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중국 건설업계의 최고 ‘악동’ 억만장자

China’s Baddest Billionaire Builder

세계 500대 기업
166위
PACIFIC CONSTRUCTION GROUP

옌 졔허 Yan Jiehe는 스스럼 없이 마오쩌둥을 비난한다.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경쟁업체와 맞서도 물러서는 법이 없다. 신도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하다면 산 몇 개 정도는 거침없이 깎아 평지로 만든다. 중국 건설업계에는 그처럼 행동하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
BY SCOTT CENDROWSKI


VIP가 도착할 시간이 되자, 남부 쿤밍 시 윤난 젠주앙 Yunnan Zhenzhuang 게스트 하우스에 공산당원과 청중이 가득 찼다. 200여 명에 이르는 사람이 공산당 정복인 검은 정장과 흰색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지역 당 지도자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중 사이에 오가는 긴장된 웅성거림 때문인지, 아니면 슬프고도 웅장하게 호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특별한 뉴스가 나온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무엇보다 옌 졔허가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대 발표임을 의미했다. 옌은 첫째 줄에 앉은 인사 중 유일한 민간사업가였는데, 사소한 사업은 절대 하지 않는 인물이다(옌은 중국 최대 민간 건설사인 퍼시픽 컨스트럭션 그룹 Pacific Construction Group을 설립했다). 이제 54세에 접어든 이 백발의 억만장자는 들어서자마자 누군가의 어깨를 팔로 감쌌다. 그의 활기 넘치는 얼굴은 붉은 빛을 띠었다. 목소리도 우렁찼다. 마이크까지 잡고 청중을 통제하는 당원의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였다.

6월 초 일요일 아침, 그 자리에서 발표된 소식은 옌의 모습만큼이나 한껏 과장된 것이었다. 퍼시픽은 중국 남부 지방에 조성되는 600억 달러 규모의 산업기술허브의 기초공사를 수행할 예정이다. 로스앤젤레스의 두 배에 달하는 면적에 완전히 새로운 거주구역과 상업구역을 결합하고, 교각과 터널도 완벽하게 구축할 계획이다.

쿤밍 계약은 퍼시픽에게만 최소 100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 최종 계획에 따라서는 170억 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 계약조건을 마무리하는 데 3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미국 최대 규모 민간 부동산 계약은 뉴욕 시 허드슨 야드 Hudson Yards 프로젝트 관련 계약으로 지난해 200억 달러를 기록했다. 포춘 홈페이지를 참조하라).

이게 바로 옌 졔허가 성사한 계약이다. 거대하고 신속하며 아찔하기까지 하다.

옌 졔허의 이름이 중국 밖으로 알려지지 않는 것은 스스로 그렇게 되길 바라서는 아니다. 그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존 하워드 전 호주 수상의 친구인데, 두 사람 모두 상하이에서 열린 옌의 연례 CEO 포럼에 참석한 적이 있다. 순 자산만 30억 달러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옌은 후룬 리포트 Hurun Report가 선정하는 중국 최대갑부 명단에서 상위에 올라 있기도 하다. 다른 중국 갑부들과 달리 옌은 이 사실을 공개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중국의 옛 수도 난징 Nanjing 외곽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에서 옌은 한 쌍의 의자를 보란 듯이 자랑하며 “이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목재”라고 말했다. 그는 8명이 들어갈 수 있는 도금 스파 욕조를 보여주더니, 거실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기둥(단 한 개의 대리석으로 만들었다)도 보여주었다. 이어 건설 중인 헬리콥터 착륙장을 소개하고는 뒷마당에 만들 서재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규모는 조금 작지만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본 따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옌은 이렇게 과시적인 면 외에도 거침없이 말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빠진 적도 있다. 건국의 아버지 마오 주석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고, 사업상 공무원과 다투다가 감옥에 갈 뻔한 적도 있다. 옌과 그의 아내 장 윈친 Zhang Yunqin은 슬하에 딸(31)과 아들(28)을 한 명씩 두고 있는데, 둘째 출산 당시 1만 8,000위안(6,000달러)을 벌금으로 내야만 했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을 위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떳떳함과 재능을 십분 활용해 중국 건설업계에 이미 자리잡고 있던 경쟁업체들을 추월해왔다. 이들 대부분은 국영기업(SOE)으로 공산당과 가까운 업체였다.

