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 못 판다’는 건 괜한 말이 아니었다. 요즘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이 딱 그 모양이다. 아시안 뷰티를 겨냥한 아모레퍼시픽의 화살이 제대로 과녁을 뚫었다.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인천공항 면세점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매장. 이곳은 늘 손님이 북적대는 인기 매장 중 하나다. 손님 중 태반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 쇼핑업계에서 큰손 대접받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엔 한국 화장품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단체 관광객이 한번 뜨면, 설화수 윤조에센스, 라네즈 비비쿠션, 헤라 미스트쿠션 등 인기상품을 싹쓸이해 갈 정도다.
이에 아모레퍼시픽은 2월부터 일부 판매제한을 하고 나섰다. 개인당 단일 품목을 10개 이상 구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홍보팀 관계자는 말한다. “K뷰티 열풍으로 중국, 동남아 관광객들의 방문과 구매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면세점에서 한꺼번에 대량 구매를 할 경우, 다른 고객 분들이 구입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일이 발생해 판매 수량을 일부 제한하고 있습니다.”
금기는 인간의 열망을 더욱 부추기는 걸까? 판매량 제한에도 불구하고 매진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인기를 누리는 곳은 면세점뿐만이 아니다. 주식시장에서도 아모레퍼시픽이 핫픽으로 손꼽히고 있다.
올해 들어 아모레퍼시픽의 주가가 매섭게 상승하고 있다. 연초 100만7,000원이던 주가는 7월 15일 현재 167만5,000원(종가기준)까지 올랐다. 반년 만에 66% 넘게 성장했다.
주가가 상승한 이유는 탄탄한 실적 덕분이다. 아모레퍼시픽은 1분기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깜짝 실적을 선보인 데 이어 2분기에도 호실적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 성장한 1조 1,397억 원, 영업이익은 23% 증가한 2,139억 원을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결과였다. 특히 아모레퍼시픽, 에뛰드, 이니스프리, 아모스프로페셔널로 구성된 화장품 계열사들의 매출 합계가 1조 825억 원에 달해,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로 ‘분기 매출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2분기 실적 전망도 장미빛이다. 증권가는 아모레퍼시픽 2분기 실적이 컨센서스에 부합하거나 그 이상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IG투자증권은 연결기준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5.1% 증가한 9,195억 원, 영업이익은 19.8% 늘어난 1,134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적을 이끄는 견인차는 면세 매출과 해외판매다. 1분기 면세 경로 매출은 1,16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6%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중국인 고객이 빠르게 늘었다. 면세점 중국인 구매액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40% 신장됐다.
해외 화장품 사업은 1분기에 전년동기 대비 49.7% 성장한 1,923억 원을 기록했다. 이 중 1,618억 원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시장에서 나왔다. 아시아 시장은 전년동기 대비 67.8% 성장했다.
2분기 역시 성장세가 유지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지영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사업의 경우 2분기 중국인 입국자 수 증가에 힘입어 면세 매출이 60% 이상 고신장했다”며 “해외 사업은 전 해외법인의 고른 성장에 홍콩법인의 인수 효과까지 반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면세점 매출은 국내 매출로 분류되지만, 중국인 지갑에서 나온 돈이다. 사실상 외국인 수요가 아모레퍼시픽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작은 가내수공업에서 시작됐다. 1932년 서경배 회장의 할머니 고(故) 윤독정 여사가 부엌에서 동백기름을 짜서 내다 판 게 가업의 시초였다. 서 회장의 아버지 고(故) 서성환 창업주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도우며 자연스레 화장품 제조와 사업 노하우을 익혔고, 이를 배경으로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창립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는 곧 국내 화장품 시장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서 창업주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화장품 시장을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키웠다. 아모레퍼시픽은 창립 이래 늘 시장 1위를 지키며 시장을 이끌고 있다.
서성환 창업주는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다. 서경배 회장은 이 중 막내로 1963년에 태어났다. 서 회장은 연세대 경영과와 코넬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7년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후 1994년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을 거쳐 1997년 태평양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며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서 회장은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재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1980~1990년대에 여타 기업들처럼 사업영역을 문어발 확장한 것이 부담이 됐다. 서 회장은 증권, 패션, 야구단, 농구단 등 본업과 무관한 사업을 매각하고 화장품 사업에 집중했다. 선제적인 구조조정 덕분에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 1등 기업으로 지위를 공고히 하고, 외환위기에도 오히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서 회장은 사업분야를 화장품으로 좁히는 대신 해외로 시장을 넓혀 나갔다. 해외 MBA 출신다운 선택이었다. 서 회장은 중국과 미국, 프랑스 등을 차근차근 공략하며 글로벌 시장을 키웠다. 그중에서도 중국과 아시아 시장에 주목했다.
서 회장은 “아시안 뷰티가 전 세계 미의 패러다임을 선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것을 자신했다. 그래서 아모레퍼시픽의 미래도 이곳에서 찾았다. “세계 속에서 아모레퍼시픽은 ‘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Asian Beauty Creator)’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자 합니다. 세계인의 시선이 머무는 아시아에서, 30억 아시아인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꿈을 실현하는 기업, 나아가 전 세계 고객들에게 아시아의 문화가 품어 온 미의 정수를 선보이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서 회장이 평소 강조하는 비전이다.
아시안 뷰티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시장을 잡기 위해 서 회장은 중국 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2000년 상하이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중국 비즈니스를 체계적으로 정비해 나갔다. 아모레퍼시픽은 1994년 중국 선양에 처음 진출해 현지 법인을 세운 바 있지만, 사업 인프라 등을 감안해 상하이를 새로운 전략 기지로 삼았다.
