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미래에도 인간이 할 일이 남아 있을까?

In the Future, Will There Be Any Work Left for People to Do?

허리 높이의 연단에 내 이름표가 붙어 있고, 필자는 그 뒤에 서 있다. 오른쪽에는 비키 Vicki라는 여성이 서 있고, 그녀 앞에도 이름표가 붙은 동일한 연단이 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세 번째 연단이 있고, 그 뒤에는 아무도 없다. 연단 앞에 ‘왓슨 Watson’이라는 이름만이 붙어 있다. 이제 곧 제퍼디 Jeopardy *역주: 미국 ABC사의 퀴즈쇼 프로그램를 시작한다!

이곳은 미국소매협회(National Retail Federation)의 대규모 연례회의가 열리는 뉴욕 시 자비츠 센터 Javits Center다. 사회를 맡은 필자는 정신이 나갔는지 IBM 슈퍼컴퓨터 왓슨과 퀴즈 대결도 펼치기로 했다. IBM은 인지 컴퓨터 시스템(Cognitive Computer System)인 왓슨의 성능을 소매업체에 선보이고 싶어한다. 왓슨이 제퍼디의 역대 챔피언 둘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이 벌써 거의 1년 전이므로, 왓슨을 이기겠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무엇이 필자를 놀라게 할지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영화 분야에서 비포 앤드 애프터 Before and After *역주: 영화 제목 두 개를 이어 하나의 제목처럼 답하는 퀴즈가 주어졌다. 상금 200달러짜리 첫 번째 문제의 힌트는 ‘한 솔로 Han Solo가 마티 맥플라이 Marty McFly와 시간여행을 하던 중 란도 칼리시안 Lando Calrissian을 만난다’이다. 아…… 뭐? 왓슨은 이미 버저를 눌렀다. ‘제국의 미래 역습(The Empire Strikes Back to the Future)?’이라며 정답을 맞힌다.

그리고 왓슨은 같은 분야의 400달러짜리 문제를 고른다. 문제의 힌트는 ‘제임스 본드 James Bond는 소련에 대항해 싸우면서 알리 맥그로 Ali MacGraw가 죽기 전에 사랑을 이루려 노력한다’이다. 내가 아직도 퀴즈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왓슨은 이미 버저를 누르고 “007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Story)?”이라고 말한다. 또 정답이다.

내가 어떤 퀴즈인지 이해할 무렵, 왓슨은 영화 분야의 마지막 문제를 선택했다. 힌트는 ‘존 벨루시 John Belushi와 소년들이 박물관 내 남학생 사교클럽을 결성하는데, 이 박물관에서 정신이 이상한 빈센트 프라이스 Vincent Price가 사람을 조각상으로 만든다’이다. 왓슨은 곧 정답을 알아차리곤 “애니멀 하우스 오브 왁스 Animal House of Wax?”라고 다시 한 번 정답을 말한다. 왓슨은 영화 분야의 모든 문제를 맞혔다.

다른 분야에선 필자가 문제를 맞히기도 했고, 왓슨이 틀린 적도 있다. 하지만 첫 번째 라운드 결과, 나는 큰 격차로 패배했다. 심리적으로나 자신을 보호하려 했었는지 점수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뭔가 매우 중대한 것을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왓슨은 인터넷에 연결돼 있지도 않다. 필자와 똑같이 독립적인 개체로,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만 의존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진행자의 말을 듣고 이해해야만 한다. 게다가 문제에 답하기 위해 버저를 누를 때, 왓슨은 자체적인 지연작용을 거친다. 인간은 선사시대 때부터 물려받은 근육을 사용해 버튼을 눌러야 하고, 그래야 ‘기계회로’를 닫아 버저를 울릴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왓슨은 전기 신호를 통해 빛의 속도로 버저를 울릴 수 있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공평한 경쟁을 위해 지연작용을 거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왓슨과 내가 모두 정답을 안다고 해도 필자가 정답을 맞힐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졌다.

