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30대그룹은 지금] 삼성전자

사물인터넷은 미래 성장 동력<br>스마트홈에 기술 역량 모은다

삼성전자가 사물인터넷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홈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적이 하락하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을 대신해 사물인터넷이 삼성전자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수 있을까.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머니였다. “얘야. 집 앞이다. 문 좀 열어다오.” 어머니는 손에 반찬거리를 잔뜩 들고 계셨다. “어휴. 미리 말씀 좀 하고 올라오시라니까요. 마중이라도 나가게.”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바쁜 사람을 뭐 하러 불러. 요즘 세상엔 전화기가 문도 다 열어 준다는데. 어서 문이나 열어라.” 아들은 스마트폰을 조작해 집 현관문을 열었다. 아들은 살짝 걱정이 됐다. 현관이 열리면 아내 스마트폰에도 알림이 뜬다. 그리고 IP카메라를 통해 어머니가 거실과 부엌을 오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거실에 있는 로봇청소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내가 사무실에서 스마트폰으로 원격 조종을 하는 게 분명하렷다. ‘또 밤새 잔소리를 하겠군.’ 아내는 어머니가 예고 없이 집에 다녀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가 끓여주실 김치찌개 생각에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였다.

이 이야기는 허구로 지어낸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기술은 모두 당장 구현 가능한 현실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홈’ 전시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구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물인터넷은 모든 사물을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해 정보를 생성·수집·공유·활용하는 기술을 뜻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8~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4 국제 스마트홈·빌딩전’에 참가해 눈앞에 다가온 미래 스마트홈의 모습을 선보였다.

전시장은 모델하우스를 방불케 했다. 현관부터 거실, 부엌, 침실에 이르기까지 생활기기를 완비하고, 집안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는 스마트홈 기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실에 놓인 대형 곡면 UHD TV에선 최신 영화 ‘트랜스포머 4’가 나오고 있었는데, 순간 화면 한쪽에 갑자기 팝업 창이 떴다.

팝업 화면엔 현관 밖 상황이 비치고 있었다. 누군가 현관 벨을 누르자 현관 웹캠이 연결된 것이었다. 도우미는 TV 리모콘을 이용해 방문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리모콘 버튼을 눌러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이전 비디오폰이 하던 기능이 TV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 밖에도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세탁기가 어느 정도 돌아갔는지, 실시간 전력소비량은 얼마인지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방에선 웨어러블 기기인 갤럭시 기어를 이용해 음성으로 에어컨을 켜거나 조명 밝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심지어 구형 가전기기도 통제 가능하다. 스마트플러그를 콘센트에 연결하면 일반 제품까지 제어가 가능하고 전력 사용량도 파악할 수 있다. 또 부엌에선 모델이 냉장고에 설치된 액정화면을 통해 TV를 시청하거나 휴대전화를 받고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보다 한 달 전 독일에서 선보인 전시에선 좀 더 진일보한 기술을 과시했다. 삼성전자는 현지 시간 9월 5일부터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가전박람회(IFA) 2014에서 ‘삼성 스마트홈’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리미엄 제품과 기술을 선보였다. 위치 인식 기능도 그중 하나다. 스마트홈 서비스는 스마트폰을 통해 사용자가 집에 가까이 왔음을 자동으로 인지하고, 집에 들어오기 전에 조명과 에어컨 등 가전 제품을 미리 알아서 켜놓고 사용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삼성전자가 최근 전시를 통해 선보인 스마트홈 기술에는 예전에 비해 4가지 신기능이 추가됐다. 조수환 삼성전자 미디어 솔루션 센터 과장은 말한다. “이번에 새로 선보인 기술은 크게 4가지입니다. 첫째는 세이프티 서비스, 둘째는 에너지 모니터링, 셋째는 위치 인식, 넷째 음성 제어입니다. 모두 일상 생활 속에서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핵심 기능들이죠.”

