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잘츠부르크와 디즈니월드에서 배우는 한류 테마파크 성공전략

INSIGHTS

글 최종학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아빠, 폰트랍 대령 가족들이 공연장에서 도망 나와 숨어 있던 묘지예요.” 초등학생 아들 녀석이 재빨리 성베드로 성당의 묘지 안으로 뛰어들어 간다.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영화 장면처럼 묘지석 뒤에 온 가족이 숨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들고 폰트랍 대령 가족을 찾는 독일군의 모습이 떠오른다. 묘지 바로 뒤편은 잘츠부르크성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이 길의 계단에서 여주인공 줄리 앤드류스(마리아 수녀)와 홀아비 폰트랍 대령의 자녀들이 도레미송을 합창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도 그곳에서 함께 노래를 불러 봤다. 우리 가족은 10년 전쯤 유럽 배낭여행 길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들렀다. 여러 도시를 여행한 후 들른 터라 지쳤을 때였지만, 잘츠부르크에 오자 다들 신바람이 났다.

여행 출발 전 보고 온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장면을 떠올리면서 사흘간 거리를 활보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영화에서처럼 조그만 기차를 타고 산에 올랐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인구 20만 명이 되지 않는 조그마한 도시 잘츠부르크에는 매년 수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단 두 가지다. 1960년대 개봉했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과 이곳 출신 음악가 ‘모차르트’ 때문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차르트 때문에 이 도시를 방문하겠지만, 필자와 같은 일반 관광객은 사운드 오브 뮤직에 반해 이 도시를 찾는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없는 이 도시의 모습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불세출의 음악가 한 사람, 명작 영화 한 편의 흡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곳에 오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물론 자연경관이 빼어나지만 공간에 얽힌 사연이 없다면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잘츠부르크를 방문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필자는 미국 디즈니 월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방문한 적이 있다. 디즈니 영화의 여러 주인공들을 이용해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든 테마 파크가 바로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디즈니 월드다. 이곳에서 어린이들은 인어공주나 백설공주, 미녀와 야수, 미키 마우스, 토이 스토리의 주인공들을 만나고, 각종 관련된 흥미진진한 쇼를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며칠을 보낸다. 디즈니 월드는 총 4개의 테마 파크로 나뉘어 있다. 그중 한 곳을 둘러보는 데에만 통상 하루가 걸린다.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슈렉, 터미네이터, ET, 죠스, 인디애나 존스 같은 각종 유니버설 영화사 제작 블록버스터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테마파트 내에는 수십 개의 별도 건물이 있는데, 한 건물이 한 영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당 건물에 들어가면 그 영화와 관련된 공연을 관람하거나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다. 미국 중산층 가정이라면 평생 디즈니 월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열 번 이상 방문한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어린아이 시절 부모나 조부모와 함께 두 번 이상 오고, 부모가 되어선 자녀와 함께, 그리고 노인이 되어선 손자·손녀와 함께 방문한다는 것이다. 필자에게도 인어공주의 ‘under the sea’를 아이들과 함께 따라 부르고, ‘I will be back’이라는 대사가 나오는 터미네이터 쇼를 즐겁게 본 경험이 있다. 이처럼 스토리를 가진 문화·엔터테인먼트 상품은 세대를 초월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매년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다. 물론 미국인들만 오는 건 아니다. 이곳을 방문해 보면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라게 된다.

지금은 이런 미국의 막강한 문화상품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이런 상품들을 개발해야 할 때다. 우리도 미국 못지않은 잠재적인 관광상품을 가지고 있다. 바로 ‘한류’ 열풍이다. 실제로 인기 아이돌 그룹이나 드라마가 조성한 해외 한류 열풍 덕분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대폭 늘고 있다. 이들은 배용준 씨의 ‘겨울연가’에 등장한 주택이나 북촌, 중앙고교, 남이섬 등을 방문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곤 한다. ‘대장금’의 촬영 세트장도 마찬가지다. ‘별에서 온 그대’ 세트장을 만든다면 아마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다. 심지어는 연예기획사 주변을 관광하는 프로그램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기까지가 거의 전부다. 한류 드라마에서 느꼈던 감동을 승화시켜줄 총체적인 구경거리가 집약된 곳이 없다. 이런 구경거리도 전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품들을 한곳에서 접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 한류 드라마나 영화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끼고 되살릴 수 있는 디즈니 월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스토리텔링형 테마 파크를 만든다면 분명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대장금관’에서는 ‘오나라 오나라…’ 음악을 들으며 대장금과 한국의 전통을 주제로 삼은 쇼를 본다. ‘K-Pop 관’에 들어서면 소녀시대나 슈퍼주니어, 비를 닮은 가수가 나와 똑같이 현란한 춤을 추며 그들의 노래를 들려준다. ‘아이리스관’은 또 어떨까? 방문객 스스로가 직접 스파이가 돼 권총을 들고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걸 상상해 보라. 그 밖에 다른 예도 무수히 많이 들 수 있다. ‘올인관’에 들어가서 갱들과의 대결을 내용으로 하는 태권도 쇼를 본다. 유명 연예인의 ‘밀납 인형관’에 들어가 인형과 함께 포옹하면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왕의 남자관’에 들어서면 영화에 등장한 것과 비슷한 왕궁이 나타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쇼를 관람한다. 히트한 드라마마다 드라마에 등장했던 세트장을 만들고, 그 세트장에서 관광객들이 배우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한다. 새로운 드라마가 히트할 때마다 관련 전시물을 추가하면 관광객들은 식상하지 않고 몇 번이라도 다시 찾아올 것이다. 미국인들이 디즈니 월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계속 방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류 스타들을 위한 공연 전문 극장을 테마 파크 안이나 옆에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연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테마 파크를 방문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가수들이 체육관에서 공연을 하는 형편이다.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우선 공연 전문 극장이 하루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이탈리아 베로나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로미오의 집 발코니를 만들었다. 모두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영국 작가 세익스피어의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수많은 관광객이나 연인들이 베로나에 몰려와서 발코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핀란드의 산타마을은 어떤가? 산타가 없다는 걸 다 알면서도 관광객들은 기꺼이 속아준다.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은 중국 청두를 방문해 삼국지의 무대를 찾아간다. 진시황이나 양귀비 유적을 찾아 시안을 방문하는 관광객도 많다. 바로 이것이 스토리와 체험의 힘이다. 중국 전체로 보면 더 아름답거나 문화유적이 많은 곳이 다수 있는데도 이 두 도시는 스토리의 힘으로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빼어난 자연경관이나 멋진 건축물을 자랑하는 곳이라도 스토리가 없다면 두 번 세 번 관광객이 찾아 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하드 웨어와 소프트 웨어가 함께 결합되어야 반복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들도 이런 추세에 하루 빨리 눈 뜨기 바란다. 말로만 백 번 ‘관광 한국’을 외치는 것보다 이런 프로젝트 하나를 성공시키는 것이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 이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민간업자가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는 수많은 방송국, 영화사, 엔터테인먼트 회사, 부지를 제공할 지자체나 개인 지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절하려면 정부의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한류 테마파크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이미 몇 번이나 흘러나왔지만 단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다. 정부 주도 없이 민간업체가 이런 큰 일을 모두 조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현명한 혜안과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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