자, 현실을 인정하자. 왓슨은 나보다 더 똑똑하다. 사실, 필자는 나보다 정밀한 작업을 더 잘하는 기술들로 둘러싸여 있다. 구글의 무인차는 나보다 운전을 더 잘 한다. 많은 구글 무인차가 모두 합쳐 수십만 킬로미터를 운행했지만 무인 주행모드에선 단 한 번의 사고만을 기록했다. 이 사고도 정지 신호에 멈춰 있을 때, 인간이 운전하던 차에 발생한 후방 추돌사고였다. 소송 검토 단계에서 진행되는 참고 목적 문서조사도 사람보다 컴퓨터가 더 잘 한다. 젊은 변호사들은 이런 문서조사를 해주면서 엄청난 비용을 청구하곤 했다. 인간은 수백만 년을 거친 진화를 통해 감정을 인지하는 능력이 날카롭게 발달했지만, 몇몇 감정은 오히려 컴퓨터가 더 잘 인지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필자가 왓슨과 겨룬 것이 2년 전이다. 이제 왓슨은 240%나 더 빨라졌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세상 대부분의 존재는 몸집이 커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느려지는 경향이 있다. 소규모 신생기업은 1년에 100% 성장을 이룰 수 있지만, 포춘 500대 기업의 경우 5% 성장하기도 힘들다. 기술에는 이런 제약이 없다. 현재 컴퓨터 시스템은 지금도 매우 강력하지만, 2년 후에 두 배는 더 강해질 것이다. 10년 후에는 32배 더 강해질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는 매우 명료하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미래에 높은 가치를 지닐 전문기술은 무엇이며, 어떤 직업을 가져야 우리와 아이들이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절대불변의 고민은 점점 더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인간이 컴퓨터보다 더 잘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현재의 몇 가지 사안 때문에 특히 더욱 중대한 것이 되었다. 경제가 일자리 창출에 미진한 역할을 하는 가운데, 경제학자들은 그 이유를 찾느라 분주하다. 수십 년간 미국 경제는 경기침체 시작 후 약 18개월이 지나면 침체 전의 고용률 수준을 회복하곤 했다. 이번에는 77개월이 걸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 미국 국민의 임금은 대부분 제자리걸음인가? 진보하는 기술이 그 이유의 한 부분인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지난 두 세기 동안 명확했다. ‘그렇지 않다’였다. 사실상 기술의 진보가 이뤄질 때마다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고, 실제로 어떤 일자리는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로 인해 훨씬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났고, 진보한 기술은 새로운 일자리의 생산성과 임금수준을 제고했다. 러다이트 Luddites *역주: 컴퓨터에 의한 기술혁신을 반대하는 사람의 두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근거 없는 공포다. 기술은 지금까지 삶의 질을 놀라울 정도로 개선시켰다.

이는 지금까지 경제학에서 가장 굳건한 정설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정설이 흔들리고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전 미 재무부 장관이었던 래리 서머스 Larry Summers는 최고의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강연을 진행한 바 있다. 그는 이 강연에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것이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러다이트는 틀렸고 기술 자체와 기술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이 옳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확신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머스는 컴퓨터가 더 잘하는 작업이 점점 더 정밀해지는 점과 25세에서 54세 사이의 실업률이 높아지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곤 “이러한 변화들이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경제적 요인이 될 것”이라는 중대한 결론을 내렸다. 기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 Bill Gates도 “앞으로 20년 후에는 상당 수 전문기술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점을 고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동안 기술 때문에 전체 직업 개수가 줄어든 일은 없었지만, 일의 본질과 특정 전문기술의 가치는 기술 때문에 변화했다. 지금까지 총 세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첫 번째 전환점은 산업기술의 발달로 인한 장인들의 전문기술 가치 하락이었다. 당시 장인들은 제품 생산 공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손수 작업을 했다. 총을 만드는 장인은 직접 개머리판을 깎고, 총신을 제작하고, 격발장치를 조각하고, 방아쇠를 다듬고 나서 많은 노력을 들여 부품을 조립했다. 하지만 엘리 휘트니 Eli Whitney의 코네티컷 주 총기 공장에서는 각 노동자가 각자의 작업만을 하거나, 작은 부분만을 맡아 수행했다. 수력을 이용한 기계를 도입했고, 각 부품은 모두 자체 규격이 동일했다. 전문기술이 뛰어난 장인이 아니라 기술수준이 낮은 노동자가 필요했다.