퍼시픽이 과거 수주한 대규모 프로젝트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은 놀랄 만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옌이 수주한 사업의 범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라 할 수 있다. 지난 6월 서명한 100억 달러 규모의 쿤밍 계약이 끝이 아니다. 건조한 중국 북서쪽 란저우 Lanzhou 지역에선 시민 100만 명이 거주할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다(위 그림 참조). 남부 지역 푸른 호수 근처에 위치한 인구 360만의 휴양도시 달리 Dali에선 두 번째 도심구역을 건설하고 있다(달리 당국은 향후 10년간 인구 30만 명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팔을 과장되게 흔들며 이러한 내용을 간략하게 전한 옌은 “보잉은 항공기를 만든다. 우리는 도시를 건설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퍼시픽은 매출 596억 달러를 기록하며 379억 달러를 기록한 미국 최대 건설업체 벡텔 Bechtel을 따돌렸다. 올해 포춘 500대 기업에선 166위에 랭크됐다. 지금의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5년 후 퍼시픽의 매출은 가볍게 1,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30만 명에 이르는 직원규모도 정부지원을 받는 경쟁업체와 견줄 만큼 거대하다. 쿤잉 프로젝트 등을 위한 하나의 팀을 꾸리는 데 며칠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효율성도 갖추고 있다.

신문에서 ‘중국 최고의 광인’이라 부르는 옌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특별하고 역동적인 인물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곧 전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나라의 최고 사업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중국 엘리트 사업가 모임 회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사실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건 그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느냐이다.

검은색 롤스로이스 팬텀 Rolls-Royce Phantom 한 대가 중국의 어떤 극빈지역에 위치한 외길을 달렸다. 스쿠터 운전자가 여러 번 뒤를 힐끔거렸다. 백미러에 비친 번쩍이는 대형 세단을 본 트럭 운전사는 길을 내주었다. 이 외길 한쪽으로는 갈색 강이 흐르고 있고, 반대 쪽에는 판자집이 즐비했다.

조수석에 앉은 옌은 “시골에는 아직 가본 적이 없을 텐데”라며 “이제 최악의 시골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착한 곳은 화이안 Huaian이었다. 베이징과 상하이 사이에 위치한 화이안은 엄밀히 말해 ‘시골’은 아니다. 중국 내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한 곳으로, 250만 명이 쇠락한 도심 구역에 거주한다. 그 주변으로 300만 명가량이 벼와 밀 농사를 짓고 있다. 한 해 평균 수입은 외곽 주민의 경우 2,000달러, 운이 좋은 도심구역 주민의 경우 4,000달러다. 이곳이 바로 옌의 고향이다.

아홉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난 옌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은 배고픔이라고 한다. 그의 부모는 모두 교사였다. 마오 쩌둥이 ‘지식인’을 표적으로 문화혁명을 일으켰던 1960년대에는 박해의 대상이었다. 부모는 모두 밭에서 강제노동을 했고 많이 먹지도 못했다. 돼지 사료로나 쓰던 왕겨가 연명의 수단이었다.

옌이 대학에 갈 나이가 되었을 무렵, 마오쩌둥은 사망하고 경제개혁가 덩샤오핑 Deng Xiaoping이 정권을 잡았다. 그가 대입시험을 부활시키자, 옌은 베이징 중국인민대학(People’s University of China)에 입학할 기회를 얻었다. 현재 옌은 덩 샤오핑을 신처럼 우러러본다. 마오쩌둥에 대해서는 경멸 외에는 별로 하는 말이 없다. 그는 “마오는 문맹이었을 것”이라며 “마오쩌둥은 중국을 가난하게 만들었지만, 덩샤오핑은 번영하는 강국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근대 중국 혁명의 아버지에 대해 이런 비난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공산당원의 호의가 필수적인 사업가로부터 이런 비난을 듣는 건 더욱 드문 일이다. 한 컨설턴트는 포춘 500대 기업 미국인 대표가 조지 워싱턴을 비난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옌은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자신이 너무 공개적으로 비난을 지속하자 중국인민해방군 소장인 마오쩌둥의 손자가 퍼시픽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자중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옌은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있어 유일한 위험은 마오 주석이 크리스탈 관에서 부활하는 것”이라며 “바로 그것이 너무 공개적으로 말하는 데 있어 유일한 리스크”라고 말했다.

