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미래의 노벨상 주인공이 될 창의적 과학영재 발굴을 모토로 매년 주최하고 있는 ‘한화 사이언스 챌린지’의 본선 경연이 최근 경기도 가평의 한화인재경영원에서 열띤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에는 역대 가장 많은 총 674개팀 1,348명의 고등학생이 참가했다. 각 팀들은 지난 3월부터 6개 월간 ‘지구를 구하라(Saving the Earth)’는 주제 아래 에너지, 물, 바이오, 기후변화 등 4대 글로벌 이슈에서 참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자웅을 겨뤘다.
치열한 1차, 2차 심사를 거쳐 최종 본선에 오른 팀은 총 20팀. 이들은 지난 9월 18일부터 양일간 한화인 재경영원에서 만나 자신의 연구결과와 그 의미를 발표하고 전시 및 상호토론, 질의응답 등의 심층심사를 받았다. 이를 통해 분야별 20명의 전문가들이 연구의 창의성과 독창성, 연구과정의 논리성, 연구결과의 실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이날 대상 1팀과 금상 2팀, 동상 15팀이 최종 선정했다.
영예의 대상은 서울과학고 ‘맥토시(MacTosh)’팀에게 돌아갔다. 이 팀은 주수전지(注水電池)에서 영감을 얻어 활성화와 비활성화를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친환경 배터리에 대한 연구로 최고점을 받으며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4,000만원 장학증서의 주인공이 됐다. 또한 금상은 ‘불가사리 내생세균을 이용한 생체모방 필터’를 연구한 대구과학고 ‘알파카본(Alpha carbon)’팀과 ‘친환경 소재로 축열 용량을 높인 회반죽’을 주제로 내놓은 대전 전민고등학교 ‘저스트(JUST)’팀이 차지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미국 인텔은 자사 과학경진대회를 통해 발굴한 인재 중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뒀다”며 “사이언스 챌린지를 ‘한국의 젊은 노벨상’ 탄생을 지향하는 국내 최고, 최대 규모의 과학축제로 육성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상]
수상팀: 서울과학고등학교 MacTosh (이명환, 함재훈)
연구주제: 활성-비활성의 제어가 가능한 배터리
‘엉뚱 포텐’ 가장 센 놈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1만5,000톤 이상의 폐건전지가 발생한다. 이중 재활용되는 비중은 1,000톤 남짓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소각, 투기되면서 토양·수질·대기의 심각한 오염원이 되고 있다. 그런데 만일 건전지의 사용수명을 지금보다 대폭 늘릴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동일한 용량의 건전지를 가지고 말이다. 그때는 폐건전지 발생량 자체를 줄여 환경에 직접적 도움이 될 것이다.
배터리에 온·오프 스위치 달기
서울과학고 2학년 이명환 군과 함재훈 군은 이번 대회에서 이를 실현할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인위적으로 에너지 사용을 활성화 또는 비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배터리가 그것이다. 쉽게 말해 이 배터리는 마치 전등처럼 온·오프가 가능하다. 평상시에는 스위치를 꺼놓았다가 필요할 때만 켜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라고 이해하면 된다.
명환 군은 “기존 배터리는 사용하지 않을 때도 조금씩 자가방전이 일어난다”며 “갑작스런 정전으로 꺼내든 손전등의 배터리가 방전돼 사용할 수 없었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밝혔다. 명환 군은 또 “이처럼 온·오프가 가능해지면 자가방전을 근본적으로 차단,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서 “비상용 손전등이나 지시봉, 경광봉 등 간헐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에 적용할 경우 최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스위치를 부착한다는 것일까. 두 사람은 ‘아쿠아셀(Aquacell)’이라는 주수전지(注水電池)에 주목했다. 재훈 군은 “이 건전지는 전해액 없이 음극과 양극 사이에 흡수재가 삽입된 상태로 판매되는데, 사용 직전 물에 담그면 흡수재가 물을 빨아들여 전해질 역할을 하면서 활성화된다”며 “이 개념에 기반해 활성화와 비활성화를 자유롭게 제어할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적의 전해질을 찾아라!
이번 연구의 성패는 두 가지에 달려 있었다. 하나는 배터리의 재질과 구조, 구성물질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활성화-비활성화를 가역적으로 넘나드는 전해질을 찾는 것이었다. 먼저 구조와 구성물질은 인터넷과 지도교사의 도움을 받아 파악에 성공했다. 이후 두 사람은 3D 모델링 프로그램으로 구조를 설계하고, 학교 공작실에서 아크릴로 직접 배터리 모형을 제작한 뒤 구성물질들을 채워 넣었다.
명환 군은 “이 과정에서 기계에 손을 다칠 뻔도 했고, 갑자기 불이 붙어서 모형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간 적도 있다”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만큼 배터리에 대한 이해도와 실험 테크닉을 키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비하면 전해질 탐색은 쉬운 편이었다고 한다. 1차 전지용 전해질을 대상으로 온도에 따라 민감하게 용해도가 변하는 물질을 검토, 수산화바륨(Ba(OH)2)을 낙점했다.