20세기 초에 이러한 경향이 뒤집히면서 두 번째 전환점이 찾아왔다. 전기 보급률 향상과 함께 공장에서 더욱 정밀한 작업이 가능해졌고, 교육 및 전문기술 수준이 높은 노동자가 필요했다. 기업 또한 몸집이 커지면서 교육 수준이 높은 관리자를 다수 필요로 했다. 전문기술이 부족한 노동자들의 운은 다했고, 교육받은 노동자의 수요가 증가했다. 20세기 내내 지속된 기술의 진보와 함께 미국인은 더 많은 교육을 받았고, 급격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경제적 기적을 이뤄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세 번째 전환점이 1980년대부터 나타났다. 정보기술이 장부기록, 업무지원, 공장 반복작업과 같은 중간단계 기술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달하면서 관련 직업들이 쇠퇴했고, 해당 분야 노동자들의 임금도 정체기에 들어섰다. 하지만 고기술 및 저기술 부분 서비스업종은 오히려 더 상황이 좋아졌다. 정보기술은 문제해결, 판단, 공조업무와 같은 고기술 인력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러한 인력에게 저비용으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그들의 생산력을 높여줬다. 한편, 저기술 서비스업 종사자들도 위협을 받지 않았다. 컴퓨터는 육체적 민첩성이 필요한 작업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컴퓨터는 체스의 대가를 이길 수는 있었지만, 책상 위에 놓인 연필을 집을 수는 없었다. 가정 보건 도우미, 정원사, 요리사 등의 직업은 안정적이었다.

아주 최근까지 이러한 현상이 지속됐다. 정보통신은 중간수준의 전문업종에 타격을 줬지만, 양 극단에 있는 업종은 안전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우리는 네 번째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정보기술이 지속적인 진보를 거듭해 고기술 및 저기술 업종도 대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노동자들에게도 위협이 되고 있다.

고기술 직종을 살펴보면, 변호사들이 현재 겪고 있는 변화가 다른 직업-분석, 정밀한 해석, 전략수립, 설득이 필요한 직업-에도 나타날 것이다. 법적 문서의 조사 과정에 컴퓨터가 도입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컴퓨터는 전국에 존재하는 수백만 건의 문서를 읽으면서도, 집중력 저하나 피로감 없이 참고 내용을 추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다. 특정 사건의 적절한 판례가 될 문서를 찾아내는 컴퓨터의 성능은 점점 더 고도화되고 있고, 인간에 비해 더욱 광범위한 영역을 더욱 면밀하게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여전히 판례를 확인해야만 한다. 하지만 노스웨스턴 대학(Northwestern University)의 법학교수 존 오 맥기니스 John O. Mcginnis는 최신 기고에서 ‘검색엔진은 결국 스스로 이를 해낼 것이고, 특정 사건과의 관련성 입증 가능성이 높은 판례를 제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사들의 전문기술 영역에 훨씬 더 근접하게 된 컴퓨터는 이미 그들보다도 대법원의 판결을 더 잘 예측한다. 이러한 분석능력이 그 범위를 확장하면, 컴퓨터는 법원과 사건의 유형에 상관없이 변호사와 매우 유사한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소송, 합의, 재판 여부에 관해 변호사보다도 더 나은 조언을 제공할 수도 있다. 렉스 마키나 Lex Machina, 휴런 리갈 Huron Legal 같은 업체는 이러한 분석 서비스를 이미 제공하고 있으며, 그 성능은 하루하루 향상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변호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의 수요는 줄어들 것이며, 이미 그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맥기니스는 “기계 지능의 발전은 부분적으로나마 현 법학전문대학원 위기(지원자 감소, 학비 하락 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그리고 그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정보기술이 법조계처럼 매우 전문적인 직종-대학원 3년을 다니고 나서야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다-의 판도를 바꿔 놓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애널리스트나 경영직 같은 전문직 노동자들도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기술 직종에서 나타나는 현상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과거 육체노동 분야를 돌아보면, 로봇이 좋은 성능을 보였던 업무는 자동차 조립라인 용접처럼 반복적이며 작업 절차가 확립된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구글의 무인차가 좋은 예이지만, 그 외에도 많은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리싱크 로보틱스 Rethink Robotics에서 나온 백스터 Baxter 로봇의 경우, 최종 작용체(end effectors)인 로봇의 팔과 손을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여 훈련시킬 수 있다. 박스를 밀봉하거나 개봉할 수 있고, 컨베이어 벨트 위로 물체를 옮기거나 그곳에서 가져올 수도 있으며, 물체를 옮기거나 개수를 세고 검수할 수도 있다. 백스터는 상점 안을 돌아다니면서 인간에게 부상을 입히지도 않는다. 인간을 포함한 주변 환경에 적응해 스스로 동작을 제어한다.