고등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던 옌은 고향에 있는 시멘트 공장 사장에 올랐다. 그곳에서 자신만의 경영 방법을 뿌리내리며 공무원들의 눈에 들었다. 적자에 허덕이는 국영기업의 구조 조정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곧 정부는 옌을 고용해 파산지경에 이른 몇몇 소규모 국영기업을 구조 조정하는 임무를 맡겼다. 각각의 사업은 모두 달랐다. 한 업체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잔디 깎는 기계를, 또 다른 업체는 장비를 제조했다. 하지만 모두 공통적인 특징을 보였다. 비효율적이면서 관료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옌이 가장 먼저 바꾼 것은 인사정책이었다. 그는 “사람을 해고할 수 없고, 유능한 사람이라도 더 오랫동안 일한 사람보다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고 말했다. 또 당시 대부분의 기업에게 생소했던 ‘판촉’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국영기업들은 구매자를 기다리기만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그는 고객이 제품을 구입하기 전에 미리 사용해 볼 수 있는 판촉 활동을 펼쳤다.

인재를 끌어 모으기 위해 유능한 직원에게는 연봉을 더 지급했고, 최저임금을 50% 인상하기까지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화는 경영구조 개혁이었다. 중간경영진이 하나 하나 승인을 받기 위해 옌을 찾아올 필요가 없게 만든 것이었다.

당시 지역 당서기였던 리 빙펭 Li Bingfeng은 경쟁업체에서 책상과 바위를 동원해 옌의 사무실로 가는 길을 막은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들 업체는 몰락하고 있었다. 빙펭은 “어느 순간, 옌이라는 인물이 모든 사업을 차지해버렸다”고 말했다.

옌의 목소리에는 복수심이 묻어났다. 그는 자신이 장비 제조업체를 운영할 때 여러 불량배에게 폭행을 당하고 머리카락까지 뽑힌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머리 정수리 쪽을 가리키자, 한 움큼 빈자리가 보였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위협을 당했다. 옌은 자신을 폭행하러 왔던 경찰과도 싸운 적이 있다고 말했다. 폭행의 배후에 누가 있었냐고 묻자, 옌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권력을 가진 나이 든 경영자들이 사업을 지키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폭행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옌은 1995년 국영기업 중 한 브랜드를 자신의 업체로 만들었다. 그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난징 배수로 건설이었다. 하지만 그 가치는 30만 위안(3만 6,000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높은 품질의 프로젝트로 만들고 싶었던 옌은 모든 자원을 투입했고, 그 과정에서 4분의 1 이상의 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의 업무윤리와 치밀한 집중력은 난징 공무원들에게 매우 인상을 남겼고 결국 더 많은 사업을 맡게 되었다. 모두 합쳐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사업이었다.

사업이 성장하면서 경쟁도 더 심해졌다. 2006년 들어 퍼시픽의 부상이 알려졌다. 국영기업들은 퍼시픽과 경쟁하기보단 인수를 선호했다. 일련의 건설업체와 에너지기업이 옌과 접촉해 매각을 권유했다. 옌은 단번에 거절했다. 곧 부정적인 기사가 중국 언론에 실리기 시작했다. 퍼시픽이 과도한 달러 빚으로 연체에 빠져 있다거나, 설립자인 ‘중국 최고의 광인’이 과도한 지출을 일삼는다는 기사가 잇따랐다(옌은 “퍼시픽이 인수한 업체의 오래전 부채라며 은행에 모두 상환했다”고 주장했다).