아모레퍼시픽은 ‘라네즈’ ‘마몽드’ 등 국내에서 성공한 브랜드를 중국에 론칭하며 중국 시장을 두드렸다. 중국 법인은 2007년부터 흑자 전환하며 시장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는 ‘설화수’와 ‘이니스프리’를 론칭하며 시장 확산 속도를 올리고 있다.
중국시장의 성공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였다. 2000년대 초반 아모레퍼시픽은 글로벌 전략 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얻어 대대적인 시장조사를 실시하고, 이에 따라 사업 전략을 수정했다. 현지에 생산 시설을 구축하고, 제품 일부를 현지에서 생산 조달했다. 중국인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상하이연구소를 설립해, 현지 대학 및 피부과 병원과 공동으로 연구하며 중국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나갔다. 마케팅과 세일즈, 중간 관리자 역시 현지인을 고용하는 등 현지에서 인력을 발굴해 육성하며 사업 효율성을 높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판매는 빠르게 증가했다. 행운의 여신은 노력하는 이에게 미소 짓는다 했던가. 때마침 한류 열풍이 불며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진출에 가속도가 붙었다.
서 회장은 현장경영을 중시한다. 한 달에 3분의 1은 해외, 3분의 1은 현장에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하이, 뉴욕, 파리, 도쿄, 홍콩 등 아모레퍼시픽이 진출한 글로벌 거점이나 국내 지역사업부를 자주 방문해 시장을 관찰하며 배우고 있다. “현장은 고객과 직접 만나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이자 기회”라는 것이 서 회장의 지론이다.
서 회장은 또 ‘공부하는 경영자’로도 유명하다. 좀처럼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평소 안면이 있던 저자와는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며 책 내용을 묻기도 한다. “경영자는 평생 배우는 것을 멈춰선 안 된다”며 좋은 책을 주변 임원에게 건내곤 한다. 또 독서와 출장에서 얻은 통찰을 정기 조회나 사내 게시판 등을 통해 임직원과 나누고 있다. 책과 현장은 서 회장에게 아이디어의 보고다. 여기서 얻은 아이디어는 경영 전략으로 다시 태어난다. 빅데이터로 중국 시장을 분석한 것도 그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책과 강연 등으로 빅데이터 트렌드를 접한 서 회장은 이를 재빨리 사업에 접목시켰다. 2012년 빅데이터 경영 컨설팅 업체인 다음소프트와 함께 중국 시장을 분석했다. 그리고 중국 시장을 헤쳐나갈 새로운 힌트를 얻었다.
일반적으로 중국 여성은 한국 여성에 비해 미용에 덜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도시 여성이 하루에 바르는 화장품 종류나 화장품 구매에 들이는 비용은 한국 여성에 비해 적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용에 관심이 적다고 결론 내리면 오산이다. 조사 결과 중국 여성은 바르는 화장품 대신 ‘뷰티 푸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콜라겐이나 비타민 음료 등을 마시며 피부 속 건강부터 챙기는 미용법에 중국 여성들은 높은 수용성을 보였다.
이너 뷰티(Inner Beauty) 시장은 최근 미용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기대를 모으는 분야다. 아모레퍼시픽도 2002년부터 ‘먹는 화장품’ 브랜드 VB(Vital Beauty)를 출시해 꾸준히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최근에는 그 성장성도 가시화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4월 주요 제품인 ‘슬리머DX’를 리뉴얼 출시해 전지현을 새로운 모델로 내세웠다. 해당 제품은 출시 한 달 만에 판매액 100억 원을 돌파하는 등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홍보팀 관계자는 “본격적인 여름 시즌을 맞아 몸매에 신경 쓰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고객들이 VB 제품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에서도 이너 뷰티 제품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시장 변화를 감지하고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저력, 이는 서 회장의 깊은 내공과 무관하지 않다.
서 회장이라고 해서 늘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여러 위기 요인에 시달렸다. 방문판매 대리점주와 갈등이 표출되며 갑을 논란을 빚었다. LG생활건강 등 경쟁사들의 성장도 아모레퍼시픽을 위협했다. 이로 인해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지난해 10월 80만 원대로 급락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하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11월 전 직원과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한 다짐’을 선언했다. “1990년 초반 화장품 전문점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방문 판매를 고수하다가 매출이 떨어졌습니다. 수입 화장품 시장이 개방됐을 땐 점유율이 20%대까지 떨어져 위기를 맞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때도 답은 내부에 있었고 이를 개선하면서 오늘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서 회장이 직원들을 독려하며 했던 말이다.
서 회장은 지난해 위기 때 내부 전략을 하나하나 재점검했다. ‘질적 성장’을 모토로 국내외 유통 채널과 마케팅 전략을 손봤다. 브랜드별로 따로 움직이던 마케팅 전략을 서로 벤치마킹 할 수 있도록 내부 소통도 강화했다. 협력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생태계 소통과 상생도 강조했다.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주가가 수직반등한 것도 이 같은 노력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올해도 서 회장은 경영방침을 ‘우리 다 함께’로 정하고, ‘원대한 기업(Great Global Brand Company)’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5대 글로벌 챔피언 뷰티 브랜드를 육성하고, 글로벌 사업 비중을 50%까지 키워 질적 성장을 실현하자”는 의지를 밝혔다.
재계는 서 회장이 보여준 경영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지난해 12월 선정한 ‘올해의 CEO 10’에서도 서 회장은 기업 규모가 더 큰 재벌 총수를 제치고 열 손가락 안에 꼽혔다. 그중에서도 ‘전문성’에 대한 평가 비중이 상대적으로 가장 높았다. 사업분야를 화장품으로 압축하고 아모레퍼시픽을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한 서 회장, 그에게선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