4번 투약 기준으로 무려 12만 달러다. 브리스톨은 생존율 증가 혜택과 막대한 개발비를 언급하며 무지막지한 가격을 변호했다.
브리스톨은 이런 논란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지난해 여보이로 9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환자수가 많지 않은 출시 2년 차 약임을 고려했을 때 엄청난 액수다), 브리스톨은 현재 35개의 임상실험을 진행하며 면역체계 억제 요소를 제거하는 다른 약을 개발 중이다.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니볼루맵 Nivolumab이라는 제품으로, 이 또한 메다렉스의 작품이다.
니볼루맵은 여보이와 달리 PD-1이라 불리는 다른 타깃을 공격하는 데 훨씬 더 효과가 뛰어나고, 저항력도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 삭스의 루빈은 2020년 무렵이면 니볼루맵의 가치가 최소 45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니볼루맵은 흑색종, 신장암, 폐암 치료에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폐암 치료제는 제약회사들에 엄청난 기회다(올해 흑색종 사망자 수는 1만 명으로 예상되는 반면, 폐암 사망자 수는 16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회의적이었던 제약회사들 대부분이 면역요법 암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PD-1을 억제하는 약만 6개 이상 개발 단계에 있으며, 수많은 기업들이 제일 먼저 FDA 승인을 받기 위해 혈안이다. 시티그룹의 의약품 애널리스트 앤드루 바움 Andrew Baum은 면역 종양학 약품 시장의 가치가 10년 내 350억 달러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다. 골드만 삭스의 루빈도 “우리는 이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이제야 겨우 알기 시작했다. 엄청난 시장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브리스톨이 경쟁에서 패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현재 PD-1 억제제 출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머크가 브리스톨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사실 경쟁이 치열해진 시점은 지난 4월로, 당시 브리스톨은 올해 말까지 니볼루맵의 FDA 승인신청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부 제약업계 애널리스트들은 브리스톨의 끊임없는 몸집 줄이기가 궁극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궁금해한다. 브리스톨이 (대형 제약회사들 사이에서 훌륭한 ‘바이오테크’ 틈새시장으로 보이는) 면역 종양학 선두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영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월 말 열린 브리스톨의 1분기 실적발표에서 한 애널리스트가 브리스톨이 면역 종양학 분야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하기 위한 상업적 규모를 갖췄는지를 물었다(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의 합병 가능성을 고려한 질문이었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안드레오티였지만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브리스톨의 경쟁력을 비하하는 말에 모욕감을 느낀 것으로 보였다.
그는 재빨리 “우리는 준비가 끝났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로든 진출할 준비가 돼 있다. 더 이상 덧붙일 말은 없다”고 말했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 주요 제약회사 중 가장 규모가 작은 브리스톨은 지금 몇 체급이나 높은 상대들과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