여파는 즉시 나타났다. 베이징 당국이 옌에게 고급차 등의 사치품을 절제하고, 중국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그의 명성은 큰 타격을 입었다. 다수의 정부 측 고객이 옌의 기업을 회피해 그 후 몇 년간 1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퍼시픽에 찾아온 재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중국 정부는 전례 없는 경기부양책을 내놓기 시작했고 인프라 부문에 6,000억 달러를 투자했다. 퍼시픽의 인기는 식었던 속도만큼 빠르게 다시 뜨거워졌다. 신문에 오르내리던 소문은 점차 사그라드는 것처럼 보였다.

먼지가 많은 중국 북서부 도시 란저우에는 황하를 따라 울퉁불퉁한 평지가 5 ㎢ 에 걸쳐 펼쳐져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이곳에는 수십 개의 산이 있었다. 퍼시픽 건설이 개발에 착수해 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었다. 옌이 사업을 위해 700개의 산을 평지로 만들 것이라는 대대적인 기사가 한 국영 경제잡지에 실린 적이 있다. 이 숫자는 여전히 여러 기사에 인용되고 있다. 하지만 퍼시픽은 지금 숫자를 너무 높게 잡았다고 밝히고 있다(언덕 수를 일일이 세기가 힘들다는 설명이 따라 붙었다).

이 지역의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퍼시픽의 쉬 셩메이 Xu Shengmei-옌과 같은 고향 출신이다-는 산이 몇 개든 3,000대의 장비와 6,000명의 인부가 1억 ㎥에 달하는 흙을 옮기고, 산 꼭대기를 깎아 협곡을 메웠다고 설명했다.

지난 수년 동안 정부는 란저우 주변 산을 깎고 싶어했다. 부분적으로는 환경오염을 완화하기 위해서였다. 주변 산이 도시의 답답하고 매캐한 공기를 가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수많은 고층건물은 물론, 높은 인구밀도까지 상하이를 닮은 란저우에 새로운 생활공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1990년대에도 수많은 국영기업이 산을 깎으려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자금 또한 항상 소진되는 듯 보였다. 향후 5~10년간 인구 390만의 란저우에 추가로 100만 명이 유입될 것이라 예상되는 가운데, 란저우 시가 이 아이디어를 최근 다시 부활시켰다. 그리고 퍼시픽만이 이 과업에 대한 수행 의지를 보였다.

옌이 발표한 란저우 ‘뉴타운’은 물이 풍부한 베니스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라스베이거스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학교, 연못, 고층건물, 공원의 중심지가 이곳에 조성될 것이다. 영화 같은 옌의 사업설명과 함께 퍼시픽은 이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이 계약을 위해 3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자하겠다는 퍼시픽의 의지도 프로젝트 수주에 도움이 되었다.

이는 옌이 초기에 성공을 거뒀던 출자 계약과 같은 방식이었다. 개인 사업체를 설립했던 1990년대 중반, 옌은 ‘이전 건설(build to transfer)’이라 불리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방식은 베이징의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던 지방 정부에 큰 인기를 끌었다. 계약 조건에 따르면, 우선 퍼시픽이 현금을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건설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부지를 다시 정부에 되팔게 된다. 정부는 이를 제3자에게 판매한다. 퍼시픽은 여전히 이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여러 중국 업체가 같은 방법을 시도했으나 퍼시픽만큼 성공을 거둔 사례는 없었다.

지난해 9월 란저우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가 완료됐다. 원래 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9개월 만에 끝이 났다. 퍼시픽은 작업 진행속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로비 활동을 벌여 겨울 작업 허가를 얻어냈다. 겨울에는 먼지에 대한 우려가 있어 원칙적으론 환경규제를 통해 건설작업을 중단시킨다. 그러나 퍼시픽은 120대의 분무장비를 추가 투입해 먼지를 줄이고 장비를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

몇몇 반대론자들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1억 ㎥의 흙을 옮기는 것이 어떻게 정상적인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란저우 당국은 이에 대한 포춘과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하지만 정부 최고 싱크탱크 중 하나인 중국국제교류센터(China Center for International Economic Exchanges)의 부센터장 정 신리 Zheng Xinli는 중앙당국으로부터 환경승인을 받았으며 “모든 필수 평가는 정부에서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환경론자들의 반대의견에 대해 옌은 “창조는 곧 파괴다”라며 “이런 방식이 미국에선 환영 받는다”고 주장했다.

