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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무적 군단 필승 비결은 무엇인가?

INSIGHTS

로마제국의 전성 시대에 로마는 영토를 둘러싼 주변 민족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수의 군대를 갖고도 전 유럽을 평정했다. 시저는 불과 2년의 짧은 기간 동안 연전연승을 하면서 골 지역 전체(지금의 프랑스 전역과 독일의 일부)를 정복했다. 글래디에이터 같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 속에서도 로마 군단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투구를 쓰고 큰 사각 방패를 들고 진격하는 로마군 중장갑 보병대 앞에 이민족 군대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그렇다면 로마군은 처음부터 강했을까? 로마인은 슈퍼맨처럼 힘이 세서 싸우는 전쟁마다 이겼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조그마한 도시 국가가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하고, 전 유럽과 소아시아, 아프리카 북단까지 정복할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로마인은 이탈리아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역사기록을 보면 골족이나 게르만족과 비교해 이탈리아 사람들은 머리 하나 만큼 키가 작았고 그 만큼 체격도 왜소했다. 힘에서는 교전국 병사들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멋진 기병대가 종종 등장하지만, 사실 로마의 주력군은 중장갑을 한 보병대였고 기병대는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로마의 기술력도 주변 국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로마군은 압도적인 숫자의 적군을 대부분 손쉽게 무찔렀다.

그렇다면 무엇이 로마군을 이 같은 강군으로 만들었을까? 필자는 폼페이우스나 시저처럼 위대한 장군들의 리더십에서도 로마군이 승리한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로마군의 무기와 전술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생각한다. 로마군이 사용한 큰 사각형의 방패는 적군들이 로마군 사이로 침투할 수 없도록 아군의 대열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덕분에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다. 숫자가 적더라도 적과 부딪히는 전면의 병사 숫자는 적과 차이가 없게 한 것이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전투 모습과는 달리 로마군은 각개전투나 백병전을 벌이지 않고, 항상 팔랑크스라고 불리는 사각형의 대형을 구성해서 적군과 섞이지 않고 싸웠다.

또 방패는 힘이 센 적군이 큰 칼로 내리칠 때 로마군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다. 적이 접근하면 필룸이라고 불리는 투창을 던지도록 했다. 적군은 날아오는 필룸을 막기 위해 방패로 몸을 보호해야 했는데, 로마군은 적의 방패에 필룸이 꽂힐 때 잘 뽑히지 않도록 필룸의 날을 쐐기형으로 제작해 적이 무거워서 방패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적이 자기 몸을 보호하는 수단인 방패를 버리게끔 한 것이었다. 그리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짧고 가벼운 칼로 무장해 방패로 적의 큰 칼 공격을 막다가, 적이 칼을 내리친 후 다시 들기 위해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손쉽게 방패 사이의 빈 틈으로 칼을 내밀어 찌르고 빼는 공격을 감행했다. 로마군의 검술은 이 짧은 칼로 찌르기와 빼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골족이나 게르만족은 힘이 셌으므로, 로마군에 비해 두 배 이상 크고 무거운 칼을 사용했다. 칼이 워낙 무거워 칼을 한 번 내리치고 두 손으로 다시 칼을 들어 올리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바로 이 틈을 노린 것이 로마군의 전략이었다. 머리 윗 부분만 가린 짧은 투구도 군인들이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전황을 판단하고 신속하게 반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런 하나하나의 장비나 전술들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발명품이 아니었다. 또한 그 원형이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로마는 주변 국가들과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이들 장비 제조법이나 전술들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들을 채택해서 조금씩 개량했을 뿐이었다. 원형 방패를 사각형 방패로 바꾸고 그 크기를 키웠다. 칼은 손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더 작게 만들었다. 얼굴 전체를 감싸는 큰 투구를 머리 윗 부분만 가리는 투구로 작게 만들었다. 혁신적인 최첨단 장비를 개발한 게 아니라 아주 조그마한 변화를 주었을 뿐이었다. 로마인들에겐 경쟁하는 적들에게서도 기꺼이 배운다는 개방성과 실용성이 있었던 셈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자신들에 맞게 조금씩 개량을 했다. 한편 주변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의 장점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그 조그마한 차이가 로마제국의 불패 신화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가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있었던 시기까지 전 유럽을 500년 이상 동안 평화스럽게 다스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볼 때 로마군 만큼 강했던 징기스칸의 몽골군이나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도 정복한 땅을 그리 오래 다스리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로마의 성공적인 통치 비결은? 바로 개방성이다. 정복 국가 국민들까지 포괄해 동일한 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게끔 한 것이 대표적인 예였다. 노예는 철저히 차별했지만, 노예가 아닌 일반인들은 시민권을 줘서 똑같이 취급했다. 그리고 로마의 발달된 문화와 기술을 전수해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 정복민들의 우수한 기술을 로마로 도입해 제국의 기술을 더 발전시켰고, 이를 다시 제국 전체에 전파해 피정복민들도 사용하게 했다. 이러니 골족이나 스페인 사람들도 큰 저항 없이 로마의 통치에 적응하여 살게 된 것이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로마의 성공 비결은 실용성과 개방성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우리나라 국민들이나 기업들도 모두 명심해야 할 성공요인이 아닐까 싶다. 성공하기 위해선 내가 모르는 점을 기꺼이 배워야 한다. 직위나 나이를 내세우면서 남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해선 안 된다.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머리를 숙여야 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자신이 모르는 건 남들 앞에 보이기 싫어한다. 개인이나 기업 모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잘못된 습관을 빨리 떨쳐 버려야 한다. 내가 할 수 없다면 그 점을 빨리 깨닫고, 잘 아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듯이, 내가 아는 영역과 모르는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모르는 것이 있다면 굳이 아는 체를 할 필요가 없다. 모두들 아는 체 하고 가만히 있으니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고 모른다는 사실을 밝히길 두려워하지만 막상 내막을 알고 보면 다른 사람들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CEO나 임원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르는 것을 솔직히 털어놓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최고다’, ‘우리 회사가 1등이다’ 같은 폐쇄적인 주장은 내부 단합을 위해 가끔 사용할 순 있지만, 이런 자세가 너무 강하게 외부로 표출되면 다른 국가나 기업,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불필요한 적개심만 불러일으키고, 은연중에 그런 감정이 고객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표출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인의 폐쇄성이나 선민의식은 종종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반감이나 문화충돌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물론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세는 나 자신의 한계점을 깨닫고 잘못을 개선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그 반대로 ‘내가 최고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남의 장점을 찾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개방성과 실용성이다.

나에게 시저나 폼페이우스와 같은 리더십이나 정통한 전술이 있다고 해도 군대의 능력이 내 기대를 따라주지 않으면 전장에 나섰을 때 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전쟁에 임하기 전에 내가 보유하고 있는 군대의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이 먼저 남들로부터 배우려는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래야 내 부하들도 그런 자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다음 내용을 명심하라.

‘지성에선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선 갈리아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선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선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진다고 로마인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었음에도, 로마가 대제국을 건설해 그토록 오랫동안 번영할 수 있었던 건 타민족에 대한 개방성과 유연함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무적 로마군단 신화가 탄생한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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