재훈 군은 “전해질 사이에 물리적 차단재를 넣는 방식으로 온도를 통해 활성화-비활성화가 제어되는 1차전지를 구현해냈다”며 “활성화 시에는 0.714V, 비활성화 시에는 98.4㎷의 전압이 검출됐다”고 설명했다. 명환 군과 재훈 군은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이론연구에 머물렀던 2차 전지에 대한 추가 실험과 실험모델을 제작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팀명 선정의 비밀
“맥토시(MacTosh)라는 팀명은 ‘가장 센 놈’이란 의미를 가진 ‘Mack’과 헛소리라는 뜻의 ‘Tosh’의 합성어예요. 저희 아이디어는 처음 들으면 헛소리 같지만 알고 보면 가장 센 놈이며,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 나가서 이기고야 말겠다는 다짐도 담겨 있죠. 그런데 사실 이런 설명은 팀명이 전해진 뒤에 생각한 거예요. 실제로는 저와 재훈 군이 쓰고 있는 노트북의 제조사인 ‘매킨토시(Macintosh)’와 ‘도시바(toshiba)’를 합친 즉흥적 작명이었답니다.” - 이명환
[금상]
수상팀: 대구과학고등학교 Alpha carbon (우성욱, 송승연)
연구주제: 불가사리 내생세균을 이용한 생체모방 필터
수상팀: 대전전민고등학교 JUST (홍세화, 김태원)
연구주제: 친환경 소재로 축열 용량을 높인 회반죽
지구를 구할 환경 수호대
‘지구를 구하라’라는 이번 대회의 슬로건에 부합하듯 금상 역시 세심한 통찰력과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독창적 해법을 제시한 두 팀에게 돌아갔다. 대구 과학고 ‘알파 카본(Alpha carbon)’팀과 대전 전민고 ‘저스트(JUST)’팀이 그 주인공이다. 두 팀은 각각 ‘불가사리 내생세균을 이용한 생체모방 필터’와 ‘친환경 소재로 축열 용량을 높인 회반죽’을 주제로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환경을 지키는 세균
먼저 알파 카본팀의 생체모방 필터는 가시불가사리(Astropecten polyacanthus)를 수조에 넣으면 조류(藻類)의 성장이 억제되지만 불가사리를 임피실린(ampicillin) 항생제에 담근 뒤에는 그 능력이 사라진다는걸 알게 되면서 연구가 시작됐다. 성욱 군과 승연 양은 불가사리의 내생 세균이 조류 성장에 필요한 영양염을 제거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 판단했다.
성욱 군은 “기초 연구를 통해 불가사리의 수관계와 위(胃)를 갈아서 부영양화 상태의 수조에 넣고 영양염 측정기로 분석했더니 예상대로 영양염의 감소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불가사리의 박테리아, 좀더 정확히 말해 바실러스 세레우스(Bacillus cereus)와 유사한 세균으로 영양염을 걸러줄 필터 제작에 나섰고, 결과는 놀라웠다. 승연 양에 따르면 여타 해양 박테리아나 탈질 박테리아와 비교해 질산염(NO3)은 70%, 인산염(PO4)은 무려 90% 이상의 제거율 차이를 보였다. 또한 여과방식에 따른 제거효율 실험 결과, 실리카와 외부 여과조 방식에서 가장 높은 효율이 관찰됐다.
연구과정에서 힘든 일은 없었을까. 두 사람 모두 학과수업과 병행하다보니 실험시간이 부족했다는데 아쉬움을 표명했다. 성욱 군은 “더 확실한 데이터와 정확한 변인 통제가 필요한 만큼 추가적인 실험을 계획 중”이라며 “후속 연구를 거쳐 효과와 안전성, 경제성이 확인되면 특허 출원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폐기물의 화려한 변신
저스트팀의 아이디어 역시 알파 카본팀에 뒤지지 않을 만큼 독창적이다. 생활폐기물인 머리카락과 쇠기름을 재활용해 건축물의 마감재와 보수·보강재로 많이 쓰이는 폴리머 시멘트 모르타르(PCM)를 대체할 신개념 건축 소재를 개발한 것.
태원 군은 “물질이 상태변화를 일으킬 때 온도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이 현상을 건물에 활용하고자 고민한 끝에 이번 연구 주제를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태원 군과 세화 군은 머리카락에 쇠기름을 적셔서 시멘트에 넣으면 흙벽돌에 지푸라기를 넣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구성 향상과 단열, 축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중량 20㎏의 시멘트 패널을 가지고 정육면체의 건물 모형을 직접 제작, 1:1의 비율로 쇠기름을 흡수시킨 머리카락을 넣고 온풍기를 이용해 저온과 고온에서의 온도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잠열량은 증가하고 열전도율은 낮아지면서 탁월한 축열 효과가 입증됐다. 특히 열전도율은 시멘트 대비 머리카락의 함량이 2%였을 때 가장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화 군은 “외부에서 열이 가해질 때 머리카락에 흡수된 쇠기름이 녹으면서 그 열을 흡수, 건물내부의 온도 상승을 막아준다”며 “이 소재를 활용한다면 여름철 냉방비 절약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금상이라는 큰 성과를 얻었지만 두 사람의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태원 군은 “머리카락을 넣었을 때 시멘트의 강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발견돼 이를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그리고 나서 특허를 출원, 본격적인 실용화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수관계 (water-vascular system, 水管系) 극피동물의 호흡과 배출에 관여하는 기관.
탈질 (denitrification, 脫窒) 질산염(NO3)의 환원에 의해 질소를 분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