비행기를 타고 란저우 남쪽으로 두 시간을 이동하면, 달리에 퍼시픽의 또 다른 건설현장이 있다. 흙을 실어 나르는 트럭과 건설현장의 먼지를 줄이려는 분무 트럭이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있다. 1,700명에 이르는 인부가 하루 3교대로 작업을 한다. 고요한 시간은 오전 6~7시뿐이다.

달리 당국은 처음부터 신도시 건설을 통해 구도시 인구밀집 문제를 완화하고 싶어했다. 이주민 유입이 예상되는 신규 지역을 관리하는 공산당원 청 용준 Cheng Yongjun은 “서부 산악지대는 물론 티베트로부터도 이민자가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짧은 머리에 바쁜 인상을 풍기는 청은 시 당국이 퍼시픽에게 120km의 도로와 5개의 교각, 6개의 터널 건설을 맡겼다고 덧붙였다. 인부와 장비를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는 퍼시픽의 장점 때문이었다는 설명도 했다. 실제 계약 서명 후 퍼시픽 직원이 달리로 파견되기까지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청은 “그들의 최대 강점은 속도와 효율”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청은 국영기업 임금은 기본적으로 고정급임을 지적했다. 그는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돈을 더 많이 받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퍼시픽은 신속하게 일하는 인센티브의 일환으로 고용, 해고, 승진을 활용한다.

퍼시픽의 또 다른 경쟁력은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다. 퍼시픽은 공무원을 고급 식당으로 초대해 엄선된 생 연어와 엄청난 양의 마오타이 Moutai-중국의 독한 백주 중 가장 값비싼 브랜드-를 대접한다(퍼시픽은 모조품 방지를 위해 공장으로부터 직접 상자 단위로 주문한다).

퍼시픽에서는 경영진에 대한 대우도 매우 좋다. 경쟁사에 비해 5배에 달하는 연봉을 지급하고, 임원들에겐 검은색 메르세데스 벤츠를 제공한다. 중국개발연구센터(China’s Development Research Center)의 국영기업 전문가 쑤언 샤오웨이 Xuan Xiaowei는 “민간기업과 국영기업의 차이는 낮은 직급의 직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차이는 고위급 임원에 있다. 승진하는 문화가 다르다. 국영기업의 문화는 매우 관료주의적”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러한 과도한 사치는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중국 언론은 옌의 사업계약 적절성에 대해 끊임 없이 여러 추측성 보도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한 건설업체 사장이 체포되고 난징 시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물러났을 때, 면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지난해 1월 난징 시장에 대한 조사를 통해 ‘도덕적 부패’가 밝혀졌고 당시 시장은 공산당에서 출당됐다). 옌은 이 사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이 업계는 가장 더러운 곳”이라며 “하지만 일 자체는 매우 투명하고 순수하다. 실제로는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한 자가 감옥에 간다”고 말했다. 옌은 현재 수감된 여러 고위 공무원들과 친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공무원이 뇌물을 요구할 경우, 퍼시픽은 계약을 진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의 정부 단속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옌 스스로가 설립한 기업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는 3년 전 퍼시픽 회장직을 아들 옌 하오 Yan Hao에게 넘겨줬다(전형적인 방식대로 그는 아들 결혼식에서 직위를 선물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옌은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는 몇 년 후에 경영대학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자신이 만들 경영대학원이 하버드와 아이비리그의 잘못된 관행, 즉 현장경험 없는 교수 채용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옌은 모든 것을 쏟아 부어 훌륭한 경영대학원을 만드는 동시에 이를 큰 사업으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세계 500대 기업에 2개 기업을 진입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과거를 돌아보면, 허황된 꿈만은 아닌 듯하다.


3만 6,000달러
옌의 첫 프로젝트였던 난징 배수로 공사의 가치

100억~170억 달러
옌의 최신 프로젝트인 곤명 기술공업 허브 건설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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