룸바 Roomba 진공청소기를 비롯한 여러 이동형 로봇을 만든 아이로봇 iRobot이 하버드, 예일 대학과 함께 개발한 로봇 손은 훨씬 더 진보한 사례다. 이 로봇 손의 운동 능력은 매우 뛰어나 테이블 위의 신용카드를 집을 수 있고, 드릴에 날을 끼울 수도 있으며, 열쇠를 끼워 돌릴 수도 있다. 해당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하우 Robert Howe는 하버드 매거진 Harvard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장애인이 손을 장착한 로봇에 ‘부엌에 가서 내 저녁식사를 전자레인지에 넣어라’라고 지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영원히 안정된 직업은 없는 것 같다. 200년 만에 처음으로 ‘기술에 의한 실업’이 마침내 다가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또 그럴 것이라 말하기에 성급할지는 몰라도-결국 예전처럼 어떤 직업은 기술의 진보로 인해 그 가치가 상승할 것이고, 어떤 직업은 그 가치가 하락할 것이다. 네 번째 전환점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어떤 직업이 승자가 될 것인가?

그 대답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변호사를 다시 돌아보자. 맥기니스의 판단에 따르면, 평범한 변호사들은 우울한 미래를 앞두고 있다. 맥기니스는 그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이성을 잃고 분노하는 고객이 스스로에게 유익하도록 행동하게 설득하는 것”이라며 “기계는 이처럼 중요한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소수의 ‘일류 변호사’는 발전한 기술을 이용해 비용을 줄이고(직원을 많이 고용할 필요가 없다), 매우 복잡한 사건에 대해 막대한 비용을 청구하고, ‘인간 고유의 판단’을 제공함으로써 계속 자신의 위치를 유지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정서적 유대감 형성이나 인간 고유의 판단과 같은 전문기술은 컴퓨터가 절대로 습득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봤을 때, 컴퓨터가 절대로 습득할 수 없는 기술이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IBM은 디베이터 Debater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왓슨에 설득력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최근 오스카상을 수상한 ‘그녀(Her)’의 영화 세상-한 남자가 자신의 정보기술 장비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다-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를 그려냈기 때문에 관객과 비평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좀 더 본질적인 현실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컴퓨터가 인간만큼 잘 할 수 있는 전문기술이라고 해도, 인간이 수행한 것이라 주장하는 업무결과에 더 높은 가치를 매길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가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인간이 판사나 배심원으로서 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려주길 바랄 것이다. 어쩌면 ‘단지 인간에게 말하고 인간이 우리의 말을 들어준다’는 이유만으로 컴퓨터가 아닌 의사로부터 진단내용을 듣고, 그에 대해 상의하고 싶어할 것이다. 컴퓨터는 항상 옳은 말만 하지만 우리는 인간 지도자를 따르길 원할 것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타워스 왓슨 Towers Watson과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Oxford Economics는 최근 고용주를 대상으로 향후 5년에서 10년동안 가장 수요가 높을 전문기술을 조사했다. 이 중에는 사업적 재능, 분석력, 수익손실관리(P&L Management) 등은 없다. 그보다는 관계형성, 협동능력, 공동창의력, 문화민감성, 그리고 다양한 피고용인 관리능력 등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가오는 미래상이 이렇다 보니 전통적 경로상담 내용의 변경이 불가피하다. 일단, 이공계열(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을 공부하라는 조언은 약간 수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매우 좋은 조언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한 조사에서도 최고연봉을 받는 전공 10개 중 8개는 공학계열이었고, 이 전문기술은 앞으로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하다고 해서 반드시 가치가 높고 연봉이 많은 것은 아니다. 정보기술이 진보를 거듭해 고급전문기술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가치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엔지니어의 수요는 앞으로도 많을 것이지만, 미래에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될 엔지니어는 단지 ‘책상물림’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관계를 형성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이끌어내고, 조직을 이끌 수 있는 엔지니어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우뇌를 사용하는 전문기술이 가치를 지닐 것이란 생각에 안주하고 싶을 것이다. 미적분은 인간에게 어렵지만, 감정을 이해하는 일은 인간 모두가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감정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다 그 일을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인간본성의 중요 부분을 이용해 관계 형성에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분명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컴퓨터는 그 탄생 이후 인간에게 공포를 심어주기도 했고, 일자리를 없애거나 만들기도 했으며, 몇몇 전문기술의 가치를 떨어뜨리면서 다른 전문기술의 가치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서 과거에도 같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에는 달랐다. 컴퓨터는 그 규모가 성장한다고 해서 성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미래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발달된 인지적, 육체적 전문기술 중 몇몇을 컴퓨터가 습득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경제와 그 체제 안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다음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앞으로 인간이 컴퓨터보다 무엇을 더 잘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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