세이프티 서비스는 외출 중 현관의 도어락이 열리면 등록된 가족의 스마트폰으로 알림 메세지를 전달하고, IP 카메라를 통해 집 안을 살필 수 있는 일종의 무인 경비시스템이다. 에너지 모니터링 서비스는 스마트홈 서비스에 연결된 모든 기기들의 전기 소비량과 예상 비용을 집계해보기 쉽게 알려 주는 서비스다. 음성 인식 서비스는 갤럭시 기어나 갤럭시 스마트폰의 S보이스 기능을 이용해 에어컨, 로봇 청소기, 조명 등을 보다 편리하게 언제 어디서나 작동시키는 기술이다. 단순히 기기를 음성으로 켜고 끄는 것 뿐만 아니라 ‘에어컨 온도 내려’, ‘침실 조명 켜’ 등보다 세부적이고 다양한 명령을 음성으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어요.” 조 과장은 말한다. “삼성전자 제품 외 다른 회사 제품과도 연동된다는 사실입니다. 도어락, IP카메라, 스마트 플러그처럼 저희가 생산하지 않는 제품군으로까지 서비스 대상을 확대해 사용자들의 선택 폭을 더욱 넓혔습니다.” 그의 말은 미래가 현실로 바짝 다가왔다는 걸 의미했다. 전시된 제품 중 절반 이상이 이미 상용화됐고, 나머지도 내년 초쯤에는 시장에 등장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술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좀 더 획기적인 미래상은 어떤 것일까? 삼성전자가 개발하고 있는 혹은 지향하는 신기술은 어떤 것이 있을까?

조 과장은 대략적인 방향만 짚어주었다. “사용자가 굳이 명령하지 않더라도 스마트홈이 알아서 척척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겁니다. 평소 사용자가 보인 습관이나 선호도, 기분 등을 읽고 이해해 스스로 응용하는 수준이죠.” 그의 말을 다른 식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만약 사용자가 우울할 때 재즈를 즐겨 듣고, 기분 좋을 때 팝송을 주로 들었다면, 스마트홈이 사용자 표정을 살펴 선곡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음반회사는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신곡을 선곡 리스트에 끼어 넣으며 은근슬쩍 새 음반을 광고할 수도 있으리라.

좀 더 구체적인 출시 계획을 묻자, 삼성전자 측은 말을 아꼈다. 대외비라는 것. 심지어 스마트홈 솔루션 센터 인력 구성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았다. 다양한 부서와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만 귀띔해주었다. 삼성전자가 얼마나 신중하게 보안을 유지하는지 알 수 있는 방증이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홈과 사물인터넷 시장을 미래의 캐시카우로 보고 투자를 키워가고 있다. 올 4월 한국, 미국, 영국 등 11개국에서 가전, TV, 스마트폰 등 가전기기와 IT기기를 통합 플랫폼으로 연동시키는 ‘삼성 스마트홈’을 론칭했다. 그리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통신, 가전, 건설, 에너지, 보안 등 각 산업분야 기업이 동참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8월엔 관련 기업을 연이어 인수하며 기술력과 시장 확보에도 나섰다.

미국 사물인터넷 플랫폼 개발 회사인 스마트싱스 SmartThings를 약 2억 달러에, 북미 공조전문 유통업체 콰이어트사이드 Quietside를 2,4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콰이어트사이드 인수는 언뜻 보면 스마트홈과 관련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이 역시 스마트홈 사업을 강화하는 포석임은 분명하다. 건물 환기와 냉난방을 관리하는 공조시스템은 주택과 오피스 등 모든 건물에 필수적으로 적용될 뿐 아니라 건물 에너지를 관리하는 핵심 시설이다. 공조시스템을 확보하면 다른 스마트홈 제품을 연계해 판매하기도 한결 쉬워진다. 삼성전자는 시장 개발을 더욱 서둘러야 할 입장에 처해 있다. 지난 수년간 삼성전자 실적 성장을 견인하던 스마트폰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응책을 마련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사물인터넷과 웨어러블 사업이다.

삼성전자는 웨어러블에선 반 보 앞서 시장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9월 스마트워치 갤럭시 기어를 출시한 데 이어 올해는 2월에 기어2, 기어2 네오,기어 피트 등 후속작을 선보이며 스마트워치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애플도 9월 애플워치를 내놓았다. 내년 초 본격 시판에 들어가기 전까진 소비자 반응을 정확하게 관찰하기 어렵지만, 일단 반향은 좋게 나오고 있다. 조성은 삼성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안드로이드나 타이젠 OS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스마트워치보다 가격은 높지만, 애플 워치를 위한 운영체제 리뉴얼과 앱, 디자인을 보면 판매량은 기대치를 상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삼성전자에게도 경쟁 제품 출시는 희소식이 될 수 있다. 시장 개척 단계에선 경쟁을 통해 시장 파이를 키울 수 있어 긍정적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직애널리스트(SA)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워치 시장 규모는 올해 700만대 수준이지만 2017년까지는 5,510만대까지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증권가에서도 성장성 전망치를 내놓았다. 하준두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말한다. “스마트워치 시장은 애플워치가 출시되는 내년에 시장 규모가 11조 원에 이르고 2018년엔 65조 원으로 4.5배 성장할 것입니다.” 하 연구원은 그러나 “300조 원 스마트폰 시장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라고 덧붙여 강조했다.

스마트홈 시장규모는 더욱 크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2014 서비스홈 시스템과 글로벌 예측’이란 보고서를 통해 스마트홈 시장 규모를 예측했다. 이 보고서는 스마트홈 시장규모가 올해 480억 달러(약 49조 원)에서 연 평균 19%씩 증가해 2019년 1,115억 달러(약 116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스마트홈을 포괄하는 전체 사물인터넷 시장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 규모는 어마어마해진다.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인터넷에 연결된 사물은 26억 개에 그쳤지만 오는 2020년에는 그 규모가 260억 개로 늘어난다. 지난해 2,000억 달러를 기록한 사물인터넷 규모도 2020년이면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이 시장에선 세계 최대 기업들이 어깨를 겨누고 있다. 스마트폰 플랫폼을 지배하고 있는 양대산맥 구글과 애플이 사물인터넷과 스마트홈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구글은 스마트 온도조절장치를 만드는 네스트를 올 1월 3억2,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그리고 6월 외부 개발자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자사 자동온도조절장치와 열감지 하드웨어가 다른 기기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개방했다. 스마트홈 구축에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애플은 6월 개발자회의 (WWDC)에서 ‘홈킷’을 공개했다. 홈킷은 아이폰을 각종 가전기기와 연결하는 스마트홈 플랫폼이다. 세계 유력 가전회사인 필립스, 오스람, 아이디바이스, 하이얼, 허니웰 등이 협력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홈킷을 기반으로 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닌 취약점은 플랫폼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판매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바 있지만, 플랫폼은 대부분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의존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 수익성이 빠르게 하락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스마트홈 사업에서도 이런 양상은 재현될 수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 경쟁력 없이는 삼성전자의 미래가 어둡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심호성 한국공개소프트웨어협회 상근부회장은 말한다. “제조업 중심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운영체제를 다루는 능력과 서비스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죠. 삼성전자는 타이젠을 단순한 OS보단 가전과 자동차 등을 아우르는 공개 플랫폼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삼성전자가 최근 스마트홈 전시에서 선보인 제품은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OS를 탑재하고 있다. 아직 공개된 플랫폼은 아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도 공개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스마트폰 OS로 개발한 타이젠을 스마트홈 구축을 위한 플랫폼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9월엔 삼성 오픈소스 콘퍼런스를 열고 타이젠TV 운영체제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홈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제조업 DNA를 벗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구글과 애플, 두 공룡이 지배하는 시대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해야 삼성전자는 생존의 길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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